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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 [임의진의 시골편지] 서울깍쟁이
    서울깍쟁이

    런더너 뉴요커 파리지앵. 세상의 유명 도시에 사는 사람을 가리킬 때 부르는 말. 서울 사람들은 뭐라 불릴까. ‘서울깍쟁이’ 알랑가 모르겄소만 요쪽에선 그렇게 불러. 서울에 일보고 간신히 돌아오면 곧바로 문상이나 꼭 만나야 할 약속이 또 생기곤 해. 대체로 서울 중심의 세상살이다 보니 절교나 단절이 말처럼 쉽지 않은 처지다.도시의 생리란 게 뜨내기 돈까지 죄다 뜯고 훔쳐 간다. 판사가 도둑에게 묻기를 “당신은 현금 돈뿐만 아니라 반지 목걸이 시계, 가방까지 닥치는 대로 다 훔쳤군요. 사실입니까?” “네. 그랬습니다. 사람이 돈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고 성경에서 배웠거든요.”번지 없는 주막에 앉아 못 믿겠소~ 하면서 몇 순배 걸치다 보면 산골에 돌아올 차비만 달랑 남게 된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 비 내리는 이 밤도 애절쿠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석유등 불빛 아래 마주 앉아서 따르는 이별주에 밤비도 처량쿠...

    2023.07.20 03: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꼬신내
    꼬신내

    여름엔 입맛이 뚝. 그러다 굶어 죽으면 제삿밥인가. 천국에선 무얼 먹을까 궁금해서 여름성경학교 교사에게 물어본 적이 있어. 대답은 원숭이가 좋아하는 바나나. 당시엔 비싼 과일. 아니면 진화론 앞에서 흔들린 신자의 속사정이었을까. 한 초보 신자가 “천국이 있습니까?”, 목사님 왈 “천국이 좋으니까 아직까지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온 사람이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천국이 분명 있는 거지요.” 순 억지. 웃자고 한 얘기겠지.어디서 꼬신내가 풀풀 난다. 아, 고소한 단내. 가끔 가는 국밥집 앞 방앗간에서 인절미를 찧나 봐. 누구네집 잔치잔치 열렸나. 냄새에 자극받아 떡 한 줄 사와서 잘 먹었다.엊그젠 전통주 평론가 일도 하는 탁재형 여행전문 피디가 남도 우리술 품평회 심사하러 왔다가 보고 싶다며 들렀다. 들고 온 술은 올해 대상을 받았다는 죽향도가의 41도짜리 술. “형님. 이런 독한 술은요, 먼저 코로 마시는 겁니다. 꼬신내를 한번 깊숙이 코로 들이켜고 ...

    2023.07.13 03: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임자와 연락선
    임자와 연락선

    잠깐 포구에 놀러를 갔는데, 장맛비가 오락가락. 한 곡 틀어보라 해서 노래를 골랐지. 가수 장세정이 부른 ‘연락선은 떠난다’. 노래를 틀어 놓고 활어 한 마리에 저녁밥이 맛났다. 조선인 강제동원에 항구마다 연락선이 정박해 조선인들을 실어 일본으로 날랐다지. 작곡은 ‘목포의 눈물’ 이난영의 짝 김해송(본명 김송규). “쌍고동 울어 울어 연락선은 떠난다. 잘 가소 잘 있소 눈물 젖은 손수건. 진정코 당신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눈물을 삼키면서 떠나갑니다. 아아 울지를 말아요. 파도는 출렁출렁 연락선은 떠난다. 정든 임 껴안고 목을 놓아 웁니다. 바람은 살랑살랑 연락선은 떠난다. 뱃머리 부딪는 안타까운 조각달. 언제나 임자만을, 언제나 임자만을 사랑하는 까닭에…” “바다에 들어가믄 괴기라도 잽힝께 살았재. 안 그라믄 풀 뜯어다 묵었겠재. ‘셍키’라고 있는디, 솔나무 껍닥을 뱃기믄 허연 안살이 있어. 것도 끓애 묵었재. 그래도잉 우리는 물에 물괴기가 있응게 굶지는 안 했재...

    2023.07.06 03: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쉬엄쉬엄
    쉬엄쉬엄

    툭툭도 탔지만 밤낮으로 쉬엄쉬엄 걸었다. 애정하는 리스트의 명곡 ‘순례의 해’. 집에서도 즐겨 듣지만 여행 중에도 꺼내 듣는다. 과거 프랑스 식민지 시절 지어진 집들도 이곳엔 많이 남아 있는데, 리스트의 고향 헝가리나 어디 <오즈의 마법사> 동네만 같아라. 소녀 도로시는 토네이도에 휩쓸려 강아지 토토와 멀리 오즈라는 곳에 추락해. 오즈(Oz)란 당시 사용하던 화폐단위 온스(Ounce)에서 작가가 착안했는데, 그야말로 뒤죽박죽 물신의 나라. 허풍선 자본주의와 반인반수의 신화 속 양철 나무꾼 로봇의 시대가 펼쳐진다. 여기에 흘러나오는 노래 ‘오버 더 레인보’는 이 난리통을 정리해주는 사운드 트랙. 도로시는 토토를 앞세우며 한없이 걷고 또 걸어. 우리 모두 걷다 보면 뾰족한 수가 나겠지. 걷지 않으면 답이 없어.쉬엄쉬엄이란 말을 좋아한다. ‘놀멍쉬멍’ 제주 친구는 그리도 말하덩만. 전라도에서는 ‘싸쌀 해찰해감시롱’이라고 한다. 뽈깡, 후다닥, 반짝하지 말고 아주아...

    2023.06.29 03: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툭툭
    툭툭

    늙은 경운기 발통 소리 아달달달, 삼륜 오토바이는 기침 소리를 내며 노래해, 우두두두. 마치 ‘조용필’의 ‘조용한’ 노랫가락이 흐르는 풍경 같아. “젊었을 때는 무조건 내지르는 게 잘하는 노래인 줄 알았어요. 그러나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결코 내지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죠. 힘을 빼고 감정을 많이 절제해야 합니다. 감정을 누르고 눌러 내면에서 우러나야 해요. 이젠 환호보다 박수를 받고 싶어요.” 가왕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노래 잘하는 법’. 프놈펜에선 툭툭(Tuk Tuk)을 타고 돌아댕기고 있다. 당신의 등을 툭툭 건드리면 나를 향해 살짝 뒤돌아 보실까. 오토바이에 꽃마차 수레를 매단 모양의 툭툭. 우마차의 증손주, 택시의 조카뻘 정도 될 툭툭. 한국에 돌아갈 때 툭툭을 타고 간다면 지루하진 않겠어. 그거 알아요? 분단되기 전에 부산과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과 베이징도 들르고, 모스크바를 거쳐 프랑스 파리나 베를린까지도 기차로 여행할 수 있었다는 거...

    2023.06.22 03: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사원과 구루
    사원과 구루

    어린 시절 사랑을 받지 못해 심리 치료를 받겠다고 찾아온 친구에게 구루(스승)인 ‘스와미 묵타난다’는 이렇게 얘기했다. “바로 지금부터 사랑하면 됩니다. 어린 시절 사랑받지 못했다는 걸 기억하고 괴로워하는 건 바보짓이에요. 제 자신 속에 있는 사랑을 찾읍시다. 타인에게 사랑을 받아 행복을 느끼는 건 잠깐이죠.” 그는 또 세상에는 가장 귀한 세 가지가 있다고 말했다. ‘1.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2. 자유와 해방을 향한 갈망, 3. 앞서 깨달은 스승을 만나 그의 보살핌을 받고 살아가는 인생.’내 안의 사랑을 찾아 혼자서 걷는 여행. 고대 도시 시엠레아프의 사원 ‘앙코르와트’에 찾아왔다. 늦잠 자는 박쥐와 아기를 안은 원숭이, 힐끔 쳐다보는 물까마귀, 하품하는 고양이가 날 반긴다. 늑대거미처럼 뚜벅뚜벅 큰 걸음으로 어슬렁거려. 숨이 막히면 바로 지금부터 숨을 쉬고, 사랑이 고갈되었으면 지금부터 내가 사랑의 주체가 되길 작정한다.황홀한 시엠레아프의 일출, ...

    2023.06.15 03: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상심 여행
    상심 여행

    여행에선 강도를 만나기도 해. “지갑 어딨어? 순순히 내놔라.” 강도가 칼을 들고 위협해. “목숨을 드릴 테니 지갑만은 제발….” 당황하면 말이 헛나가. 강도가 어이없어 웃다가 사람들이 몰려오니 도망을 쳐. 걸음아 나 살려라~ 꿈이 깨졌다거나 회사에서 난관에 부닥쳤을 때, 또 실연을 당해 ‘난감하네~’가 된 사람은 혼자서 멀리 용궁 여행을 계획한다. 그걸 어렵게 말하면 ‘상심 여행(Sentimental Journey)’이라고 해. 여행 도중에 상심을 치유하고, 또 새롭고 훌륭한 친구를 사귈지도 모르지. “아이디어들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어. 하지만 노트북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확실해.” 작가 존 클리즈의 말은 옳아. 나도 이런저런 여행과 경험담으로 글을 쓰는 거지 무슨 계시를 받는다든가 영감을 받는다는 건 없어. “잘난 사람 근처에 머물러야 떡고물이 생긴다. 친구를 사귀고 적들은 무시하라. 지난 세월을 쓰레기통에 넣지 마라(다 쓸모 있는 경험)....

    2023.06.08 03: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구래구래
    구래구래

    여기선 이웃동네 구례를 가리켜 ‘구래구래’ 두 번 불러야 구례인 줄 안다. 친구가 뭔 말을 하면 ‘구래구래’(그래그래) 두 번씩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처럼. 그러면 구례는 우리를 따뜻한 지리산 엄니 품속으로 이끌고 그 산허리로 그득히 안아준다. 구례 산너머 또 구례, 굽이굽이 산비탈 동네. 할머니들처럼 뭔 말을 하든 두 번 연속 되씹고 반복을 해야만 귀에 박히고 ‘알아묵게 되는’ 길목과 봉우리들. 구례가 고향인 친구와 후배들이 여럿 있는데, 가끔 만나는 제약회사 다니는 후배 왈 소설가 정지아 샘의 아버지가 제 외삼촌이래. 어린 시절 뛰놀던 동네 이야길 살짝 꺼내더라. “아 그래? 당신 누님에게 <아버지의 해방일지> 그 소설책 잘 읽었다고 전해주소.” 요새 소설가를 찾는 이가 많으니 쉬엄쉬엄 한 끼니 같이하자 청했다. 팬 미팅보다는 집안 식구들끼리. 소설에도 약간 비틀어 나오는 얘기지만 정지아란 이름엔 지리산의 ‘지’와 백아산의 ‘아’가 담겨 있다고 한다...

    2023.06.01 03: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귀명창
    귀명창

    선생님이 엄마 아빠가 집에서 책을 읽는 걸 본 기억에 대해 묻자 한 학생이 번쩍 손! “집에선 그런 기억 아예 없고요. 가끔 노래방엘 가는데 그땐 열공 하시죵.” 아이들이 깔까르르. 애나 어른이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노래 부르기를 참 좋아해. 큼큼~ 멱 따는 것도, 귀를 쫑긋하고 듣는 것도 좋아해. 그중의 으뜸은 귀명창이라고 한다지. 귀지를 파고 내 노래도 들어보렴. 이른바 ‘삑사리’는 내 잘못이 아니고 당신 귀에 누른 귀지 귓밥 때문이야.명창 신재효와 진채선의 이야길 아는가. 스승과 제자로 만난 둘은 전북 고창이 고향이다. 신재효는 1812년생, 진채선은 무당의 딸로 1842년생. 스승이 지은 동리정사에서 소리 공부를 시작한 진채선. 당시엔 남장을 하고 노래를 불러야 했는데, 경복궁 재건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데뷔해 일약 명창이 되었다. “가까이 두고 오래도록 소리를 듣고 싶구나.” 귀명창 임금과 대원위 대감 등은 진채선의 소릿가락에 푹 빠져버렸다. 더는 남장을 할 필요...

    2023.05.25 03: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오월 어머니
    오월 어머니

    무릎을 무르팍이라고 하는데, 여기선 그냥 ‘물팍’이라고 해. 나도 요기다 삽화를 직접 그리고 가끔 유화물감 그림 전시도 하는데, 오늘은 숭고하고 사랑스러운 화가들(?) 얘기를 해야겠다. 이곳 남녘 사람들은 엄니가 둘씩이다. 낳고 기른 엄마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오월 광주의 엄마. 민주 제단에 남편과 아들딸을 바친 엄니, 울엄니. 지난주부터 메이홀에선 ‘오월 어머니들의 그림 농사’ 전시회를 열고 있다. 오프닝은 성대했고, 마침 어버이날 즈음이라 친구들은 오월 어머니들을 위해 떡과 양산도 한 개씩 드리고 그랬다. 지난 1년 동안 예술치유 박사이자 화가인 주홍 샘의 지도로 미술치유의 결과물 ‘소품 수백점’을 전시하고 있다. 미술 수업할 때 모여 계신 ‘오월어머니집’에 한번 구경차 갔었는데, 엄니들이 그림 그리시면서 진도아리랑을 부르시덩만. 민요가 구성져서 한참을 재미나게 들었지. 민주화 유가족인 어머니들 그림을 보노라면 대체로 손들이 하늘을 향해 들린 모습이었다....

    2023.05.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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