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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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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의진의 시골편지]나그네새
    나그네새

    기온이 뚝 떨어지덩만 찌르르르 풀벌레 소리가 들려. 너무 다른 너, 깜짝 놀란다. 갈꽃들이 드디어 뽐내려고 채비를 한다. 너무 다른 공기, 겨울 철새들도 머잖아 찾아오겠지. 지난주 람사르 문화관이 있는 창원시 주남저수지에 벗님들과 생태탐방 겸 다녀왔다. 비치된 ‘겨울철새 생태지도’를 하나 집어 들고 왔는데, 집에 와서 찬찬히 펼쳐보니 물닭, 흰뺨검둥오리, 알락오리, 쇠기러기, 큰고니, 재두루미, 흰비오리, 뿔논병아리, 가창오리, 청둥오리, 노랑부리저어새, 흑두루미… 새들 사진과 얘기들이 잔뜩이야.몇가지 주의사항이 적혀 있는데, “소곤소곤 살금살금 말할 것, 새는 사람보다 40배 눈이 좋으니 원색의 옷은 스트레스인지라 녹색이나 갈색 옷을 입을 것,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우르르 몰려다니지 말 것, 돌을 던지지 말 것, 플래시로 사진 찍지 말 것…” 새만 아니라 가만히 있는 사람한테도 해당하는(?) 소리겠다.겨울새가 있고 나그네새가 있는데, 나그네새는 흑꼬리...

    2025.09.10 20:49

  • [임의진의 시골편지]발로바시
    발로바시

    바깥을 떠돌다 돌아오니 마당에 수북한 풀. 이러다 배암이 혀를 내밀며 슥 나오겠네. 집 주변으로 길목 초입까지 풀이 우거지면 이장이 시키지도 않는 울력을 혼자서 척척 한다. 예초기를 들고 숨을 할딱이면서 잡초 제거를 하는데, 엔진 굉음에 개들이 제집으로 후딱 숨는다. 갈퀴로 풀을 그러모아 버리고 반듯해진 마당을 뛰놀게 하면 머슴을 부리는 상전처럼 어그적어그적 나타나서 몸을 뒹굴며 낮때를 즐겨.어젠 할매 혼자 사시는 옥수수밭 아랫집 누렁이가 목줄이 풀려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나와 순간 눈이 마주쳤다. 탈옥하다 붙잡힌 못마땅한 표정이긴 했지만, 그렇게 돌아다니다간 차에 깔려 죽지. 요샌 개장수가 없어 개들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어. 목줄이 짧길래 줄을 좀 넉넉하게 이어줬다. 마당을 횡단할 정도는 돼. “잡어묵어불재 그랬소” 할매식 유머. “하하. 점심을 든든허게 묵어가꼬 시방은 생각이 없는디, 다시 도망쳐 잽히믄 뱃속에 있는 줄 아셔라잉.” 옥수수를 몇개 집어주어 맘 변하...

    2025.09.03 21:00

  • [임의진의 시골편지]심심해도 괜찮아
    심심해도 괜찮아

    “시인은 모름지기 장례식 관값이나 남기면 돼. 각혈하고 죽어야 진짜지.” 가난한 지리산 시인 형의 농반 진반. 진짜 그리 살다 죽은 시인도 있다. 대처승의 아들로 태어난 이시카와 다쿠보쿠. 이름에 ‘석(石)’자가 붙어 있는데, 시인 백석이 하도 그를 흠모해 ‘석’자를 빌려 썼다는 말도 있다. 다쿠보쿠는 신문기자로 목에 풀칠하며 지냈는데,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조선침략전쟁을 반대해 우익의 미움을 사기도 했다. 온 가족이 폐결핵으로 죽고 자신도 26세 젊은 나이에 죽었다. 아내의 고향인 북해도 하코다테에 유골을 이장했지. 다쿠보쿠가 쓴 <삿포로>란 미완성 소설이 있다. 소설은 시골에 낙향한 기자 이야기. 자기 경험담을 싱겁고 밍밍하게 썼는데, 1908년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북해도 풍경이 펼쳐진다.심심한 소설도 좋고, 심심한 설교도 괜찮아. 어떤 목사의 설교가 끝나자 교인이 다가와 한마디. “불면증으로 요새 고생이 참 많았는데 목사님 덕분에 씻은 듯 나았...

    2025.08.27 20:50

  • [임의진의 시골편지]밥심과 옛집
    밥심과 옛집

    변두리 암자 같은 한옥에 수도승처럼 기대 사노라니 차려 먹는 요깃거리도 간소하기 짝이 없다. 국수나 만두, 떡국을 쑤어 먹기도 하고, 면류 요리를 좋아도 해. 가족들은 그래도 밥을 먹어야지 ‘밥심’으로 사는 거지 하며 쓴소리를 해. 누가 기록한 조선시대 유물 책을 보니 보통 청동 밥그릇이 1700㎖ 크기. 요새 밥공기는 350㎖ 정도란다. 무려 한 끼니에 공깃밥 다섯 그릇을 먹었대. 물론 임금이나 양반 말고 누가 날마다 쌀밥을 지어 먹을 수 있었겠냐만.소설가 박완서 선생의 맏딸 호원숙 선생의 ‘엄마 박완서의 부엌’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엔 엄마의 부엌살림과 요리 얘기가 가득해서 반갑더군. <조선요리제법>이란 참고서가 놓인 충신동 옛집의 책장. <죄와 벌>이나 <전쟁과 평화>와 나란히 꽂혀 있었다지. “쌀을 꺼내 물에 씻으면 그 감촉과 빛깔이 질리지 않아. 매일 반복되는 일이어도 지루하지 않은, 그것이 무슨 힘인지는 나도 몰라. 다들 밥심으...

    2025.08.20 20:46

  • [임의진의 시골편지]더위팔기
    더위팔기

    말복 지나자 폭염이 수그러들기는 했다만 여전히 부채나 선풍기를 끼고 지내야 해. 옛 어른들은 더위를 사고팔았는데(?), 대보름날 아침에 소락때기(큰소리)를 지르면서 “내 더우 내 더우~” 그러면 말대꾸를 하는 사람이 더위를 뒤집어쓴대. “내 더우 폴랑게 째깐 사주소” “까지꺼 일루 줘보소. 지비 더우 하나 못 사줄 꺼싱가.” 그래놓고선 잔뜩 더위에 혼쭐이 나면 “니 더우 내 더위 맞더우~” 이렇게 말하면서 다른 이웃에게 더위를 되팔았대. 더위팔기를 해대는 통에 늦더위가 기승이었다지.작년 이맘땐 가족들이랑 몽골 들판에 있었다. 전통 천막집 게르 숙소에 여장을 풀고, 바싹 마른 말똥 낙타똥을 그러모아 모닥불을 지폈어. 기다랗게 늘어진 은하수 아래서 양고기에 보드카를 늦도록 마셨는데, 모기박멸 수도사 이야기를 아마 했었지. 수도원의 술 창고를 지키던 수도사가 있었는데, 항상 고주망태로 취해 코가 빨갛던 사람. 모기들이 그 수도사를 물고 피를 쭉쭉 빨다간 땅으로 곤두박질을 쳤...

    2025.08.13 21:21

  • [임의진의 시골편지]복숭아밭 치와와
    복숭아밭 치와와

    여름 하면 단물이 꽉 차서 들고 걷기조차 벅찬 수박, 토실토실 영근 포도송이도 탐스러워. 나는야 주먹만 한 연붉은 복숭아를 좋아해. 물컹물컹한 황도, 깨물다가 잇몸이 흔들릴 지경인 아삭한 천도복숭아를 먹노라면 삼국지의 도원결의, 그 복숭아나무도 떠올라.저번 주엔 간디청소년학교를 세워 교장을 지낸 양희창 형이랑 둘이서 중국 허난성 난양에 다녀왔다. 난양 하면 제갈공명의 땅. 위쪽 허베이성에선 유비와 관우, 장비 삼형제가 형제의 연을 맺었다지. 그 여파인가, 유비의 책사인 제갈공명의 땅 난양에도 도원결의의 상징 복숭아밭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더군. 만날천날 복숭아만 ‘미친 듯이’ 정말 먹어댔다. “무슨 복숭아를 그렇게 좋아해. 여기 복숭아가 맛이 달긴 해.” “세상에서 먹어본 복숭아 중에 가장 맛난 거 있죠. 거짓말 아니랑께요.” “안 뺏어 먹을 테니 많이 들어요.” 형이 더 가져다주었다. 또 돌아오는 길 동네 촌장님이 한 꾸러미를 안겨주어 열차 칸에서도 먹고, 정저우에 ...

    2025.08.06 21:08

  • [임의진의 시골편지]요강 나비
    요강 나비

    푸세식 변소는 특히 여름에 냄새 진동. 구더기도 바글바글. 안채와 멀리 떨어진 변소를 가려면 언니 오빠 누나 형이 꼭 따라가주어야 해. “꼼짝 말고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줘.” 진짜 기다리는지 내뺐는지 일을 보다가 확인도 하지. “지금 밖에 있지?” “아니~ 없다~” 칫, 없긴 뭐가 없어. “사실 나 니 언니 아니야. 히히히히~” 귀신 흉내를 내면 “그만해~ 무서워. 무섭다니까~” 측간 귀신 아니라 모기 흡혈귀가 변소 안과 밖에서 피 사냥을 시작해. 변소에 나타난다는 측간 귀신 이야기라도 들은 뒤엔 변소를 무서워 못 가고 옷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꾹 참아. 똥을 누는 중에 머리를 너풀너풀 풀어 헤친 측간 귀신이 나타나면 어떻게 해. 똥 위에 주저앉아 발을 구르며 엉엉 울어버릴 테야.한강 대동강 두만강 말고 요강. 여름에 방구석에 앉아 있던 오줌받이 요강. 밤새 식구들 오줌물을 요강에 모아서 퇴비 거름에 쏟고, 밭농사에 썼어. 청동 구릿빛 놋요강이 있었고, 보통들 사기로 ...

    2025.07.30 20:56

  • [임의진의 시골편지]여우와 곰
    여우와 곰

    대중작가 코맥 매카시의 소설 <로드>는 종말이 닥친 길 위에서 아빠와 아들이 꽁냥꽁냥 주고받는 대화가 주를 이룬다. 소년은 아빠와 줄곧 말을 나누며 생존의 길을 떠도는데, 책의 끝부분에서 아빠가 죽고 이젠 다른 대화 상대를 만나게 된다. “여자는 소년을 보자 두 팔로 끌어안았다. 아, 정말 반갑구나. 여자는 가끔 신에 관해 말하곤 했다. 소년은 신과 말을 하려 했으나, 가장 좋은 건 아버지와 말을 하는 것이었다. 소년은 실제로 아버지와 말을 했으며 잊지도 않았다. 여자는 그것으로 됐다고 했다. 신의 숨이 그의 숨이고, 그 숨은 세세토록 사람에서 사람에게로 건네진다고.”나는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여러 가지 부류 각양각색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는 편이다. 무람없이 단도직입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곰살갑게 대하면서 다정한 말로 다가오는 이는 고맙다. 말투부터 쉼표가 그려져 있다. 누군 어린애처럼 새근발딱 새근발딱 숨을 고르다가 얘길 꺼내기도 하고, 앙냥거리...

    2025.07.23 20:51

  • [임의진의 시골편지]빈대떡 신사
    빈대떡 신사

    서울 한남동 대로변 LP 가게 바이닐앤플라스틱에 들렀다. 여비가 간당간당해서 <도미도 레코드 가요힛트앨범> 딱 한 장만 사 들고 나왔지. 과거 내 음반 인터뷰로 만나 음악 일로 종종 뵙기도 하는 기자 출신 음악전문가 최규성 샘의 설명글이 앨범 속에 들어 있네. “한국전쟁으로 인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50년대에 발표된 대중가요들은 제작 음반사조차 불명확한 혼돈의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간드러진 꾀꼬리 소리 박재란이 부른 ‘님(창살 없는 감옥)’에선 “창살 없는 감옥인가 만날 길 없네. 왜 이리 그리운지 보고 싶은지.” 감옥에 에어컨은 어디만 켜진다던가. 옥살이 방마다 선풍기가 어떻단다 옥신각신. 죄인에게 에어컨 실외기를 넣어드리자는 댓글이 장원이었다.가수 한복남이 부른 ‘빈대떡 신사’에선 “들어갈 땐 폼을 내며 들어가더니 나올 적엔 돈이 없어 쩔쩔매다가 뒷문으로 도망가다 붙잡히어서 매를 맞누나… 주머니엔 한 푼 없는 새파란 건달. 요리 먹고...

    2025.07.16 21:11

  • [임의진의 시골편지]소도둑
    소도둑

    ‘맬갑시’란 말. ‘괜히, 아무런 이유 없이’란 뜻. 특별하게 이유랄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맬갑시 전화를 넣고, 맬갑시 만나서 맬갑시 앉아 있다가 맬갑시 혼자 웃고 울다가 맬갑시 집으로 돌아왔다. 맬갑시 사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좀 진하고 무거운 말로 ‘무담시’란 말도 쓴다. 이유 없이 누가 괴롭히면 ‘무담시’ 그런다며 징징대도 괜찮은 게, 무담시 그러면 상대가 지나친 거다. 비하여 맬갑시는 훨씬 가볍고 능청스러워.오래된 친구가 맬갑시 서울이 싫다면서 놀러 가도 되냐길래 그러라 했다. 폭서 더위에 서울에 며칠이라도 있어 보면 그 마음을 얼추 헤아리고도 남지. 진작 가방을 싸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출발했다는 말이 없어 전화했더니 싸던 가방을 다시 풀었다고 한다. 자기 아픔만 생각하고 남 아픔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미안하대. 아픔이란 스며들고 전이가 돼. 아픈 이야길 계속 듣다 보면 맬갑시 나도 덩달아 아프다. 암만 허물없는 사이라도 밝고 건강할 때 봐야지 안 그러면 ...

    2025.07.0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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