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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캐즘에 가로막힌 K배터리…돌파구는 결국 ‘품질’
필자의 형은 어렸을 때부터 새로 나온 전자제품을 좋아했다. 워크맨, CD플레이어, 휴대용 멀티미디어 기기(PMP), MP3 플레이어 등 새로운 기능으로 무장한 제품이 출시되면 용돈 등을 열심히 모아 다른 사람보다 빠르게 구매에 나섰다. 반면에 필자는 어느 정도 제품이 보편화되고 대중화됐을 때 구매하는 편이었다.마케팅 이론은 기술과 제품 확산에 대한 수용 속도를 기준으로 고객을 분류한다. 필자의 형과 같이 초기에 새 기술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혁신자(Innovators)’ 및 ‘초기 수용자(Early Adopters)’라고 한다. 이들은 전체 고객의 15% 정도로, 초기 시장을 형성한다. 그리고 필자와 같은 사람들은 주류 시장에 해당하는 70%에 속한 고객이다. 나머지 15%의 고객은 후기 시장에 해당하는 지각 수용자 또는 구매 거부자이다.이 모델과 관련돼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정의한 용어로 ‘캐즘(chasm)’이 있다. 이는 원래 지각변동에 의해 생기는 균열로 인... -
에너지 산업의 미래…신구 전원·기술 간 조화가 관건
어릴 때부터 공룡을 좋아하던 첫째 아이 덕분에 지난 10여년간 공룡을 다룬 국내외 영상 콘텐츠를 실사 또는 애니메이션 구분 없이 다양하게 접할 수 있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영화계의 거장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 총괄을 맡은 <쥬라기월드> 시리즈이다. 그는 <E.T.> <A.I.> 등 다른 유명 공상과학(SF) 영화의 감독으로도 유명하다.1990년대에 컴퓨터 그래픽과 로봇 기술 등을 본격적으로 도입해 제작한 오리지널 영화 <쥬라기공원> 이야기와 연결된 <쥬라기월드> 시리즈는 발전된 촬영 기법과 기술이 적용돼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공룡 세계에 더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던 것 같다.특히 <쥬라기 월드> 시리즈에는 인상 깊은 장면이 있다. 20여년 만에 재등장한 기존 <쥬라기공원>의 주인공들이 후속 세대라 할 수 있는 <쥬라기월드> 시리즈의 주인공들과 조우하고 연합하는 모습이다... -
‘교류와 공존의 도시’ 시애틀에 전력 시스템 미래 있다
지난 7월의 일이다. 필자는 코로나19 유행 전이던 2019년 이후 5년 만에 국제학회 ‘전기전자공학자협회(IEEE)’의 전력 및 에너지 총회 격 행사에 참석했다. 장소는 도시 곳곳에 우거진 푸른 녹음 때문에 ‘에메랄드 시티’라고도 불리는 미국 워싱턴주 도시 시애틀이었다.시애틀의 또 다른 별명은 ‘빅테크의 고향’이다. 미국 정보기술 산업계에서 지배적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이 각각 1970년대와 1990년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기존 제조업 중심에서 정보통신기술 중심 도시로 완벽하게 변신했다.오늘날에도 시애틀에는 보잉, 스타벅스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 본사들을 비롯해 구글, 애플 같은 또 다른 빅테크 기업들의 연구용 캠퍼스들이 자리잡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도시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필자는 학회 일정이 비교적 일찍 끝난 날, 학회장 인근의 산업역사박물관에 잠시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박물관을 한 시간 남짓 돌며 시애틀이 형성된 뒤 오늘날 혁신 도시... -
반갑지만은 않은 로봇의 진화, 법도 기술도 ‘인류 위협’ 대비해야
최근 과학기술 정책 방향과 주요 과제에 대해 다년간 다뤄 온 한 포럼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올해 주제는 정부가 얼마 전 제시한 12대 국가전략기술에 해당하는 차세대 통신과 로보틱스였다.행사의 첫 기조 연설자로 나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한 명예교수는 “최근 메가트렌드와 기술 동향이 미래 로봇에 대한 광범위한 수요로 이어질 것”이라는 추론을 제시했다. 그는 “클라우드 기술 등 차세대 통신 분야와의 융합으로 로봇의 활용성은 더 넓어질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한·일 대기업이 지분을 가진 한 로봇업체 관계자도 행사에 연설자로 등장했는데, 4족 보행으로 유명한 상업용 로봇의 제품 시연을 함께 볼 수 있었다. 해당 로봇의 실제 구현 모습을 영상 시청이 아니라 현장에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로봇 성능에 대한 정보를 이미 알았는데도 주위 사람들과 함께 눈이 휘둥그레졌다.계속된 발표에서는 해당 기업에서 연구해온 휴머노이드 로봇의 최신 버전이 소개됐다. 복잡한 지형... -
일상 속 ‘AI 로봇’ 시대…아이들 호기심 키워 국가경쟁력으로
봄이 되면서 풀린 날씨를 한껏 느끼며 최근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를 탔다. 한참을 타다가 갈증을 해소하려고 길가에 카페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갔는데, 계산대 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를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가 방문한 시점이 마침 판매원 없이 무인 형태로 카페가 운영되는 시간대였다.키오스크에서 주문을 입력하고 카드로 결제하자, 카페 한쪽에 있던 로봇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앞에 있던 우리를 인식했는지 팔을 흔들며 인사를 하더니 이내 컵을 집어 얼음과 음료가 나오는 자리에 놓았다. 추출되는 음료를 담은 뒤에는 우리가 들고 가기 편하도록 출입문 근처에 컵을 놓는 등 프로그래밍된 동작을 보여줬다. 아이들은 무척 신기하게 보였는지 음료가 나올 때까지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현대 사회에서 로봇은 다양한 분야로 활용처를 넓히며 우리 생활에서 접점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다. 요즘 쇼핑몰이나 리조트에서는 안내 로봇, 뷔페식당에서는 식기 수거 로봇과 심심... -
몸과 지구를 지키는 ‘1.5도’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열이 나서 힘들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기게 된다. 열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와 몸을 공격할 때, 이에 대한 면역반응으로 나타난다.일반적으로 38도 이상 열이 올라가면 아이들이 많이 힘겨워했던 것 같다. 그래서 처음 아이를 키울 때에는 체온이 37.5도만 넘어서도, 행여나 38도가 되지 않을까 긴장해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우리의 평소 체온이 36.5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1.5도의 차이는 아이와 부모에게 심각한 상황을 인식하게 하는 기준인 셈이다.우리가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이 지구의 온도는 어떠할까. 여러 조사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기간인 1850~1900년에 비해 2011~2020년의 지표면 온도는 1도가 넘게 상승했다고 한다.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1도 올라간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실감 나지 않을 수 있지만, 지구와 인간이 함께한 역사의 긴 시간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상당히 단기간에 열... -
매표소 할아버지 자리 대신한 키오스크…“잘 다녀와요” 인사만은 대체할 수 없다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전기연구원 본원이 위치한 경남 창원에서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갈 일이 생기면 KTX나 SRT 같은 고속철도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김해공항으로 이동해 비행기를 타기도 한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탈 때 항상 이용하는 매표소가 하나 있었다. 몇년 동안 표를 사며 그곳에서 근무하는 할아버지 한 분과 인사를 하다 보니 점차 안면을 틀 수 있었다. 나중에는 안부를 묻는 것은 기본이고, 날씨나 스포츠 이야기도 나누는 등 할아버지 덕분에 기다리는 몇분 동안을 무료하지 않게 보낼 수 있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갈 무렵, 오랜만에 공항버스 티켓을 사려고 매표소에 들러 할아버지께 안부를 물었다. 그때 할아버지께서는 일하던 매표소가 곧 없어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혹시 공항 쪽 매표소로 근무지를 옮기시느냐는 질문에 “이제는 일을 쉬어야지”라며 말끝을 흐리시던 모습이 그분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이다.몇 개월이 지난 지금, 공항버스... -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연구도 ‘수시 업데이트’가 필요해!
얼마 전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학교에서 해야 할 수행평가를 준비한다며 집에서 과학 교과서를 펼쳐 놓고 있었다. 요즘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해 교과서를 잠깐 살펴보았더니 태양계 행성들의 특징이 서술돼 있었다.이공계열을 선택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이 필자도 미지의 우주에 대한 막연한 애정이 있다. 그런 마음으로 아들 옆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홈페이지에 접속해 우주 탐사선이 찍은 태양계 행성들의 최근 사진을 검색해본 것이다.태양계 행성 중 표면 탐사가 가장 많이 이뤄졌으며, 물의 흔적으로 생명체 존재 가능성이 계속 논의되고 있는 화성, 지구가 들어가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큰 소용돌이인 ‘대적반’을 가진 목성, 아름다운 고리로 유명한 토성 등이 필자가 학창 시절 봤던 것보다 훨씬 선명해진 사진 속에 들어 있었다. 아이들에게 미지의 세계인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돋우기에는 충분해 보였다.그런데 필자가 태양계에 대해 배웠을 때... -
해상 선박에도 온실가스 배출량 규제…‘전기 추진’으로 패러다임 전환할 때
거제도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거가대교 건설 등으로 인해 필자가 거주하는 경남 창원과도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주말에 가족과 함께 종종 방문하곤 한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시작되는 거제도에 가면 해금강 등 자연경관을 만끽할 수 있다.지금은 관광지로 유명한 거제도이지만, 고려와 조선 시대에는 지리적으로 일본과 가까워 왜구 침입이 잦았다. 특히 임진왜란 때는 조선과 일본의 주요 전장이었다. 조선 수군이 첫 승리를 장식한 옥포해전이나 임진왜란 전황을 바꾸었다고 평가되는 한산도대첩 모두 거제도 주변 바다에서 벌어졌다.당시 주요 해전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지휘관들의 통솔 능력과 수군 병사들의 노력이 주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신식 화기였던 총통으로 무장한 주력 군함 판옥선과 개량형 군함이라고 할 수 있는 거북선의 도움을 빼놓을 수 없다.높은 기술 수준을 지닌 화기와 군함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투입된 노력과 그에 따른 성과, 그리고 기술 축적... -
K 배터리 미래 ‘재사용·재활용’에서부터
국내 전기자동차의 연간 판매 대수는 2021년 10만대를 넘기더니 2022년에는 16만대로 늘어 신차 판매량의 9.76%를 차지하는 등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충전 인프라의 보급, 충전 속도와 1회 충전 후 주행거리 향상 같은 기술적 요소의 발전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환경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행동 또한 바뀌고 있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이런 가운데 10년 전부터 전기차 보급 사업을 꾸준히 추진해 국내에서 가장 높은 보급률을 자랑하는 제주도에서는 전기차에 사용됐던 폐배터리 처리 문제가 다른 지역보다 빨리 찾아왔다.초기에 보급된 전기차에 장착됐던 배터리 수명이 다돼가고 있는 것이다. 폐배터리는 그대로 폐기할 경우 환경오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처리 과정에서 큰 노력이 필요하다. 게다가 배터리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체계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전기차 배터리의 수명은 평균 7년 정도이며, 성능이 80% 이하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