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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임의진의 시골편지
  • [임의진의 시골편지]인생은 지금부터!
    인생은 지금부터!

    서태지가 독립한 때도 아니고, 더 앞서 ‘시나위’라는 밴드 할 때 얘기니까 구석기 시대쯤 요런 말이 있었다. “부자는 골프 회원권을 사고 나는 버스 회수권을 사고, 부자는 호텔 사우나에 가고 나는 중동 사우디에 일하러 가고, 부자는 아침마다 헬스장에 가고 나는 아침마다 핼쑥해지고…” 그때나 지금이나 양극화는 여전하고, 아니 요샌 그냥 양국화. 두 개의 나라로 쪼개진 거 같아라. 한쪽은 수가 많은데 만날 쪼들리고 주눅이 들어 있어. 다른 한쪽은 수가 적은데도 왈패답게 으스대고 떵떵거려. 도대체 세상 두려운 게 없어. 최후의 보루 법복 입은 이들마저도 조물딱조물딱 아니 쪼물딱쪼물딱, 잡혀 사는지 아니면 똑같은 건지. ‘가진 자, 있는 자’에게만 특혜를 주고 그러는 걸 보면 기가 막혀.당신도 열 받고 힘들면 화병이 도지니까 어서 창문을 열고서 봄바람을 쐬어요. 햇살에 얼굴을 따뜻하게 데우는 ‘광합성 작용’을 해요. 그러다 보면 기운이 쬐끔 생길지도 모르죠. 동네에서 가장 친...

    2025.04.16 20:03

  • [임의진의 시골편지]고양이 나라
    고양이 나라

    재작년인가 ‘이매진도서관’ 식구들이 시사만화가 박순찬 화백을 한번 뵙고 싶다고 요청. 이전에 사석에서 인연도 있어 강연회에 모셨다. 고양이 캐릭터 ‘냥도리’가 등장하는 만화를 화면 가득 보면서 정치 풍자의 해학을 즐겼다. 강연 후엔 백지에 냥도리 사인도 나눔했지. 나도 한 장 받았는데 어디 뒀더라? 자취 집 데이트 신청이 과거엔 “라면 먹고 갈래?”였는데 요샌 “고양이 보고 갈래?”로 바뀌었단다. 애묘인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고양이가 대세다.지난주 헌재 재판정 풍경을 생중계로 구경하면서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미야자와 겐지의 우화소설 <고양이 사무소-어느 작은 관공서에 관한 환상>을 떠올렸다. 내 묘한 기억력은 가끔 소설이나 영화의 장면이 현실과 뒤죽박죽. 소설은 고양이 나라의 역사와 지리를 관장하는 관공서 얘기다. 글씨를 잘 쓰고 시를 잘 읽는 고양이들을 뽑아 일을 맡긴다. 사무장은 약간 노망이 들긴 했으나 실로 멋진 눈을 가진 검은 고양이. 그리고 ...

    2025.04.09 21:30

  • [임의진의 시골편지]도댓불
    도댓불

    옛날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별자리를 익혔어. 모터를 단 통통배도 아니고, 돛에 한가득 바람을 받았지. 별자리를 따라서 물길을 저어가던 돛단배.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폭풍우에 휘말려 물고기 밥이 되고 말아. 제주말로 등댓불을 ‘도댓불’이라 하는데, 현무암을 쌓아 올린 도댓불 언덕에 불빛이 깜박깜박, 사랑하는 이의 무사 귀환을 반기는 한 점 불빛.제주섬에 핏물 번지던 4·3 봄날, 마침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란 그림 이야기책을 공들여 읽었어. 책은 틀낭(산딸나무) 열매를 먹고 자란 제주도민들의 슬픈 기억을 들려주더군. 예수가 달려 죽은 십자가 나무도 틀낭나무를 베어다가 만든 형틀이라지. 부활절 절기가 들어 있는 사월이렷다. 책 속에 담긴 ‘무명천 할머니 편’은 ‘속솜하고(침묵하고) 살아온’ 할망과 하르방들 처절한 사연이었다. 서른다섯 살 때 총알이 턱을 관통했고, 평생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아온 할망. 방마다 자물쇠를 잠그는 일...

    2025.04.02 21:36

  • [임의진의 시골편지]다디단 양배추
    다디단 양배추

    매화 벚꽃 피니 유채꽃 제주 앞바당 찰싹대는 파도는 어떠한지 궁금해. 제주 친구는 서둘러 빨리빨리 오랄 때 ‘재개재개 옵서’, 느리게 오랄 때는 ‘놀멍놀멍 옵서’ 그런다. 빨리든 느리게든 가면 되는 일인데, 연분홍 꽃잎들, 샛노란 꽃잎들 다 지고 나면 무엇하리. 나비들 날고 양배추밭에도 ‘봄이 왔네 봄이 와’ 기지개 켜는 산밭의 아지랑이.“양배추 달아요~” 관식과 애순의 사랑을 그린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엔 김정미가 부른 신중현 아저씨 노래 ‘봄’이 세차게 봄바람을 불어 재낀다. “노랑나비 훨훨 날아서 그곳에 나래 접누나… 저 산을 넘어서 흰 구름 떠가네. 파란 바닷가에 높이 떠올라서 멀어져 돌아온다네. 생각에 잠겨 있구나. 봄바람이 불어오누나.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봄 봄 봄봄봄이여~”언젠가 신중현 아저씨를 뵀다. 록밴드 ‘곱창전골’의 리더이자 신중현의 애제자 사토 유키에랑 함께. 토끼가 양배추를 애정하듯 신중현 노래라면 환장을 하는 일...

    2025.03.26 21:03

  • [임의진의 시골편지]공기는 좋잖여
    공기는 좋잖여

    <학생댁 유씨씨>란 김종광의 소설엔 ‘웃픈’ 얘기가 솔솔. 이른 나이에 임신을 하는 통에 시골로 도피한 어린 신부 학생댁이 주인공이다. 막상 정착한 동네는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고, 도회지만큼 시끄러우며 온갖 간섭과 참견, 어쩌나 보자~ 하면서 팔짱 끼고 쳐다보는 눈총들. 학생댁이 괴로움에 불평을 늘어놓자 남편이 멋쩍어하면서 내뱉는 말. “그래도 공기는 좋잖여.”요전 날 성묘하러 고향에 다녀왔다. 요리 예능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짜한 사장님이 고향의 전통시장을 바꿔놓겠다면서 군청이랑 협정을 맺었단다. 칭기즈칸이 대륙을 정벌하고 다니는 모양새다. 공기만 좋은 시골이 과연 라스베이거스만큼 잘살게 될까. 잘 모르겠고, 시장통 어귀에 파는 짱뚱어탕을 포장하여 들고 돌아왔다. 설탕 범벅이 아닌, 변함없는 고향 맛에 감동받고, 배를 드러내고 누워 이빨을 일없이 쑤셔댔다. 비닐봉지에 고향 바닷가 짠내라도 가져올 걸 그랬네. 생선을 먹을 때는 공깃밥 말고 진짜 코로 숨 쉬는 ...

    2025.03.19 21:24

  • [임의진의 시골편지]약한 마음
    약한 마음

    춘삼월에 드문 싸래기눈이 내리던 도쿄에 좀 있다가 왔다. 영상에 담아야 할 게 있어 하루는 지브리의 숲 미타카 골목에 있는 동경신학대 졸업식엘 물어물어 갔는데, 백년 전 대선배가 현해탄을 건너가 입학한 청산학원 신학교의 후신. 감리교 선교사가 세운 청산학원은, 시방은 ‘있는 사람’만 다니는 고급 사립학교가 되어 버렸고, 신학교는 시부야를 떠나 변두리에서 통폐합되었다. 일본말이라면 ‘구다사이’나 중얼대는 수준이라 찬송가는 허밍으로 흠흠 따라 불렀지.자전거를 탄 청소부 아저씨가 교정을 죽 달려가고, 체 게바라처럼 생긴 청년이 조용한 변두리에 오토바이로 굉음을 내지르며 달렸다.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캔커피 자판기가 있네. 어디서 봤더라. 아~ 맞다 맞아.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 영화 한 장면.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새벽 출근길 빼 먹던 그 캔커피. 차에선 카세트테이프로 옛날 깐날 올드 팝이 흐르고 말이다. 고단한 아시아 민중의 선하지...

    2025.03.12 20:44

  • [임의진의 시골편지]탁구대 건너편
    탁구대 건너편

    어릴 때 교회에 탁구대가 있었다. 동네 형들에게 배운 건 탁구보다 욕이나 부잡스러운 장난들이었지만 “탁구공 있냐잉. 그거 조깐 줘보그라잉.” 갓 낳은 계란이 오지듯 탁구공을 쥐게 된 형들이 나를 ‘있는 자’ 취급을 해주어 좋았었다. 똑같은 촌구석에 뒹구는데 ‘저소득층 아이들’과 ‘고소득층 자제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뭐 그냥.탁구를 할 때 보면 또 숨은 성격들이 나와. 내기를 하다 대판 싸우기도 했던 모양. 탁구공을 사다 나르던 목사님이 그만 중단하고 마을 회관에다가 탁구대를 기증했다. 형들이 이번에는 회관으로 죄다 출근을 했어. 탁구공이 부딪히는 딱딱 소리가 경쾌해 그 근처를 지나면 어김없이 탁구공 소리가 요란했다. 탁구공은 세게 맞을수록 소리를 내질렀고, 어떤 녀석은 탁~ 외마디에 허망하게 깨지기도 했지. 탁구공이 한 개뿐일 때 하필 공이 깨지면 게임도 아쉽게 끝. 다음에 탁구공을 사다가 바칠 ‘중요 임무 종사자’는 흔치 않았다. “탁구공 있냐잉. 혹시 남은...

    2025.03.05 20:57

  • [임의진의 시골편지]희랍어 시간
    희랍어 시간

    소설가 한강의 <희랍어 시간>은 희랍어를 배우는 사람 이야기다. 나도 신학교에서 희랍어 그러니까 그리스어를 쬐끔 배웠지. 처음 배울 적엔 그리스어로 시를 쓰고 싶었으나 꿈만 창대했다. 지난해 순례단과 함께 그리스 정교회의 ‘교종’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를 이스탄불에서 뵙기도 했다. 영접실에 갔더니 초콜릿과 함께 그리스인들이 즐기는 식전주 ‘우조’를 내어주어 한 잔 쭉. 모르고 마신 성직자들 볼이 순식간에 빨개졌어. 술이야 항상 끊었다고 말하는데, 끊은 기념으로 한 잔은 즐겁다. 강제로 금주해야 할 ‘가막소’의 내란 장군들과 우두머리는 상당히 괴로울 테지만. 암튼 그날 정교회 미사는 평소보다 짧았는데도 3시간. 고대 그리스어 찬트가 시종 이어지고, 수십번 앉았다 섰다 운동도 되덩만.그리스어로 ‘편지’란 ‘에피스톨레’라 한다. 바울과 요한의 편지가 에피스톨레다. 한 인격을 향해 정중한 편지를 써서 보내는 건 인간이 짐승과 다른 점. 편지는 급기야 성서가 되었다....

    2025.02.26 20:57

  • [임의진의 시골편지]호모 룩스
    호모 룩스

    따뜻한 빛이 완만한 무등산 밑으로 쏟아져 ‘빛고을’이라 한다. 빛 광자를 써서 광주. 무등산은 우리나라 산중에 그래도 높은 축에 끼다 보니 겨우내 하얀 눈모자를 눌러쓰고 있다. 내란유랑단이 피 묻은 금남로에 쓰레기 같은 말들을 토하고 갔지만, 시민들이 토사물을 잘 쓸어 담았다. 무등산을 타고 내려오는 빛이라도 한 줌씩 가지고 가지, 버리기만 하고 가다니 몹쓸 인간들 같으니라고.태초에 신이 권능으로 세상을 창조할 때 빛이 있으라 하셨다지. 빛은 태초부터 멸망까지 있고, 입학부터 졸업식 때까지 있다. 과거 이재무 시인의 산문집에서 읽은 아래의 얘기 끝자락에도 빛나는 졸업장이 등장한다. “레슬링의 영웅 김일의 박치기, 배삼룡의 코미디가 우리의 고달픈 하루를 위무해주던 그 시절 학교는 교과 이외의 과제물로 우리를 괴롭혔다. 꼴 베어오기, 송충이 잡아오기, 채변 봉투, 신작로에 자갈 붓기. 겨울 폭설이 내리면 눈을 치우면서도 우리는 즐거웠는데 그런 날은 마을 장정들이 산에 올라...

    2025.02.19 21:22

  • [임의진의 시골편지]은행이라는 곳
    은행이라는 곳

    은행은 보통 돈이 없는 사람들이 애용해. 진짜 돈 있는 사람에겐 은행이 직접 집으로 찾아오지. 늦가을 은행나무에서 떨어지는 은행이 아니라, 돈을 빌리고 갚고 저축하는 은행들이 골목마다 몇 군데는 있어. 농협, 축협, 수협, 신협, 새마을금고, 그리고 우체국도 은행 업무를 본다. 개인 경제 말고 나라 경제도 은행에 기대어 일을 보는데, 거기엔 은행원 말고 경제학자들이 들어앉아 ‘에헴’ 하고 있다. 경제학자가 오늘도 살아 숨을 쉬는 이유는, 일기예보하는 기상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라지. 혼자만 틀렸으면 아마 맞아 죽었을 듯.1948년에 쓴 김용준의 <근원수필>에 보면 ‘은행이라는 곳’이란 꼭지의 수필이 있다. “우선 안이 깨끗하고 겨울이면 다른 데와 달리 스팀이 따뜻하고 또 공짜로 전화도 맘대로 쓸 수 있고 하니까 누구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는 데도 흔히들 가는 찻집을 피하고 조용하고 따뜻한 은행을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유리하냐는 것이다…” 거액을 예금하려고 은행엘 ...

    2025.02.1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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