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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 [임의진의 시골편지] 부부싸움
    부부싸움

    “그카지 말고 문 끼라 바라.” 싸우고 방문을 걸어 잠그자 애걸하는 소리. ‘만다꼬 싸워가꼬’ 그러는지 원. 무섭게 눈알을 부라리며 싸우는 부부들, 언성을 높여 소리를 꽥 지르면 사람 잡아먹는 식인종도 무서워 도망가겠다. 벽마다 커다랗게 확대해서 뽑아놓은 애들 사진과 부부 사진은 다정도 해라. 식인종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이 ‘사진작가’라지. 사람을 콱 ‘찍고’, 어두운 곳에 ‘가두고’, 물에 ‘담그고’, 벽에 ‘말리고’, 가위나 칼로 쓱쓱 ‘자르고’ 그야말로 후덜덜이야. 가족사진마다 전우애에 불타는 부부들. 있을 때 잘한 추억의 사진이 요래 남았구려. 명절이면 할머니가 배를 깎아. 할머니에게 만만한 배란 할배. 저 할배 영감탱이 하면서, 쓱쓱 칼날을 세우며 ‘있을 때 잘해~’ 협박을 한 차례 더 하지.가수 오승근의 노래 ‘있을 때 잘해’가 쿵덕쿵덕 흥을 돋운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있을 때 잘해. 흔들리지 말고.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해. 이번이 ...

    2024.02.14 20:26

  • [임의진의 시골편지] 이러기야
    이러기야

    그 가을 기러기는 어디로 날아갔나. 꿈 찾아 가버린 기러기 말고 이곳에 눌러사는 ‘이러기’가 있지. 사람들은 오늘도 ‘일억이야’ 로또를 사고, 기러기야 말고 ‘이러기야’, 해찰하고 한눈팔면서 알콩달콩 살아간다. 희망이 어떤 경우 망상, 욕심일 때도 있겠으나 로또 한 장 사며 ‘일억이야’ 꿈꾸면서 웃고, 서민들은 그래 커피값 무서워 별다방 못 가니까(?) 식당에 딸린 자판기 커피에 흡족한 미소. 지갑에 접어 간직한 일억의 꿈은 마술사의 마법이 필요해라. 입춘 소식. 산골짝에는 ‘는개’가 가득 뿌려졌어. 는개 덕분에 흙냄새가 폴폴 나누나. 일찍 집에 가겠다니 ‘이러기야?’ 하면서 소매를 끄는 친구를 뿌리쳤다. 목덜미 후드티로 는개를 피하면서 우편함을 뒤졌지. 글쟁이 문우의 신간을 받는 재미가 쏠쏠해. 누런 봉투에 담긴 책 냄새도 좋아라. 까마득한 옛적 일, 책을 낸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책방주인 대통령이라도 있어 빛 광자를 내주지도 않았다. 딴엔 시인이라지만 시집조차 없어...

    2024.02.07 20:15

  • [임의진의 시골편지] 우웨이
    우웨이

    가끔 인간도 곰처럼 겨울잠을 잔다면 참 좋겠단 생각을 해봐. 동면하고 깨어나 삼일절 만세를 부르면서 싸돌아다니고파. 겨울에 달리지 않던 말이 봄에 푸른 들판을 내달리듯. 무위도식을 나쁜 뜻으로만 여기는데, 너무 조이고 바지런한 인생을 상찬하는 세태 때문이다. ‘일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고먹는 일’은 사실 인생 모두가 바라는 바 아니런가. 중국 사람들이 ‘우웨이’라 말하는, ‘무위’의 인생 철학은 다들 알고 계실 터. 특별히 겨울 시즌에 눈보라 눈길을 피해 바깥 출타를 줄이고, ‘잘 먹고 잘살기 경쟁대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도 얼마간 문 닫고, ‘우웨이한 삶’을 살아보려 노력한다면 당신도 세속 사회에서 도사 도인쯤 될 수 있겠다. 얼치기, 돌팔이 도사면 또 어때. 커튼을 쫙 펼치면서 권력과 친분을 과시하는 어마무시한 도사가 현존하는 마당인데, 조무래기 도인 도사쯤이야 많아도 상관없겠다. 우웨이도 뭔가 하긴 하는 것인데, 실제로 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니 모순...

    2024.01.31 20:25

  • [임의진의 시골편지] 까치발 아이
    까치발 아이

    시간, 때를 가리켜 요쪽에선 ‘참’이라고 쓴다. 이번에 뭘 하겠다 할 때 ‘이참에 할라요’, 저번은 ‘쩌참에~’. 시장통에서 감자를 고를 때, “쩌참에 거슨 알이 굵고 실하듬마 이참엔 쥐방울만 해부요. 어따가 꼼쳐(숨겨)부렀소?” 따질 때도 ‘아참 쩌참’ 갖다가 붙인다. 밥이나 술을 먹을 때 ‘새참, 밤참, 술참’ 하는데, 여기서 참도 때를 가리킨다. 새벽은 새복참, 아침은 아적참, 초저녁은 해거름참. 참이 찰지게 달라붙어 입말을 구성지게 만든다. 눈을 뜬 새복참, 좁쌀눈 콩눈이라 불리는 진눈깨비가 살짝이 흩뿌리덩만 아적참엔 바람소리가 뿌락지(황소) 울 듯이 사납게 울고 폭설이 산촌을 덮었다. 이런 날씨에 한 제자가 큰스님에게 아뢰길, “눈이 오니 아랫마을에 다녀올랍니다”. “날도 궂은데 기도나 하지 무슨 소리냐.” “공양간에 먹을 게 하나도 없는뎁쇼.” 눈이 동그래진 큰스님, “그럼 나도 같이 갈란다. 너 혼자 잘 먹고 올라 그랬냐?” 심심한, 절집 전래유머....

    2024.01.24 20:20

  • [임의진의 시골편지] 프린스와 오토바이
    프린스와 오토바이

    가수 김광석은 공연장에서 자주 이런 말을 했다지. “내 나이 마흔이 되면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히트한 노래처럼 ‘서른 즈음에’, 그러니까 서른두 살에 아깝게 요절하고 말았는데, 그곳에서 오토바이를 신나게 몰고 있을까. 예전에 가끔 부산 사진작가 김홍희형이 오토바이를 몰고 산골집에 들르곤 하셨어. 다음 행선지가 바이크족 하면 빠질 수 없는 지리산 시인 이원규형 댁. 바이크족끼리 좋아라 뭉치는 법. 하지만 나처럼 턱을 빼고, 와~ 탄성을 지르면서 개부러워해주는 놈이 또 있어야 재미가 배가되는 법. 그래 자랑삼아 오신 건지 어쩐 건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아무튼 나는 할리를 보면 언제라도 침을 흘리는 마법에 빠져 있다. 입만 열면 자유다, 동료 시민이다. 언제는 높아서 동료가 아니었나. 옷 벗고 난 뒤 오토바이로 유랑하면 비로소 자유와 동료애를 느끼려나.애인을 태우고서, 꼴마리를 다잡으라 하고, 신작로를 내달리고파. 입에...

    2024.01.17 19:57

  • [임의진의 시골편지] 발음과 바름
    발음과 바름

    자고로 현지인과는 발음이 ‘바름’이어야 말이 통한다. 영어가 짧으니 바르지 못한 발음으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발생하게 돼. 한 꼬마가 유치원에서 원어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웠는데, 마침 할머니가 집에 오셨대. “할무니, 나 토매이러~” 할머니는 놀라서 손주를 화장실로 급히 안고 갔대. 토마토가 먹고 싶단 소리였는데 토하겠다는 줄 알아들은 거. 누가 피식하면 격노하며 쓰는 말 ‘카르텔’도 뭔 말인지 도통 알아먹질 못하겠다. 여름 내내 앵앵거리던 파리, 파리떼가 시꺼멓게 엉겨 붙은 똥. 나아가 뭐 묻은 자신을 먼저 성찰할 때 써야 할 단어렷다. 그러고 보면 파리도 지역에 따라 발음을 잘해야 알아듣게 된다. 전라도 전역에선 포리라고 해. 경상남도에선 깡아리, 윗지방에선 포랭이, 강원도에선 파래이, 파랭이, 함경도에선 뽈이라고 한단다. “포리떼 모구떼(모기) 때문에 징허던 여름보다는 안 낫소야.” 대문을 활짝 열고 살던 할매집, 오랜 날 자물쇠가 잠겨 있다. ‘원망’과 ‘앙심’으로 살아...

    2024.01.10 20: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노루와 도루
    노루와 도루

    춥다가 안 춥다가 한다만 겨울밤 방에 불은 때야 언 몸을 녹일 수 있다. 산토끼처럼 굴을 파고 들어앉아 난로에 쓸 장작개비를 주워 모으는 철이다. 어렵게 나무를 잘라 토막을 내고, 군불을 지핀 뒤 저린 어깨를 감싸고 누우면 눈에서 질금 눈물이 나올라 해. 버튼 하나 누르면 따스워지는 곳으로 도망쳐야 하는데 못 가는 신세. 노루가 뛰는지 개들이 밤중에 하도 짖어 나가봤다. 산에서 두 눈이 번쩍. 신우대 이파리 속을 뚫고 거니는 노루가 분명해. 열매 하나 남지 않은 배고픈 시기다. 개 소리에 놀라 도망치다가 뒤를 돌아보는데, 슬픈 눈에서 광선이 쫙~. 노루 말고 도루, 어디로 단단히 튀어 꽁무니도 보이지 않는 도망자가 되고 싶은 날이 있다. 귀찮고 불편하고 외로울 때. 차에 기름을 잔뜩 넣고 속옷까지 가방에 챙겼다만 결국 포기하고 만다. 도루를 해봤자 금세 다시 홈으로 돌아오는 게 전부니까. 해태 타이거즈 ‘즉위 시대’, 최초 300도루에 성공한 김일권 선수의 팬이...

    2024.01.03 22:31

  • [임의진의 시골편지] 바람 냄새
    바람 냄새

    네 발 내 발 아니고 제발. 처음 살아보는 인생이라 잘못과 실수가 많은 인생이야. 누구나 그렇지. 그래 ‘제발 부탁해’란 말을 많이 하게 된다. 제발 더 자고 싶어. 기린은 하루 3시간밖에 못 잔다고 해. 개미는 아예 잠을 안 자다시피 한다는데, 하루에 두 번 고작 7~8분씩 쪽잠을 잔대. 수면제라도 먹지 좀. 나무늘보는 너무 게을러터져서 일주일에 딱 한 번 나무 밑으로 내려오는데, 이유는 화장실 때문이래. 내년엔 제발 부지런해지길 바라. 매미는 땅속에서 15년 이상을 지낸다. 제발 내년에는 땅속에서 나와 로커처럼 시끄럽게 노래하렴. 하마는 오줌을 누어 지린내로 구애를 하는데 내년에는 제발 잘생긴 미모로 짝을 찾길. 타조는 1년 중 딱 절반 6개월 이상을 혼자 생활한대. 제발 내년엔 외롭지 않길. 누굴 만나자고 할 때 과거엔 그냥 쉽게 만나자 했지만, 지금은 제발이란 말을 앞세워도 될까 말까. 다들 왜 그리 바쁘고 분주한지. 더러는 코로나 이후로 가족 말고는 담을 쌓고...

    2023.12.27 22:26

  • [임의진의 시골편지] 징글벨 타령
    징글벨 타령

    성탄 시즌이면 “징글벨 징글오두벨~” 오두방정을 떨며 신나게 부르는 캐럴 타령. 늙은 무당할매가 누구 한을 풀어주려나 흔드는 방울 소린가. 착한 아이 선물 들고 달려가는 순록의 방울 타령인가. 교회에 머물 땐 연말이면 좔좔좔 외울 만큼 팻분의 캐럴을 틀어놓고 지냈었다. 요샌 눈이 내려야 살짝 꺼내 분위기를 잡아본다. 근사한 스팅의 캐럴집 ‘어 윈터스 나이트’, 또 추억의 경음악단 폴 모리아. 명반 <어떤 날 1>의 ‘겨울 하루’도 좋지. “지루한 겨울 낮잠 깨어보니 집에는 아무도 없고….” 직직 끓는 엘피 도는 소리.엊그제 오랜 인연인 한국대중가요연구소 최규성 샘의 주선으로 LP 발매 전문 음반사와 만났다. 여행 중에 듣던 노랠 엮어 음반 한 장 펴내기로 했어. 방바닥에 음반들을 조르라니 펼쳐놓으니 머리가 하얘졌다. 어떻게 몇 곡만 고른단 말인가. 다 좋은데~ 이 노랜 이래서 좋고 저건 저래서 좋은데. 겨울에 들을 만한 노래도 어디 없을까.하루...

    2023.12.20 22:33

  • [임의진의 시골편지] 버섯 수프
    버섯 수프

    맹빵을 죽죽 찢어 수프에 찍어 먹었다. 우리말로 ‘죽’이라고 하면 되겠지만, 크림수프는 그냥 수프라 하고 싶어. 마트에서 파는 크림수프 봉지와 양송이버섯을 사다가 끓인 그야말로 흔한 수프. 달걀장조림, 깨를 잔뜩 뿌린 무생채, 그리고 해남에서 온 깍두기 반찬이 전부. 입맛이 없고 하여 수프라도 챙겨 먹는 중이다. 연말 송년 모임으로 외출이 잦은 요즘, 기다리는 이 없어도 잠은 기필코 집에 들어와서 잔다. 해장국 대신에 가끔은 수프. 한 가장이 밤늦은 시간 ‘꽐라’가 되어 현관 비밀번호를 까먹고선 문을 쿵쿵. 기다리다 졸던 부인이 문을 열어주며 대차게 쏘아붙이더래. “더 마시다가 오지 그러셨수. 집에는 왜 와가지고 귀찮게 하는 거요?” “지금 이 시간에 문 열어주는 덴 여기밖에 없으니까 온 거지.” 그래도 집엔 ‘웬수 같은’ 끈끈한 가족이 있고, 따뜻한 아랫목과 갓 구운 빵이나 요깃거리가 있지. 사람들이 꼬박꼬박 집에 찾아가는 이유가 다 있다. 어려서 어머니가 크...

    2023.12.13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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