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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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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의진의 시골편지]고양이 스님
    고양이 스님

    가끔 산책하러 가는 산길, 절집 외곽에 스님이 돌보는 고양이가 한 마리 살고 있다. 고양이는 경계를 잔뜩 하고서 길손인 나를 쳐다보곤 하는데, 요즘은 다가가도 ‘하악질’을 하지 않는다. 인기 드라마의 ‘학씨’처럼 ‘하악질’ 한번 해보지 못할, 만만한 상대란 걸 고양이도 안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상상력 사전>에 보니, 이 말이 맞나 틀리나 모르겠지만, “한국에 고양이가 처음 들어온 것은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의 일이다. 경전을 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양이를 함께 들여왔다고 한다”. 절에 사는 쥐와 절에 사는 고양이의 전쟁을 상상해보게 된다.절집 수행승들은 쥐를 노려보는 고양이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궁구하며 공부한다. 때가 되면 그 누구보다 잽싸게 움직이지 평소 어칠비칠 부산하게 움직이고, 무슨 행위를 가져야 ‘있어 보이는’ 다른 집안들과 사뭇 다른 점이요, 귀한 모습이다. 행사가 적은 절집일수록 믿음이 간다. 공부할 시간이 바쁜 것일 테...

    2025.05.07 20:27

  • [임의진의 시골편지]엄마 없는 하늘 아래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대지에 가득 내린 초록과 함께 이른 초여름 기운까지 가득해.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곧 어린이날, 이어지는 어버이날. 어린이를 떼고 어버이가 되었는데, 그사이 어버이를 잃고 말았네. 부모 잃은 사람들은 카네이션꽃만 봐도 슬픔과 아쉬움에 젖게 돼. 고아 신세, 차라리 어버이날이 없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흑흑.트로트 세계에 최진희의 ‘저음 꺾기’는 누가 있어 이를 능가할까. 집에 있는 ‘최진희 골든 15’ 음반을 꺼낼 때는 엄마 생각이 간절할 때야. “마음 하나 편할 때는 가끔씩은 잊었다가 괴롭고 서러울 때 생각나는 어머님. 지난여름 개울가에서 어머님을 등에 업고 징검다리 건널 때 너무나도 가벼워서 서러웠던 내 마음 아직도 나는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젖줄 따라 자란 키는 당신보다 크지만 지금도 내 마음엔 그 팔베개 그립니다. 내 팔베개 의지하신 야윈 얼굴에 야속하게 흘러버린 그 세월이 무정해 어머님이 아실까 봐 소리없이 울었네…”오월 가정의달에...

    2025.04.30 20:58

  • [임의진의 시골편지]번아웃
    번아웃

    영적 지도자 프랭크 바이올라는 <흔치 않은 지혜>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한다. “유명세를 멀리하라. 빈집에 들어가지 마라. 기대치를 낮추라. 계절을 분별하라. 늪지가 아닌 수로가 되라.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곧바로 사과하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라. 허세를 부리지 마라. 유해한 사람을 피하라. 시련을 낭비하지 마라. 소진(번아웃)을 피하라.” 요즘 보면 녹초가 된, 소진된 사람들이 많아 보여. 태우고 나면 남는 건 한 줌 재와 공허함뿐. 그러니 전부 다 불태우지 말고 적당히 체력을 남겨두고, 쉴 만한 물가와 휴일을 가져야 한다.‘빼다간’ ‘빼다지’란 말이 있는데 서랍을 말하는 사투리. 보통 빼다간에 뭘 넣어두지. 사람도 좀 넣어두고(자기가 들어가기도 하고) 한참 꺼내지 말아야 해. 잘 안 보이고 가만 지내는 사람들 보면, 눈이 맑고 총총하다. 간만에 만나면 배나 반갑고, 쓰일 때 귀하게 쓰이면 되지. 만날 길에서 부딪히는 ‘흔한’ 사람들 보면 번아웃 직전....

    2025.04.23 20:30

  • [임의진의 시골편지]인생은 지금부터!
    인생은 지금부터!

    서태지가 독립한 때도 아니고, 더 앞서 ‘시나위’라는 밴드 할 때 얘기니까 구석기 시대쯤 요런 말이 있었다. “부자는 골프 회원권을 사고 나는 버스 회수권을 사고, 부자는 호텔 사우나에 가고 나는 중동 사우디에 일하러 가고, 부자는 아침마다 헬스장에 가고 나는 아침마다 핼쑥해지고…” 그때나 지금이나 양극화는 여전하고, 아니 요샌 그냥 양국화. 두 개의 나라로 쪼개진 거 같아라. 한쪽은 수가 많은데 만날 쪼들리고 주눅이 들어 있어. 다른 한쪽은 수가 적은데도 왈패답게 으스대고 떵떵거려. 도대체 세상 두려운 게 없어. 최후의 보루 법복 입은 이들마저도 조물딱조물딱 아니 쪼물딱쪼물딱, 잡혀 사는지 아니면 똑같은 건지. ‘가진 자, 있는 자’에게만 특혜를 주고 그러는 걸 보면 기가 막혀.당신도 열 받고 힘들면 화병이 도지니까 어서 창문을 열고서 봄바람을 쐬어요. 햇살에 얼굴을 따뜻하게 데우는 ‘광합성 작용’을 해요. 그러다 보면 기운이 쬐끔 생길지도 모르죠. 동네에서 가장 친...

    2025.04.16 20:03

  • [임의진의 시골편지]고양이 나라
    고양이 나라

    재작년인가 ‘이매진도서관’ 식구들이 시사만화가 박순찬 화백을 한번 뵙고 싶다고 요청. 이전에 사석에서 인연도 있어 강연회에 모셨다. 고양이 캐릭터 ‘냥도리’가 등장하는 만화를 화면 가득 보면서 정치 풍자의 해학을 즐겼다. 강연 후엔 백지에 냥도리 사인도 나눔했지. 나도 한 장 받았는데 어디 뒀더라? 자취 집 데이트 신청이 과거엔 “라면 먹고 갈래?”였는데 요샌 “고양이 보고 갈래?”로 바뀌었단다. 애묘인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고양이가 대세다.지난주 헌재 재판정 풍경을 생중계로 구경하면서 ‘은하철도 999’의 원작자 미야자와 겐지의 우화소설 <고양이 사무소-어느 작은 관공서에 관한 환상>을 떠올렸다. 내 묘한 기억력은 가끔 소설이나 영화의 장면이 현실과 뒤죽박죽. 소설은 고양이 나라의 역사와 지리를 관장하는 관공서 얘기다. 글씨를 잘 쓰고 시를 잘 읽는 고양이들을 뽑아 일을 맡긴다. 사무장은 약간 노망이 들긴 했으나 실로 멋진 눈을 가진 검은 고양이. 그리고 ...

    2025.04.09 21:30

  • [임의진의 시골편지]도댓불
    도댓불

    옛날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별자리를 익혔어. 모터를 단 통통배도 아니고, 돛에 한가득 바람을 받았지. 별자리를 따라서 물길을 저어가던 돛단배.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폭풍우에 휘말려 물고기 밥이 되고 말아. 제주말로 등댓불을 ‘도댓불’이라 하는데, 현무암을 쌓아 올린 도댓불 언덕에 불빛이 깜박깜박, 사랑하는 이의 무사 귀환을 반기는 한 점 불빛.제주섬에 핏물 번지던 4·3 봄날, 마침 <틀낭에 진실꽃 피엄수다>란 그림 이야기책을 공들여 읽었어. 책은 틀낭(산딸나무) 열매를 먹고 자란 제주도민들의 슬픈 기억을 들려주더군. 예수가 달려 죽은 십자가 나무도 틀낭나무를 베어다가 만든 형틀이라지. 부활절 절기가 들어 있는 사월이렷다. 책 속에 담긴 ‘무명천 할머니 편’은 ‘속솜하고(침묵하고) 살아온’ 할망과 하르방들 처절한 사연이었다. 서른다섯 살 때 총알이 턱을 관통했고, 평생 무명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살아온 할망. 방마다 자물쇠를 잠그는 일...

    2025.04.02 21:36

  • [임의진의 시골편지]다디단 양배추
    다디단 양배추

    매화 벚꽃 피니 유채꽃 제주 앞바당 찰싹대는 파도는 어떠한지 궁금해. 제주 친구는 서둘러 빨리빨리 오랄 때 ‘재개재개 옵서’, 느리게 오랄 때는 ‘놀멍놀멍 옵서’ 그런다. 빨리든 느리게든 가면 되는 일인데, 연분홍 꽃잎들, 샛노란 꽃잎들 다 지고 나면 무엇하리. 나비들 날고 양배추밭에도 ‘봄이 왔네 봄이 와’ 기지개 켜는 산밭의 아지랑이.“양배추 달아요~” 관식과 애순의 사랑을 그린 인기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엔 김정미가 부른 신중현 아저씨 노래 ‘봄’이 세차게 봄바람을 불어 재낀다. “노랑나비 훨훨 날아서 그곳에 나래 접누나… 저 산을 넘어서 흰 구름 떠가네. 파란 바닷가에 높이 떠올라서 멀어져 돌아온다네. 생각에 잠겨 있구나. 봄바람이 불어오누나.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봄 봄 봄봄봄이여~”언젠가 신중현 아저씨를 뵀다. 록밴드 ‘곱창전골’의 리더이자 신중현의 애제자 사토 유키에랑 함께. 토끼가 양배추를 애정하듯 신중현 노래라면 환장을 하는 일...

    2025.03.26 21:03

  • [임의진의 시골편지]공기는 좋잖여
    공기는 좋잖여

    <학생댁 유씨씨>란 김종광의 소설엔 ‘웃픈’ 얘기가 솔솔. 이른 나이에 임신을 하는 통에 시골로 도피한 어린 신부 학생댁이 주인공이다. 막상 정착한 동네는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고, 도회지만큼 시끄러우며 온갖 간섭과 참견, 어쩌나 보자~ 하면서 팔짱 끼고 쳐다보는 눈총들. 학생댁이 괴로움에 불평을 늘어놓자 남편이 멋쩍어하면서 내뱉는 말. “그래도 공기는 좋잖여.”요전 날 성묘하러 고향에 다녀왔다. 요리 예능에 자주 등장하는 유명짜한 사장님이 고향의 전통시장을 바꿔놓겠다면서 군청이랑 협정을 맺었단다. 칭기즈칸이 대륙을 정벌하고 다니는 모양새다. 공기만 좋은 시골이 과연 라스베이거스만큼 잘살게 될까. 잘 모르겠고, 시장통 어귀에 파는 짱뚱어탕을 포장하여 들고 돌아왔다. 설탕 범벅이 아닌, 변함없는 고향 맛에 감동받고, 배를 드러내고 누워 이빨을 일없이 쑤셔댔다. 비닐봉지에 고향 바닷가 짠내라도 가져올 걸 그랬네. 생선을 먹을 때는 공깃밥 말고 진짜 코로 숨 쉬는 ...

    2025.03.19 21:24

  • [임의진의 시골편지]약한 마음
    약한 마음

    춘삼월에 드문 싸래기눈이 내리던 도쿄에 좀 있다가 왔다. 영상에 담아야 할 게 있어 하루는 지브리의 숲 미타카 골목에 있는 동경신학대 졸업식엘 물어물어 갔는데, 백년 전 대선배가 현해탄을 건너가 입학한 청산학원 신학교의 후신. 감리교 선교사가 세운 청산학원은, 시방은 ‘있는 사람’만 다니는 고급 사립학교가 되어 버렸고, 신학교는 시부야를 떠나 변두리에서 통폐합되었다. 일본말이라면 ‘구다사이’나 중얼대는 수준이라 찬송가는 허밍으로 흠흠 따라 불렀지.자전거를 탄 청소부 아저씨가 교정을 죽 달려가고, 체 게바라처럼 생긴 청년이 조용한 변두리에 오토바이로 굉음을 내지르며 달렸다.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어디서 많이 본 캔커피 자판기가 있네. 어디서 봤더라. 아~ 맞다 맞아.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 영화 한 장면. 공중화장실 청소부가 새벽 출근길 빼 먹던 그 캔커피. 차에선 카세트테이프로 옛날 깐날 올드 팝이 흐르고 말이다. 고단한 아시아 민중의 선하지...

    2025.03.12 20:44

  • [임의진의 시골편지]탁구대 건너편
    탁구대 건너편

    어릴 때 교회에 탁구대가 있었다. 동네 형들에게 배운 건 탁구보다 욕이나 부잡스러운 장난들이었지만 “탁구공 있냐잉. 그거 조깐 줘보그라잉.” 갓 낳은 계란이 오지듯 탁구공을 쥐게 된 형들이 나를 ‘있는 자’ 취급을 해주어 좋았었다. 똑같은 촌구석에 뒹구는데 ‘저소득층 아이들’과 ‘고소득층 자제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뭐 그냥.탁구를 할 때 보면 또 숨은 성격들이 나와. 내기를 하다 대판 싸우기도 했던 모양. 탁구공을 사다 나르던 목사님이 그만 중단하고 마을 회관에다가 탁구대를 기증했다. 형들이 이번에는 회관으로 죄다 출근을 했어. 탁구공이 부딪히는 딱딱 소리가 경쾌해 그 근처를 지나면 어김없이 탁구공 소리가 요란했다. 탁구공은 세게 맞을수록 소리를 내질렀고, 어떤 녀석은 탁~ 외마디에 허망하게 깨지기도 했지. 탁구공이 한 개뿐일 때 하필 공이 깨지면 게임도 아쉽게 끝. 다음에 탁구공을 사다가 바칠 ‘중요 임무 종사자’는 흔치 않았다. “탁구공 있냐잉. 혹시 남은...

    2025.03.05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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