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가 피해라는 이름을 얻는 데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노력은 노력이라는 말로 두루뭉술하게 덮어버리기엔 지나치다. 노력은 해야 하는 것, 하면 좋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떤 노력은 일상을 다 파괴하고, 피해가 더 끔찍해진 뒤에야 겨우 피해로 인정받는다. 이제는 모두가 사실로 받아들이는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과 석면·가습기살균제·원전 방사능의 피해도 처음엔 그랬다.의사이자 과학자, 연구활동가 백도명은 ‘그럴 리 없다’와 싸워왔다. 석면을 쓰면 안 된다고? 그럴 리 없다. 반도체공장에서 일한 것 때문에 백혈병에 걸렸다고? 그럴 리 없다. 폐손상이 가습기살균제 때문이라고? 그럴 리 없다. ‘그럴 리 없다’가 ‘그럴 수 있다’에서 ‘그렇다’로 바뀌기까지 백도명이 한 일은 연구였다. 피해사실을 수집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구체적인 입증자료로 만들어냈다. 백도명의 노력과 연구 덕분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호소하거나 주장하는 사람이 아닌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서울대 교...
2020.08.22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