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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조은의 길
  • 하점면 고인돌

    얼마전, 친구들과 남쪽 지방에 있는 고인돌 군락지에 다녀왔다. 미리 알고 가지 않았다면, 안내판이 없었다면 고인돌인지도 모르고 지나쳤을 듯한 자연석들이 낮은 산을 덮고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그곳을 둘러보는 동안에도 문득문득 먼 곳에 있는 이 고인들이 생각났다. 이 웅장한 지석묘(덮개돌 길이 6.4m, 폭 5.2m)를 보면 ‘참 잘생겼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든다. 비스듬히 서 있는 두 개의 굄돌 위에 커다란 덮개돌이 얹혀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유적이 아닌 신의 유적 같다는 느낌도 들곤 한다. 처음엔 석관과도 같은 형태로 서 있었을 나머지 두 개의 막음돌은 세월 속에 사라져버렸지만, 탁 트여 하늘이 훤히 올려다보이는 지금의 모습이 원래 모습보다 훨씬 아름다울 거라는 확신도 든다. 예전엔 없던 철책이 세워진 것을 탓하며 내가 사진을 찍는 사이 오직 한 사람만이 조용히 원을 그리며 다양한 각도에서 고인돌을 살펴보고 있다.내가 난생 처음 봤던 지석묘가 이것인 때문인지 언...

    2009.07.13 18:08

  • [조은의 길]대숲
    대숲

    여행길에 대숲에 들어가 보았다. 그곳은 다른 숲에 비해 유난히 조용했다. 원통형의 커다란 대나무가 훌륭한 소음 차단막을 하고 있었다.대숲에는 새들이 깃들여 지저귀지도 않았다. 새들이 날기엔 단단한 벽처럼 버티고 있는 대나무 기둥들이 위험해 보였다. 대나무는 옆으로 가지를 뻗지 않아 새둥지를 지을 만한 공간도 내주지 않았다. 눈 주는 곳마다 사방으로 터진 숲인데, 위험과 악조건을 감수하며 새들이 대숲으로 날아와 둥지를 틀 리 없었다.나의 조상 중에도 대나무와 자주 비유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른 말만 하는 성미였으나 융통성이 없어 제 명대로 살지 못했을뿐더러 그와 관계 맺은 사람들도 도륙당하는 변고를 겪었다. 정신의 여유도, 인식의 탄력도 부족했던 ‘대쪽 같은 그’가 죽고 난 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와 비슷한 성정의 사람이 태어났다. 가끔 그들을 만날 때면 누구보다 그 자신이, 곧이어 그와 필연으로 묶인 가족들의 회한이 느껴지곤 했다. 그 때문인지 대나무를 볼 때면...

    2009.07.06 17:58

  • [조은의 길]제주 협재
    제주 협재

    저가 항공기를 타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아침에 출발하여 자정 전에 집에 도착한 딱 하루 동안의 여행이었다. 그만큼의 비용과 시간만 소모된다면 가끔 제주도를 다녀와도 되겠구나, 싶을 정도로 알찬 시간이었다.어느 바닷가에서는 한 해녀를 보았다. 멀리서도 그녀는 몹시 늙었음을 알 수 있었다. 검은 고무옷이 조이고 있는 다리와 배는 물론, 무거워 보이는 망태를 들고 있는 팔에서도 탄력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표정이 풍부한 젊은 여자들의 얼굴보다 많은 이야기를 하는 늙은 여자들의 몸…. 그들의 몸이 조금도 초라해 보이지 않는 것은, 위대한 모성이 느껴지기 때문이다.혹시라도 방해가 될까봐 ‘당신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먼 바다를 바라보며 다가가 곁에 바짝 선 나에게 그녀야말로 무관심했다. 어떤 말도 붙이지 못할 만큼 타인에게 무관심한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것은 심한 노동의 강도뿐이었다. 그 순간, 너무 쉽게 고통을 말하는 나에겐 그처럼 집중해 살아본 시간이 없는 것 같아 가슴이 뜨...

    2009.06.29 18:13

  • [조은의 길]풍수원성당
    풍수원성당

    횡성에 있는 풍수원성당에 가보았다. 텔레비전을 거의 안 보는 나로서는 드라마 촬영이 잦아 명소가 되었다는 그곳을 화면으로도 본 적 없으나, 성당을 둘러싼 분위기가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인상적이었다.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자 더욱 성스러움이 느껴졌다. 사십여년 전, 나는 한 친구를 따라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작은 성당에 가본 적이 있다. 몇 안 되는 신도들이 미사를 드리며 일어섰다 앉았다 할 때마다 마룻바닥이 끽끽 댔던 소리가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언젠가 파리를 여행할 때 마음먹고 찾았던 노트르담 성당과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뢰 쾨르 성당. 그 성당들도 어린 날 봤던 작은 성당만큼 강렬하지는 않았다. 고흐의 유명한 그림 ‘오베르 성당’의 바로 그 성당 역시 어린 날 내가 받은 강렬한 인상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풍수원에서 돌아오는 내내 나는 왜 그 작은 성전에서 그토록 오묘한 느낌을 받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 그때 노트르담 성당 성가대의 아름답고 장중한 미사곡이 떠올랐다. ...

    2009.06.22 18:05

  • 동호해수욕장

    여럿이 여행을 할 때는 혼자 다니는 사람이, 혼자 다닐 때는 여럿이 어울려 다니는 사람이 좋아 보일 때가 있다. 혼자 하는 여행은 헝클어진 실타래가 풀리는 듯 삶이 정리되지만 쓸쓸하고, 여럿이 하는 여행은 안전하고 재미있지만 고이는 생각이 부족하다.기온이 빠르게 올라가니 점점 시원한 물소리가 그리워진다. 교통이 편리해진 요즘엔 언제 가도 해변엔 사람들이 많다. 그 해변으로 자동차가 질주하는 모습도 보인다. 여럿이 왔든 혼자 왔든 사람들은 떠나는 순간까지 온몸으로 바다를 마주보고 있다. 우르르 몰려온 사람들도 한 줄로 늘어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빙 둘러앉아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사람에 대한 갈증이 깊어 보인다(어쩌면 그들은 너무도 서로를 신뢰하고 있을지도…).수면에 닿는 햇빛이 강렬하다. 마른 모래를 밟고 있는 내 발 아래까지 바다가 와 넘실대지만, 갈증이 난다. 바닷물에 손발을 적셔도 해갈되지 않는다. 먼 바다에 눈길을 줘...

    2009.06.15 18:00

  • [조은의 길]상주 농가
    상주 농가

    친구들과 한 친구의 고향집이 있는 상주에 다녀왔다. 그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곳, 담장 없는 집 화단엔 온갖 꽃들이 피어 있었다. 배롱나무꽃, 도라지꽃, 더덕꽃, 깨꽃, 맨드라미꽃…. 가장 돋보였던 점은, 집 구석구석에서 느껴지는 청결함과 검소함이었다. 나만 그런 것일까, 알고 지내던 사람의 가족 공간 안으로 들어갈 때는 기분이 참 묘하다. 그들이 오랫동안 맑게 정재한 물을 대가 없이 나눠 마시는 듯한 기분이다.그 집의 따뜻한 분위기에 한껏 취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쉴새없이 날아오는 꿀벌의 노동마저 마냥 평화로워 보였다. 등을 보이고 있는 것들은 하나같이 쓸쓸해 보이는 법인데…. 사진을 찍는 동안 벌들은 경계심도 없이 등을 보이며 꿀을 따고 있었다. 마당에서는벌들이 오가는 길이 이슬을 머금은 거미줄처럼 빛났다.돌아와 컴퓨터로 사진을 확대해 보니 벌은 동그랗게 꽃가루를 모아 양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한 녀석의 몸놀림이 유난히 느리다 싶어 눈여겨 봤는데, 다 이...

    2009.06.08 18:15

  • [조은의 길]사직터널
    사직터널

    조용해야 할 때 들리는 소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시끄러워야 할 때의 고요함도 불안감을 부채질한다.십여 년 전, 나는 저 터널 위 언덕에 새둥지처럼 매달린 집에 세들어 살았다. 청소년인 두 아들을 키우던 부부는 내가 그 집에 사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목소리를 높여 싸우지 않았다. 나를 찾아오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강했지만, 그곳의 편안한 분위기를 말하며 돌아가곤 했다. 이십여 년 동안 나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 경사가 심한 터널을 빠져나온 차가 앞차를 들이받는 굉음이 들릴 때도 있지만, 길은 대체로 흐름이 원활하다. 봄마다 터널을 달려나오는 바람엔 꽃향기가 풍기고, 터널을 걸어서 오가는 사람들을 뭔가 묵직한 이야기가 있어 보인다.어느 때는 저 길로 한 대의 차도 지나다니지 않는다. 터널 저편에서는 함성이 들리기도 한다. 눈앞 세상은 조용하다 못해 적막해 보이는데, 환청인지 난청인지 귀를 곤두세우게 하는 함성과 긴장감에 정신이 소모된다. 다혈질인 내가 한결같이...

    2009.06.01 17:56

  • [조은의 길]태안
    태안

    잘못 든 길에서 마주친 풍경에 발이 묶였다. 처음 가본 곳이지만, 내가 언젠가 그곳에 왔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처럼 기시감을 느낄 때가 있다. 유전자 안에 있는 장소에 대한 오래된 기억이 그같은 느낌을 불러오는 것일까. 그게 아니면 내게 유전자를 물려준 사람이 언젠가 잘못 갔던 길을 지금의 내가 답습하고 있는 것일까.물빛은 하늘을 닮아 있었고, 사방은 고요했다. 아주 가끔 어디선가 강냉이를 튀기는지 펑펑 하는 소리만 들렸다. 길을 잘못 든 김에 그곳에 잠시 머물렀다. 멀리 국도를 달려가는 자동차들이 보였지만, 그 길이 내가 온 길인지 가야 할 길인지 알 수 없었다. 방향감각을 잃자 육신이 쉽게 모양을 바꾸는 그림자보다도 중심 없어 보였다.돌이켜보니 길을 수없이 잘못 들어 나는 여기까지 왔다. 지금의 내 모습은 잘못 든 길의 결과물이다. 왜 어떤 감정의 순간들은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프고,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가. 오래 머물러야 어느만...

    2009.05.25 18:12

  • [조은의 길]외도
    외도

    늘 자연적인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것도 속단이었음을 인간의 손길에 구석구석 다듬어진 아름다운 섬 외도에서 느낀다. 그렇다, 자연적인 것만이 아름답다면, 모국어를 다듬고 또 다듬어 시를 쓰는 시인들의 시 역시 아름다울 리 없을 터.몇 시간 전, 소꿉친구와 나는 거제도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잉꼬부부로 통하던 친구는 얼마 전 남편을 잃었지만, 씩씩하다. 이제는 혼자서 아이 셋을 교육시키고 시집·장가도 보내야 하는 큰 짐이 혼자 된 어깨에 지워졌지만, 늘 낙관적으로 사고하며 세상과 대면한다. 정말이지 그녀는 나보다 삶을 서너 배는 더 살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주체적으로!오래 전, 우리가 젊디젊었던 시절, 같이 여행을 하다가 삼천포로 빠진 적이 있다. 삼천포의 노산공원에서 바지를 걷어올리고 바위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야생 굴을 따 먹었던 때가 바로 어제 같은데…. 시간은 그렇게 지나간다. 어제는 그제보다 빨리 지나갔고, 오늘은 어제보다 빨리 지나간다. 내일은 ...

    2009.05.18 18:12

  • [조은의 길]봉정사
    봉정사

    오래전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지명들이 있다. 안동군 월곡면 미질리…. 안정사 석조여래좌상이 발굴되었던 그곳도 과거의 기억 속에 묻힌 지 오래다.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 손과 결가부좌를 튼 하반신을 높게 표현한 점 등에서는 안정감이 느껴지지만, 대좌도 없이 현대식으로 다듬은 대리석 위에 올라앉아 있는 석불의 전체 모습에서는 안쓰러움이 느껴진다.안동댐이 생기면서 안정사가 폐사되자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석불. 발굴되어 안정사에 있던 석불을 그곳 주지가 방에 안치하며 금분을 칠해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아름다웠을 연꽃대좌와 광배도 그때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지도 어느덧 삼십육년. 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보수공사를 하던 극락전과 또 언젠가 갔을 때 보수공사를 하던 대웅전 사이에다 저 석불을 막 놓았을 때를 나는 기억한다. 비록 석불이었지만, 어린 나는 비바람을 피할 수도 없는 곳에 두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 가봐도 석불은 그때...

    2009.05.11 1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