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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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이종민의 음악편지
  • 8월의 질주 ‘어거스트 광시곡’

    8월, 어디론가 질주하고 싶은 계절입니다. 꼭 해변일 필요도 없고 굳이 산을 고집할 이유도 없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비 비 비, 이로 인한 산사태와 물난리에 씻겨간 허전함 채울 수만 있다면, 이 떨쳐버릴 수 없는 몸과 마음의 끈적거림 달랠 수만 있다면, 책이든 음악이든 영화든 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영화 를 다시 보았습니다. 도시의 소음조차 음악으로 듣는 주인공 에반(혹은 어거스트 러쉬), 바람 속에서 우주의 숨소리를 듣고 엄마 아빠의 부름을 확인하려 하는 그의 절실함, 그 진정성을 닮고 싶었습니다. 달에게 말을 걸고 그것에 영감을 받아 음악을 만들고 사랑에 빠지기도 하는, 미친 놈 취급받기 딱 좋은, 젊은 시절의 낭만, 영화 열심히 보면서 되살리고도 싶었을 것입니다.음악에도 귀를 기울였지만 그와 관련된 대사에 더 집중을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늘 음악이 있다. 우리는 그저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된다.” “음악은 우주에 우리 말고 다...

    2011.08.01 19:51

  • 사랑과 자유를 위한 아다지오 -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

    아프리카에 다녀왔습니다. 세상 더럽고 어지러운 것들 모두 쓸어버리려는 듯 종말의 홍수 같은 비가 쏟아지는 날. 술의 신 바쿠스의 힘을 빈 것도 아니요, 어느 시인처럼 “보이지 않는 시의 날개”를 이용한 것도 아닙니다. 두려운 바깥세상과 담을 쌓으려는 듯 창문 모두 암막으로 가린 채 하얀 연기 요란한 기차를 타고 케냐의 커피농장으로 향했습니다. 말을 타기도 했고 성능보다 겉모습이 멋스러운 지프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전쟁과 식민야욕에 점점 멍들어가고 있는 땅. 한때는 ‘지상낙원’이라 불리기도 했던 검은 대륙의 볼수록 다채로운 풍광들을 둘러보기 위해.결국 노란 경비행기의 유혹에 이끌려 광활한 초원과 그 위를 뛰어다니는 물소들, 못지않게 널따란 물길 따라 힘찬 비상의 날갯짓을 해대는 수많은 새떼들, 그리고 장엄한 붉은 빛 석양까지! 보고 말았습니다. 이쯤 돼야 제대로 된 일탈이라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가파르게 흐릿해지는 기억력을 감안해 시집 몇 권은 챙겼습...

    2011.07.11 20:18

  • 파격의 아름다움

    님은 갔습니다. 제자들의 애원의 눈길도 외면한 채 무슨 급한 볼 일이라도 생긴 양 서둘러 떠났습니다. 간절한 손짓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붙잡히면 큰일이라도 날까 싶은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조금 전까지만 해도 살갑게 술잔을 주고받던 제자들이 갑자기 저승사자라도 된 것일까? 2차로 노래방을 갈 분위기가 감지되자 불에 덴 듯 놀라 자리를 피한 것입니다.종강 기념으로 한판 놀고 싶어 기회를 엿보던 제자들은 닭 쫓던 견공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번번이 그랬습니다. 개강 때에도 오랜만에 만났으니 한번 취해 봅시다! 하면 사부님은 어느새 종적을 감추어 버렸습니다. 개강이나 종강이나 그 중심에 사부님이 계셔야 제격인데 언제나 사라져 김을 빼는 것입니다.종강할 때면, 제대로 예습 한번 한 적 없지만, 분주한 일상 쪼개어 일주일에 한차례 고전을 강독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마련입니다.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홀가분함과 방학 동안 만날 수 없게 된 섭섭한 마음이 교차되기도 합니다....

    2011.06.20 21:17

  • 호페의 ‘당신을 부르는 소리’

    어디선가 당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지구 온난화나 재앙으로 흘러내릴 4대강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주식이 아니라 극지방 빙산보다 더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 이 땅의 인권과 민주주의에 좀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 달라는 부름의 소리이기도 합니다.다시, 당신을 찾는 목멘 외침이 있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이웃에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 달라는. 잃어버린 공동체 그 소중한 온기를 회복하기 위해 점점 식어가는 마음의 난로를 다시 피워달라고 애타게 당신을 찾는 소리가, 어떤 여름을 몰고 오려고 이다지도 유난스러운지, 광기 어린 요즘의 바람을 뚫고 다시 들려옵니다.행여 그 소리 듣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오늘은 특별히 마이클 호페의 ‘당신을 부르는 소리’를 보내드립니다. 1996년에 나온 음반 에 실려 있는 곡입니다.이런 부름에 응하는 것, 마냥 쉬운 일은 아닙니다. 도움이 될 만한 재능도 있어야 하지만 용기도 필요합니다. 아직 이런 봉사문화가 ...

    2011.05.30 19:04

  •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곡- 비탈리의 ‘샤콘느’

    날씨가 풀리자 비바람이 어지럽고 꽃 피자 황사가 부옇고. 나들이 하기에 좋겠다 싶으면 꽃가루 날리고 꽃구경 호시절은 꼭 중간고사 기간과 겹치고. 봄 오는 꼴이 꼭 이렇습니다. 게다가 방사능 공포까지. 그래서 홀로 사는 시인은 아내와 아이들에게 버림받아 홀로 사는 사내의 입을 빌려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저렇게 피고 지랄이야.”‘세상에 가장 강력한 것이 슬픔’이라더니 슬퍼할 일이 올 봄에도 지천입니다. 테러리즘에 맞선 오만방자한 또 다른 폭력, 방사능 공포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원전 중심의 에너지정책, 소통을 모르는 4대강 삽질. 새만금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 목매는 전북이 슬프고 10년 후에나 실현될까 말까한 삼성의 양해각서에 호들갑떠는 모습이 애처롭고, 밀려오는 관광객 수에 취해 (전통) 문화정책을 손놔버린 전주한옥마을은 더 안타깝고. 명문대 못가는 것도 서럽지만 거기 가서 스스로 목숨 버리는 것은 더 서글프고. 취직난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입학하...

    2011.05.09 19:05

  • [이종민의 음악편지]순수를 꿈꾸며 - 이니그마의 ‘순수로 돌아가기’
    순수를 꿈꾸며 - 이니그마의 ‘순수로 돌아가기’

    ‘봄’의 계절 잘 보내고 계신지요? 창밖 화사한 벚꽃 훔쳐보다가 혹 부장님께 지청구를 듣지는 않았는지요? 요즘 달이 참 좋던데 그 달빛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혹 누구에겐가 전화를 하고 싶어 휴대전화 만지작거리거나,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혹 그런 전화 기다리며 매실주 홀짝이지는 않았는지, 괜히 궁금해지는 봄날 아침입니다.매화 지면서 살구꽃 피고 진달래 교태 시샘하며 철쭉도 나들이 채비가 한창입니다. 볼 것이 지천인 이 ‘봄에는 자세히 들여다보게 하소서!’ 시인 흉내로 애를 써보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의 부침에 현혹되어 만물생성변화의 아름다움에는 마음 줄 여유를 잃어버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봄’의 계절이 왔는데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떨림과 설렘과 감격을 잃어버린/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신세랄까? 매사가 궁금하던 어린 시절의 호기심, 꽃에서 요정을 보고 새싹에서 천사를 읽어내던 그 순수의 상상력을 잃은 탓이겠지요.영화 ...

    2011.04.18 21:20

  • 낙원은 없다! - 반젤리스의 ‘낙원의 정복’

    봄소식이 참담합니다. 재난영화에서보다 더 참혹한 지진·해일이, 좋아하는 영화나 연주실황 보겠다고 큰 마음먹고 장만한 대형 텔레비전 화면을 설치한 첫날부터 도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멀스멀 퍼지는 방사능 공포에 북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밤낮없는 포성까지. 짜증스러운 꽃샘추위나 황사는 차라리 귀여운 응석입니다!그 때문일까? 어느 해보다 혹독한 봄맞이 몸살을 앓았습니다. 내우외환? 때늦은 눈발, 굳은 어깨로 바라보려는데 겨우 돌아가기 시작한 목에 가시처럼 걸린 말입니다. 그런데 쓰나미나 방사능보다 목이 더 아프고 부르튼 입술이 더 보기 흉합니다. 리비아 민중의 아우성보다 아픈 침 삼키며 겨우 토하는 신음이 더 크게 울립니다.수만 명이 죽거나 다치고 집과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마당에 “바람이 어디로 불 것인가?” 먼저 따지는 호들갑을 가볍다! 탓하고 있었는데 몸이 좀 불편하니 그것이 곧 천년환란입니다.“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고통은 위대한” 것! 그렇게 읊은...

    2011.03.28 19:15

  • 창조적 혼융 - 이어러의 ‘신포니 데오’

    또 다시 전주한옥마을이 ‘한건’을 올렸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한 한국관광 ‘으뜸명소’에 선정된 것입니다. 이제 흔한 일이 되어 데면데면할 수도 있겠지만 ‘2010 한국관광의 별’ 쾌거가 우연이 아니라는 게 입증돼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얼마 전만 해도 ‘전국에서 민원이 가장 많은 곳’ ‘전주의 슬럼가’로 불리던 곳이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신을 하게 된 것일까? 고개가 갸웃해지곤 합니다. 운이 좋았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시기와 명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 것이 무엇보다 큰 행운이라 하겠습니다. 때맞춰 유네스코가 문화다양성 선언을 통해 각국의 고유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으며,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콘텐츠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여 전통문화가 그 보고(寶庫)로서 주목받기 시작한 점 등이 그것입니다. 삶의 질이 중시되면서 문화 수요가 급증한 것이나 관광 추이가 풍광구경에서 문화체험 형태로 변한 것 등도 매우 유리하...

    2011.03.07 21:33

  • ‘아침’을 기다리며

    ‘세상에서 가장 이쁜 차!’ 지금부터 꼭 10년 전 너를 처음 선보였을 때 어머님께서 이렇게 너를 불렀었지. 그 뒤로 아들보다 며느리가 더 큰 차를 모는 것이 서운하여 그 이름을 다시 들먹이지 않으셨지만 내게는 언제나 최고의 차였어, 너는!이제 내일이면 너의 경쟁자 ‘아침’이 네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구나. 10년 동안 발이 되어 나를 세상 곳곳으로 실어다준 너와의 이별, 언젠가는 오리라 가늠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급작스러우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작년 연말에 있었던 ‘사고’가 마음에 크게 작용을 했나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려 해도 뇌리를 떠나지 않아, 그 심야의 소동이. 다 내 잘못이지만 운이 없었다는 생각이 믿음으로 굳어지면서 너와의 인연이 여기까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더구나.그동안 너도 속이 많이 상했겠지만 나도 욱, 욕지거리가 치미는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오죽했으면 욕 대신 해주는 휴대전화 프로그램을 다운받으려 했을까? 왜 사람들...

    2011.02.14 21:14

  • 흐르는 것이 어디 물뿐이랴!

    섬진강가 향가라는 곳에는 김용택 시인의 표현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매운탕집이 있습니다. 순창~남원 간 철로를 놓기 위해 일제가 만들다 만 교각(사진)과 굴이 이 음식점을 사이에 두고 몇 십 년 풍상을 함께 견디고 있습니다. 순창군에서는 이들을 관광자원으로 이용할 궁리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 공공미술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섬진강 답사여행을 마련한 것도 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답사의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전라도 말로 “내싸 둬!”였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래도 어설프게 손댔다가 풍광은 물론 강 자체도 망칠 수 있겠다는 짐작은 답사 전부터 할 수 있었습니다. “지저분한 개집이나 치우지!” 식사 후에 즐기곤 하던 산책로 주변도 쓰레기 천지, 흐름이 막힌 물은 검게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강을 이렇게 망쳐놓고 무슨 공공미술?그곳에서 벗어나 김용택 시인 마을을 돌아볼 때에는 분노를 넘어선 허탈감에 맥이 탁 풀리고 말았습니다. 옛 추억을 되살리겠다고 징검다리를 건넌 것...

    2011.01.17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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