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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중남
1인 가구, 중년남, 다가구 남성을 가리켜 첫머리를 따서 ‘일중남’이라고 한대. 가여운 고독사의 주인공들 말이야. 다가구주택에 선선한 갈바람도 드나들기를 빈다. 끝내 견디고 이겨내 형편이 좀 피는 살맛 나는 세상 만나기를.언젠가 쿠팡 물류센터의 배달 노동자들이 에어컨을 설치하려고 돈을 모은단 소식을 접했다. 사측에서 안 해주니 본인들이 해결할 모양이었다. 산업안전보건법 39조에 따르면 사업주가 고온과 저온에 노출된 건강 장해 요인을 해결해줘야 마땅하다는 것. 스페이스 엑스 로켓을 발사하는 일론 머스크는 알랑가 모르겠는데, 우리나라엔 이미 엄청난 로켓 발사대가 있고, 로켓은 매일 어디론가 날아다니다가 물류센터로 돌아온다. 이른바 로켓 배송.요새 일로 연락을 나누고 있는 젊은이 중에 서양화가 윤소연 작가라고 있다. 지난 역병 시절 집에서 택배를 받고 그랬는데, 배달 온 상자를 보고 착안한 재미난 그림을 많이 그렸다. 택배 종이상자에 담긴 강물과 하늘 풍경이 그것. ... -
대구 남자
열대야 열대구, 달구벌 대구에 벗들이 산다. 오랜 날 교분하고 지내는 간디학교 양희창 형을 뵈러 대구엘 하루 갔는데, 형이랑 벗들과 노무현 바보 주막에서 탁배기도 한 순배 하고, 물이 씨길래(목이 마르다는 대구 사투리) 청라언덕 아래 커피집에 들러 아메리카노 일잔. 과거 계산성당에 붙어 있는 그 커피집 ‘커피명가’에서 ‘커피여행’ 강연을 한 일도 있다. 대구 벗들에게 전화도 빙 돌려 너가배 너거매(네 아버지 어머니) 안부도 여쭙고, 다시 88고속도로를 타고 팔팔하게 귀가했다. 며칠 지나서 대구 인연이 또 이어졌는데, 대구 남자 이무하 선배가 내 산골집엘 방문. 대구 남자 김광석이 불러 히트를 친 ‘끊어진 길’의 원곡자 가수렷다. “이 아름다운 세상 참주인된 삶을, 이제 우리 모두 손잡고 살아가야 해….” 선배랑 과일과 차를 농가먹으며(나눠먹고) 얘기보따리를 풀었다. 다음날 같이 땅끝 강진 방문길. 다산초당 옆마을 남녘교회를 사임한 지 올해 8월로 딱 20년이 된다. 마... -
르트루바유
한 시인이 쓴 산문집을 넘기다 만난 프랑스말 ‘르트루바유’. 이게 뭐냐면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찡한 재회 같은 걸 일컫는 말이란다. 사람뿐 아니라 장소에도 이 말을 붙여 쓸 수 있단다. 충청도 말로 화답하자면 ‘그릉가바유’. 내가 전에 한 번 맛본 좋은 느낌의 연장선. 사람도 자꾸 봐야 새로운 면을 알게 되고, 미운 정까지도 쌓이며 깊어지지. 오랜만에 친구를 다시 볼라치면 둘이 정들었던 장소를 물색하면 좋다. 적조했던 세월을 싹 잊고 일순 편안해지며 친근해진다. 당신과 나는 ‘로또 사이’여서 도무지 맞지 않지만, 장소에 대한 추억만큼은 르트루바유일 수 있지. 장성한 아이를 가끔 만난다. 좋아하는 요리도 같고, 밥 먹는 습관까지 닮아서 르트루바유를 연발하게 돼. 비유가 거시기하다만, 친일파들이 일본의 본부 요원을 만나면 생기는 ‘반가운 마음’도 비스무리하겠지? 으이그 그릉가바유. 남정네들이 보통 젊고 새로운 여성이라면 눈알이 쌩쌩 돌아가. 겪어보슈~ 정든 친구가 배나 ... -
날씨 아저씨
세 살짜리 애들은 또래를 만나면 금세 친구가 된다. “우리가 어디 한두 살짜리도 아닌데…” 하면서. 어른들은 술이나 한잔 걸치고 나야 비로소 서먹함이 풀리는데, 아예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고 꿍한 소심쟁이도 있다. 우린 보통 처음 말을 붙일 때 날씨 얘기를 꺼내. “밖이 넘넘 덥죠?” 아니면 “아침저녁으론 바람이 살짝 달라졌대요” 그러면서. 정찬의 장편소설 <유랑자>엔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 낳아준 어머니의 부음을 들은 순간, 그 잠깐에도 날씨 얘기를 꺼낸다. “내 입에서 처음 새어 나온 말은 서울 날씨가 어떠냐는 것이었다. 내 귀에도 겨우 들리는 목소리였다. 안개 저 너머에 있는 강희에게는 들릴 턱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희는 비가 오는 것 같다고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루살렘은 날씨가 맑다고 나 역시 웅얼거리듯 말했다.” 당혹스러울 때 모면하는 방법. 김씨 이씨 박씨 말고 날씨. 요즘 방송에선 기상캐스터 여인들이 날씨 예보를 하... -
끼끼 쏘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 트레킹 말고 ‘엘리베이터 트레킹’이라고 있다. 승강기를 안 타고 빌딩 꼭대기 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내려오기. 계단만 이용. 엘리베이터는 쳐다보기만 할 것. 걷기 운동은 몸에 무조건 좋다. 땀이 뻘뻘 나면 씻고, 선풍기 바람 쐬면 돼. 어느덧 입추 소식. 이 징글징글한 폭염도 어김없이 꺾이겠지? 비발디가 ‘사계’를 작곡한 이유도 여름 다음으로 가을, 겨울이 오기 때문. 아무렴 비발디가 천주교 신부님인데 우릴 속여 먹겠어? “젊어서도 산이 좋아라. 시냇물에 발을 적시고, 앞산에 훨훨 단풍이 타면 산이 좋아 떠날 수 없네. 보면 볼수록 정 깊은 산이 좋아서 하루 또 하루 지나도 산에서 사네. 늙어서도 산이 좋아라. 말없이 정다운 친구, 온 산에 하얗게 눈이 내린 날 나는 나는 산이 될 테야.” 가수 이정선의 노래 ‘산사람’도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여름이 물러나는 건 누군가 간절하게 단풍 노래와 첫눈을 비는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야. 나와 당신... -
원두막 나이트
경상도에선 ‘먹여줘’를 ‘미이도’라 한다. 무슨 섬 이름이 아니고 미이도~. 친구 하난 그쪽 동네에서 나고 자랐어. “성아. 수박 미이도~” 징징대자 형이 “찡꼴대지 말고 뚝. 니캉내캉 수껌댕이 묻히고 푸대짜루 들고 나가자. 니는 여풀떼기에 딱 붙어 있거레이”. 수박 서리로 단맛을 본 콩닥콩닥했던 그 기억을 잊지 못하겠대. 삐용삐용 순찰차만 지나쳐도 수박 서리 생각이 나서 뜨끔하다니 이제라도 자수하여 광명 찾아라. 법인카드를 마구 긁고 다니는 분들 비하면 소심하고 순진한 촌뜨기가 분명해. 영화감독 이창동의 단편소설 ‘하늘등’은 대학물을 먹은 용궁다방 레지 ‘신혜’씨가 주인공. 강원도 탄광촌 경찰들이 위장취업을 의심하여 돌아가면서 취조를 한다. ‘좌경용공 뿌리 뽑아 민주질서 수호하자’ 표어가 붙어 있는 데서 말이다. “너 공산주의자야 사회주의자야? 야 다 알고 묻는 거니 솔직히 말해봐.” “정말이에요 전 목돈이 필요했어요. 다음 학기 등록금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속옷까... -
쉭쉭!
영화 <올드보이>에 담긴 독백은 미국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가 쓴 ‘고독’이란 시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슬픔으로 점철된 이 세상에 기쁨은 턱없이 부족하고 고통만 가득하구나.” 왁자지껄 웃으며 살고프나 인생이 어디 그렇게만 흐르던가. 나이 듦도 서러운데 병들고 외로운 곤경이 엄습한다. 비틀스가 부른 ‘예순네 살이 되면’이란 노래가 있다. 동명의 제목으로 소설가 이청해의 <웬 아임 식스티포>라는 제목의 소설도 있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머리카락이 싹 빠지고 늙어도 밸런타인데이며 생일에 카드와 와인을 보내주실 거죠? 내가 예순네 살이 돼도 나를 원하실 건가요? 밥상을 차려줄 건가요? 짜게 굴고 열심히 돈을 모아 여름마다 섬에 있는 숙소를 빌릴게요. 베라, 척, 데이브 같은 이름의 손주들을 무릎에 앉혀보고 싶어요.” 같이 노래 부르던 존 레넌은 40세에 죽고, 조지 해리슨은 58세에 죽었어. 멤버... -
동가름 돼지 인생
제주에서는 동쪽 마을을 ‘동가름’이라 한다. 가름은 마을, 동네란 뜻. 동가름 표선의 해창 집에서 몇밤을 쉬다가 귀가. 사나운 장마에 비설거지를 마치면 다시 되돌이표 돌아갈 예정이다. 동가름에서는 흙이 찰진 밭을 ‘달진밭’이라 하고, 몽글한 밭을 ‘별진밭’이라 한단다. 밭에 달이 뜨고 별이 뜬다는 소리.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밭이면 이름조차 이리 예쁠까. 검질(잡초)에 시달리다가 결국 일어나 촐(꼴)을 베고, 저녁에는 간만에 돼지뼈를 우린 물에 순대와 돼지고기, 해초 모자반, 메밀가루 걸쭉히 갠 물을 넣어서 몸국이 완성. 두어 점 고기를 얹은 고기국수로 해장도 한다. 국수를 먹으러 해변길을 따라 읍내로 나갔는데, 아주망~ 아는 체를 하고 들어간다. 며칠 제때 제시간에 들렀덩만 눈만 깜박, 두말이 없다. 보리밭 농사에 거름으로 돼지똥만 한 게 없어 도새기(돼지)를 그렇게 많이 길렀단다. 마을 잔치에 고기를 고루 나누는 일꾼을 ‘도감’이라고 했다지. 도감이 굵게 ... -
바닷물 스승님
매일매일 꿈에도 바라는 방학이 가능하단다. 서울시 지하철 1호선 방학역에 내리는 방법. 그딴 짓 따라 했다간 학교에서 평생 방학 통지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방학인데, 아이들이 보이질 않아. 학원가에 가면 쥐꼬리라도 보일까. 방학은 왜 이다지 짧은지. 또 숙제가 골머리를 앓게 해. “해가 다 저물도록 계단 앞에 서서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움직일 줄 몰랐는데, 집은 여전히 멀고 방학은 벌써 끝나가는데.” 이장욱 시인의 시 ‘방학 숙제’는 영희와 철수의 무의식에 깔린 짧은 방학과 같은 인생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푹 자고 나면 ‘오후만 있는 일요일’, 또 푹 놀고 나면 어느새 끄트머리 며칠 남은 방학.방학이란 잠시 학업을 내려놓는 기간이다. 힘 빼기, ‘하지 않음으로 하는’ 기이한 배움의 시간이랄까. 인생은 평생 학생 신분으로 살아야 맞다. 아는 체, 잘난 체 까불다간 큰코다친다. 옛늙은이 가라사대(노자 3장), “똑똑하고 잘난 사람을 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 -
넋두리 노래잔치
한 번은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지낸 가수 양병집 샘과 얘길 나눴다. 밥 딜런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우리말로 옮기신 분. 내가 2절을 새로 만들어 노래를 녹음하게 되었는데, 부탁을 겸하여… 천국에 가실 때까지 종종 안부를 여쭙곤 했다. ‘소낙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도 양샘이 번안한 곡. 장마통에 노래 ‘소낙비’가 쏟아진다. “무엇을 들었니 내 아들아. 무엇을 들었니 내 딸들아. 나는 비 오는 날 밤에 천둥 소릴 들었소. 세상을 삼킬 듯한 파도 소릴 들었소. 성모 앞에 속죄하는 기도 소릴 들었소. 물에 빠진 시인의 노래도 들었소.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양샘의 음반은 통째 금지곡 신세가 되어 여차저차 처가 식구들이 사는 호주로 이민. 시드니 역전 골목에 좌판을 깔 듯 노상 공연도 했다. 주로 동전을 놓고 가지만 10달러짜리를 노래값이라며 놓기도 하더란다. 일주일에 400~500달러 정도 버셨다던가. 비가 내리면 거리의 악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