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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 [임의진의 시골편지]가랑비야!
    가랑비야!

    이슬비, 보슬비, 가랑비가 촉촉해. 노랫말 속 가랑비를 아는가. 가수 양희은의 대표곡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김민기 곡 말고 김정신이 작사·작곡한 이 노래도 한때 방송 금지곡. “왜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단 말인가. 가사가 부정적이고 퇴폐적이다.” 당시 금지 사유란다. 그저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노래였는데. “가랑비야! 내 얼굴을 거세게 때려다오. 슬픈 내 눈물이 감춰질 수 있도록…” 쉬운 기타 코드 때문에, 통기타를 배우는 초짜들이 애창했던 노래. 봄비 내리고 이 노랠 부르다 보면 ‘아침이슬’까지 철야 밤샘을 하게 될지도 몰라. 양희은은 재수생 시절부터 명동의 YWCA ‘청개구리홀’을 들락거렸다. 그곳에선 청년들의 발표회 공연이 열렸는데, 김민기와 양희은 둘도 처음 이곳에서 일면식을 텄단다. 청개구리 공연은 수십년이 지나 김의철 등에 의해 재개되었는데, 나도 가수 김두수형의 청개구리 공연에 무려 찬조 출연을 했다. 명동의 청개구리를 떠난 청년 김민...

    2024.05.01 21:37

  • [임의진의 시골편지]철부지
    철부지

    목사 시절을 돌아보면 ‘완죤’ 철부지 시절. 한번은 할매 집사님이 호박 구덩이 좀 파달래서 알았소잉 했는데, 좀이 아니라 엄청 많이 파라는 지시. 이걸 다 수확해서 뭐 할 거냐 했더니 호박죽 쑤어 교인들이랑 나눠 먹자고. 욕심이 많은 분이라서 한 덩어리나 주시면 생큐지. “그만 팝시다. 아따메 쓰트레스 쌓이요잉” “목사님! 시방 수가 틀리다고라우? ‘수 틀리믄’ 수를 바꿔야재. 거쪽으로 말고 요쪽으로 파시요잉.” 집에서 책이나 읽고픈 사람을 불러다가 잘 부려먹고, 할매는 간만에 눈물 대신 미소를 짓더니 밭도랑을 춤추며 내려갔다. 당시 종종 흥얼거렸던 노래 ‘모모’엔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환상가 모모’가 나오는데, 현실은 ‘말라비틀어진 눈물자국’ 할매들과 마주한 삶이었다. 노래 ‘모모’는 전일방송 대학가요제에서 상도 탔지. 원곡 가사는 “모모는 쓰레기, 모모는 위조지폐, 모모는 말라비틀어진 눈물자국이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

    2024.04.24 20:53

  • [임의진의 시골편지]춘곤증
    춘곤증

    대구사람들은 게으름뱅이를 ‘겔배이’라 한다지. 그곳 변두리가 고향인 후배를 엄마가 ‘겔배이 지지바’라 부른대. 잠꾸러기는 ‘자부래비’, 연결하면 ‘겔배이 자부래비 지지바’. 엄마랑 둘이 사는 그녀가 노상 얻어 듣는 소리란다. ‘오라바이~’ 엥기며 애교를 뿌리면 쬐끔 귀엽다. 수치는 잠깐이요 이익은 영원해. 땅에 떨어진 동전을 줍는 심정으로, 최근 쪽팔리는 일을 계획했다가 그냥 그만뒀다. 그래 밥은 내가 사고 커피는 그 친구가 사는 것으로 쫑파티. 이후 춘곤증을 견뎌보려 커피에 샷을 추가. 봄날 점심을 먹고 나면 춘곤증이 덮친다. 하품이 연방 쏟아져. 고향 마을에선 ‘부슴방’이라 아랫목을 그리 불렀다. 한낮이라도 까닥까닥 졸면 엄마가 “아야~ 부슴방에서 눈 붙이고 오니라” 그러셨다. 벚꽃 만개 후에 봄눈이 펄펄 날리고, 아니 날리면, 나이를 잊고 입을 죽 하니 내밀면서 잠시 꽃눈 맛을 본다. 행동거지마다 당최 철이 덜 들었다. 요새 올라다니는 대학가 산자락엔 진짜...

    2024.04.17 21:59

  • [임의진의 시골편지]짝사랑
    짝사랑

    “나 봄 타나 봐요.” 봄앓이하는 분들이 많아. 외롭디야~. 뭔 똥차 앞에서 방귀 뀌는 소리. 난 살짝 모자란 반거충이(야무지지 못한 사람) 같아. 성격조차 모나고 까슬까슬해. 주머니 사정이 언제는 좋았더냐. 눈먼 돈 생기면 책과 음반을 친구 삼아. 길을 잃으면 운명처럼 왼쪽으로 가. 평생 외로운 좌파 아웃사이더. 슬픈 노래에 울면서 그나마 잔잔하게 살 수 있었던지도 몰라. 분주한 ‘인싸’나 ‘그럴싸’보다 친구가 적으면 또 어때. 녹색 사막 골프장은 근처에도 안 가. 지난 봄날 앞뜰 청보리밭이 내 눈엔 컨트리클럽. 마당에 공을 던지면 우리 개들이 다 찾아서 물어와. 도무지 어떤 게임도 할 수가 없어. 스스로 왕따 되어 혼자서 휴일을 보내기도 해. 누군가 꼭 봐줬으면 하고 피는 봄꽃이 핀다. 외롭게 핀 꽃들에게 반가운 친구가 되어준다. 외로움이란 작별이나 결별, 또는 ‘모쏠’ 상태에서 나오는 슬픔일진대, 그걸 이겨낼 방도를 배운 바가 없지들. 이스라엘판 삼국지 성경에도 ...

    2024.04.10 22:17

  • [임의진의 시골편지]부럽지가 않어~
    부럽지가 않어~

    장맛비인가 꾸물꾸물하덩만 반짝 볕이 나더니 벚꽃이 만개했다. 장독대 장이 떨어졌나 매우 심심하고 시시하던 차였어. 맘이 설레고 쿵쾅거리네. 벚꽃이 피면 인생들 얼굴도 따라서 핀다. 벚꽃 피는 날 벗들 모여 노는 걸 ‘벚꽃놀이’라 하지. 꽃놀이를 누가 마다하리오. 엊그젠 섬진강 모래톱 제월섬에 들러 만보기를 켰다. 2000보까지 살짝 보다가 말았어. 요새 그 숫자가 때아닌 밀레니엄 소동만 같아라. 2000년 즈음, 휴거다 종말이다 난리굿을 펼치던 자들. ‘휴가’도 ‘연말’도 없는 대대손손 노동자들이 무슨 ‘휴거’람. 인간들아~ 휴가부터 가고 보자. 한 중딩이 부모 따라 교회에 갔는데, 목사에게 묻길. “목사님은 숫자를 몇까지 세보셨어요?” “그런 걸 왜 센다니?” “제가 오늘 2000개까지 세다 말았걸랑요. 도대체 설교가 언제 끝날지 세다가 포기했걸랑요.” 목사의 딱딱하고 지루한 설교보다 봄꽃 피는 게 반갑고 감동적이야. 벚꽃이 피면 벗님들 그리워라. 이팔청춘이...

    2024.04.03 20:31

  • [임의진의 시골편지]파김치
    파김치

    음치라고 부끄럽거나 괴로워할 일이 아니야. 여러 장점이 있는데, 노래방 출입을 즐기지 않으니 일단 돈이 굳어. 그 돈으로 쇠고기 사 먹고 잘 살아. 고성방가를 시도할 일도 없으니 경찰서에 끌려갈 일도 없어. 또 싸움질 장소에서 실렁실렁 콧노래를 부르다가 괜히 얻어터질 일도 없다. 모임 자리에 노래를 한 자락 해보라며 청하질 않을 테니 곤란을 겪을 일도 없고. 또 있는데, 엥, 까먹었다. 아무튼 음치도 있어야 가수도 있는 법. 국회의원 한번 해보겠다며 못 부르는 노래를 눈의 흰자를 내보이면서까지 ‘무조건 무조건이야~’ 부르는 장면은 어이없고 재밌다. 음치도 물론 정계 진출에 하등 지장은 없다만 표는 좀 깎아 먹을 듯. 아재 개그의 시조이자 끝판왕은 역시 최불암 시리즈. 최불암 아저씨가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 합격은 딩동댕 댕~, 불합격은 땡~ 한 번 치면 되는데, 그보다 더 뼈아픈 땡이 바로 “파~”. 하찮고 어이없다는 투로 입을 벌린 채 “파~” 해야 재미가 배가된다....

    2024.03.27 22:12

  • [임의진의 시골편지]사랑의 계절
    사랑의 계절

    개굴개굴 개골개골~ 잠에서 깬 개구리들의 노래방 마을. 조팝나무 가지를 꺾어서 개구리를 잡아먹던 시절이 있었지. 소금구이 치킨이 없던 시절엔 소금구이 개구리가 요깃거리였다. 곡괭이를 이용해 개울 돌을 들추고 잠든 개구리를 잡기도 했어. 덤으로 가재도 슬쩍. 개구리가 양껏 안 보이면 애먼 가재로 불이 붙어 개구리 대신 가재잡이 놀이가 됐다.전라도에선 개구리를 개구락지, 개골태기, 개굴챙이. 경상도에선 까구리, 깨고리, 깨구래이. 제주도에선 골개비, 가굴래비. 한편 북녘에선 개구리가 ‘머굴머굴’ 우는 소리에 머가리, 머구리, 먹저기, 메꾸락지라 한대. 백두산 골짜기에선 백년 묵은 개구리가 천둥 우레처럼 크게 운대서 ‘머구레’라 한다덩만. 개구리들이 탱탱한 알 덩어리를 부려놓은 개울. 별사탕 같은 개구리 알. 머잖아 오뉴월 되면 성체들이 못물에 머물면서 국립합창단만큼 우렁차게 합창을 해대겠지. 이유 없이 어찌저찌하면 여기선 ‘맬겁시, 무담씨’란 말을 쓴다. ‘무단히’...

    2024.03.20 20:09

  • [임의진의 시골편지]쇠똥구리
    쇠똥구리

    말똥구리랑 쇠똥구리는 이웃사촌. 그중 말똥구리는 예민한 성질인가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항생제를 먹은 말들이 싼 똥을 굴렸다가 그만 변을 당한 모양. 한번은 몽골에서 말똥구리 200마리를 수입했다던데, 녀석들 안부가 궁금해. 한편 쇠똥구리는 어떻게든 버티는 중인가 봐.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덩만 참말 그러한가. 쇠똥구리는 똥을 둥그렇고 야무지게 뭉쳐 삐뚤빼뚤 밀고 간다. 덩어리가 약간 촉촉할 때 훨씬 잘 굴러가. 솜털이 가슬가슬한 참다래나 복숭아처럼 둥그런 똥덩어리를 발차기로 굴리는 걸 보면, 저는 힘들겠으나 엄청 귀여워. 한정반 리미티드 에디션이 아니라 ‘내 밑으로 오디션’ 자랑대회를 하는 듯 뽐내면서 어기영차. 지나가던 개 한 마리 멈칫. 개들 사이에서 공중화장실 격인 전봇대에 실례를 한 뒤 쇠똥구리를 쳐다보는데, 똥냄새에 컹컹 뒷걸음질. 똥을 굴리기를 참말 잘했지 안 그랬음 개에게 물릴 뻔. 쇠똥구리에게 학삐리(?)들이 시시포스의 신화를 들려주곤 하는데, ...

    2024.03.13 22:09

  • [임의진의 시골편지]새출발
    새출발

    미성을 가진 김동률의 노래 ‘출발’이 듣기 좋은 봄날.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아기 병아리떼처럼, 자~ 출발이다. 기지개를 켜고 뜨락에 나오면 나도 같이 출발이다. 하루는 맹구가 공부하기로 맘을 먹고 책을 꺼내 들었대. 친구가 맹구를 보더니만 “깜딱이야~ 너 시방 들고 있는 게 책? 니가 책을 본다고?” “응~ 나 이제 새출발이야~” 친구는 놀라서리 “살다살다 별일을 다 보네. 근데 책 내용이 뭐야?” 맹구가 갸우뚱하더니 “등장인물이 너무 많구먼. 숫자들도 헷갈리고. 끝까지 다 읽으면 이해가 되겠지 뭐.” 친구가 책을 빼앗아 표지를 펼치는 순간, 앗! 전화번호부다.요새 친구들은 전화번호부가 뭔지도 모르겠지. 그 두툼한 인생 소설책.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조르라니 적힌 그 누리끼리한 책. 적힌 이름들 어디서 무사히들 계시는지. 일 더하기 일은...

    2024.03.06 20:26

  • [임의진의 시골편지]춘삼월
    춘삼월

    정월대보름 그날 밤, 귀밝이술 나누고 달구경을 하려는데 먹구름의 훼방. 그래도 “귀 밝아라~ 눈 밝아라~” 덕담을 나눴지. 노씨 문중에 가장 술을 잘 잡수시는 분 성함은 노상술. 어려서 상민이, 상열이, 상국이, 그런 이름들 속에 상술이도 있었지. 영국은 막걸리트 대춰, 프랑스는 잔 자크 부으숑, 일본은 도도 마사부네, 술 사주는 친구는 도느로 똥다까. 귀가 밝아지는 이름들이오. ‘이미자, 강수향’의 듀엣곡 ‘춘삼월’ 찾아 듣고 앉으니, 유치찬란 내레이션이 배를 쥐게 해. “가자~ 양떼가 뛰노는 벌판을 넘어 또 다른 행복의 목장을 찾아. 그대와 둘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 가자. 임과 나의 오붓한 행복의 동산으로 가자, 가즈아~. 춘삼월 꽃이 피면 봄놀이가 그립고 구시월 낙엽 지면 단풍놀이 그립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가는 봄에 오는 봄에 내 청춘이 늙어가도 무정타 한탄 말고 얼씨구절씨구 놀잔다~” 남성가수 강수향은 ‘호반의 벤치’를 비롯해 듀엣곡...

    2024.02.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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