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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김치
음치라고 부끄럽거나 괴로워할 일이 아니야. 여러 장점이 있는데, 노래방 출입을 즐기지 않으니 일단 돈이 굳어. 그 돈으로 쇠고기 사 먹고 잘 살아. 고성방가를 시도할 일도 없으니 경찰서에 끌려갈 일도 없어. 또 싸움질 장소에서 실렁실렁 콧노래를 부르다가 괜히 얻어터질 일도 없다. 모임 자리에 노래를 한 자락 해보라며 청하질 않을 테니 곤란을 겪을 일도 없고. 또 있는데, 엥, 까먹었다. 아무튼 음치도 있어야 가수도 있는 법. 국회의원 한번 해보겠다며 못 부르는 노래를 눈의 흰자를 내보이면서까지 ‘무조건 무조건이야~’ 부르는 장면은 어이없고 재밌다. 음치도 물론 정계 진출에 하등 지장은 없다만 표는 좀 깎아 먹을 듯. 아재 개그의 시조이자 끝판왕은 역시 최불암 시리즈. 최불암 아저씨가 전국노래자랑 심사위원. 합격은 딩동댕 댕~, 불합격은 땡~ 한 번 치면 되는데, 그보다 더 뼈아픈 땡이 바로 “파~”. 하찮고 어이없다는 투로 입을 벌린 채 “파~” 해야 재미가 배가된다.... -
사랑의 계절
개굴개굴 개골개골~ 잠에서 깬 개구리들의 노래방 마을. 조팝나무 가지를 꺾어서 개구리를 잡아먹던 시절이 있었지. 소금구이 치킨이 없던 시절엔 소금구이 개구리가 요깃거리였다. 곡괭이를 이용해 개울 돌을 들추고 잠든 개구리를 잡기도 했어. 덤으로 가재도 슬쩍. 개구리가 양껏 안 보이면 애먼 가재로 불이 붙어 개구리 대신 가재잡이 놀이가 됐다.전라도에선 개구리를 개구락지, 개골태기, 개굴챙이. 경상도에선 까구리, 깨고리, 깨구래이. 제주도에선 골개비, 가굴래비. 한편 북녘에선 개구리가 ‘머굴머굴’ 우는 소리에 머가리, 머구리, 먹저기, 메꾸락지라 한대. 백두산 골짜기에선 백년 묵은 개구리가 천둥 우레처럼 크게 운대서 ‘머구레’라 한다덩만. 개구리들이 탱탱한 알 덩어리를 부려놓은 개울. 별사탕 같은 개구리 알. 머잖아 오뉴월 되면 성체들이 못물에 머물면서 국립합창단만큼 우렁차게 합창을 해대겠지. 이유 없이 어찌저찌하면 여기선 ‘맬겁시, 무담씨’란 말을 쓴다. ‘무단히’... -
쇠똥구리
말똥구리랑 쇠똥구리는 이웃사촌. 그중 말똥구리는 예민한 성질인가 한반도에서 자취를 감췄다. 항생제를 먹은 말들이 싼 똥을 굴렸다가 그만 변을 당한 모양. 한번은 몽골에서 말똥구리 200마리를 수입했다던데, 녀석들 안부가 궁금해. 한편 쇠똥구리는 어떻게든 버티는 중인가 봐. 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덩만 참말 그러한가. 쇠똥구리는 똥을 둥그렇고 야무지게 뭉쳐 삐뚤빼뚤 밀고 간다. 덩어리가 약간 촉촉할 때 훨씬 잘 굴러가. 솜털이 가슬가슬한 참다래나 복숭아처럼 둥그런 똥덩어리를 발차기로 굴리는 걸 보면, 저는 힘들겠으나 엄청 귀여워. 한정반 리미티드 에디션이 아니라 ‘내 밑으로 오디션’ 자랑대회를 하는 듯 뽐내면서 어기영차. 지나가던 개 한 마리 멈칫. 개들 사이에서 공중화장실 격인 전봇대에 실례를 한 뒤 쇠똥구리를 쳐다보는데, 똥냄새에 컹컹 뒷걸음질. 똥을 굴리기를 참말 잘했지 안 그랬음 개에게 물릴 뻔. 쇠똥구리에게 학삐리(?)들이 시시포스의 신화를 들려주곤 하는데, ... -
새출발
미성을 가진 김동률의 노래 ‘출발’이 듣기 좋은 봄날.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아기 병아리떼처럼, 자~ 출발이다. 기지개를 켜고 뜨락에 나오면 나도 같이 출발이다. 하루는 맹구가 공부하기로 맘을 먹고 책을 꺼내 들었대. 친구가 맹구를 보더니만 “깜딱이야~ 너 시방 들고 있는 게 책? 니가 책을 본다고?” “응~ 나 이제 새출발이야~” 친구는 놀라서리 “살다살다 별일을 다 보네. 근데 책 내용이 뭐야?” 맹구가 갸우뚱하더니 “등장인물이 너무 많구먼. 숫자들도 헷갈리고. 끝까지 다 읽으면 이해가 되겠지 뭐.” 친구가 책을 빼앗아 표지를 펼치는 순간, 앗! 전화번호부다.요새 친구들은 전화번호부가 뭔지도 모르겠지. 그 두툼한 인생 소설책. 수많은 이들의 이름이 조르라니 적힌 그 누리끼리한 책. 적힌 이름들 어디서 무사히들 계시는지. 일 더하기 일은... -
춘삼월
정월대보름 그날 밤, 귀밝이술 나누고 달구경을 하려는데 먹구름의 훼방. 그래도 “귀 밝아라~ 눈 밝아라~” 덕담을 나눴지. 노씨 문중에 가장 술을 잘 잡수시는 분 성함은 노상술. 어려서 상민이, 상열이, 상국이, 그런 이름들 속에 상술이도 있었지. 영국은 막걸리트 대춰, 프랑스는 잔 자크 부으숑, 일본은 도도 마사부네, 술 사주는 친구는 도느로 똥다까. 귀가 밝아지는 이름들이오. ‘이미자, 강수향’의 듀엣곡 ‘춘삼월’ 찾아 듣고 앉으니, 유치찬란 내레이션이 배를 쥐게 해. “가자~ 양떼가 뛰노는 벌판을 넘어 또 다른 행복의 목장을 찾아. 그대와 둘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 가자. 임과 나의 오붓한 행복의 동산으로 가자, 가즈아~. 춘삼월 꽃이 피면 봄놀이가 그립고 구시월 낙엽 지면 단풍놀이 그립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가는 봄에 오는 봄에 내 청춘이 늙어가도 무정타 한탄 말고 얼씨구절씨구 놀잔다~” 남성가수 강수향은 ‘호반의 벤치’를 비롯해 듀엣곡... -
방실방실
버릇, 습관이 잘못되면 인생이 ‘삐딱선’을 타고 얼컹덜컹 흔들리게 된다. 버르장머리를 이쪽에선 ‘버르젱이’라 하는데, 보통 나이 어린 자를 꾸짖을 때 ‘저거 버르젱이가~’ 어쩌고들 한다. 하지만 그 반대일 때가 사실 많다. 버릇이란 시간의 누적인지라 늙어가며 뿌리가 깊고 표출도 잦게 마련이지. ‘내가 평소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인데’라고 화를 뿜는 자가 보통 자주 성질머리를 부리는 스타일. 아래는 나이 들어 경계해야 할 잘못된 버릇 3종 세트. 1. 탐심. 아무리 예수님 부처님이 욕심을 줄이라고 해도 오히려 많아지니 이를 어쩌누. 죽을 날이 가까우나 못된 버릇 ‘더더더’가 귀신처럼 달라붙는다. 탐심은 자신을 뽐내고 선전하고파 입으로 기념탑을 쌓는데, 겸손의 미덕조차 찾아볼 길 없다. 2. 망각. 자주 잊어버리는 버릇으로 감사와 은혜를 잊고 작은 행복의 순간을 가볍게 여기며 늘 ‘딜리트 삭제키’. 급기야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노망이 나기 시작. 3.... -
부부싸움
“그카지 말고 문 끼라 바라.” 싸우고 방문을 걸어 잠그자 애걸하는 소리. ‘만다꼬 싸워가꼬’ 그러는지 원. 무섭게 눈알을 부라리며 싸우는 부부들, 언성을 높여 소리를 꽥 지르면 사람 잡아먹는 식인종도 무서워 도망가겠다. 벽마다 커다랗게 확대해서 뽑아놓은 애들 사진과 부부 사진은 다정도 해라. 식인종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사진작가’라지. 사람을 콱 ‘찍고’, 어두운 곳에 ‘가두고’, 물에 ‘담그고’, 벽에 ‘말리고’, 가위나 칼로 쓱쓱 ‘자르고’ 그야말로 후덜덜이야. 가족사진마다 전우애에 불타는 부부들. 있을 때 잘한 추억의 사진이 요래 남았구려. 명절이면 할머니가 배를 깎아. 할머니에게 만만한 배란 할배. 저 할배 영감탱이 하면서, 쓱쓱 칼날을 세우며 ‘있을 때 잘해~’ 협박을 한 차례 더 하지.가수 오승근의 노래 ‘있을 때 잘해’가 쿵덕쿵덕 흥을 돋운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이번이 ... -
이러기야
그 가을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갔나. 꿈 찾아 가버린 기러기 말고 이곳에 눌러사는 ‘이러기’가 있지. 사람들은 오늘도 ‘일억이야’ 로또를 사고, 기러기야 말고 ‘이러기야’, 해찰하고 한눈팔면서 알콩달콩 살아간다. 희망이 어떤 경우 망상, 욕심일 때도 있겠으나 로또 한 장 사며 ‘일억이야’ 꿈꾸면서 웃고, 서민들은 그래 커피값 무서워 별다방 못 가니까(?) 식당에 딸린 자판기 커피에 흡족한 미소. 지갑에 접어 간직한 일억의 꿈은 마술사의 마법이 필요해라. 입춘 소식. 산골짝에는 ‘는개’가 가득 뿌려졌어. 는개 덕분에 흙냄새가 폴폴 나누나. 일찍 집에 가겠다니 ‘이러기야?’ 하면서 소매를 끄는 친구를 뿌리쳤다. 목덜미 후드티로 는개를 피하면서 우편함을 뒤졌지. 글쟁이 문우의 신간을 받는 재미가 쏠쏠해. 누런 봉투에 담긴 책 냄새도 좋아라. 까마득한 옛적 일, 책을 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책방주인 대통령이라도 있어 빛 광자를 내주지도 않았다. 딴엔 시인이라지만 시집조차 없어... -
우웨이
가끔 인간도 곰처럼 겨울잠을 잔다면 참 좋겠단 생각을 해봐. 동면하고 깨어나 삼일절 만세를 부르면서 싸돌아다니고파. 겨울에 달리지 않던 말이 봄에 푸른 들판을 내달리듯. 무위도식을 나쁜 뜻으로만 여기는데, 너무 조이고 바지런한 인생을 상찬하는 세태 때문이다.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먹는 일’은 사실 인생 모두가 바라는 바 아니런가. 중국 사람들이 ‘우웨이’라 말하는, ‘무위’의 인생 철학은 다들 알고 계실 터. 특별히 겨울 시즌에 눈보라 눈길을 피해 바깥 출타를 줄이고, ‘잘 먹고 잘살기 경쟁대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얼마간 문 닫고, ‘우웨이한 삶’을 살아보려 노력한다면 당신도 세속 사회에서 도사 도인쯤 될 수 있겠다. 얼치기, 돌팔이 도사면 또 어때. 커튼을 쫙 펼치면서 권력과 친분을 과시하는 어마무시한 도사가 현존하는 마당인데, 조무래기 도인 도사쯤이야 많아도 상관없겠다. 우웨이도 뭔가 하긴 하는 것인데, 실제로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니 모순... -
까치발 아이
시간, 때를 가리켜 요쪽에선 ‘참’이라고 쓴다. 이번에 뭘 하겠다 할 때 ‘이참에 할라요’, 저번은 ‘쩌참에~’. 시장통에서 감자를 고를 때, “쩌참에 거슨 알이 굵고 실하듬마 이참엔 쥐방울만 해부요. 어따가 꼼쳐(숨겨)부렀소?” 따질 때도 ‘아참 쩌참’ 갖다가 붙인다. 밥이나 술을 먹을 때 ‘새참, 밤참, 술참’ 하는데, 여기서 참도 때를 가리킨다. 새벽은 새복참, 아침은 아적참, 초저녁은 해거름참. 참이 찰지게 달라붙어 입말을 구성지게 만든다. 눈을 뜬 새복참, 좁쌀눈 콩눈이라 불리는 진눈깨비가 살짝이 흩뿌리덩만 아적참엔 바람소리가 뿌락지(황소) 울 듯이 사납게 울고 폭설이 산촌을 덮었다. 이런 날씨에 한 제자가 큰스님에게 아뢰길, “눈이 오니 아랫마을에 다녀올랍니다”. “날도 궂은데 기도나 하지 무슨 소리냐.” “공양간에 먹을 게 하나도 없는뎁쇼.” 눈이 동그래진 큰스님, “그럼 나도 같이 갈란다. 너 혼자 잘 먹고 올라 그랬냐?” 심심한, 절집 전래유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