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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과 수도승
예일대를 나와야 출세를 하는가 봐. 예일대란 그 예일대가 아니라 ‘예전’에 하던 ‘일’을 ‘대대’로 이어가는 출신 말이다. 진짜배기 예일대 졸업생도 입맛에 맞은 직업 구하기가 보통 일 아니지. 또 하버드대를 졸업해서 최근에 행복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된 그 친구 말고는 못 봤다.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스님도 하버드 출신인데 능력이 되지만 승용차 하나 맘대로 못 타. 서울에 사는 스님이나 천주교 수사님을 가리켜 수도에 산대서 수도승 수도자라 부른단다. 산골이나 바닷가에 사는 분들보다 매연을 좀 마셔야 하는 거 빼고는 형편이 대체로 나아. 사람 많은 곳에 맛난 빵이 있고, 외롭거나 우울할 틈도 없지. 성직자도 사람이라서 고립되면 우울증을 앓게 돼. 호주에 친구 만나러 갔을 때 들었는데, 코알라는 장장 하루 20시간을 잠을 자는데, 사회생활 겸 동료와 대화는 딱 20분 정도. 잠순이 잠꾸러기 코알라는 평생 밥그릇 유칼립투스 한 그루면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다. 반대로 기린은... -
국룰
삼겹살 말고 오겹살. 우리들 몸에도 있다. 나잇살이라 불리는 뱃살이 생기면 잘 안 빠져. 그렇다고 비만하지는 않지만 경각심에서 그렇다는 거다. 지실마을 사는 누이가 고기를 구워준다고 해서 친구들이랑 방문. 요들린(스위스 민요 요들을 부르는 여성)인 누이의 노래를 들으며 나는 주로 토끼풀 상추를 위주로 저녁 만찬. 얼짱이나 몸짱은 틀렸고 맘짱이면 족하다 하면서들 오겹살 푹푹 찌는 소릴 외면하는 시간. 인생은 함께 먹고 노래하며 웃을 때가 가장 행복해라. 그래도 꼭 식사 자리에서 살 떨리게 살 이야길 꺼내는 이가 한 명씩 있다. 잘 먹고 놀던 사람 우울하게 겁박하고 면박 주는 안기부 형사님인가.지금은 국정원 그러니까 과거엔 안기부에 맹구가 끌려갔다. 무섭게 생긴 형사가 맹구를 쏘아보더니 “왜, 기분 나빠?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어~.” 맹구가 눈을 내리깔며 대답하길 “안 기분 나빠요. 안 기분 나쁘다니까요.” “뭐라고? 안기부가 나쁘다고?” 그래서 죽도록 두들겨 맞았다는... -
나이롱환자
어디서 강연을 하는데 한 젊은이가 “체중조절 좀 하고 오께요” 한다. 알아듣지 못해 무슨 소리냐 물으니 화장실 가보겠단 소리래. 나이가 먹은 것도 서러운데 위트 있는 말을 꿀꺽 알아먹지 못하고 감도 매우 물러졌다. 어르신들이 인생의 후회를 보통 3가지 들던데, 좀 더 참을 걸 버럭 화부터 낸 점, 좀 더 베풀 걸 옹졸했던 심보, 좀 더 즐길 걸 일벌레로 지나온 세월이 그것이다. 여기에 보탤 게 수도 없이 많은데, 공부할 때 할 걸 기회를 놓친 일, 유머를 장착하여 웃고 살 걸 마냥 진지충, 고약한 성질머리와 안하무인으로 악명을 떨치는 자들이 장수도 하니 적어도 이 땅은 하느님이 부재한 요지경 세상이렷다.둘러보니 우리 동네 여러 곳 난데없이 펜션이라 써 붙인 건물들이 보인다. 펜션(Pension)이란 말의 어원은 은퇴 후 받는 ‘연금’이라덩만. 유럽의 변두리 산골짝 노인 중에 제집을 고쳐 민박사업을 시작. 며칠 묵으러 온 손님과 말동무를 삼으며 여생을 보내는 방법이 펜션... -
작은 불상
부처님오신날 축하 현수막을 내건다거나 연등을 하나쯤 밝힌 교회당이 있다. 과거 내가 시골 교회에 목사로 부임해 주변 절집 스님들과 친하게 지낸 일들, 낯선 풍경이라 사탄 연탄 번개탄 소리를 얻어들었다. 세상살이 눈으로는 절집이나 교회나 동종 업계이니 피차간 잘되면 좋은 일. 목사가 관대하고 그릇이 크면 신자들 말수가 고와지고 표정도 편안해진다. 적개심을 키웠다간 결국 그 칼끝이 제 몸에 쓱 박히지. 목사가 주의할 3가지가 있는데, 1. 설교를 길게 하지 말 것, 2. 비싼 시계를 차지 말 것, 3. 성경 외에는 아는 체하지 말 것. 한 번은 목사가 설교를 곱절로 길게 하고 마치면서 “교회 뒷벽에 시계가 없어 설교가 길었네요. 암튼 은혜받으신 줄 믿습니다!” 예배 뒤에 ‘물주’ 장로님께서 한마디, “뒷벽에 달력은 그나마 걸어둬서 다행입죠. 날 새는 줄 알았습니다. 내년부턴 다른 교회에서 아주 맘껏 길게 설교하십시요~.” 아무리 좋은 소리도 석자리 반이라 했다. ... -
뜨내기
요샌 잘 안 쓰는 외래어 ‘마도로스’, 바다에서 배를 모는 선원이나 선장을 가리키는 말. 이난영의 노래 ‘목포의 눈물’은 기본이고 그녀가 부른 ‘마도로스의 꿈’도 애정한다. 노래풍이 구닥다리더라도 구수하고 재밌어. “뜨내기 몸이라서 꿈도 뜨내기. 비 나리는 포구에 밤도 깊어서 창 너머 흘러드는 휘파람 소리가 야속히도 내 꿈은 흘러갔구나. 뜨내기 몸이라서 님도 뜨내기. 삼베적삼 재롱에 노니는 님 산 아래 다시는 떠날 건가. 굳은 맹세도 한 방울의 물거품 부질없었네…”엊그젠 뜨내기로 살짝 인천에 다녀왔다. 세월호가 그 밤 출발한 안타까운 항구도 가보고, 친구들과 입술에 춘장을 바르면서 명물이라는 ‘짜장면’도 비벼 먹었지. 바닷가에 살았던 나도 한때는 마도로스 꿈을 꿨다. 그 꿈은 갈매기가 채갔고, 나는 불 꺼진 항구를 바라보며 멍~때리기. 뜨내기손님답게 나는 쓴 커피를 마셨다. 마도로스라면 파이프 담배를 물고 저 멀리 바다를 향해 손짓했겠지. 가수 남일해가 부른 이... -
가랑비야!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가 촉촉해. 노랫말 속 가랑비를 아는가. 가수 양희은의 대표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김민기 곡 말고 김정신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도 한때 방송 금지곡.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단 말인가. 가사가 부정적이고 퇴폐적이다.” 당시 금지 사유란다. 그저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였는데. “가랑비야! 내 얼굴을 거세게 때려다오. 슬픈 내 눈물이 감춰질 수 있도록…” 쉬운 기타 코드 때문에, 통기타를 배우는 초짜들이 애창했던 노래. 봄비 내리고 이 노랠 부르다 보면 ‘아침이슬’까지 철야 밤샘을 하게 될지도 몰라. 양희은은 재수생 시절부터 명동의 YWCA ‘청개구리홀’을 들락거렸다. 그곳에선 청년들의 발표회 공연이 열렸는데, 김민기와 양희은 둘도 처음 이곳에서 일면식을 텄단다. 청개구리 공연은 수십년이 지나 김의철 등에 의해 재개되었는데, 나도 가수 김두수형의 청개구리 공연에 무려 찬조 출연을 했다. 명동의 청개구리를 떠난 청년 김민... -
철부지
목사 시절을 돌아보면 ‘완죤’ 철부지 시절. 한번은 할매 집사님이 호박 구덩이 좀 파달래서 알았소잉 했는데, 좀이 아니라 엄청 많이 파라는 지시. 이걸 다 수확해서 뭐 할 거냐 했더니 호박죽 쑤어 교인들이랑 나눠 먹자고. 욕심이 많은 분이라서 한 덩어리나 주시면 생큐지. “그만 팝시다. 아따메 쓰트레스 쌓이요잉” “목사님! 시방 수가 틀리다고라우? ‘수 틀리믄’ 수를 바꿔야재. 거쪽으로 말고 요쪽으로 파시요잉.” 집에서 책이나 읽고픈 사람을 불러다가 잘 부려먹고, 할매는 간만에 눈물 대신 미소를 짓더니 밭도랑을 춤추며 내려갔다. 당시 종종 흥얼거렸던 노래 ‘모모’엔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환상가 모모’가 나오는데, 현실은 ‘말라비틀어진 눈물자국’ 할매들과 마주한 삶이었다. 노래 ‘모모’는 전일방송 대학가요제에서 상도 탔지. 원곡 가사는 “모모는 쓰레기, 모모는 위조지폐, 모모는 말라비틀어진 눈물자국이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 -
춘곤증
대구사람들은 게으름뱅이를 ‘겔배이’라 한다지. 그곳 변두리가 고향인 후배를 엄마가 ‘겔배이 지지바’라 부른대. 잠꾸러기는 ‘자부래비’, 연결하면 ‘겔배이 자부래비 지지바’. 엄마랑 둘이 사는 그녀가 노상 얻어 듣는 소리란다. ‘오라바이~’ 엥기며 애교를 뿌리면 쬐끔 귀엽다. 수치는 잠깐이요 이익은 영원해. 땅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심정으로, 최근 쪽팔리는 일을 계획했다가 그냥 그만뒀다. 그래 밥은 내가 사고 커피는 그 친구가 사는 것으로 쫑파티. 이후 춘곤증을 견뎌보려 커피에 샷을 추가. 봄날 점심을 먹고 나면 춘곤증이 덮친다. 하품이 연방 쏟아져. 고향 마을에선 ‘부슴방’이라 아랫목을 그리 불렀다. 한낮이라도 까닥까닥 졸면 엄마가 “아야~ 부슴방에서 눈 붙이고 오니라” 그러셨다. 벚꽃 만개 후에 봄눈이 펄펄 날리고, 아니 날리면, 나이를 잊고 입을 죽 하니 내밀면서 잠시 꽃눈 맛을 본다. 행동거지마다 당최 철이 덜 들었다. 요새 올라다니는 대학가 산자락엔 진짜... -
짝사랑
“나 봄 타나 봐요.” 봄앓이하는 분들이 많아. 외롭디야~. 뭔 똥차 앞에서 방귀 뀌는 소리. 난 살짝 모자란 반거충이(야무지지 못한 사람) 같아. 성격조차 모나고 까슬까슬해. 주머니 사정이 언제는 좋았더냐. 눈먼 돈 생기면 책과 음반을 친구 삼아. 길을 잃으면 운명처럼 왼쪽으로 가. 평생 외로운 좌파 아웃사이더. 슬픈 노래에 울면서 그나마 잔잔하게 살 수 있었던지도 몰라. 분주한 ‘인싸’나 ‘그럴싸’보다 친구가 적으면 또 어때. 녹색 사막 골프장은 근처에도 안 가. 지난 봄날 앞뜰 청보리밭이 내 눈엔 컨트리클럽. 마당에 공을 던지면 우리 개들이 다 찾아서 물어와. 도무지 어떤 게임도 할 수가 없어. 스스로 왕따 되어 혼자서 휴일을 보내기도 해. 누군가 꼭 봐줬으면 하고 피는 봄꽃이 핀다. 외롭게 핀 꽃들에게 반가운 친구가 되어준다. 외로움이란 작별이나 결별, 또는 ‘모쏠’ 상태에서 나오는 슬픔일진대, 그걸 이겨낼 방도를 배운 바가 없지들. 이스라엘판 삼국지 성경에도 ... -
부럽지가 않어~
장맛비인가 꾸물꾸물하덩만 반짝 볕이 나더니 벚꽃이 만개했다. 장독대 장이 떨어졌나 매우 심심하고 시시하던 차였어. 맘이 설레고 쿵쾅거리네. 벚꽃이 피면 인생들 얼굴도 따라서 핀다. 벚꽃 피는 날 벗들 모여 노는 걸 ‘벚꽃놀이’라 하지. 꽃놀이를 누가 마다하리오. 엊그젠 섬진강 모래톱 제월섬에 들러 만보기를 켰다. 2000보까지 살짝 보다가 말았어. 요새 그 숫자가 때아닌 밀레니엄 소동만 같아라. 2000년 즈음, 휴거다 종말이다 난리굿을 펼치던 자들. ‘휴가’도 ‘연말’도 없는 대대손손 노동자들이 무슨 ‘휴거’람. 인간들아~ 휴가부터 가고 보자. 한 중딩이 부모 따라 교회에 갔는데, 목사에게 묻길. “목사님은 숫자를 몇까지 세보셨어요?” “그런 걸 왜 센다니?” “제가 오늘 2000개까지 세다 말았걸랑요. 도대체 설교가 언제 끝날지 세다가 포기했걸랑요.” 목사의 딱딱하고 지루한 설교보다 봄꽃 피는 게 반갑고 감동적이야. 벚꽃이 피면 벗님들 그리워라. 이팔청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