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

821건의 관련기사

  • [임의진의 시골편지]날씨 아저씨

    날씨 아저씨

    세 살짜리 애들은 또래를 만나면 금세 친구가 된다. “우리가 어디 한두 살짜리도 아닌데…” 하면서. 어른들은 술이나 한잔 걸치고 나야 비로소 서먹함이 풀리는데, 아예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고 꿍한 소심쟁이도 있다. 우린 보통 처음 말을 붙일 때 날씨 얘기를 꺼내. “밖이 넘넘 덥죠?” 아니면 “아침저녁으론 바람이 살짝 달라졌대요” 그러면서. 정찬의 장편소설 <유랑자>엔 서울에서 걸려온 전화, 낳아준 어머니의 부음을 들은 순간, 그 잠깐에도 날씨 얘기를 꺼낸다. “내 입에서 처음 새어 나온 말은 서울 날씨가 어떠냐는 것이었다. 내 귀에도 겨우 들리는 목소리였다. 안개 저 너머에 있는 강희에게는 들릴 턱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강희는 비가 오는 것 같다고 웅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루살렘은 날씨가 맑다고 나 역시 웅얼거리듯 말했다.” 당혹스러울 때 모면하는 방법. 김씨 이씨 박씨 말고 날씨. 요즘 방송에선 기상캐스터 여인들이 날씨 예보를 하...
  • [임의진의 시골편지]끼끼 쏘쏘!

    끼끼 쏘쏘!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산 트레킹 말고 ‘엘리베이터 트레킹’이라고 있다. 승강기를 안 타고 빌딩 꼭대기 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내려오기. 계단만 이용. 엘리베이터는 쳐다보기만 할 것. 걷기 운동은 몸에 무조건 좋다. 땀이 뻘뻘 나면 씻고, 선풍기 바람 쐬면 돼. 어느덧 입추 소식. 이 징글징글한 폭염도 어김없이 꺾이겠지? 비발디가 ‘사계’를 작곡한 이유도 여름 다음으로 가을, 겨울이 오기 때문. 아무렴 비발디가 천주교 신부님인데 우릴 속여 먹겠어? “젊어서도 산이 좋아라. 시냇물에 발을 적시고, 앞산에 훨훨 단풍이 타면 산이 좋아 떠날 수 없네. 보면 볼수록 정 깊은 산이 좋아서 하루 또 하루 지나도 산에서 사네. 늙어서도 산이 좋아라. 말없이 정다운 친구, 온 산에 하얗게 눈이 내린 날 나는 나는 산이 될 테야.” 가수 이정선의 노래 ‘산사람’도 계절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여름이 물러나는 건 누군가 간절하게 단풍 노래와 첫눈을 비는 노래를 부르기 때문이야. 나와 당신...
  • [임의진의 시골편지]원두막 나이트

    원두막 나이트

    경상도에선 ‘먹여줘’를 ‘미이도’라 한다. 무슨 섬 이름이 아니고 미이도~. 친구 하난 그쪽 동네에서 나고 자랐어. “성아. 수박 미이도~” 징징대자 형이 “찡꼴대지 말고 뚝. 니캉내캉 수껌댕이 묻히고 푸대짜루 들고 나가자. 니는 여풀떼기에 딱 붙어 있거레이”. 수박 서리로 단맛을 본 콩닥콩닥했던 그 기억을 잊지 못하겠대. 삐용삐용 순찰차만 지나쳐도 수박 서리 생각이 나서 뜨끔하다니 이제라도 자수하여 광명 찾아라. 법인카드를 마구 긁고 다니는 분들 비하면 소심하고 순진한 촌뜨기가 분명해. 영화감독 이창동의 단편소설 ‘하늘등’은 대학물을 먹은 용궁다방 레지 ‘신혜’씨가 주인공. 강원도 탄광촌 경찰들이 위장취업을 의심하여 돌아가면서 취조를 한다. ‘좌경용공 뿌리 뽑아 민주질서 수호하자’ 표어가 붙어 있는 데서 말이다. “너 공산주의자야 사회주의자야? 야 다 알고 묻는 거니 솔직히 말해봐.” “정말이에요 전 목돈이 필요했어요. 다음 학기 등록금을 준비해야 하거든요.” 속옷까...
  • [임의진의 시골편지]쉭쉭!

    쉭쉭!

    영화 <올드보이>에 담긴 독백은 미국 시인 엘라 휠러 윌콕스가 쓴 ‘고독’이란 시다. “웃어라, 세상이 너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너 혼자만 울게 되리라. 슬픔으로 점철된 이 세상에 기쁨은 턱없이 부족하고 고통만 가득하구나.” 왁자지껄 웃으며 살고프나 인생이 어디 그렇게만 흐르던가. 나이 듦도 서러운데 병들고 외로운 곤경이 엄습한다. 비틀스가 부른 ‘예순네 살이 되면’이란 노래가 있다. 동명의 제목으로 소설가 이청해의 <웬 아임 식스티포>라는 제목의 소설도 있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머리카락이 싹 빠지고 늙어도 밸런타인데이며 생일에 카드와 와인을 보내주실 거죠? 내가 예순네 살이 돼도 나를 원하실 건가요? 밥상을 차려줄 건가요? 짜게 굴고 열심히 돈을 모아 여름마다 섬에 있는 숙소를 빌릴게요. 베라, 척, 데이브 같은 이름의 손주들을 무릎에 앉혀보고 싶어요.” 같이 노래 부르던 존 레넌은 40세에 죽고, 조지 해리슨은 58세에 죽었어. 멤버...
  • [임의진의 시골편지]동가름 돼지 인생

    동가름 돼지 인생

    제주에서는 동쪽 마을을 ‘동가름’이라 한다. 가름은 마을, 동네란 뜻. 동가름 표선의 해창 집에서 몇밤을 쉬다가 귀가. 사나운 장마에 비설거지를 마치면 다시 되돌이표 돌아갈 예정이다. 동가름에서는 흙이 찰진 밭을 ‘달진밭’이라 하고, 몽글한 밭을 ‘별진밭’이라 한단다. 밭에 달이 뜨고 별이 뜬다는 소리.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밭이면 이름조차 이리 예쁠까. 검질(잡초)에 시달리다가 결국 일어나 촐(꼴)을 베고, 저녁에는 간만에 돼지뼈를 우린 물에 순대와 돼지고기, 해초 모자반, 메밀가루 걸쭉히 갠 물을 넣어서 몸국이 완성. 두어 점 고기를 얹은 고기국수로 해장도 한다. 국수를 먹으러 해변길을 따라 읍내로 나갔는데, 아주망~ 아는 체를 하고 들어간다. 며칠 제때 제시간에 들렀덩만 눈만 깜박, 두말이 없다. 보리밭 농사에 거름으로 돼지똥만 한 게 없어 도새기(돼지)를 그렇게 많이 길렀단다. 마을 잔치에 고기를 고루 나누는 일꾼을 ‘도감’이라고 했다지. 도감이 굵게 ...
  • [임의진의 시골편지]바닷물 스승님

    바닷물 스승님

    매일매일 꿈에도 바라는 방학이 가능하단다. 서울시 지하철 1호선 방학역에 내리는 방법. 그딴 짓 따라 했다간 학교에서 평생 방학 통지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방학인데, 아이들이 보이질 않아. 학원가에 가면 쥐꼬리라도 보일까. 방학은 왜 이다지 짧은지. 또 숙제가 골머리를 앓게 해. “해가 다 저물도록 계단 앞에 서서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움직일 줄 몰랐는데, 집은 여전히 멀고 방학은 벌써 끝나가는데.” 이장욱 시인의 시 ‘방학 숙제’는 영희와 철수의 무의식에 깔린 짧은 방학과 같은 인생의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푹 자고 나면 ‘오후만 있는 일요일’, 또 푹 놀고 나면 어느새 끄트머리 며칠 남은 방학.방학이란 잠시 학업을 내려놓는 기간이다. 힘 빼기, ‘하지 않음으로 하는’ 기이한 배움의 시간이랄까. 인생은 평생 학생 신분으로 살아야 맞다. 아는 체, 잘난 체 까불다간 큰코다친다. 옛늙은이 가라사대(노자 3장), “똑똑하고 잘난 사람을 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
  • [임의진의 시골편지]넋두리 노래잔치

    넋두리 노래잔치

    한 번은 호주와 한국을 오가며 지낸 가수 양병집 샘과 얘길 나눴다. 밥 딜런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우리말로 옮기신 분. 내가 2절을 새로 만들어 노래를 녹음하게 되었는데, 부탁을 겸하여… 천국에 가실 때까지 종종 안부를 여쭙곤 했다. ‘소낙비’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도 양샘이 번안한 곡. 장마통에 노래 ‘소낙비’가 쏟아진다. “무엇을 들었니 내 아들아. 무엇을 들었니 내 딸들아. 나는 비 오는 날 밤에 천둥 소릴 들었소. 세상을 삼킬 듯한 파도 소릴 들었소. 성모 앞에 속죄하는 기도 소릴 들었소. 물에 빠진 시인의 노래도 들었소. 소낙비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양샘의 음반은 통째 금지곡 신세가 되어 여차저차 처가 식구들이 사는 호주로 이민. 시드니 역전 골목에 좌판을 깔 듯 노상 공연도 했다. 주로 동전을 놓고 가지만 10달러짜리를 노래값이라며 놓기도 하더란다. 일주일에 400~500달러 정도 버셨다던가. 비가 내리면 거리의 악사들...
  • [임의진의 시골편지]몰강물

    몰강물

    장마가 시작되자 목마르던 수국이 양껏 물을 마신다. 비에 쓸려나갈 집도 아니고, 비에 떠내려갈 ‘빼빼시’(마른 몸)도 아닌데 어찌 지내냐 걱정들을 하고 그래. “암시랑토 안해~” 답한다. 그럭저럭 정도가 아니라 단호하게, 아주 괜찮다는 말을 이 동네에선 그리한다. “도농놈의 자슥들~ 얼척이 없어가꼬 말이 안 나오네잉” 뉴스를 째려보던 아재가 넘기는 탁배기 한 사발. 찌륵찌륵 비도 내리고 부추전은 구수한 냄새. 인생 탁한 물이 흐르는 듯하면 밝고 고운 벗님 만나서 어둠을 씻는다. 여기선 맑은 물을 ‘몰강물’이라고 해. 몰강물이 하늘에서도 내리고 땅에서도 흐른다. 곽재구 시인의 ‘참 맑은 물살’ 그 시처럼 맑은 물이 쏟아진다. “참 고운 물살 머리카락 풀어 적셨네 (…) 아무 때나 만나서 한 몸 되어 흐르는 눈물나는 저들 연분홍 사랑 좀 봐” 인도에 가면 요가왕 ‘꼰다리 또꽈’, 일본에 가면 쌈박질 잘한다는 ‘깐이마 또까’, 장맛비에 걸어가는 ‘비사이로 마까’도 있다지만 ...
  • [임의진의 시골편지]황금 만능

    황금 만능

    딸이 결혼을 하겠다며 굴뚝새만큼 작은 남자친구를 데려왔는데 힘이나 쓸까 미덥지 않았던지 아버지가 딸에게 물었다. “저 친구 부모님은 경제 사정이 좀 어떻다니?” 그러자 딸이 대답. “그러니까요. 그 집에서도 우리 집 그 부분이 가장 궁금하시대요.” 경제 사정 황금 두꺼비는 모르겠고 황금심은 좀 아는데, 당신이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나요, 알아주어야 하는 옛 가수 황금심. 대표곡 ‘알뜰한 당신’을 들으면서 여름날 무료함을 나른함으로 바꾸는 중이다. 집에 어디 황금은 쥐꼬리도 없지만 황금심의 옛 노래가 있으니 안심이 된다. 지금부터 딱 백년 전 그때 그 시절, 먼 길을 찾아왔는데 그 사정을 몰라줘. “울고 왔다 울고 가는 서러운 사정을 당신이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나요. 알뜰한 당신은 알뜰한 당신은 무슨 까닭에 모른 척하십니까요.”요청으로 대학생 몇을 데리고 퀘이커의 평화에 대한 얘기를 나눴는데, 밤 12시까지 편의점 알바를 하는 친구가 새벽 6시 기상해 그 복잡한 김...
  • [임의진의 시골편지]조용한 코끼리

    조용한 코끼리

    교향곡이나 록밴드 음악을 듣는 일 빼곤 대체로 조용하게 사는 편. 뾰족하게 굴며 스포츠카를 방방 대는 이웃이 있질 않나 저 건넛집엔 누가 드럼을 배우는지 밤낮 두들겨 팬다. 악기 종류가 색소폰에서 바뀐 모양, ‘삑사리’가 장난 아니다. 하루 몇 차례 ‘산불조심’ 안내방송 차량도 요란하다. 산동네 살면 숯불만 피워도 방화범 취급을 받아. 동물 중에 보면 인간이 가장 시끄럽게 사는 거 같다. 아프리카와 인도에서 본 코끼리를 기억하는데, 위엄 있고 묵직한 걸음. 거대한 몸집과 달리 눈은 작고 순하게 생겼다. 가까운 동물원에도 코끼리가 살긴 사는데, 타잔을 불러서라도 탈출시키고 싶어. 몸집이 큰 만큼 철창은 얼마나 비좁게 느껴질까.성공회 신부이자 작가 애덤 포드의 책 <침묵의 기쁨>에도 코끼리 얘기가 나온다. “작지만 요란한 물떼새와 다르게 코끼리는 예상 밖으로 너무 조용하단 사실에 놀랐다. 꺼져가는 깜부기불 옆에 앉아 있을 때였다. 덤불 밖으로 무엇인가 나...
Today`s HOT
사이클론 알프레드로 인한 해안 침식 모습 더 나은 복지와 연금 인상을 원하는 프랑스 시민들 오슬로에서 이루어진 우크라이나-노르웨이 회담 평화를 위해 심어진 붉은 깃발
런던의 어느 화창한 날, 공원에서의 시민들 텍사스 주 산불, 진압 위해 작업하는 대원들
대피 명령 경보 떨어진 베이트 하눈을 떠나는 사람들 런던에서 열린 춘분식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전쟁 종식 시위 라마단을 위한 무료 문신 제거 서비스 175명씩 전쟁 포로 교환, 돌아온 우크라이나 군인들 달러와 연료 부족난을 겪는 볼리비아 사람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