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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야구가 용산보다 낫다
기계적 공정에 대한 강조와국정철학의 부재는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이 되는 모양새다그래도 대화 없이 밀어붙이는 용산보다는 야구가 나아 보인다야구가 개막했다. 개막을 앞두고 많은 일들이 있었다.류현진이 돌아왔다. 아직 메이저리그에서 더 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화행을 택했다. 더 나중에 ‘은퇴 투어’처럼 오기보다는 아직 잘 던질 수 있을 때, 그래서 한화의 성적에 보탬이 될 수 있을 때 돌아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한화 팬들이 들떴다. 메이저리그 개막전도 서울에서 열렸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는 SNS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 사랑’을 드러냈다. 국내 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스포츠 스타다. ‘7억달러 사나이’ 오타니는 물론이고 연봉이 수천만달러인 선수들이 한국 야구장에서 뛰었다. 그걸 보러 많은 유력인과 스타들이 야구장을 찾았다. 수십만원짜리 표가 동났다. 개막을 앞두고 야구 분위기가 잔뜩 달아올랐다.2024시즌 KBO리그는 ... -
내가 졸업식 연설에서 배운 것들
조 파테노는 미국 대학 풋볼의 전설적 감독이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감독 시절, 졸업식 연설을 했다.“티칭은 2+2=4라는 공통된 지식을 알려주는 일이지만, 코칭은 선수의 인생을 바꾸는 일입니다. 젊은이를 선수로, 선수를 팀 플레이어로, 팀 플레이어를 이기는 팀의 플레이어로 만드는 것이 코치의 일입니다.”테오 엡스타인은 ‘저주 파괴 단장’으로 유명하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의 ‘밤비노의 저주(1918~2004)’를 86년 만에 깨뜨렸고, 시카고 컵스 단장으로 옮긴 뒤 이보다 더 오래된 ‘염소의 저주(1908~2016)’도 108년 만에 깨뜨렸다. 엡스타인은 컵스의 저주를 깨뜨린 이듬해인 2017년 모교인 예일대 졸업식 연사로 나섰다.“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여기에 컵스 팬이 몇분 보이네요. 보스턴 팬은 몇명인가요? 양키스 팬도 있나요? 양키스 팬 여러분, 출구는 저기 양쪽과 뒤쪽에 있습니다. 하하. 저는 시카고 컵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컵스 ... -
이정후에게 이종범은 훈장이자 낙인이었다
나이 든 야구팬들에게 이정후는 이종범의 아들이지만, 젊은 야구팬들에게는 이종범이 이정후의 아버지다. 이정후는 지난해 말 메이저리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1300만달러에 계약했다. 역대 한국 선수의 메이저리그 포스팅 최고 금액일 뿐만 아니라 이번 스토브리그 야수 전체를 통틀어서 총액 기준 최고 금액이다. 평균 연봉 1883만3333달러는 LA 다저스와 1년 2350만달러에 계약한 테오스카 에르난데스에 이어 2위다. 물론 투수와 타자를 모두 하는 오타니 쇼헤이(10년 7억달러)는 제외다.KBO리그 최고의 타자임을 증명했다. 2022년에는 타격왕, 득점왕, 타점왕 등에 오르며 시즌 MVP에 뽑혔다. 올해부터는 메이저리그에서 뛴다. 원래 야구 선수를 못할 뻔했다. 아버지 이종범은 아들 이정후를 야구에서 떼놓으려 애썼다. 운동에 재능 넘치는 아들을 어릴 때부터 다른 종목으로 내몰았다. 골프, 축구, 수영, 쇼트트랙을 시켰다. 야구만 빼고. ‘이종범의 아들’로 ... -
실패 혐오의 시대
‘가성비’가 익숙해지는 듯싶더니 그새 ‘가심비’가 찾아왔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심리적으로 만족도가 높다면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다. 한동안 TV와 유튜브 광고에 ‘명품 거래 플랫폼’들이 넘쳐나던 때가 있었다. ‘리셀’(재판매)을 통한 수익 목적도 있지만 명품이 주는 ‘가심비’의 역할이 컸다.지금은 ‘시성비’가 뜬다. 가격도 중요하지만 하루 24시간으로 제한된 ‘시간’도 아껴야 하는 재화다. 시간 대비 성능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경쟁은 일상이 되고, 자기계발이 의무가 된 시대에 어떻게든 시간을 쪼개고 아껴야 한다. OTT와 유튜브가 익숙해지면서 ‘봐야 할 것’들이 넘쳐난다. 내 시간을 아끼려면 제대로 된 걸 골라야 한다. ‘시성비’의 시대 영상 소비 패턴은 2가지로 압축된다. 빨리감기와, 미리보기다. 2배로 빨리 보거나, 아니면 봐야 할 영상을 잘못 골라 시간을 날리느니 ‘요약본’으로 대표되는 미리보기를 통해 시성비 높은 선택을 하겠다는 의지다.시성비가 ... -
뛰어난 선수는 전광판을 꼭 본다
주자가 1루와 3루에 있다. 팀 내 가장 장타력이 좋은 4번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목표는 단순하다. ‘강하게 치는 것’. 담장을 넘어가면 금상첨화다.과연 정말 그럴까. 전광판을 보지 않은 채 ‘내 스윙’만 하면 될까. 그러면 팀이 이길까.야구 전광판에는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지금이 몇 회인지, 점수 차는 얼마인지, 아웃카운트와 볼카운트는 어떻게 되는지. 야구는 축구, 농구와 달리 ‘실시간 경기’가 아니다. 투수가 공을 던질 때마다 플레이가 끊어졌다 이어지기 때문에 분절된 데이터가 차곡차곡 쌓인다. 야구에는 승리확률기여도(WPA)라는 기록이 있다. 주자 상황, 이닝, 점수 차, 아웃카운트 등을 종합해 해당 상황에서 승리할 확률을 계산하고 그 타석의 결과가 승리 확률을 얼마나 높이거나 낮추는지 계산한다. 메이저리그에서 1903년부터 2022년까지 치러진 총 18만3331개의 경기로 확률을 계산한다.점수 0-0인 상황에서 1회초 1사 1, 3루라면 원정... -
9시간 걸린 귀성길의 깨달음
추석 연휴가 길었다. 임시공휴일이 더해져 6일짜리였다. 인천공항 이용객 수는 7일 동안 120만명을 넘겼다. 하루 평균 17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 수준이다.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0.78명보다 더 줄었다. EBS 다큐에 출연한 미국의 한 교수가 “한국은 완전히 망했어요”라고 외치는 장면이 인터넷에서 회자됐다.결혼도 줄었다. 통계청이 지난달 발표한 7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혼인건수 역시 전년 같은 달에 견줘 5.3% 감소했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갖지 않는다. 고향에 가면, 잔소리밖에 들을 게 없다. 길어진 추석 연휴에 해외로 떠나는 이들도 늘었다. 이번 귀성길은 비교적 한산할 거라는 예상은 합리적이었다.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틀렸다. 새벽 5시에 출발하면 충분히 빠를 것이라 생각했다. 고속도로에 올라가기도 전에 다른 사람도 다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동트기 전 도로에 차들이 줄줄이 늘어섰다. 끝없이 이... -
차라리 야구를 응원하는 게 낫다
야구 취재를 오래 했기 때문이다. 오가다 만나는 동료들이 꼭 묻는다.“요즘 ○○은 도대체 왜 그래?”○○ 안에 어떤 구단 이름을 넣든 비슷하다. “요즘 ○○ 때문에 행복해”라는 말은 좀처럼 듣지 못한다. 1등을 달리고 있는 LG 팬인 동료 역시 한두 경기만 지면 “요즘 LG는 왜 그래”라고 묻는다. 야구에 정답은 없다는 걸, 내일은 이길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하소연하듯 묻는다. 스스로 야구팬이거나 주변에 야구팬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야구팬들은 늘 화가 나 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야구를 응원한다는 건 가성비에 맞지 않는다. ‘밑지는 장사’다. 구글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던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는 어릴 때부터 뉴욕 메츠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저서 <모두 거짓말을 한다>를 통해 페이스북에서 야구단에 ‘좋아요’를 누른 데이터를 싹 다 모아 ‘특정 팀의 팬이 되는 것은 7~8세 때의 성적’임을 증명했다. 1994년 마지막으로 우승한 LG의... -
힘에 기댄 ‘가짜 평화’의 부작용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15일 ‘2023 연합·합동 화력격멸훈련’을 주관했다. 6·15 남북공동선언 23주년 기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또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했다.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적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강군만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번영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손을 들어 인사하는 행사 사진 연단에는 ‘강한 국방, 튼튼한 안보! 힘에 의한 평화’라고 적혀 있었다. ‘힘’과 ‘평화’가 큰 글씨로 강조됐다. 힘은 빨간색, 평화는 파란색으로 칠했다.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힘이 세다. 한국 사회는 정권의 도덕적 감각에 크게 좌우된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단순한 수사를 넘어 ‘이렇게 해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힘에 의한 평화’는 급변하는 동북아 안보 정세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힘에 기댄 평... -
‘학폭’ 논란 딛고, ‘방송통신유튜브위원회’ 장악?
1년 전, 뉴콘텐츠팀장이 됐다. 오랫동안 열정을 쏟았던 스포츠부를 떠났다. 한 해 전, 프로야구 두산 조성환 코치가 ‘새로운 도전’을 위해 만년 하위팀이던 한화로 옮긴다는 소식에 적지 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 나도 새로운 도전을 해보자(조 코치는 지난겨울 두산 복귀를 결정한 날 밤에 전화를 걸어왔다. ‘그럼 나는 어쩌라고’라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뉴콘텐츠팀장이 되고 ‘R’을 배우기로 했다. 오랜만의 코딩을 위해 꽤 비싼 무접점 키보드를 샀다. 준비는 장비와 동의어라고 배웠다. ‘함수’와 ‘객체’의 개념을 다시 떠올리며 깜빡이는 커서에 명령어를 한 자 한 자 적어 넣었다. 데이터 정렬 방식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며 움직이는 그래프를 만드는 데(까지만) 성공했다.1년이 조금 넘게 흘렀다. 새로운 도전을 할 때가 왔다. 이번에는 영상 편집으로 정했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지난 14일 ‘디지털 리포트 2023’을 발표했다. 이 리포트의 대한민국 현황에 따르면 ‘온라인’... -
가오갤3, 피치 클락, 용산 더그아웃
마블의 새 영화 <가오갤3>(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는 개봉 2주 동안 280만명이 관람했다. 2월에 개봉한 <앤트맨3>(앤트맨과 와스프: 퀀텀매니아)가 겨우 150만여명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성공이다. 포털사이트 관람객 평점은 9.42점이나 된다. “모처럼 마블다운 영화”라는 평가가 나온다. 페이즈4에 들어선 이후 마블 시리즈를 향한 팬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히어로 피로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상상도 못할 정도로 힘센 빌런과 히어로들이 나와서 쿵쾅쿵쾅 때려부수기만 했다. <가오갤3>는 그 틀을 벗어났다.야구가 딱 그랬다. 요즘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구속은 시속 160㎞를 넘기기 일쑤다. 타자들이 아웃 3개를 당하기 전 안타 3개를 때려 점수를 내기 어려워졌다. 전략을 바꿨다. 타자들은 홈런을 노리는 스윙을 했다. 마블 시리즈처럼 ‘모 아니면 도’의 야구다. 홈런, 삼진, 볼넷이 늘었다. ‘3가지 진정한 결과(three t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