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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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의진의 시골편지]앳가심

    앳가심

    낯설고 물선 찬 바닥에 누워 며칠 뜬눈으로 버티다 어제는 살짝 한뎃잠을 잤다. 무안공항 천막집 셸터. 나는 어쩌면 하늘의 앳가심(골칫거리의 이곳 방언). 누나네와 여동생, 가족 셋을 잃고 항꾸네(함께) 제주항공 비행기 사고의 유가족이 되어버렸다. 막내 여동생은 오랜 날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었다. 더 먼 옛이야길 꺼내자면 가슴 저편부터 아르르해. 철썩 달라붙은 옷도독놈까시(도깨비바늘)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오빠 같이 가. 오빠 같이 가자고잉~” 항상 그러던 막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 큰애가 엄마 본받아 이번에 간호대에 합격했다. 그래 놓고 홀가분한 마음에 떠난 간만의 휴가. 밤비행기를 타고 떠나던 날 오전에 “오빠 추어탕 사갈까요?” “아니다. 밥 먹었다. 그냥 와라.” 언니네랑 항꾸네 휴가를 간다길래 지난번 여행 때 남은 미국돈이 좀 있어 주려고 불렀다. 팔을 끌며 밥 같이 먹자는 걸 바쁘다며 사양했지. 엄마랑 따라온 대학 합격한 딸이랑 밥 한끼 같이 못...
  • [임의진의 시골편지]트랙터와 선짓국

    트랙터와 선짓국

    찬 서리 내리고 눈바람 탱탱 부는데 서울 댕겨온 농민회 트랙터 일행이 장성 국도를 마저 달린다. 이웃한 장성엔 어쩌다 한번쯤 가는데, 시장통 이름난 국밥집에서 보통 포장을 해온다. 나도 먹고 잔밥은 개가 달걀 크기 선지를 덥석 깨물어. 시장통 상인들이나 아니면 하우스재배 농민들이 주로 찾는 국밥집엔 주차장의 용달트럭마다 농산물 박스가 석탑처럼 솟아 있다. 올해 나는 쥐꼬리만 한 성탄 헌금을 농민회에 보냈어. 그분들 까맣게 탄 얼굴과 소나무 껍질만큼 거친 손등을 염려하며 기도했다. 생존권에 시위하는 농민들을 몽둥이로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 어느 정치인을 생각하면서도 기도했는데, 내용은 비밀이다. 국밥 중에도 선짓국. 벌건 피로 만든 선지. 드라큘라 백작이 아니다만 우리는 피를 나눠 먹는다. ‘사실상’ 피가 솟구치게 만드는 세상이렷다. 억지로 깐다는 말, 억까. 아이들이 쓰는 말. 억까 좀 하지 말라고. 속이 상하면서 분노에 피가 솟구친다. 억까 당하면서 사는 낮은 자리 사...
  • [임의진의 시골편지]타갠 사람

    타갠 사람

    북두칠성 빛난 별들이 물러가고 숫눈밭엔 산새가 출근 도장을 찍는다. 새 발자국을 보면 재밌는 게, 푸르릉 내려온 곳과 박차고 올라간 곳에만 굵고 널따란 발자국이 찍혀. 나머진 사뿐사뿐 걸어서 금세 바람에 흩어져. 새가 하늘로 오를 때 발바닥에 힘을 주는지 발자국이 배나 선명하고 날갯짓한 부분이 찍혀 있기도 해. 신해철의 낭송곡 ‘아버지와 나’를 들어봐. “난 창공을 날으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 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 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타갠(닮았다, 비슷하다란 전라도 방언) 사람, 아버지를 타갠 나. 새처럼 살고팠던 부자. 나는 그를 가장 타갠 사람. 새들 일가족이 머물다 날아...
  • [임의진의 시골편지]다시 만난 세계

    다시 만난 세계

    조찬기도회에 선 목사와 시국기도회에 선 목사는 하늘과 땅만큼 생각이 달라. 겨울 추위를 나는 거실 온도부터 다를 것이다. 산촌의 영하 날씨는 항상 두려워. 시국집회와 기도회가 줄을 잇고 있어 바깥출입이 잦다. 미열과 콧물감기를 달고 살아, 훌쩍~. 밤늦게 돌아오면 집이 냉골이다. 눈이 푸슬푸슬 내리다 말다 그래. 루돌프 사슴 같은 우리 개가 눈발자국 찍어놓은 마당은 새가 물찌똥을 싸고 갔나 녹으면서 흐물거리기도 해. 꽁꽁 얼지 않아 다행이야. 거리에 나선 민주시민들, 추위에 떨지 않길 바라자니 날씨 뉴스를 맨 먼저 보게 된다. 권좌를 내려놓아야 할 사람이 내려놓지 않자 실랑이질을 하게 되는데, 불더미처럼 모인 군중들 사이, 어린 친구들 부르는 노래가 골골샅샅 울려 퍼지는 중이렷다. “눈을 감고 느껴봐. 움직이는 마음 너를 향한 내 눈빛을.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눈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변치 않을 사...
  • [임의진의 시골편지]솔아 푸르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눈이 내리네’ 노래는 프랑스 샹송의 번안이다. 원곡보다 번안이 더 살갑게 귀에 감긴다. 이 겨울 찬 바람 무릅쓰며 광장에 서서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에게도 탄일종이 댕댕댕 귓전에 감돌길. 이 나라에 없는 사이 ‘눈이 내리네’ 노래의 날들이었나봐. 소나무도 그렇지만 단톡방마다 첫눈 소식이 대박. 두어 주에 걸쳐 유럽에 다녀왔다. 의장 주교님과 신부 수녀님, 목사님들 따라서 평화를 비는 순례사절단의 일원으로다가. 믿기지 않겠으나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면전에서 뵙기도 했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책에 오월 광주의 소년시민군 문재학 열사의 어머니 김길자 여사의 사인을 받아들고 갔는데, 이를 순례단은 선물로 드리고 왔다. 어김없이 눈이 오고, 소년도 오고, 살아 돌아오는 이들을 마중하는 시절이렷다. 최근 내 선곡음반 시리즈 ‘여행자의 노래’ LP반을 발매했다. 어디서 제작할까 찾다가 눈꽃나라 오스트리아에서 알판을 찍어왔다. 검고 둥그런 ‘엘피판’에다 그간 지...
  • [임의진의 시골편지]그루우 안 그루우

    그루우 안 그루우

    강원도 사투리로 옮긴 <어린 왕자>. 제목은 <언나 왕자>, 강원도에선 어린이가 ‘언나’, 어른은 ‘으런’ 그런갑다. 레올 베르트에게 보내는 서문부터 달달해라. “이 으런이 저 푸랑쓰서 살구 있는데 머이 아주 배르 곯코 전상 추위에 벌벌 떨매, 거서 고상으 하구 말구야. 고 맴이르 쫌 헤워줘야 대찮겠나. 요 연유르 모둥 듣구두 머이 상그도 부족허다 하믄 내거 이그르 언나쓸 찍에 고 으런한테 베킬꺼니. 이보오야, 아 으런들도 마커 언나 시절으 다 객었잖소. 안 그루우….” 나무 한 그루 할 때 그 그루 아니고 안 그렇냐는 말, 안 그루우. 어른도 다 어린 시절을 겪고 어른이 돼. 어린이 마음도 헤아리고, 어른 맘도 짚어가며 살았으면 해. 전라도에선 ‘올채(옳아), 긍게 긍게로, 그람 그라재’ 이런 말로 같은 맘 동의를 표한다. ‘그렁가 안 그렁가’ 하면 그렇다고 해야 좋아하지 기어 안 그렇다 버팅기면 삐지지 않겠나. 강원도에선 그루우 안 그루우~ 묻...
  • [임의진의 시골편지]장캉밥캉

    장캉밥캉

    지난달 만남이 있어 부산에 갔다가 해돋이 기억. 해돋이는 언제 봐도 장엄해. 요가에서도 ‘수리야 나마스카라’라고 하여 손을 올려 태양을 바라는 기본동작이 있다. ‘수리야’는 태양이라는 뜻이고 ‘나마스카라’는 맞이한다는 뜻. 부산에 살면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바다구경을 하고 해구경을 할 텐데. 늘 지내는 벗들은 늦잠을 즐기고 ‘잠충이’란 별명들이 많아. 아까워서 어쩐대~ 내 사랑 아침 해. 일행이 물건을 놓고 온 식당에 가까스로 도착, “길을 못 찾아 늦었네요”. “이기 아이씨예 꺼예. 이적찌기 안 가고 기다릿네예. 이짜 골목은예, 이짜가 저짜 같고 저짜가 그짜 같지예(이쪽이 저쪽 같고 저쪽이 그쪽 같아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좌르르 쏟아지는 시장통 먹자골목. 과거에 가난뱅이 살림을 가리켜 부산에선 ‘장캉밥캉’이라 했단다. 장꼬배이(장독대)에 장 있고 광에 쌀 있으면 목구멍 풀칠은 하고 살아는 지겠으나, 아침에 돋는 해는 얼굴만큼 큰데 입으로 들어가는 건 ...
  • [임의진의 시골편지]쌈바의 여인

    쌈바의 여인

    한번은 브라질에 갔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삼바, 오~ 삼바! 한국에서 일찍이 들은 풍월의 노래가 있었나니, 설운도의 노래 ‘쌈바의 여인’.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대. 쌈바춤을 추고 있는 그대. 화려한 불빛 음악에 젖어 사랑에 취해버린 그대. 사랑 사랑한다고 좋아 좋아한다고 눈빛 하나로 몸짓 하나로 내 마음 사로잡는 밤~” 춤이란 과연 무엇인가. 기쁨과 슬픔을 몸에 녹여내어 사지를 흔들어가면서 추는 한편의 ‘제의’. 댄스장을 돌아댕기던 충청도 출신 제비족이 있었더란다. 보통 서울 제비들은 사모님들 앞에 가서 “싸모님! 저와 오늘 밤 함께 예술의 세계로 쑥~ 한번 들어가 보실렵니까?” 이처럼 장황한 말을 늘어놓는 데 반하여, 충청도 제비는 달라도 아주 달랐다. “출텨?” 딱 한마디. “사랑 사랑한다고 좋아 좋아한다고~ 출텨?” 과거엔 불법 댄스홀에서 하얀 빽구두와 빠알간 삐딱 구두를 신고 붙잡힌 제비족과 사모님들이 뉴스에 종종 등장하고는 했다. 춤바람이 한번 일기 ...
  • [임의진의 시골편지]책방 순례

    책방 순례

    예전엔 ‘데모’의 세상이었다. 지금은 이 세상 분이 아닌 마광수 교수는 대학생 시절을 회고하기를 “나는 대학 1학년은 데모를 옆에서 지켜보거나 참가하는 것으로 끝이 난 것 같다. 그 긴 휴교의 가을방학 기간 동안 나는 유용한 시간들을 많이 가졌고, 학교 뒤 숲을 거닐며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기이한 청춘을 보냈음직한데, 소싯적 프로이트와 융, 쇼펜하우어의 ‘비극적 인생’을 읽는 등 사색과 독서를 즐겼더란다. 책 읽는 시간보다는 손전화기와 소셜미디어 방에 올린 제 얼굴을 더 많이 쳐다보는 세상이 되었다. ‘칼 마르크스’를 곱씹던 세대와 달리 요새 청춘들은 ‘칼 마구대스’ 외모 성형과 ‘돈타령’ 노래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영화제가 열린다길래 광주엘 나갔다가 영화관 옆 쪼꼬만 책방에 들렀다. “책방에선 책을 사고 절에선 절을 하는 뱁이재~” 하면서 나는 시집을 샀고, 친구는 미술책을 골랐다. 요전날엔 LP 음반 한 장 사려고 동대문 어딜 갔다가 헌책방엘...
  • [임의진의 시골편지]스불재

    스불재

    신해철 밴드 ‘넥스트’ 하면 생각나는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주제곡 ‘라젠카 세이브 어스’. 노랫말을 보면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탄식은 하늘을 가리우며 멸망의 공포가 지배하는 이곳, 희망은 이미 날개를 접었나…” 요새 아이들 쓰는 말에 ‘스불재’라고 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줄임말. 그 말의 뿌리가 바로 이 노래렷다. 타이거즈가 우승한 날, 그간 팬의 한 사람으로 희망고문에 죽을 뻔 보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맘고생을 이리하나, 팬심을 가진 일을 후회하며 스불재에 지옥 체험. 그러다가 꽃범호 감독의 취임 이후 접었던 희망의 날개를 살짝 펴봤지. 또 선수들의 눈빛도 달라지고, 예수님 부처님 다음으로 야구선수 소크라테스도 성인 대접을 해야지. 아니나 다를까 ‘세이브 어스 둥둥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가대표 축구팀도 스불재에서 탈출하길 기도해본다. 목사가 이런 것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싶다마는.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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