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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세 100년
  •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린 역사적 진실…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서훈을 확대해야
    다·만·세 100년, 반공 이데올로기가 가린 역사적 진실…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서훈을 확대해야

    순국선열조차 이념 잣대로 재단군사독재 정권의 모순 아직 남아심지어 순국선열조차도 독립유공자가 되지 못했다.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얘기다.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항거하다가 순국한 분인데도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자로는 부적합하다고 보곤 했다. 왜 그랬을까? 왜 이처럼 앞뒤 모순된 현상이 나타났을까. 이념 탓이었다. 군사독재정권은 그분이 생전에 마음속에 품었던 생각을 문제 삼았다. 독립유공자 서훈에 필요한 모든 요건과 증빙을 갖췄다 하더라도 그분이 행여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했었다면, 어김없이 ‘부적격’이라고 판정했다. 군사독재의 통치수단이던 반공 이데올로기가 역사적 진실을 가렸다.6월 민주항쟁이 이 부조리를 고쳤다. 1987년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 비로소 이치에 맞지 않는 일들이 바로잡히게 됐다. 민주주의의 힘이 역사적 진실을 드러내게 했다. 다만 일거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 교정은 더디게 단계적으로 이뤄졌다.김영삼 정부 시절에 작지만 유의미한 첫 ...

    2019.01.22 06:00

  • [신년기획]다·만·세 100년,3·1만세…외친 자, 외치지 않은 자, 외치다 만 자 100년 뒤 묻는다…당신이 꿈꾸는 나라는 무엇인가
    다·만·세 100년,3·1만세…외친 자, 외치지 않은 자, 외치다 만 자 100년 뒤 묻는다…당신이 꿈꾸는 나라는 무엇인가

    <1부> 우리는 독립운동가입니다 ⑤ 친일파·독립운동가…다른 길 걸은 사람들100년 전 3·1운동에는 당시 인구 10명 중 1명꼴인 200만여명이 참여했다. 그날 같은 선택을 했다고, 같은 인생을 살았을 리 없다. 적어도 200만 갈래의 길이 있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은 ‘3·1 이후의 독립운동’ ‘왕이 없는 나라’를 꿈꾸며 나아갔다. 모두는 아니었다. 일부는 일제에 협력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200만명에 들지 않은 이들 중에는 3·1운동 참여 제안을 받고 거절한 당대 유력인사들도 있었다. ‘만세 부르길 거절한 사람과 부른 사람, 부르다 만 사람.’ 3·1운동 전후 세 갈래의 선택은 각자 인생의 변곡점이 되고,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됐다. 그 선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으로 2019년에도 이어진다. 세 갈래 길을 걸은 이들이 피고인, 또는 증인으로서 남긴 ‘선택의 이유’를 일제 신문조서를 통해 살펴봤다.■ 만세를 부른 자...

    2019.01.18 06:00

  • [신년기획]다·만·세 100년,“빨갱이란 비난까지 받았지만, 역사 바로잡기 멈출 수 없어”
    다·만·세 100년,“빨갱이란 비난까지 받았지만, 역사 바로잡기 멈출 수 없어”

    준비 과정부터 18년 걸친 대장정시민들 자발적 모금이 큰 원동력친일파에 대한 엄격한 기준 정하고편찬위원들 지인까지 수록했는데편파적이라는 비판에 동의 못해특정한 사람 매도할 의도 없어지도층 사람들이 행동을 할 때훗날 받을 평가 신경쓰도록 영향해외와 지방의 친일파 조사 미비여건 좋지 않지만 개정판 준비 중역사학자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71)은 2002년부터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을 맡고 있다.그는 편찬작업이 한창이던 2005년 어느 날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자신을 비난하는 신문 형식의 전단이 대량 살포돼 있었던 것이다. 한 강연회에서 한·미 공조와 더불어 민족공조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 ‘친북적’이라는 억지 주장이었다. “거기에 도표가 나오는데 강만길 선생-한완상 전 부총리-나 이런 식으로 무슨 간첩단 사건처럼 만들어 놓았더라고요.” 당시는 편찬위원장을 맡아 일부 보수세력으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을...

    2019.01.18 06:00

  • [신년기획]다·만·세 100년,“동양의 인걸” “위대한 대기”…일제의 극찬 기록 속에 영원히 박제된 ‘조선 귀족들’
    다·만·세 100년,“동양의 인걸” “위대한 대기”…일제의 극찬 기록 속에 영원히 박제된 ‘조선 귀족들’

    “근대 동양의 인걸”, “불세출의 어진 사람”, “가장 위대한 대기(大器)”….일제가 이완용(1858~1926년)에 대해 내린 평가다.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에 모두 이름을 올린 유일한 인물. ‘매국노 중의 매국노’로 불리지만, 일제에겐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는 단계마다 앞장서 준 공로자였다. 일제는 한일강제병합에 공을 세우고 작위를 받은 ‘조선의 귀족들’을 극찬하는 자료를 남겼다. <신사보감> <조선공로자> 책자 등이다. 반면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선 <용의조선인> <성행조서> 등에 악평을 실었다. “흉악” “잔인” 등 범죄자처럼 묘사한 게 대부분이다. 일제의 뒤틀린 인물평은 ‘매국’과 ‘독립’이라는 엇갈린 길을 걸었던 이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또 다른 자료다.가장 많은 찬사가 쏟아진 인물은 역시 이완용이다. 일제는 <신사보감>에서 1910년 경술국치 때 이완용의 활약을 전하며 “그의 대정치...

    2019.01.18 06:00

  •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ㅈㅗㅅㅓㄴㅁㅣㄴㅈㅗㄱㅕㅇㄴㅕㅇ…‘중국 그랜드캐니언’의 한글 묘비
    다·만·세 100년, ㅈㅗㅅㅓㄴㅁㅣㄴㅈㅗㄱㅕㅇㄴㅕㅇ…‘중국 그랜드캐니언’의 한글 묘비

    ‘ㅈㅗㅅㅓㄴㅁㅣㄴㅈㅗㄱㅕㅇㄴㅕㅇ’중국의 그랜드캐니언이라 불리는 타이항산(太行山) 자락의 한 시골마을 묘비. 가로로 자음·모음을 풀어쓴 한글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니 ‘조선민족영령’이란 글귀가 됐다. 묘비에는 ‘조선혁명열사 석정지묘’라는 한자도 있다. ‘조선혁명열사’이자 ‘조선민족영령’….이곳은 독립운동가 석정 윤세주 열사(1901~1942년)가 묻혔던 곳이다. 1940년대 일본군과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며 ‘조선의용대(조선의용군 전신)의 영혼’으로 불린 윤세주. 경남 밀양이 고향인 그는 어떻게 이역만리 타이항산에서 ‘조선민족영령’으로 잠들게 됐을까. 타이항산 일대에는 윤세주와 조선의용대의 역사가 지금도 살아 있다. 1941년 12월 일본군과 조선의용대 간 전투가 벌어졌던 허베이성(河北省) 스자좡시 위엔시현 후자좡 마을의 후궈첸(61)은 선친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조선의용대 분대장이 마을 입구에서 이불을 깔고 잤어요. ...

    2019.01.15 06:00

  •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철물점 주인·주부·기생·간호사…그날 이후 ‘투사’가 되다
    다·만·세 100년, 철물점 주인·주부·기생·간호사…그날 이후 ‘투사’가 되다

    3·1운동은 100년 전 평범한 이들에게 삶의 전환점이었다. 그들은 이날 태극기를 들었고 만세를 불렀다. 그 후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3·1운동은 독립운동가들의 ‘혁명학교’였던 것이다.철물점 주인 김상옥은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졌고, 일본군 장교이던 지청천은 탈영해 한국광복군 사령관이 됐다. 기생이던 정칠성은 여성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했고, 주부이던 남자현은 총독부 관리들의 암살을 시도했다. 학생이던 윤세주는 조선의용대 전사가 돼 중국 타이항산(太行山)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변호사였던 허헌은 독립운동가를 변론하는 벗이 되었고 좌우합작운동 단체인 신간회 결성을 주도했다. 총독부 간호부 직원이던 박자혜는 간호사 독립운동단체를 결성했다. 이 모두 3·1운동에 참여한 후 일어난 일들이다. 3·1운동은 ‘사상학교’이기도 했다. 거리에서 근대의 문을 활짝 연 이들은 독립투쟁을 위한 혁명적 이념을 열광적으로 흡수했다. 민족주의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사회주의...

    2019.01.15 06:00

  •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민족 해방 위해 피흘린 조선의용대, 남·북 나누지 말고 인정해야”
    다·만·세 100년, “민족 해방 위해 피흘린 조선의용대, 남·북 나누지 말고 인정해야”

    “1948년 분단 이전의 역사는 남북을 나누지 말고 있는 그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공산주의자’ ‘김일성 반대’ 이유로남북 모두에서 외면 받아왔지만중국에선 ‘항일 영웅’으로 기려조선의용대의 주무대였던 타이항산(太行山)에는 조선의용군열사기념관이 있다. 남도 북도 아닌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지방정부가 건립한 것이었다. ‘공산주의자가 있었다’거나 ‘김일성에 반대한 옌안파(연안파) 일부’라는 등의 이유로 남북 모두에서 외면받아온 조선의용대를 중국인들은 ‘항일 영웅’으로 기리고 있었다.중국인 상룽성(尙榮生·64) 기념관장은 조심스레 좌우의 차이 이전에 공동의 가치를 위해 희생했던 조선의용대의 독립운동을 남북이 있는 그대로 조명하길 소망했다. 그는 “(현재 남과 북에) 어떤 정치적 이념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국가의 독립과 민족의 해방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면서 “조선의용대가 항일전선에 앞장서 피흘리며 희생한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고 ...

    2019.01.15 06:00

  •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한민족의 대전환 가져온 사건…‘3·1혁명’으로 불러야 한다
    다·만·세 100년, 한민족의 대전환 가져온 사건…‘3·1혁명’으로 불러야 한다

    독립운동가들 ‘혁명’으로 불렀고중국 신문·잡지도 그렇게 썼지만제헌국회가 헌법 초안 만들 때‘과격용어’ 주장 받아들여져 격하역사는 정명(正名)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동학난→동학혁명, 4·19의거→4·19혁명, 광주사태→광주민주화운동이 사례이다. 기미년 민족적인 항쟁을 일제는 폭동·소우 등으로 깎아내렸지만 독립운동가들은 3·1혁명, 대혁명 등으로 부르고 중국의 신문 잡지도 그렇게 썼다.제헌국회가 헌법초안을 만들 때 한민당 계열 일부 의원들이 초안의 3·1혁명을 이승만 국회의장에게 ‘과격용어’라 주장, 받아들여서 오늘에 이른다. 청교도혁명, 프랑스대혁명, 신해혁명, 러시아혁명 등 외국의 변혁운동은 혁명이라 부르고, 심지어 4차 산업혁명, 1968년 5월 프랑스 등 유럽의 시위에는 68혁명이라 호칭한다. 3·1운동이 아닌 혁명이라 불러야 하는 이유를 밝힌다.첫째, 국치 9년 만에 친일파를 제외한 전민족이 하나가 되어 자주독립을 선언하였다. ...

    2019.01.15 06:00

  • [신년기획]다·만·세 100년, 만세 고창한다고 독립이 되는가? 조선인 전부가 그 마음이면 된다!
    다·만·세 100년, 만세 고창한다고 독립이 되는가? 조선인 전부가 그 마음이면 된다!

    <1부> 우리는 독립운동가입니다 ③ 일제 신문조서로 본 3·1운동 주역들100년 전 그날은 몇몇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들’의 이야기다. 그날의 울림은 거리의 만세 소리를 지나칠 수 없어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독립만세’ 소리를 보탰던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다. 그날의 힘은 학교 기숙사에서, 총독부 순사로 보초를 서던 곳에서, 농촌의 민가에서 뛰쳐나와 나란히 걸었던 모든 사람들의 걸음에서 나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2019년, 당시 거리에 나섰던 보통 사람들이 남긴 말들을 찾았다.문: 기를 들고 다중이 모여서 만세를 고창한다고 독립이 되는가.답: 된다.문: 어떤 이유로 독립이 되는가.답: 조선인이 전부가 그 마음이 되어서 하면 자연히 독립은 된다고 생각한다.문: 보조원(헌병), 순사보 등을 보면 어떤 생각이 나는가.답: 매우 기분이 나쁘다.51세 농민 조영섭은 191...

    2019.01.08 06:00

  • [신년 기획]다·만·세 100년,역사적 주체로 첫 등장한 여학생들…“여자가 왜?” 묻자 “남녀 불문 조선 독립은 기쁜 일”
    다·만·세 100년,역사적 주체로 첫 등장한 여학생들…“여자가 왜?” 묻자 “남녀 불문 조선 독립은 기쁜 일”

    3·1운동은 ‘여학생’들이 한국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첫 장면이다. 최초의 여학교가 세워진 지 33년째 되던 해, ‘신여성’이라는 말이 회자됐지만 여성이 민족적 거사의 주축으로 인식되지 못했던 때다. 이런 시점에서 여학생들이 나라의 현실을 자각하고, 변화를 꾀하는 운동에 나섬으로써 ‘역사적 주체’로 처음 섰다.국사편찬위원회의 <한민족독립운동사 자료집>에 수록된 일제 신문기록에는 여학생들의 신문조서가 다수 실려 있다. 그해 3월1일과 5일 경성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가 붙잡혀 온 정신여학교, 이화학당,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등의 학생들이다. 당시 총독관방에서 작성한 5일 시위에 대한 내용엔 “행렬 중에는 여자고등보통학교 여학생들이 더욱 기세를 더하고 있었다… 검거된 자는 100인, 그중에 많은 여학생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적혀 있다.여학생들은 신문 과정에서 남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질문들을 받았다. 일제 검경은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학생들의 자발성을 ...

    2019.01.08 0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