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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 [임의진의 시골편지] 12월의 연하장
    12월의 연하장

    연말과 연초면 지인들에게 성탄 카드와 연하장을 부치곤 했었다. 전보 서비스도 종료되어 없어지고, 손으로 꾹꾹 눌러 쓴 엽서를 우체통에 넣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한 스승에게 제자가 묻기를 “스승님! 진정한 친구는 어떻게 가질 수 있나요?” “참된 친구가 만약 있다면 한 명도 기적과 같은 법이다. 둘은 많고, 셋은 불가능해. 나도 그런 친구가 없어 즐겁게 놀지 못하고, 이리 공부만 하는 거 아니냐.” 제자는 골똘히 궁리하더니 고개를 푹 숙이더래. 그대에게 한 명의 기적 같은 친구가 있어 연하장을 부칠 수 있길 비는 마음이다.함석지붕의 오리지널 흙집 ‘토굴’에 머물던 분을 안다. 우리는 억은커녕 이른바 ‘관값’을 남기고 죽는 일도 버거운 인생이었지. 당시 나눈 연하장이 아직 내 기억 속에 있다. 엽서 말미에 색연필로 그려준 별들은 인생이 어둡고 쓸쓸할 때마다 앞길을 비추는 듯해. 또 기억나는 편지가 하나 있는데, 신학자이자 클래식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칼 바르트...

    2023.12.06 20:52

  • [임의진의 시골편지] 멋쟁이 겨울 신사
    멋쟁이 겨울 신사

    겨울이 생긴 신화를 들려줄까? 시베리아 나나이족 신화엔 원래 하늘에 태양이 3개가 있었대. 얼마나 뜨거웠겠어. 동물들이 불타 죽자 배에 돌을 집어넣어 물속으로 가라앉게 했대. 물고기가 그래서 생긴 것. 동쪽에 사는 한 용맹한 장수가 있었는데, 아홉 개 골짜기를 넘어 동트는 장소에 도착. 두 개의 해를 화살로 떨어뜨린 뒤에야 첫눈과 함께 겨울이 찾아왔대.한번은 눈 쌓인 몽골 하고도 강물이 땡땡 얼어붙은 ‘홉스굴’을 갔었다. 소똥을 모아 난롯불을 지피고 게르에 틀어박혀 말젖술을 마셨지. 대지와 물의 주인 ‘에투겡’에게 감사를 드리래서 한잔을 휙 흩뿌렸어. 에투겡은 ‘어머니의 배’라는 뜻. 홉스굴 사람들은 여성의 자궁을 ‘우테게’라 해. 또 흙벽으로 지은 가축우리와 유목지를 ‘어터그’라 부르는데 같은 어원이야. 여자무당은 ‘오드강’, 만년설이 내린 설산은 ‘오트공 텡게르’라 부른다. 우주 자궁에서 잉태한 존재들. 날씨가 추우면 돌아가신 엄마의 따뜻한 품이 아쉽고 그리운 법....

    2023.11.29 20:29

  • [임의진의 시골편지] 물소유와 돌킹이
    물소유와 돌킹이

    영하 날씨 첫눈도 오시고, 첫눈 오면 보자던 사람도 만났어. 또 병상에 누운 어른들 생각나 영양제라도 맞으시라 용돈을 조금 부쳤다. 감사를 알고, 사람 노릇을 하면 마음이 천국이야. 은혜를 원수로 갚는 세상이다만 우리까지 그리 살진 맙시다잉. 마음조차 헌걸차서 낮에 물병 하나 들고 뒷산을 올랐어. 약수터가 없는 산이다 보니 물을 꼭 챙겨가야 해. 이른바 ‘물소유’.돌아가신 법정 큰스님을 존경한다만 무소유는 내게 택도 없는 깃발이고, 스님도 지독한 물욕 사회에 뿔이 나서 나무라신 말씀이려니. 높고 외딴 산에 오를 때 무소유로 갔다간 까딱했다가 뒈지는 수가 있다. 중턱에서 물을 쭉 마시고, 땀을 좀 식히고서 촐래촐래 내려왔다. 빨리 날이 저물고 한기가 느껴져 꽁꽁 싸두었던 크리스마스트리를 꺼내 거실에 놓았더니 마음조차 따수워져. 앞으로 한 달은 캐럴도 찾아 듣고, 옆구리 추운 당신에게 더 자주 편지를 써야지 다짐했다. 제주 방언에 ‘돌킹이’라고 있다. 바위틈에 사는 ...

    2023.11.22 20:27

  • [임의진의 시골편지]샹송의 계절
    샹송의 계절

    에디트 피아프의 애절한 노래를 듣는 밤엔 마파람이 나뭇잎을 흔들어 그야말로 추풍낙엽. 서커스단 곡예사 부부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어찌나 키가 작던지 ‘작은 참새’란 별명으로 불렸대. 그녀의 대표곡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를 들어야 ‘만추의 계절’이 비로소 완성된다. 샹송 음반을 몇 장 꺼내놓고 분위기를 떡하니 잡아보는 날이다. 또 지중해 해풍이 살랑대는 노래 ‘모나코(Monaco)’, 듣기에 따라선 ‘머라꼬?’ 경상도 말투만 같아. 가수 장 프랑수아 모리스가 부른 노래. 장발장이랑 같은 장씨인가.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와 같은 굵은 목소리가 간지럽게 흐른다. “뭐라꼬?” “여름 해변이 그립다고요.”눈이 내릴 것같이 검은 구름도 몰려온다. ‘돈 벌어 나 줘~’ 그리 들리는 아다모의 노래 ‘통브 라 네주(Tombe La Neige)’, 이 노래는 가수 이숙이 ‘눈이 내리네’란 제목으로 번안해 불렀다. “눈이 나리네. 당신이 가버린 지금 눈이 나리네… 하얀 눈을 ...

    2023.11.15 20:28

  • [임의진의 시골편지] 순딩이 순두부
    순딩이 순두부

    일없이 세월이 훅 가. 휙~ 가는 거 말고 훅~ 가는 거 말이야. 일없이 기도만 하고 눈을 감은 채 살던 전도사가 있었는데, 타고난 말재주로 여자친구를 만들었대. 장차 장인 장모가 될 어른들을 뵈러 간 길. “장래 희망은 뭔가?” “성경을 공부해서 교수가 될랍니다.” “그러면 공부하는 동안 내 딸은?” “주님이 알아서 돌보실 겁니다.” “결혼해서 살 집은 있나?” “주님이 다 해주실 겁니다.” “결혼반지라도 살 돈이 있는가?” “그것도 주님이 알아서 해주실 겁니다.” 전도사가 돌아가고 나서 아버지 왈, “저 녀석이 말하는 주님이란 곧 나를 두고 한 말이구먼.”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올해, 뜬금없이 아프기도 했고, 마지막 두어 장 달력이 아쉽고 서운해. 뭐 한 일이 있다고 벌써 11월. 한 해가 쉬이 저무는 것처럼 인생도 무뿌리처럼 첨엔 단단, 아니 딴딴했었는데, 연두부처럼 흐물흐물해진 거 같아. 저녁에 찬으로 뭘 먹을까 하다가 두부를 굽기로 했어. 한여진 시인의...

    2023.11.08 20:34

  • [임의진의 시골편지] 쟁반달
    쟁반달

    하루는 ‘달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보이더라. 마침 요새 조이스 캐럴 오츠의 소설 <밤, 네온>을 잘 읽었다. 그 동네에 있다는 ‘푸른 달 카페’, 길고 눈부신 푸른 달 네온이 서 있는 골목이 상상된다. ‘제분소 노동자들이 살던 집, 골동품 가게들과 중고 가구점들, 의류 위탁 판매점들, 자선 매장, 표구점, 화랑들’이 늘어서 있다는 거리. 하늘엔 푸른 달이 밤새 매처럼 뵤뵤 떠도는….친구 중에 젤 친한 친구를 가리켜 꾀복쟁이 친구라 하지. 윗도리는 입고 아랫도리만 벗은 걸 ‘꾀’라 하는데, 옛날엔 그리 놀았어. 요샌 콩글리시로 ‘베프’라 하던데, 제맛이 아니다. 나도 어려서 꾀복쟁이 친구들과 밤개울 멱을 감고 달구경을 오지게 했어. 무등산 자락에 달이 뜨면 근사하다. 지난밤엔 무등산 뒤편 수만리 바위고개에 사는 ‘바위섬’의 가수 김원중 선배 댁을 방문. 마당에서 고구마를 구우며 불멍과 달구경. ‘수만리의 달’이란 노래도 있는데, 김원중 작사 작...

    2023.11.01 21:01

  • [임의진의 시골편지] 구찌뽕
    구찌뽕

    ‘가을 기분’ 내보려고 마당에 몽골 텐트를 쳤다. 나보단 개와 고양이가 주로 드나든다만 쳐다보는 것만으로 이미 가을 냄새와 가을밤과 국화 향기로 충만해. 녹차 마시는 모임이 마침 내 산골 집 차례여서 벗들이 찾아왔어. 다회의 회주인 금강 스님을 비롯 원년 멤버들이 고작 나 포함 다섯인데, 다들 모이기란 하늘의 별 따기. 이번에도 누구 한 사람 빠졌다. 나도 가끔 빠지곤 하는데 ‘뒷담화’가 장난이 아니어서 최소 열흘은 귀가 간지러워. 손님들 흩어져 주무시고, 새벽에 텐트에 살짝 들어가 구절초 꽃향기를 가까이서 맡다가 눈을 감았다. 이번 다회엔 객이 구찌뽕으로 만든 차를 맛보기로 가져와 그야말로 초토화. 향이 진하고, 게다가 효능도 만병통치 수준이라 벌어진 턱을 괴어야 했다. 순하고 수수한 맛을 가까이하며 사는 우리로선 감당하기 센 맛이나 한 번쯤 일탈이야 뭐 어때. 뽕뽕뽕 연예인 마약사건 얘기들과 구찌와 같은 명품 구매용 해외 순방을 즐기는 누구들로 세상이 어지...

    2023.10.25 20:27

  • [임의진의 시골편지] 탕수육
    탕수육

    배우 탕웨이를 좋아하듯 중국요리도 좋아하고, 탕수육을 엄청 좋아해. 엄밀히 말하면 강아지들과도 나눠 먹는 별식. 면소재지에 중국요릿집이 있는데 요샌 오토바이로 배달도 해줘. 탕수육 작은 ‘소자’로 한 그릇 시켰다. 전기 검침원에 대곤 엄청나게 짖어대는 녀석들이 배달 아저씨에겐 꼬리를 찰지게 흔든다. 얻어먹을 게 있음을 아는 게야. 애들도 먹이려면 부먹이 아니라 찍먹.서울 종로 인사동에서 지난 일주일 전시 감독을 하고 내려왔다. 북적대던 인파에 치이고, 인터뷰를 비롯해 머리를 쥐어짜면서 지냈다. 그러느라 개들만 집을 지키고, 물론 새들이 이따금 내려앉아 심심풀이로 말을 걸기도 했겠지.해방되고 시인 박인환은 인사동 낙원상가 근처에 ‘마리서사’란 책방을 개업했다지. 그곳엔 시인 오장환이 단골, 김수영 시인도 출입했대.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했겠지. 나도 내가 머무는 어디든 마리서사와 같은 사랑방이라고 ...

    2023.10.18 20:16

  • [임의진의 시골편지]은행나무 사랑
    은행나무 사랑

    은행나무는 2억년 넘게 세대를 이어온 나무종이래. 바퀴벌레만큼 똑똑하고 끈질긴가 봐. 열매는 냄새가 고약해서 짐승이나 배고픈 새들도 거들떠보지 않아. 그런 생존 전략은 여타 나무들과 딴판으로 달라. 강력한 야성으로 독자 생존. 손이 꽁꽁꽁, 빙하기에도 살아남았어.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괴테는 젊은 여인 마리아네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끝이 갈라진 것처럼 보일 뿐 반듯한 한 장 은행나무 잎사귀를 편지에 동봉해요. 나는 당신과 이처럼 둘이 아닌 한 몸임을 느껴요.” 마치 식물학자의 글 같은 사랑 고백. 결국 사랑은 이루어져 연인으로 발전했다지. 은행나무 이파리가 노랗게 물들 듯 사랑이 물들고, 가슴도 활활 뜨거워지는, 가을이야 가을.한 수입배급사에서 <이터널 메모리>란 칠레 다큐 영화에 대해 관객과 이야길 나눠 달라 부탁을 받았다. 실비오 로드리게스의 노래 ‘멜랑콜리아’가 구슬프게 흐르는 영화는 문화부 장관을 지낸 배우 출신 여인과 피노체트 군부...

    2023.10.11 20:51

  • [임의진의 시골편지] 사왓디
    사왓디

    태국에 가면 ‘사왓디’, 우리말로 ‘안녕’이란 말로 인사해. 태국에 가지 않아도 사왓디라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어. 아랫동네 다문화 여인은 태국에서 왔대. 맛난 국물요리 ‘똠얌꿍’을 만들려고 식자재 마트에 왔는데, 누가 신청을 안 해주는 모양이었다. “오케이 일루 와봐쇼잉. 새우도 있고 뭣도 있고 다 있지만 라임은 없어요. 레몬을 대신 쓰면 되겠죠 뭐.” 분홍빛깔 플루메리아가 가득 핀 고향집을 그리며 만들어 먹었을 똠얌꿍. 플루메리아 꽃말은 ‘당신을 만난 건 행운입니다’. 꽃들도 반기며 ‘사왓디 사왓디’ 인사하는 그쪽 동네 생각을 잠깐 했어.한번은 읍내 다문화 행사위원장을 맡았었는데, 생김새도 다문화처럼 생긴 나는 ‘자연스럽다’는 눈치였다. 행사마다 나타나던 꼬마 녀석이 길에서도 반갑다며 인사를 했다. 그 아이 엄마도 고향이 태국인가 그랬어. 우리나라도 스무 명 중에 한 명이 이주민. 부글부글 부엌에서 카레가 끓는지 냄새가 좋아라. 카레가 끓는 연기인지 하얀 민들레 홀...

    2023.10.0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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