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 하숙집을 샅샅이 뒤져라.’ 100년 전 3월, 경성 하숙집들에 일제 순사들이 들이닥쳤다. 학생들이 대거 참여한 3·1운동 직후부터 무차별적인 ‘하숙집 털기’가 시작된 것이다. 경운동, 낙원동, 관훈동, 송현동, 종로통 5정목(종로5가) 등 지금의 서울 중심부에 올망졸망 들어찼던 하숙집에서 학생들이 붙들려 갔다. 하숙집은 일제엔 손쉬운 ‘집단 검거’ 장소, 학생들에겐 삼삼오오 모여 독립의 꿈을 키운 근거지였다. 잊혀진 그들의 이야기가 펼쳐졌던 곳, 지금은 흔적 없이 사라진 ‘1919년 경성의 하숙집 지도’를 일부 복원했다.국사편찬위원회의 <한민족독립운동사 자료집>에 수록된 일제의 3·1운동 검거자 신문기록에는 검거 장소와 일시가 겹치는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대개 현재 종로구 일대 하숙집에 묵었던 10~20대 학생들이다. 당시 경성엔 한반도 최북단 함경북도부터 최남단 제주도 출신까지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다. 복수의 학생이 검거된 하숙집 1...
2019.01.07 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