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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8) 소크라테스의 유언
    (18) 소크라테스의 유언

    ▲ 40대에 ‘아테네 역병’ 겪으며 질병과 의술에 고민… 평소 훌륭한 의사라고 칭송했던 히포크라테스 대신 ‘의술의 신’ 언급은 자연스러워“‘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수탉 한 마리를 빚졌는데 잊지 말고 갚아 주게나.’ ‘내 그렇게 함세. 그밖에는?’ 크리톤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잠시 뒤 몸이 약간 뒤틀렸다. 사나이가 소크라테스의 얼굴을 가렸던 천을 벗기자 눈동자는 이미 빛을 잃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크리톤이 소크라테스의 눈을 감겨주었다.”플라톤(기원전 427~347년)이 저서 에서 묘사한 소크라테스(기원전 469~399년)의 최후이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 대해 “삶을 일종의 질병이라고 생각한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 삶이라는 질병이 치유되었다며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감사의 뜻으로 닭을 바쳐달라고 했다”는 둥 해석이 분분하다. 이 최후의 한 마디에 소크라테스의 깊은 뜻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무방할 것 같다. ...

    2014.08.01 22:03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7) 질병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일리아드’와 ‘신성병에 대하여’
    (17) 질병에 대한 두 가지 관점-‘일리아드’와 ‘신성병에 대하여’

    질병은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가정적으로나 국가적으로도 중대한 일이다. 그에 따라 질병은 오래전부터 의학책뿐만 아니라 문학작품에도 중요한 소재나 주제가 되어왔다. 서양 최초의 서사시라고 일컬어지는 호메로스(Homeros, 기원전 8세기 무렵)의 <일리아드(Iliad)>에도 질병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니, 트로이 전쟁을 그린 이 방대한 영웅서사시는 다음과 같이 질병에 대한 묘사로 막이 열린다.“수많은 용사를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하데스에게 다투어 보냈고, 수많은 영웅을 개와 독수리의 먹이가 되게 한 사태는 아트레우스의 아들 아가멤논 대왕과 아킬레우스가 언쟁을 시작한 날부터 비롯되었다. 그럼 대체 어느 신께서 이들에게 이러한 불행을 가져다주었단 말인가? 그것은 아폴론 신이니, 아가멤논이 자신의 사제 크리세스에게 불경하게 대한 데에 분노한 아폴론이 아가멤논에게 경고하는 뜻으로 역병을 보냈던 것이다.”질병을 정령의 침입·신의 형벌로 이해‘역병(...

    2014.07.18 20:41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6) 이토 히로부미와 식민지 의료
    (16) 이토 히로부미와 식민지 의료

    ▲ 병원·의학교 통폐합으로 의료까지 장악, 현 서울대병원 자리에 ‘한국 의료 발달’ 명분 최신식 병원 설립… 개원 첫해 입원환자 73%가 일본인대한제국이 온전한 국가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은 1905년 11월17일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됨으로써 국가 기능의 핵심인 외교권을 상실했을 때부터라 할 수 있다. 을사늑약 체결을 지휘한 뒤 잠시 일본에 돌아갔다 1906년 3월2일 한국 통감 자격으로 다시 한국에 온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는 내정도 속속들이 장악해가기 시작했다. 을사늑약 자체가 불법이거니와 외교권 위임만을 규정한 늑약 내용에도 위배되는 것이었다. 이토는 1909년 6월14일까지 3년 남짓 통감으로 재임하면서 행정, 사법, 재정, 군사, 경찰, 보건의료, 교육 등 한국이라는 국가의 거의 모든 권한과 기능을 빼앗았다. 이토가 후임자 소네에게 통감 자리를 물려줄 때에는 이미 대한제국은 이름만 남았을 뿐이었다.■ ‘의학계의 이...

    2014.07.04 21:03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5) 최초의 근대서양식 의과대학, 의학교 ③
    (15) 최초의 근대서양식 의과대학, 의학교 ③

    ▲ 대부분 임시·명예직에 학교 운영도 순탄치 않아 1902년 입학생 중 졸업생은 4명뿐… 거주지서 의술 펼친 ‘근대 의사’ 배출엔 의미1899년 3월부터 1907년 3월까지 8년 동안 의학교 교관(교수)으로 임명된 사람은 모두 18명이지만 절반 이상은 재임 기간이 매우 짧아 실제로 교관 역할을 한 사람은 8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김익남(도쿄 자혜의원 의학교 졸업), 남순희(도쿄 공수학교<工手學校> 졸업), 장도(도쿄 법학원 졸업), 유세환(도쿄 약학교 및 도쿄 제국대학 의과대학 선과<選科> 졸업), 최규익(도쿄 고등공업학교 화학공예부 졸업) 등 5명은 일본 유학생 출신이며, 김교준과 유병필은 의학교 제1회 졸업생, 전용규는 일반 관료 출신으로 이들은 당시 최고의 신지식인 엘리트들이었다. 그밖에 일본인 의사 고죠(古城梅溪), 그리고 고죠가 해부학 수업 부실 때문에 학생들의 배척을 받아 그만둔 뒤에는 고다케(小竹武次郞)가 교사로 일했다....

    2014.06.20 21:15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4) 최초의 근대서양식 의과대학, 의학교 ②
    (14) 최초의 근대서양식 의과대학, 의학교 ②

    ▲ 대한제국 정부, 국공립 병원 전국 각지 건립 구상과 맞물려 추진… 의학교 졸업생 의사 시험 없이 개업면허 특혜오늘날 학교교육은 기본적으로 초등과정(초등학교), 중등과정(중학교와 고등학교), 고등과정(대학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근대화의 중요한 산물로 세계 공통이다. 그러면 한국에서 이러한 근대식 학교교육 체계가 세워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일까?■ 1895년 근대 교육법령 제정, 공포근대적인 교육 관련 법령이 제정, 공포된 것은 1895년부터이다. 지난 회에 언급했듯이 ‘한성사범학교 관제’(5월10일), ‘외국어학교 관제’(6월11일), ‘소학교령’(9월7일)이 모두 칙령으로 잇달아 반포되었으며 그 법률들에 따라 각각 해당하는 학교들이 설립되었다.‘소학교령’에 따라 1895년 9월16일에 설립된 학교는 장동(壯洞)소학교, 정동(貞洞)소학교, 계동(桂洞)소학교, 주동(紬洞)소학교 등 모두 국가에서 설립한 관립(국립)기관이다. 각각 9월26일과 1...

    2014.06.06 21:05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3) 최초의 근대서양식 의과대학, 의학교 ①
    (13) 최초의 근대서양식 의과대학, 의학교 ①

    ▲ 김홍집 추진했다 아관파천으로 무산된 후 만민공동회서 주도… 대한제국정부, 독립협회 해체 정국서 정략적 당근으로 전격 수용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로 삼으면서 내세운 주된 명분은 스스로 발전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미개국을 근대적인 문명사회로 개발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명분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한국인들의 자주적인 근대화 성과를 말살했다. 완전한 병탄의 준비기인 1906년부터 1910년까지의 통감 통치 시절, 일제는 재정, 금융, 군대, 경찰, 사법, 교육 등 주요 분야들을 장악해 가면서 한국인들의 노력과 성취를 지우는 데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보건의료 분야도 마찬가지였다. 1870년대 이래 한국인들이 보건의료 분야에서 거둔 성과를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폄하하거나 아예 사실 자체를 부정하고는 일제가 근대적 보건의료를 도입한 것처럼 역사를 왜곡했다. 이러한 점은 주로 선교 목적으로 한국에 와있던 서양인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역사 왜곡은 일...

    2014.05.23 21:16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2) 최초의 근대 서양식 국립병원 ③
    (12) 최초의 근대 서양식 국립병원 ③

    ▲ 의료보다 기독교 전파 염두에 둔 미국 북장로교 인사들, 조선 정부에 압력 행사 ‘선교병원’ 전환… 1905년 국고 환수 직후 일제에 의해 폐원19세기말, 조선은 서양인들에게 머나먼 미개의 땅이었다. 미군함 팔로스호의 함장 보스트윅은 조선을 “유쾌한 일이 전혀 없는 곳. 집이란 거의 다 누추하고, 벼룩과 빈대와 이가 득실거리고, 하이에나 굴보다 더 지독한 악취가 넘쳐나는 나라”라고 묘사했다. 30년 넘게 조선에서 선교사로 일한 언더우드도 한성을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단조롭고 세상에서 가장 염증이 나는 도시”라고 했다. 조선의 미와 장점을 예찬한 서양인도 있었지만 대개는 조선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고, 그만큼 조선인들은 열등하고 자신들은 우월한 존재라고 여겼다.제중원에서 의사로 일한 미국 북장로교 소속의 알렌, 헤론, 빈튼, 에비슨 등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조선에 온 목적은 하느님을 모르는 미개하고 가련한 조선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직...

    2014.05.02 20:50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1) 최초의 근대 서양식 국립병원 ②
    (11) 최초의 근대 서양식 국립병원 ②

    ▲ 조선정부 매해 운영비 3000원과 서양의사 급료 지급에 알렌도 “상하이 병원보다 우수”… 미국 선교부 재정 탄탄치 않아 점차 파행제중원의 운영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환자 수는 들쭉날쭉했고 심지어 병원이 오랫동안 문을 닫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이러한 운영 부실의 주된 이유를 조선정부에 돌리는 주장이 있는데 과연 그런가?정부는 개원 초 재원 조달에 난관을 겪기도 했지만 곧 어려움을 극복해 약값을 비롯한 병원 운영비로 제중원에 매해 약 3000원을 지불했다. 이와 별도로 1887년부터는 외국인 의사에 대한 급료로 매달 50원씩(연 600원) 지급했다. 이 밖에도 정부는 재동 시절 두 차례의 병원 확장 공사와 구리개(지금의 을지로 2가와 명동)로 병원을 이전하는 등 많은 비용을 써서 제중원을 건물, 시설, 장비 등에서 손색이 없게 만들었다. 즉, 1894년 가을 제중원 운영권이 조선정부에서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이관되기 전까지만 해도 제중원의 재정은 탄탄했다....

    2014.04.18 21:59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10) 최초의 근대 서양식 국립병원 ①
    (10) 최초의 근대 서양식 국립병원 ①

    ▲ 전통의술로 민중 돌보던 혜민서·활인서 폐지 2년 뒤 양반 거주지 북촌의 홍영식 가옥에… 현 외교부 해당 ‘외아문’서 관할1885년부터 1905년까지 20년 동안 존속했던 제중원(濟衆院)은 한국 최초의 근대 서양식 국립병원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크다. 외국인들은 제중원을 왕립병원이나 정부병원이라고 불렀다. 미국인 의사 알렌(Horace Newton Allen)과 헤론(John W. Heron)이 제중원에서 첫 1년간 활동한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의 명칭도 이다.제중원은 오늘날의 외교부에 해당하는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외아문) 소속이었다. 지금처럼 보건복지부가 보건의료 업무를 주관하게 된 것은 세계적으로도 20세기 중반 이후이다. 그 전에는 대체로 내무부(안전행정부)가 보건의료를 관장했으며 우리도 1894년의 갑오개혁 때부터 그러했다. 제중원이 설립된 1885년 무렵에는 외교와 통상뿐만 아니라 근대문물을 도입, 시행하는 업무를 대개 외아문이 담당했으므로 ...

    2014.04.04 21:21

  •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9) 근대식 의사의 역사
    (9) 근대식 의사의 역사

    ▲ ‘한국인 1호’ 서재필, 미국서 의대 나온 후 국내 머문 2년6개월간 의사 활동 전혀 안 해… 김익남, 일본서 인턴 근무 후 돌아와 후진 양성 등 적극적 활동한국은 의사와 한의사 면허가 구분되어 있다. 북한도 마찬가지인데 다만 한의사 대신 고려의사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반면 일본은 전통식 의사가 아예 없다. (2013년 11월 발간)에 의하면 2012년 현재 의사 수는 10만7295명, 한의사 수는 2만668명이다. 해방 직후 의사 3569명(1948년), 한의사(의생) 1657명(1949년)에 비해 각각 30배, 12배로 크게 늘어났다.의사 면허 제도가 한국에 처음 도입된 것은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이다. 1874년 ‘의제(醫制)’를 제정하면서부터 국가가 의사의 자격을 관장한 일본에 비해 4반세기 뒤진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의사 면허 제도를 실시한 나라는 영국으로 1858년부터이다. 국가에 의한 의사 면허 제도가 실시되기 전에는 사실상 ‘누구든지’ 의...

    2014.03.21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