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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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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의진의 시골편지]밥심과 옛집
    밥심과 옛집

    변두리 암자 같은 한옥에 수도승처럼 기대 사노라니 차려 먹는 요깃거리도 간소하기 짝이 없다. 국수나 만두, 떡국을 쑤어 먹기도 하고, 면류 요리를 좋아도 해. 가족들은 그래도 밥을 먹어야지 ‘밥심’으로 사는 거지 하며 쓴소리를 해. 누가 기록한 조선시대 유물 책을 보니 보통 청동 밥그릇이 1700㎖ 크기. 요새 밥공기는 350㎖ 정도란다. 무려 한 끼니에 공깃밥 다섯 그릇을 먹었대. 물론 임금이나 양반 말고 누가 날마다 쌀밥을 지어 먹을 수 있었겠냐만.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맏딸 호원숙 선생의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엔 엄마의 부엌살림과 요리 얘기가 가득해서 반갑더군. <조선요리제법>이란 참고서가 놓인 충신동 옛집의 책장. <죄와 벌>이나 <전쟁과 평화>와 나란히 꽂혀 있었다지. “쌀을 꺼내 물에 씻으면 그 감촉과 빛깔이 질리지 않아. 매일 반복되는 일이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것이 무슨 힘인지는 나도 몰라. 다들 밥심으...

    2025.08.20 20:46

  • [임의진의 시골편지]더위팔기
    더위팔기

    말복 지나자 폭염이 수그러들기는 했다만 여전히 부채나 선풍기를 끼고 지내야 해. 옛 어른들은 더위를 사고팔았는데(?), 대보름날 아침에 소락때기(큰소리)를 지르면서 “내 더우 내 더우~” 그러면 말대꾸를 하는 사람이 더위를 뒤집어쓴대. “내 더우 폴랑게 째깐 사주소” “까지꺼 일루 줘보소. 지비 더우 하나 못 사줄 꺼싱가.” 그래놓고선 잔뜩 더위에 혼쭐이 나면 “니 더우 내 더위 맞더우~” 이렇게 말하면서 다른 이웃에게 더위를 되팔았대. 더위팔기를 해대는 통에 늦더위가 기승이었다지.작년 이맘땐 가족들이랑 몽골 들판에 있었다. 전통 천막집 게르 숙소에 여장을 풀고, 바싹 마른 말똥 낙타똥을 그러모아 모닥불을 지폈어. 기다랗게 늘어진 은하수 아래서 양고기에 보드카를 늦도록 마셨는데, 모기박멸 수도사 이야기를 아마 했었지. 수도원의 술 창고를 지키던 수도사가 있었는데, 항상 고주망태로 취해 코가 빨갛던 사람. 모기들이 그 수도사를 물고 피를 쭉쭉 빨다간 땅으로 곤두박질을 쳤...

    2025.08.13 21:21

  • [임의진의 시골편지]복숭아밭 치와와
    복숭아밭 치와와

    여름 하면 단물이 꽉 차서 들고 걷기조차 벅찬 수박, 토실토실 영근 포도송이도 탐스러워. 나는야 주먹만 한 연붉은 복숭아를 좋아해. 물컹물컹한 황도, 깨물다가 잇몸이 흔들릴 지경인 아삭한 천도복숭아를 먹노라면 삼국지의 도원결의, 그 복숭아나무도 떠올라.저번 주엔 간디청소년학교를 세워 교장을 지낸 양희창 형이랑 둘이서 중국 허난성 난양에 다녀왔다. 난양 하면 제갈공명의 땅. 위쪽 허베이성에선 유비와 관우, 장비 삼형제가 형제의 연을 맺었다지. 그 여파인가, 유비의 책사인 제갈공명의 땅 난양에도 도원결의의 상징 복숭아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더군. 만날천날 복숭아만 ‘미친 듯이’ 정말 먹어댔다. “무슨 복숭아를 그렇게 좋아해. 여기 복숭아가 맛이 달긴 해.” “세상에서 먹어본 복숭아 중에 가장 맛난 거 있죠. 거짓말 아니랑께요.” “안 뺏어 먹을 테니 많이 들어요.” 형이 더 가져다주었다. 또 돌아오는 길 동네 촌장님이 한 꾸러미를 안겨주어 열차 칸에서도 먹고, 정저우에 ...

    2025.08.06 21:08

  • [임의진의 시골편지]요강 나비
    요강 나비

    푸세식 변소는 특히 여름에 냄새 진동. 구더기도 바글바글. 안채와 멀리 떨어진 변소를 가려면 언니 오빠 누나 형이 꼭 따라가주어야 해. “꼼짝 말고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줘.” 진짜 기다리는지 내뺐는지 일을 보다가 확인도 하지. “지금 밖에 있지?” “아니~ 없다~” 칫, 없긴 뭐가 없어. “사실 나 니 언니 아니야. 히히히히~” 귀신 흉내를 내면 “그만해~ 무서워. 무섭다니까~” 측간 귀신 아니라 모기 흡혈귀가 변소 안과 밖에서 피 사냥을 시작해. 변소에 나타난다는 측간 귀신 이야기라도 들은 뒤엔 변소를 무서워 못 가고 옷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꾹 참아. 똥을 누는 중에 머리를 너풀너풀 풀어 헤친 측간 귀신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 똥 위에 주저앉아 발을 구르며 엉엉 울어버릴 테야.한강 대동강 두만강 말고 요강. 여름에 방구석에 앉아 있던 오줌받이 요강. 밤새 식구들 오줌물을 요강에 모아서 퇴비 거름에 쏟고, 밭농사에 썼어. 청동 구릿빛 놋요강이 있었고, 보통들 사기로 ...

    2025.07.30 20:56

  • [임의진의 시골편지]여우와 곰
    여우와 곰

    대중작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는 종말이 닥친 길 위에서 아빠와 아들이 꽁냥꽁냥 주고받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소년은 아빠와 줄곧 말을 나누며 생존의 길을 떠도는데, 책의 끝부분에서 아빠가 죽고 이젠 다른 대화 상대를 만나게 된다. “여자는 소년을 보자 두 팔로 끌어안았다. 아, 정말 반갑구나. 여자는 가끔 신에 관해 말하곤 했다. 소년은 신과 말을 하려 했으나, 가장 좋은 건 아버지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실제로 아버지와 말을 했으며 잊지도 않았다. 여자는 그것으로 됐다고 했다. 신의 숨이 그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건네진다고.”나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여러 가지 부류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는 편이다. 무람없이 단도직입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곰살갑게 대하면서 다정한 말로 다가오는 이는 고맙다. 말투부터 쉼표가 그려져 있다. 누군 어린애처럼 새근발딱 새근발딱 숨을 고르다가 얘길 꺼내기도 하고, 앙냥거리...

    2025.07.23 20:51

  • [임의진의 시골편지]빈대떡 신사
    빈대떡 신사

    서울 한남동 대로변 LP 가게 바이닐앤플라스틱에 들렀다. 여비가 간당간당해서 <도미도 레코드 가요힛트앨범> 딱 한 장만 사 들고 나왔지. 과거 내 음반 인터뷰로 만나 음악 일로 종종 뵙기도 하는 기자 출신 음악전문가 최규성 샘의 설명글이 앨범 속에 들어 있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50년대에 발표된 대중가요들은 제작 음반사조차 불명확한 혼돈의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간드러진 꾀꼬리 소리 박재란이 부른 ‘님(창살 없는 감옥)’에선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 왜 이리 그리운지 보고 싶은지.” 감옥에 에어컨은 어디만 켜진다던가. 옥살이 방마다 선풍기가 어떻단다 옥신각신. 죄인에게 에어컨 실외기를 넣어드리자는 댓글이 장원이었다.가수 한복남이 부른 ‘빈대떡 신사’에선 “들어갈 땐 폼을 내며 들어가더니 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매다가 뒷문으로 도망가다 붙잡히어서 매를 맞누나… 주머니엔 한 푼 없는 새파란 건달. 요리 먹고...

    2025.07.16 21:11

  • [임의진의 시골편지]소도둑
    소도둑

    ‘맬갑시’란 말. ‘괜히, 아무런 이유 없이’란 뜻. 특별하게 이유랄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맬갑시 전화를 넣고, 맬갑시 만나서 맬갑시 앉아 있다가 맬갑시 혼자 웃고 울다가 맬갑시 집으로 돌아왔다. 맬갑시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좀 진하고 무거운 말로 ‘무담시’란 말도 쓴다. 이유 없이 누가 괴롭히면 ‘무담시’ 그런다며 징징대도 괜찮은 게, 무담시 그러면 상대가 지나친 거다. 비하여 맬갑시는 훨씬 가볍고 능청스러워.오래된 친구가 맬갑시 서울이 싫다면서 놀러 가도 되냐길래 그러라 했다. 폭서 더위에 서울에 며칠이라도 있어 보면 그 마음을 얼추 헤아리고도 남지. 진작 가방을 싸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출발했다는 말이 없어 전화했더니 싸던 가방을 다시 풀었다고 한다. 자기 아픔만 생각하고 남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미안하대. 아픔이란 스며들고 전이가 돼. 아픈 이야길 계속 듣다 보면 맬갑시 나도 덩달아 아프다. 암만 허물없는 사이라도 밝고 건강할 때 봐야지 안 그러면 ...

    2025.07.09 20:50

  • [임의진의 시골편지]살인미수 가루
    살인미수 가루

    어릴 적 우리 집 목사관엔 동네에선 ‘처음’ 갖춘 살림살이들이 여럿 있었다. 교회 손님이 많다 보니 얼음이 얼리는 큼지막한 냉장고가 있었다. 교회에 쓸 피아노도 처음, 어깨너머 피아노를 치는 누이들을 부러워했는데 가끔 내 멋대로 삑사리 연주회, 듣고 있던 참새들이 가소롭다면서 짹짹댔다. 전화기도 동네에선 처음 놓았고, 컬러텔레비전도 아마 몇 번째였던 거 같아. 집에서 극장 구경을 하게 되다니, 참말 별세계 신세계였다.얼음을 꺼내 먹을 수 있는 냉장고는 여름만 되면 엄지 척, 짱이었다. 돈 내고 사 먹던 아이스크림을 직접 냉동실을 이용해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미숫가루를 설탕물에 풀어설랑 적당한 용기에 넣어 냉동실에 얼림. 식인종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불량식품’이라고 부른다덩만 집에서 만들어 먹는 아이스크림은 불량식품 아님. 미숫가루 얼음을 볼이 빵빵해지게 입에 넣고 굴리면서 여름을 즐겼다. 살인적인 뙤약볕에도, 그나마 살인미수 미숫가루만 있으면 죽지 않고 살아...

    2025.07.02 22:06

  • [임의진의 시골편지]홍콩 극장
    홍콩 극장

    ‘안득기’란 사람 이야기처럼, “이름이 뭐요?” 물으면 “안득기요”, 아니 “이름이 뭐란 말이요?” “안득기란 말이요.” 그처럼 아무리 불러도 안 듣기(들리)고 대답 없는 사람이 된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 그가 죽고 홍콩 영화도 뒷전으로 밀린 거 같아. 요새 아이들은 홍콩 영화를 잘 모르덩만. 지난주 영화음악 강의를 할 게 있어 홍콩 영화들을 다시 봤다. 애정하는 영화 <첨밀밀> <화양연화> <중경삼림>. 배우 이소룡, 성룡,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양자경, 장만옥… 기억 저편 아스라한 이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다른 일로 통화할 일이 있어 이설야 시인과 얘기하다 시집을 잘 읽었다고 말했는데, 그분 시 가운데 ‘물고기 극장’이라고 있지. 동인천 뒷골목 어디나 수협 창고 근처에 있을 것 같은 극장, 물고기 극장. 그 곁에 어디 있다고 하는 심지음악감상실. 사내에게 뺨을 맞은 여자의 울음소리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골목 끝에,...

    2025.06.25 21:26

  • [임의진의 시골편지]잠보 잠보
    잠보 잠보

    장맛비가 온다니 지붕에 올라가 빗물받이 낙엽들 털어내고, 큰비가 내릴 때마다 바닥이 질겅질겅한 포도밭 고랑을 삽으로 단도리. 몸을 부렸으니 노곤하여 술술 잠이 잘 올 텐데, 요새 밤마다 ‘꿈 동무, 잠 손님’이 쉽게 오지를 않는다. 생각만 많고 말이야. 희극배우 W C 필즈가 말하길 “최선의 불면증 치료는 오로지 잠을 많이 자는 것뿐이다”. 정확한 정답이다만, 혈압을 확 솟구치게 만드는 말이기도 해. 야식을 즐기진 않는데, 배가 부르면 포만감에 잠이 올지도 모른다고 누가 그래서 라면을 끓여 보기도 했다. 속만 부글부글하고 아침에 얼굴은 호빵맨처럼 부어있덩만. ‘신라 면세점’ 말고 ‘신라면 세 점’ 고작 그거 탐했다고 죗값이 너무도 크고 무겁더라.잠을 많이 자면 ‘잠보’라고 놀린다. 베개에 머리만 댔다 하면 코부터 골기 시작하는 인간들을 보면 참 대단해 보인다. 꿈속 세상에서 잘 지내는 잠보가 되고 싶어. 아프리카 케냐의 스와힐리어권에선 잠보가 한글과는 전...

    2025.06.18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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