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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 [임의진의 시골편지]장캉밥캉
    장캉밥캉

    지난달 만남이 있어 부산에 갔다가 해돋이 기억. 해돋이는 언제 봐도 장엄해. 요가에서도 ‘수리야 나마스카라’라고 하여 손을 올려 태양을 바라는 기본동작이 있다. ‘수리야’는 태양이라는 뜻이고 ‘나마스카라’는 맞이한다는 뜻. 부산에 살면 날마다 바닷가에 나가 바다구경을 하고 해구경을 할 텐데. 늘 지내는 벗들은 늦잠을 즐기고 ‘잠충이’란 별명들이 많아. 아까워서 어쩐대~ 내 사랑 아침 해. 일행이 물건을 놓고 온 식당에 가까스로 도착, “길을 못 찾아 늦었네요”. “이기 아이씨예 꺼예. 이적찌기 안 가고 기다릿네예. 이짜 골목은예, 이짜가 저짜 같고 저짜가 그짜 같지예(이쪽이 저쪽 같고 저쪽이 그쪽 같아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좌르르 쏟아지는 시장통 먹자골목. 과거에 가난뱅이 살림을 가리켜 부산에선 ‘장캉밥캉’이라 했단다. 장꼬배이(장독대)에 장 있고 광에 쌀 있으면 목구멍 풀칠은 하고 살아는 지겠으나, 아침에 돋는 해는 얼굴만큼 큰데 입으로 들어가는 건 ...

    2024.11.20 20:07

  • [임의진의 시골편지]쌈바의 여인
    쌈바의 여인

    한번은 브라질에 갔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삼바, 오~ 삼바! 한국에서 일찍이 들은 풍월의 노래가 있었나니, 설운도의 노래 ‘쌈바의 여인’. “내 마음을 사로잡는 그대. 쌈바춤을 추고 있는 그대. 화려한 불빛 음악에 젖어 사랑에 취해버린 그대. 사랑 사랑한다고 좋아 좋아한다고 눈빛 하나로 몸짓 하나로 내 마음 사로잡는 밤~” 춤이란 과연 무엇인가. 기쁨과 슬픔을 몸에 녹여내어 사지를 흔들어가면서 추는 한편의 ‘제의’. 댄스장을 돌아댕기던 충청도 출신 제비족이 있었더란다. 보통 서울 제비들은 사모님들 앞에 가서 “싸모님! 저와 오늘 밤 함께 예술의 세계로 쑥~ 한번 들어가 보실렵니까?” 이처럼 장황한 말을 늘어놓는 데 반하여, 충청도 제비는 달라도 아주 달랐다. “출텨?” 딱 한마디. “사랑 사랑한다고 좋아 좋아한다고~ 출텨?” 과거엔 불법 댄스홀에서 하얀 빽구두와 빠알간 삐딱 구두를 신고 붙잡힌 제비족과 사모님들이 뉴스에 종종 등장하고는 했다. 춤바람이 한번 일기 ...

    2024.11.13 19:55

  • [임의진의 시골편지]책방 순례
    책방 순례

    예전엔 ‘데모’의 세상이었다. 지금은 이 세상 분이 아닌 마광수 교수는 대학생 시절을 회고하기를 “나는 대학 1학년은 데모를 옆에서 지켜보거나 참가하는 것으로 끝이 난 것 같다. 그 긴 휴교의 가을방학 기간 동안 나는 유용한 시간들을 많이 가졌고, 학교 뒤 숲을 거닐며 사색의 시간을 보낼 수가 있었다”. 기이한 청춘을 보냈음직한데, 소싯적 프로이트와 융, 쇼펜하우어의 ‘비극적 인생’을 읽는 등 사색과 독서를 즐겼더란다. 책 읽는 시간보다는 손전화기와 소셜미디어 방에 올린 제 얼굴을 더 많이 쳐다보는 세상이 되었다. ‘칼 마르크스’를 곱씹던 세대와 달리 요새 청춘들은 ‘칼 마구대스’ 외모 성형과 ‘돈타령’ 노래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영화제가 열린다길래 광주엘 나갔다가 영화관 옆 쪼꼬만 책방에 들렀다. “책방에선 책을 사고 절에선 절을 하는 뱁이재~” 하면서 나는 시집을 샀고, 친구는 미술책을 골랐다. 요전날엔 LP 음반 한 장 사려고 동대문 어딜 갔다가 헌책방엘...

    2024.11.06 20:05

  • [임의진의 시골편지]스불재
    스불재

    신해철 밴드 ‘넥스트’ 하면 생각나는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의 주제곡 ‘라젠카 세이브 어스’. 노랫말을 보면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 탄식은 하늘을 가리우며 멸망의 공포가 지배하는 이곳, 희망은 이미 날개를 접었나…” 요새 아이들 쓰는 말에 ‘스불재’라고 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의 줄임말. 그 말의 뿌리가 바로 이 노래렷다. 타이거즈가 우승한 날, 그간 팬의 한 사람으로 희망고문에 죽을 뻔 보았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맘고생을 이리하나, 팬심을 가진 일을 후회하며 스불재에 지옥 체험. 그러다가 꽃범호 감독의 취임 이후 접었던 희망의 날개를 살짝 펴봤지. 또 선수들의 눈빛도 달라지고, 예수님 부처님 다음으로 야구선수 소크라테스도 성인 대접을 해야지. 아니나 다를까 ‘세이브 어스 둥둥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가대표 축구팀도 스불재에서 탈출하길 기도해본다. 목사가 이런 것까지 기도해야 하는가 싶다마는.스불재, 스스로 불러온 재...

    2024.10.30 21:05

  • [임의진의 시골편지]슈크란
    슈크란

    “나에게 산딸기나무가 있다면 열매에서 흐르는 그 붉은 피로 내 날개를 덧칠하고 새 부리를 가져가 달큰한 맛을 볼 텐데. 나에게 집이 있다면 창문틈 쏟아지는 햇살과 보얀 먼지에 마음이 팔렸을 때 내 이마를 한 점 빛줄기가 간질일 텐데.” 사랑하다 못해 암송까지 하는 팔레스타인 시인 ‘자카리아 무함마드’의 시. 집집마다 폭격으로 부서지고, 죽은 아이의 얼굴에 묘지의 보송보송한 흙 대신 건물 잔해 먼지가 덮치는 장면. 집 한 채 남김없이 부서지고 무너진 그곳, 산딸기나무와 부신 햇살과 이불에서 터진 보푸라기도 무사하진 못하리라. 굴렁쇠를 밀고 달리던 아이가 죽은, 텅 빈 그 골목을 생각하니 눈물이 찡 난다. 세상은 온통 전쟁의 소문들. 우리네 땅 남북도 해빙의 날이 무색하게 바짝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가을밤의 라디오 신청곡. “슬픔은 간이역의 코스모스로 피고 스쳐 불어온 향긋한 바람”이 부누나. 코스모스는 철조망 건너편에도 피었으리라.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

    2024.10.23 20:58

  • [임의진의 시골편지]고추와 귀신
    고추와 귀신

    과거 연대보증 섰다가 쫄딱 망한 착한 친구는 충청도 모처에 틀어박혀 지낸다. 서울 갔다 오는 길 잠시 들렀지. 들은 얘기가 있어 극도로 서행 운전. 외지인이 충청도에서 과속으로 경찰에게 붙들렸는데, “급한 일이 있어서요. 요번 한 번만 봐주세요.” 경찰 왈 “그르케 바쁘믄 어제 오지 그랬시유~”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꽝. 말문이 막히고 말겠다. 친구가 사는 동네는 물에 빠진 처녀귀신이 살 만큼 음산한 저수지가 한 동 있더라. 물이 깊고 색은 거무티티하덩만. 나는 무르춤 멈춰 서서 바깥길로 걸었다. 낮에는 새들만 재재 우는 빈산이나 밤 되면 처뚝처뚝 다리를 절며 귀신이 걸어 나올 분위기였다. 친구는 베고 남은 나무 지스러기로 밑불을 살리고 오겹살을 구워주었는데, 상추를 누렁우물에서 씻었나 흙기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가?” “머시냐 말허기가 그런디, 살긴 내가 뭘 살었겄어. 죽었슈 허고 지냈지.” 친구는 막 구운 고기와 자른 고추를 상추 위에 ...

    2024.10.16 21:27

  • [임의진의 시골편지]합창단
    합창단

    전에 합창단 대장으로 널뛰기도 했는데, 스님과 신부님 그리고 원불교 교무님과 목사님들이 뒤섞여 성탄절 캐럴을 부른 일이 있었다. 환경보호 일환으로 함께한 행사였다. 이왕 합창을 하려면 이 정도 생판 다른 기라성들을 모셔야 재미가 있지. 사실 예수님도 한때 스님이었다는 사실, 그대 아실랑가 모르겠네. 법명은 지저스님, 띄어쓰기에 주의할 것. 지저 스님 아니고 지저스 님. 웃자는 소리니 덤비지 마시라. 최근 시민자유대학에서 합창단 프로그램을 열었는데, 친구가 나더러 고문 역할을 맡아달래. 고문이라면 물고문 전기고문, 무궁무진이야. 합창의 미덕이란 누구나 참여 가능하단 것. 사실 노래를 너무 잘하는 사람이 합창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혼자 소락때기(소리)를 지르며 튀어 오르면 이대로 망하자는 소리. 음악다방에 찾아온 아가씨가 방귀를 못 참겠어서 꾀를 낸 게 베토벤 운명 교향곡에 맞춰 빠바바밤. 그런데 뒤에 앉은 경상도 총각이 하필 이 소릴 들어버림. “이기 인간이가 오디오가...

    2024.10.09 20:51

  • [임의진의 시골편지]야생화
    야생화

    옛날 깐날엔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인기를 끈 가수들이 꽤 있었다. 드라마 <작은 연인들>도 그랬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애창곡 가운데 하나였다지. “언제 우리가 만났던가~ 언제 우리가 헤어졌던가~ 만남도 헤어짐도 아픔이었지…” 노래를 부른 가수 김세화는 여고생 때 디제이 이종환 아저씨가 알아보고 즉석 데뷔를 시켰단다. 본명은 김홍진, 통기타 가수 김세환을 추앙한 나머지, 이름을 김세화로 바꿨다지. 영화 <겨울 여자>에서도 ‘눈물로 쓴 편지’를 구슬프게 불렀다. 심장을 졸게 하는 애처로운 노래를 즐겨 부른 가수다. 그중에 ‘야생화’란 노래가 있는데, 외국곡에다 가사를 입혔다. “난 한적한 들에 핀 꽃, 밤이슬을 머금었네. 나를 돌보는 사람 없지마는 나 웃으며 피었다네. 누굴 위해 피어나서 누굴 위해 지는 걸까. 가을바람이 불면 져야 해도 나는 웃는 야생화…” 서울에서 전시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산길에 꽃무릇이 와륵 피어 반긴다. 구겨진 빵봉지 속...

    2024.10.02 20:06

  • [임의진의 시골편지]옥돔구이
    옥돔구이

    제주섬이 있다는 건 축복이야. 중산간에서 ‘마음공부’하는 친구가 옥돔을 보내주어 구워 먹었다. 혀끝에서부터 짭조름하고 고소한 바다 맛. 제주에선 고둥을 보말이라고 하는데, 옥돔구이 곁에 보말국도 바라면 욕심일까. 지난여름 휴식차 갔을 때 ‘해녀의 집’에서 먹었던 물꾸럭(문어) 숙회도 그립다. 이왕지사 수영을 배운 김에 프리다이빙까지 해보련 벼렸는데, 그랬담 어디 섬 주변 할망바당(할머니 해녀가 찾는 수심이 얕은 바다)에 뛰어들어 보기도 했을 텐데 아쉬워라. 바닷물고기와 인사하고 소라도 줍고 말이지. 옥돔을 제주 남쪽 분들은 ‘솔나니’라고도 부른다. 입맛 없을 때 석쇠에 구운 솔나니를 손으로 좍좍 찢어 물에 만 밥에다 얹어 잡수어 보셨는가. 심리치료사 ‘캐롤라인 미스’는 몸과 영혼을 위한 7가지 신성한 진리를 권면한다. 귀한 옥돔에 밥을 한 끼 차려 먹듯, 마음도 꼭꼭 먹어야(결심해야) 제대로 사는 인생이라면서. 1. 모든 것이 하나임을 깨닫기, 2. 서로 존중하며 아...

    2024.09.25 20:51

  • [임의진의 시골편지]샹브레
    샹브레

    목사였던 아버지는 성찬식에 쓰려고 포도주를 직접 담그셨다. 요즘처럼 와인이 흔한 시절이 아니었지. 예배 때 어른들이 밀떡 한 조각과 포도주를 나누는 풍경은 신기했다. 언젠가 프랑스 촌락에서 한달살이를 하며 비로소 와인과 친해졌지. 이후 와인 산지를 돌면서 미각을 높이다가 급기야 ‘와인 여행’이란 포도주에 얽힌 노래만을 뽑은 선곡 음반도 발매했다. 광양에서 올라온 친구가 밥을 사겠대서 월산면 옆 동네, 프랑스식 가정요리집엘 갔다. 프랑스 총각이 우리 동네 처녀에 반하여 멀리도 장가를 왔는데, 부모님께 전수받은 요리로 밥집을 차려 손님이 쏠쏠. 양파수프가 현지 수준으로 맛나. 와인은 평범한 하우스 와인. 어떤 식사건 와인 한 잔이 곁에 놓이면 자리가 배나 훈훈해지는 법이다. 프랑스어 ‘샹브레’는 침실, 사적인 공간이란 말. 이게 와인 용어로도 쓰이는데 16~18도 와인 마시기에 적당한 ‘실내온도’를 뜻한다. 사람 관계도 온도가 맞아야 편안하지. 얼음골처럼 차가우면 ...

    2024.09.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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