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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고전에서 길 찾기
  • [고전에서 길 찾기]애오려기(愛吾廬記)
    애오려기(愛吾廬記)

    무릇 사람이나 사물이 처음 생길 때는 진실로 각자가 구별되지 않았다. 남이나 나나 다 사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남과 마주 놓고서 ‘나’라 일컬으며 구분을 짓게 되었다. 이에 천하의 사람들이 분분히 일어나 자기를 말하고 일마다 ‘나’라 일컫게 되었으니, 이미 그 사심(私心)을 이겨낼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까지 스스로 덧붙인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중략)아, 터럭 하나도 ‘나’라고 하여 이미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면, 나의 몸에서 겨우 터럭 하나를 사이에 둔 가까운 대상이라도 모른 척하고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제 터럭 하나를 뽑아 천하 사람에게 이로움이 돌아간다 해도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리되면 사랑하기를 지극히 두텁게 한다는 것이 도리어 천하에 지극히 박한 것이 되고 만다. 이는 다름 아니라 내 한 몸을 사유물로 여기고 자기를 사랑하기를 지나치게 하기 때문이다. (박지원, )나와 남, 인간과 비인간, 정...

    2008.10.28 18:00

  • [고전에서 길 찾기]‘발본색원론’
    ‘발본색원론’

    당시에는 천하 사람들이 서로를 일가친척처럼 보았다. 재질이 낮은 자는 농·공·상의 직분에 편안해하고 각자 자신의 직업에 힘써 서로 길러줄 뿐이지, 높은 것을 바라거나 자기 분수 이외의 것을 넘보는 마음이 없었다. 재능이 남다른 고(皐)나 기(夔), 직(稷)이나 설(契) 같은 사람들은 벼슬길에 나아가되 마치 한 집안의 임무처럼 하였으니, 어떤 자는 의식(衣食)을 경영하고, 어떤 자는 물자를 유통하고, 어떤 자는 기용(器用)을 갖추었다. 오직 자기가 맡은 일에 혹 태만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자기의 직책을 중히 여겼다. 그러므로 직(稷)은 농사일을 부지런히 하되 자신이 교육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설(契)이 교육을 잘하는 것을 곧 자기가 교육을 잘하는 것으로 여겼다. 기(夔)는 음악을 담당하되 자신이 예(禮)에 밝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이(夷)가 예에 통달한 것을 곧 자기가 예에 통달한 것으로 여겼다.왕양명(1472~1528)이 그린 이...

    2008.10.21 18:04

  • [고전에서 길 찾기]‘입론立論’
    ‘입론立論’

    내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마. 어떤 집에서 아들을 낳고 온 집안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단다. 애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자 안고 나와 손님들에게 구경시켰지. 덕담이나 들으려는 생각에서였지. 그러자 한 사람이 “이 아이는 장차 부자가 되겠습니다” 하고 말했지. 그래서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단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이 아이는 장차 벼슬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했지. 그래서 주인도 답례로 그에게 덕담을 해주었단다.그런데 한 사람은 “이 애는 틀림없이 죽을 겁니다” 하고 말해서 모두에게 호되게 얻어맞았다. 죽는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귀의 몸이 된다는 것은 거짓말일 수도 있지. 하지만 거짓말은 좋은 보답을 받았고, 진실은 얻어맞았다. 너는…? (루쉰, )대형 장소에서 벌어지는 요란한 돌잔치를 보노라면 못내 씁쓸하면서도, 뭐, 아이가 하나뿐이니 저럴 수도 있지 싶다. 하지만 돌잔치의 하이라이트라는 돌잡이에 이르러서는 섬뜩한 느낌마저 든다. 현금, 카드, 골프채, 청...

    2008.10.14 18:20

  • 웃음

    이 책의 발상은 보르헤스에 나오는 한 원문으로부터, 그 원문을 읽으며 지금까지 간직해 온 사고의 모든 지평을 산산이 부숴버린 한 웃음으로부터 연유한다. 그 웃음과 더불어, 우리들의 관행적인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구별은 혼란에 빠지고 붕괴의 위협을 받았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이 기록된 을 인용하고 있다. “동물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황제에 속하는 동물 ⒝향료로 처리하여 방부(防腐) 보존된 동물 ⒞사육동물 ⒟젖을 빠는 돼지 ⒠인어(人魚) ⒡전설상의 동물 ⒢주인없는 개 ⒣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광포(狂暴)한 동물 ⒥셀 수 없는 동물 ⒦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있는 동물 ⒧기타 ⒨물주전자를 깨뜨리는 동물 ⒩멀리서 보면 파리같이 보이는 동물.” 이 분류법에 경탄하면서 우리가 단번에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사고의 한계, 즉 ‘그것’에 대한 사고의 절대적인 불가능성이다. 이해는, 나와는 생각이 다른 인식들을 단순히 용인하는 문제가 아니다. 이해는 내가 가...

    2008.10.07 18:08

  • [고전에서 길 찾기]‘분서’
    ‘분서’

    천행으로 하늘은 내게 밝은 눈을 주시어 고희의 나이에도 여전히 행간이 촘촘한 책을 읽게 하셨다. 천행으로 내게 손을 내리시어 비록 고희에 이르렀지만 아직까지 잔글씨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점을 두고 천행이라 하기에는 아직 미흡하겠지. 하늘은 다행스럽게도 내게 평생토록 속인을 만나기 싫어하는 성격을 주셨다. 덕분에 나는 한창 나이 때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친척이나 손님의 왕래에 시달리지 않고 오직 독서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 천행으로 나는 한평생 가족들을 사랑하거나 가까이 하지 않는 무딘 감정을 타고났다. 그 덕분에 용호에서 말년을 보내면서 가족을 부양하거나 그들에게 핍박당하는 고통에서 벗어나 또 일념으로 독서에 전념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따위 역시 천행 운운하기에는 아직 미흡해보인다. 천행으로 내게는 마음의 눈이 있어 책을 펴면 곧 인간이 보이곤 하였다. 책을 안 읽는 이들은 ‘책을 읽을 수 없는’ 천만 가지 이유를 댄다. 돈도 벌어야 하고, 만날 사람도 많고, ...

    2008.09.30 17:56

  • [고전에서 길 찾기]무문관(無門關)
    무문관(無門關)

    향엄화상이 말했다. “가령, 누가 나무 위에 올라갔다고 하자. 손으로 가지를 잡지도 않고 디디고 선 발판도 없이 다만 입으로 가지를 물었다. 그때 나무 아래서 누가 ‘달마가 서쪽에서 건너온 뜻’을 묻는다면 어쩔 것인가. 대답하지 않으면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되고, 대답하려 들면 떨어져 목숨을 잃을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어떤 스님이 조주스님께 물었다.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조주가 말했다. “뜰 앞의 잣나무다.” 바람이 절의 깃발을 울리고 있었다. 이를 두고 한 스님은 깃발이 펄럭인다 하고, 또 하나는 바람이 펄럭인다고 했다. 둘이 서로 옥신각신하고 있자 육조스님이 말했다. “바람이 펄럭이는 것도, 깃발이 펄럭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너희들의 마음이 펄럭일 뿐이다.”선(禪)의 스승들은 대화의 부조리함을 독특한 언어 형식을 빌려 보여주었다. “달마가 동쪽으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뜰 앞의 잣나무”라고 답하거나, “부처가 무엇입...

    2008.09.23 17:59

  • 노년에 대하여

    노인들은 쾌락이 근질거리는 것을 그리 강하게 느끼지 못한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지. 하나 노인들은 쾌락을 바라지도 않네. 그리고 바라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고통을 줄 수 없네. 이미 연로해진 소포클레스에게 어떤 사람이 아직도 성적 접촉을 즐기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이고 맙소사! 사납고 잔인한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온 것처럼 이제 나는 막 거기서 빠져나왔소이다”라고 적절하게 대답했다네. 그런 것들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없다는 것이 혐오스럽고 괴로운 일이 되겠지만, 그런 것들에 물리고 신물이 난 사람들에게는 즐기는 편보다는 없는 편이 더 즐겁다네. 아쉽지 않은 사람은 결핍도 느끼지 못한다네. 그래서 아쉽지 않은 것이 더 즐거운 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네.마음이 성욕과 야망과 투쟁과 적대감과 온갖 욕망의 전역(戰役)을 다 치르고 나서, 자신 속으로 돌아가 자신과 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그리고 마음이 연구와 학문에서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다면, 노...

    2008.09.16 18:02

  • 에피쿠로스|쾌락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제거된다면, 단순한 음식도 사치스러운 음식과 같은 쾌락을 준다. 또한 빵과 물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배고픈 사람에게 가장 큰 쾌락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사치스럽지 않고 단순한 음식에 길들여지는 것은 우리에게 완전한 건강을 주며, 우리가 생활하면서 꼭 필요한 것들에 주저하지 않게 해준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가 사치스러운 것들과 마주쳤을 때 우리를 강하게 만들며, 우리가 행운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준다. 따라서 우리가 ‘쾌락이 목적이다’라고 할 때, 이 말은 방탕한 자들의 쾌락이나 육체적인 쾌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쾌락은 몸의 고통이나 마음의 혼란으로부터의 자유다. 삶을 즐겁게 만드는 것은 계속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는 일도 아니고,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도 아니며, 물고기를 마음껏 먹거나 풍성한 식탁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모든 선택과 기피의 동기를 발견하고 공허한 추측들을 몰아내면서, 멀쩡한 정신으로 계산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일정...

    2008.09.09 18:19

  • [고전에서 길 찾기]동경(東京)
    동경(東京)

    -내가 생각하던 ‘마루노우찌 삘딩’(속칭 마루비루)은 적어도 이 ‘마루비루’의 네 갑절은 되는 굉장한 것이었다. 뉴욕 브로드웨이에 가서도 나는 똑같은 환멸을 당할는지. 어쨌든 이 도시는 몹시 ‘깨솔링(가솔린)’ 내가 나는구나!가 동경(東京)의 첫 인상이다.우리같이 폐가 칠칠치 못한 인간은 우선 이 도시에 살 자격이 없다. 입을 다물어도 벌려도 ‘깨솔링’ 내가 삼투(渗透)되어 버렸으니 무슨 음식이고간 얼마간의 ‘깨솔링’ 맛을 면할 수 없다. 그러면 동경 시민의 체취(體臭)는 자동차와 비슷해 가리로다.이 ‘마루노우찌’라는 ‘삘딩’ 동리(洞里)에는 ‘삘딩’ 외에 주민이 없다. 자동차가 구두 노릇을 한다. 도보하는 사람이라고는 세기 말과 현대 자본주의를 비예(脾예 흘겨봄)하는 거룩한 철학인-그 외에는 하다못해 자동차라도 신고 드나든다. -천재 시인 이상에게도 근대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저 너머’ 어딘가에 있는 것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처음 그 ‘너머’를 똑바로 목격했을 때, ...

    2008.09.02 18:09

  • [고전에서 길 찾기]의산문답
    의산문답

    -신선의 술법은 요점이 무위(無爲)에 있을 뿐, 마음에 아무런 생각 없이 고요하고 흔들림이 없다. 만약 여색을 탐내는 속된 생각이 한 번이라도 마음에 싹튼다면 진원(眞元)이 흩어지고 법신(法身)이 타락하게 된다. 그러므로 신선을 그리워하는 속세 사람으로 하여금 이 경지에 있게 한다면 그는 반드시 그 고요함과 쓸쓸함을 싫어하고 간솔(簡率)함과 담박(淡泊)함을 괴롭게 여겨 잠깐 동안도 신선으로 있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세상엔 혹 남을 속이는 허망한 술법을 가진 자가 있어 신선을 칭탁하고 여기 번득 저기 번득하는 기괴한 짓으로 풍속을 우롱하니, 어리석은 자의 망령된 생각이 사실은 여기에서 연유한다. 대저 참된 신선은 표표히 세상을 버리고 친척의 은의(恩意)를 잊으며 고향의 그리움도 끊어버리니, 어찌 그 몸을 욕되게 하고 뜻을 굽혀 술법을 자부하며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스스로의 죄과(罪過)를 짓겠는가? -신선은 현실의 곤궁함을 초탈하려는 욕망의 산물이지만,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

    2008.08.26 1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