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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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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의진의 시골편지]살인미수 가루
    살인미수 가루

    어릴 적 우리 집 목사관엔 동네에선 ‘처음’ 갖춘 살림살이들이 여럿 있었다. 교회 손님이 많다 보니 얼음이 얼리는 큼지막한 냉장고가 있었다. 교회에 쓸 피아노도 처음, 어깨너머 피아노를 치는 누이들을 부러워했는데 가끔 내 멋대로 삑사리 연주회, 듣고 있던 참새들이 가소롭다면서 짹짹댔다. 전화기도 동네에선 처음 놓았고, 컬러텔레비전도 아마 몇 번째였던 거 같아. 집에서 극장 구경을 하게 되다니, 참말 별세계 신세계였다.얼음을 꺼내 먹을 수 있는 냉장고는 여름만 되면 엄지 척, 짱이었다. 돈 내고 사 먹던 아이스크림을 직접 냉동실을 이용해 ‘만들어’ 먹을 수 있다니. 미숫가루를 설탕물에 풀어설랑 적당한 용기에 넣어 냉동실에 얼림. 식인종은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불량식품’이라고 부른다덩만 집에서 만들어 먹는 아이스크림은 불량식품 아님. 미숫가루 얼음을 볼이 빵빵해지게 입에 넣고 굴리면서 여름을 즐겼다. 살인적인 뙤약볕에도, 그나마 살인미수 미숫가루만 있으면 죽지 않고 살아...

    2025.07.02 22:06

  • [임의진의 시골편지]홍콩 극장
    홍콩 극장

    ‘안득기’란 사람 이야기처럼, “이름이 뭐요?” 물으면 “안득기요”, 아니 “이름이 뭐란 말이요?” “안득기란 말이요.” 그처럼 아무리 불러도 안 듣기(들리)고 대답 없는 사람이 된 홍콩 영화배우 장국영. 그가 죽고 홍콩 영화도 뒷전으로 밀린 거 같아. 요새 아이들은 홍콩 영화를 잘 모르덩만. 지난주 영화음악 강의를 할 게 있어 홍콩 영화들을 다시 봤다. 애정하는 영화 <첨밀밀> <화양연화> <중경삼림>. 배우 이소룡, 성룡, 주윤발, 장국영, 양조위, 양자경, 장만옥… 기억 저편 아스라한 이름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다른 일로 통화할 일이 있어 이설야 시인과 얘기하다 시집을 잘 읽었다고 말했는데, 그분 시 가운데 ‘물고기 극장’이라고 있지. 동인천 뒷골목 어디나 수협 창고 근처에 있을 것 같은 극장, 물고기 극장. 그 곁에 어디 있다고 하는 심지음악감상실. 사내에게 뺨을 맞은 여자의 울음소리에 다리가 후들거리는 골목 끝에,...

    2025.06.25 21:26

  • [임의진의 시골편지]잠보 잠보
    잠보 잠보

    장맛비가 온다니 지붕에 올라가 빗물받이 낙엽들 털어내고, 큰비가 내릴 때마다 바닥이 질겅질겅한 포도밭 고랑을 삽으로 단도리. 몸을 부렸으니 노곤하여 술술 잠이 잘 올 텐데, 요새 밤마다 ‘꿈 동무, 잠 손님’이 쉽게 오지를 않는다. 생각만 많고 말이야. 희극배우 W C 필즈가 말하길 “최선의 불면증 치료는 오로지 잠을 많이 자는 것뿐이다”. 정확한 정답이다만, 혈압을 확 솟구치게 만드는 말이기도 해. 야식을 즐기진 않는데, 배가 부르면 포만감에 잠이 올지도 모른다고 누가 그래서 라면을 끓여 보기도 했다. 속만 부글부글하고 아침에 얼굴은 호빵맨처럼 부어있덩만. ‘신라 면세점’ 말고 ‘신라면 세 점’ 고작 그거 탐했다고 죗값이 너무도 크고 무겁더라.잠을 많이 자면 ‘잠보’라고 놀린다. 베개에 머리만 댔다 하면 코부터 골기 시작하는 인간들을 보면 참 대단해 보인다. 꿈속 세상에서 잘 지내는 잠보가 되고 싶어. 아프리카 케냐의 스와힐리어권에선 잠보가 한글과는 전...

    2025.06.18 21:26

  • [임의진의 시골편지]소설 클럽
    소설 클럽

    인생이 통째 어그러져 산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 명산에 구경 가자, 가서 맛난 거 묵고 오자’ 꼬드김. 등산을 목적으로 만든 모임이 있다. 요상한 산악회 같은 건 아니고. 하나둘 뼈마디가 눌리고 쑤셔대서 이젠 해체 국면이야. 현주소지가 지목이 산으로 되어 있다. 멧산 말이야. 멧돼지도 살고 멧비둘기도 살아. 애당초 산에 사는데, 어디 다른 산엘 굳이 가고프겠는가. 결국 끌려가면 배낭에 기필코 시집이라도 넣어 간다. 초면이라도 물어보는 질문이 있어. “요즘 무슨 책 읽어요?” 대충 둘러대는 경우도 있지만 다행히 내 인연들은 우수한 편에 든다. 좋아하는 작가가 추천하는 책이라면 꼭 구입해서 정독한다.이번 여름휴가는 어디로 갈까. 지중해에 가면 좋겠지만 결국 ‘자중해’. 자중 모드로 자중하면서 지내야지. 좋아하는 나폴리 민요라든가 아니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영화 음반을 꺼내 들으면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 들고파. 소셜 클럽이 아니라 소설 클럽이야...

    2025.06.11 20:58

  • [임의진의 시골편지]천사와 보살
    천사와 보살

    교회엔 천사가 있고 절집엔 보살이 있다. 마을에도 천사가 살고 보살이 산다. 보통 부르기를 “저 아재는 천사다, 저 아짐씨는 보살이다”. 뭐 맛난 거 나눠 먹으면서 서로들 칭찬해. 산골짜기 절에 다니다가 관절이 아프면 가까운 천주교 공소나 교회로 종교를 갈아탄다. 보살이 집사나 스텔라, 마리아 자매가 되고 날개도 없으면서 천사가 되기도 해. 천사 하면 당신도 날개를 떠올릴 텐데, 교회에 가면 집사다 뭐다 벼슬을 주면서 날개를 보통 달아준다. 하지만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듯 어디나 인간이 모이면 묘한 갈등이 생겨. 잘되라 쭉쭉 밀어주기도 하지만 벼랑에서 밀기도 하지. 교회를 그만두고 다시 절집에 돌아가기도 한다. 배신 한번 때렸다고 부처님이 그렇게 야박한 분은 아니셔. 반대로 절에 갔다가 다시 교회에 와도 예수님이 뭐 배신을 밥 먹듯이 한 베드로를 수제자로 두신 분인지라 어서 옵쇼~다.어촌은 어부 베드로의 영향권인지라 교회 신자들이 많다. 산촌엔 절집이 있다 보니 보살...

    2025.06.04 20:12

  • [임의진의 시골편지]오래된 카페
    오래된 카페

    오겹살은 두꺼운데, 뒷주머니 지갑도 덩달아 두꺼워야 먹을 수 있어. 삼겹살이면 감지덕지. 비건 식구들도 한자리에 낑겨 열무와 버섯만 구워 먹어도 배가 부르지. 요새 누가 유흥업소에 새 메뉴로 떴다며 우기는 그놈의 삼겹살. 낡은 카페에 모여 자글자글 노릇노릇 삼겹살을 구웠어.록밴드 ‘이글스’가 불러 히트한 ‘새드 카페(Sad Cafe)’. 호텔 캘리포니아만큼 인기를 끈 노래를 한 곡 청해 듣기도 하면서 말이지. “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창밖은 어두워지네. 길에 찍힌 발자욱을 빗물이 씻어가네. 가로등불 켜지고 지난날이 생각나. 낡은 카페에서 우리들 함께했던 시간을 추억하네… 사랑과 자유를 얘기하며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 고작 낡은 카페의 외로운 군중일 뿐이었지만.”시골에선 카페의 용도가 날씨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날은 주인장이 하루 재끼고 놀고파, 가까운 지인들을 불러다가 막걸리 안주로 부추전이나 파전을 지진다. 처마 밑에서 삼겹살을 굽기도 하고 군불이 아까...

    2025.05.28 20:56

  • [임의진의 시골편지]발버둥
    발버둥

    억척이란 말엔 다분히 오기와 억지가 담겨 있을 테지만,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한 인생의 수고와 고생이 설핏 느껴지기도 해. 먹고살기 힘든, 어려운 시절에 누구나 발버둥을 치면서 살아가지. 철학만큼 숭고한 ‘먹고사니즘’… 숨이 턱밑에 훅훅 걸려도 야물게 이를 문 당신, 꼭 껴안아 주고파.지난 바람 부는 날, 나비 한 마리의 열심인 날갯짓을 보았어. 고약한 마파람을 뚫고 어기영차 날던 나비가 꽃에 다다랐을 때 나비는 더욱 빛나고 고운 날개빛을 띠더라. 낮에도 별은 뜨는데 보지 못하는 것뿐. 나비를 무척 좋아했던 ‘울 오마니’ 생각을 했어. 하늘 보금자리 찾아간 엄마.김원일의 소설 <강>에 보면 엄마가 숨을 거둔 밤에 뜨는 별, 오마니별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는 아바지별, 하나는 오마니별. “천지강산에 우리 둘만 남기구 아바지가 오마니 데빌구 하늘에 가서 별루 떴어. 저기, 저기 오마니별 보여?” 발버둥치면서 살지만 고개를 들면 계시는 아바지별, 오마니별....

    2025.05.21 20:56

  • [임의진의 시골편지]그래잉 저래잉
    그래잉 저래잉

    담 넝쿨 하얀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학교 댕겨올 아이들도 없는데 종일 골목에서 피어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러고 보니 다른 학교가 있긴 해. 노인대학이라던다. 이런 우스개 얘길 들었지. 노인대학에서 ‘영어회화 기초반’에 입학한 할배가 집에 돌아와 할멈을 콕 찌르며 저녁 인사 “우리 할멈~ 꾹 이쁘닝.” 그러니까 할매가 “먼 주책이요잉. 쭈글탱이가 머가 이쁘다고 놀리요잉잉~” 등짝 스매싱. 아침에 할배가 일어나서 “국 모닝~” 아침 인사. 할매 왈 “국이 머냐고라? 된장국이재 머여. 생일도 아닌디 미역국 끓이까잉?”닝인지 잉인지~ 이쪽 동네에선 잉잉 잉 자로 끝나는 말은? ‘웰다잉’. 죽는 그날까지 뭔 말을 해도 따라붙는 그래잉 저래잉, 잉하고 잉잉. 밥 묵었냐잉, 묵었다잉. 밭 갈았냐잉, 갈았다잉. 말끝마다 달리는 잉은 신분이나 연세가 높다고 생각되는 양반에겐 사용하지 않아. 격식 언어가 아니고 생활 언어랄까. ‘만만한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매일 입에 달고 사는 ‘잉...

    2025.05.14 20:18

  • [임의진의 시골편지]고양이 스님
    고양이 스님

    가끔 산책하러 가는 산길, 절집 외곽에 스님이 돌보는 고양이가 한 마리 살고 있다. 고양이는 경계를 잔뜩 하고서 길손인 나를 쳐다보곤 하는데, 요즘은 다가가도 ‘하악질’을 하지 않는다. 인기 드라마의 ‘학씨’처럼 ‘하악질’ 한번 해보지 못할, 만만한 상대란 걸 고양이도 안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상상력 사전>에 보니, 이 말이 맞나 틀리나 모르겠지만, “한국에 고양이가 처음 들어온 것은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의 일이다. 경전을 쥐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고양이를 함께 들여왔다고 한다”. 절에 사는 쥐와 절에 사는 고양이의 전쟁을 상상해보게 된다.절집 수행승들은 쥐를 노려보는 고양이처럼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궁구하며 공부한다. 때가 되면 그 누구보다 잽싸게 움직이지 평소 어칠비칠 부산하게 움직이고, 무슨 행위를 가져야 ‘있어 보이는’ 다른 집안들과 사뭇 다른 점이요, 귀한 모습이다. 행사가 적은 절집일수록 믿음이 간다. 공부할 시간이 바쁜 것일 테...

    2025.05.07 20:27

  • [임의진의 시골편지]엄마 없는 하늘 아래
    엄마 없는 하늘 아래

    대지에 가득 내린 초록과 함께 이른 초여름 기운까지 가득해.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곧 어린이날, 이어지는 어버이날. 어린이를 떼고 어버이가 되었는데, 그사이 어버이를 잃고 말았네. 부모 잃은 사람들은 카네이션꽃만 봐도 슬픔과 아쉬움에 젖게 돼. 고아 신세, 차라리 어버이날이 없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흑흑.트로트 세계에 최진희의 ‘저음 꺾기’는 누가 있어 이를 능가할까. 집에 있는 ‘최진희 골든 15’ 음반을 꺼낼 때는 엄마 생각이 간절할 때야. “마음 하나 편할 때는 가끔씩은 잊었다가 괴롭고 서러울 때 생각나는 어머님. 지난여름 개울가에서 어머님을 등에 업고 징검다리 건널 때 너무나도 가벼워서 서러웠던 내 마음 아직도 나는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젖줄 따라 자란 키는 당신보다 크지만 지금도 내 마음엔 그 팔베개 그립니다. 내 팔베개 의지하신 야윈 얼굴에 야속하게 흘러버린 그 세월이 무정해 어머님이 아실까 봐 소리없이 울었네…”오월 가정의달에...

    2025.04.3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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