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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
  • [임의진의 시골편지] 사왓디
    사왓디

    태국에 가면 ‘사왓디’, 우리말로 ‘안녕’이란 말로 인사해. 태국에 가지 않아도 사왓디라고 반갑게 인사할 수 있어. 아랫동네 다문화 여인은 태국에서 왔대. 맛난 국물요리 ‘똠얌꿍’을 만들려고 식자재 마트에 왔는데, 누가 신청을 안 해주는 모양이었다. “오케이 일루 와봐쇼잉. 새우도 있고 뭣도 있고 다 있지만 라임은 없어요. 레몬을 대신 쓰면 되겠죠 뭐.” 분홍빛깔 플루메리아가 가득 핀 고향집을 그리며 만들어 먹었을 똠얌꿍. 플루메리아 꽃말은 ‘당신을 만난 건 행운입니다’. 꽃들도 반기며 ‘사왓디 사왓디’ 인사하는 그쪽 동네 생각을 잠깐 했어.한번은 읍내 다문화 행사위원장을 맡았었는데, 생김새도 다문화처럼 생긴 나는 ‘자연스럽다’는 눈치였다. 행사마다 나타나던 꼬마 녀석이 길에서도 반갑다며 인사를 했다. 그 아이 엄마도 고향이 태국인가 그랬어. 우리나라도 스무 명 중에 한 명이 이주민. 부글부글 부엌에서 카레가 끓는지 냄새가 좋아라. 카레가 끓는 연기인지 하얀 민들레 홀...

    2023.10.04 20:34

  • [임의진의 시골편지] 낮고 낮은 집들
    낮고 낮은 집들

    한번은 남태평양 섬에 갔다. 하루는 이런 전설을 들었어. 해변의 야자수들이 태풍에 부러지고 꺾인 후, 그 황량한 풍경 앞에서 원주민들이 망연자실. 하지만 추장님은 벌떡 일어나 어린 야자수 몇몇을 골라 위에다가 큼지막한 돌을 하나씩 올려놓는 의식을 베푼대. 그리고 이듬해 바닷가에 다시 찾아가면 다른 나무들이 두세 배 키를 높일 때 여전히 돌을 짊어진 야자수들은 제자리걸음. 이제 돌을 땅에 내려놓고 나무에 이렇게 당부한대. “남들은 다투어 하늘로 높이 솟구칠 때 너희들은 무겁고 힘든 돌을 머리에 이고서 얼마나 힘들었니. 하지만 그동안 너희들은 누구보다 넓게 뿌리를 뻗을 수 있었단다. 이제부턴 위로 솟구쳐 오르려무나. 그래서 우리 마을을 태풍으로부터 지켜주렴. 돌을 머리에 이고 엉엉 울었을 야자수들아. 이제부터 푸른 하늘만큼 푸른 바다만큼 웃고 또 웃으렴!” 그곳의 나무들을 기억한다. 그 마을의 아침도 똑같이 닭들이 울고, 아이들이 문밖으로 쏟아져 나오더라. 병아리가...

    2023.09.27 18:42

  • [임의진의 시골편지] 차라리
    차라리

    사람이 있을 땐 필요 없으나 사람이 없을 때는 꼭 필요한 게 바로 자물쇠 열쇠. 하지만 의자는 누가 있을 때나 없을 때 모두 필요해. 사람 말고도 햇볕과 새가 쉬었다 가더라.산촌은 보통 혼자 살거나 둘이 살거나 그래. 먼 옛날 에덴동산에 살았다는 아담과 하와. 간만에 부부간 대화의 시간. “하와씨!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는데, 날 사랑하긴 하나요?” 하와가 씹던 껌을 뱉더니 “아담씨! 여기 당신 말고 누가 또 있나요? 할 말은 많지만 참습니다.”둘이서 오순도순 살다 한 사람이 먼저 저세상에 가면 혼자서 밭일도 해야 하고, 밥도 혼자 먹어야지. 혼자 잘 지내는 법을 터득해야 오래 살아. 그도 생존 기술이다. 육지에선 수영만큼 필요한 ‘산책과 운동’, ‘영양 식단’, 그리고 ‘말동무’. 만나진 못해도 전화기로 수다를 떨 만한 말동무 한 명쯤 꼭 필요해. 이장의 아침 방송, 추석이 다가오니 풀베기 울력을 하자네. 몸이 힘들어 내 집 마당도 다 못 베고 지내는데...

    2023.09.20 23:00

  • [임의진의 시골편지] 선량한 사람
    선량한 사람

    얼굴들을 뜯어고쳐 놓으니 인사를 해도 도무지 알아볼 수가 있나. 젊어지고자 애들 쓴다만 주름지고도 근사해진 중년 신사숙녀도 있는 법. 아이돌 걸그룹의 외모와 춤사위에 환호들을 보내고 살지만 늙고 주름진 재즈 가수의 연륜 깊은 노래에 또 마음이 간다. 루이 암스트롱이나 니나 시몬의 노래를 듣는달지 최백호, 이은미의 달관한 듯한 목청에 귀를 대고 있으면 신산하던 맘이 가라앉고 평안해져. 노령인구가 급속히 는다는데, 하도 ‘청년 청년’ 하다보니 낀 세대 중년층이 주눅 든 세월이야. 성형수술을 하고 나이를 속여 젊어지거나 그도 아니면 빨리 폭삭 늙어버리거나 둘 중 하날 택하란 성화인가.만화가 히로카네 겐시는 중년에 행복해지는 여섯 가지 비결을 어딘가에 썼더구먼. “1. 작은 욕심을 부리자. 싸고 맛있는 세계에 즐거움이 있다. 2. 좋지 않은 과거는 빨리 잊어버릴 것. 이제부터 시작되는 인생만 바라보고, 그날의 감정은 그날 정리할 것. 3. 즐거운 것은 진심으로 즐기자....

    2023.09.13 20:20

  • [임의진의 시골편지] 두부 장수
    두부 장수

    한번은 홍범도 장군을 뵈러 러시아 우수리스크란 곳엘 갔어. 그곳은 장군이 딸들을 낳아 키우던 곳. 고려인 문화센터란 델 갔는데 안중근 의사 기념비랑 나란히 계시덩만. 근처 고려인 식당에서 두부 요리를 먹었다. 고려인들은 콩작물을 심어 두부를 만들고, 두부는 혈육이 나누는 같은 맛. 주인장이랑 나랑 눈이 마주쳐 빙그르르 웃었지.나 어려선 떠돌뱅이 두부 장수가 있었다. 마을길 골목길 돌면서 두부를 팔았지. 소설에서도 읽었더랬어. 소설가 최서해. 젊어서 죽자 우리 문학사 최초로 ‘문인장’ 장례까지 치른 주인공. “아내와 나는 진종일 맷돌질을 했다. 무거운 맷돌을 돌리고 나면 팔이 뚝 떨어지는 듯하였다. 두붓물이 희멀끔해지고 기름기가 돌지 않으면 거기에만 시선을 쏘고 있는 아내의 낯빛부터 글러가기 시작한다. ‘또 쉰 게로구나. 저를 어쩌누?’ 어머니는 목메인 말씀을 하시면서 우신다. ‘너 고생한 게 애닯구나. 팔이 부러지게 갈아서 그거(두부)를 팔아 장을 보려고 태산같이 바랐...

    2023.09.06 20:29

  • [임의진의 시골편지] 빈센트 반지하
    빈센트 반지하

    레크리에이션 강사도 아닌데, ‘놀고먹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라고. 다들 열심히 살지. 하필 퇴근길 병목 구간. 차 안에서 울리는 노래 ‘빈센트’가 ‘스타리 스타리 나이트’. 돈 매클린의 노래가 ‘돈 막 꿀래’로 들리기도 하는 빚쟁이들의 슬픈 노래. 인생을 빚쟁이로 살았던 빈센트는 동생에게 물감 살 돈을 부탁하는 편지를 자주 썼어. “별이 빛나는 밤이에요. 팔레트에 파란색과 회색을 칠해봐요. 여름날 문밖을 내다봐요. 영혼 속 어둠까지 아는 눈으로 말이죠. 언덕 위의 그림자들, 나무와 수선화를 스케치해봐요. 산들바람과 겨울의 추위를 그려요. 눈처럼 새하얀 아마포 세상도요. 이제 내게 하려는 말을 알 거 같아요. 맑은 영혼을 가지려고 당신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돈 매클린이 히트 쳤던 노래 ‘아메리칸 파이’를 외워 부르던 요쪽 ‘최고 존엄’. 반지하 침수 현장에서 죽어간 분들이 살던 집을 마치 구경꾼처럼 내려다보던 국정홍보용 사진이 떠올라. 빈센트 반 고흐, ...

    2023.08.30 20:28

  • [임의진의 시골편지] 아주까리기름
    아주까리기름

    막걸리 주전자에 탄 농약 사건 이후로 농한기 모정의 화투도 줄고, 우중에 김치전 잔치도 덜한 모양 같아. 불신을 넘어 증오로까지, 어디서 어떤 테러를 당할지 몰라. 요샌 젊은것들이 소락때기(소리)를 지르며 송곳니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봉변을 당할까 꾸짖지도 못하고 ‘노참견, 노간섭’ 냅둬 버리게 된다. 테러리스트 말고 ‘때려리스트’라고 있는데, 일단 때리고 보는 자들은 주머니에 합의할 뭉칫돈이 그래도 있는 양반들. 그 정도 무식한 분들을 위한 법조 서비스도 갖춰져 있는데, ‘유전 무죄’라고 하는 서비스.할매들은 종종 ‘굉기하다’는 말을 쓴다. 기이하고 특이하다는 뜻. 굉기한 얘길 하나 해드릴까. 사내애들 포경수술을 뜻하는 우리말이 아니라, 아주까리라는 기름이 있어. 들어는 봤나 아주까리기름. 저 유명한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 등장하기도 하지.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기억들 나실 ...

    2023.08.23 20:19

  • [임의진의 시골편지] 꼿더우
    꼿더우

    배우 문소리 말고 진짜 문소리. 아침이면 동네에 문들 여는 소리가 ‘철컹 덜컹 찰가닥 스르륵’ 들려. 휴가철이라 객지 식구들이 집집들 찼어. 누군 캠핑카를 몰고와설랑 냇가에서 야영. 닭백숙집 성님은 휜 허리를 펴더니 한철 대목 장사에 기운을 내더라.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산골 아이’로 살고픈데, 나도 며칠 손님치레로 정신없었다. 물 좋고 산 좋은 관광지에 사는 죗값을 치르는 시기.여름마다 강변가요제가 즐거운 구경이었지. ‘이름 없는 새’란 곡으로 대상을 받은 손현희란 가수가 있다. 무담시(괜히) 좋아하길 꽤 오래. 앨범에 담긴 ‘산골 아이’는 국악풍 정겨운 멜로디. “혼자서 온종일 기다림 속에 있었나. 놀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산골 아이. 울어도 웃어도 빈 하늘만…. 마을 간 엄마는 오질 않네. 산 넘고 물 건너 돌아올 그 외딴길로 풀잎만 입에 물고 달려가는 산골 아이….” 휴가철 외지인들 다녀가고 여기저기 빈 병이 나뒹굴어. 사지 멀쩡한 거지에게 목사가 ...

    2023.08.16 20:24

  • [임의진의 시골편지] 다리 밑
    다리 밑

    까딱 잘못했다간 정수리가 익을 거 같아. 햇빛에 꼬실라져서 딱 시껌댕이가 되어버릴까봐 얼굴을 가릴래도 조여오는 찜통더위. 보통 예전엔 이렇게 더운 날 다리 밑으로 달려갔지. 다리 밑에 평상을 펼쳐놓고 시커멓게 모여 지냈다. 집 없는 거지가 오래전부터 통째 점유를 해설랑 얼기설기 집을 지어 겨울을 나기도 하고, 여름엔 주민들이 팽나무 아래께나 기와가 거반 깨진 정자, 그리고 다리 밑에 보통들 부채를 휘저으며 앉아 계셨다. 물도 보이고 그늘도 있고, 국거리할 붕어나 피라미도 있고, 놀릴 때 다리 밑에서 주워와 키웠다면 서럽게 울던 애갱이들도 다리 밑 개울에서 멱을 감고 놀았다. 한국식 잼버리 야영이랄까.일이 없는 농한기엔 낮부터 소주를 깠는데, 상남자들은 이빨로 소주병을 땄다. 병따개가 어디 있나 묻기도 전에. 숟가락도 아니고 이빨로 병뚜껑을 재껴야 “아따메 멋져부요~” 박수를 받게 되는 법. 저 멀리 읍내에 치과의사는 손님이 늘 테니 살판이 나는 것인데, 일제 때...

    2023.08.09 20:13

  • [임의진의 시골편지] 당나귀
    당나귀

    황순원의 단편소설 <뿌리>는 목사 사택 지하실방에 살면서 오만가지 궂은일을 도맡은 교회 아줌마 이야기. 중년인 아줌마는 병들고 그늘진 얼굴을 가졌는데 아이들만 보면 얼굴이 꽃처럼 피어나. 그러다 겨울 추위에 병이 도져서 죽어가는 교회 아줌마 귀에다 대고 김 권사는 정말 야박한 말을 중얼거려. “근심걱정이 없는 천국에 가게 됐으니 기쁘지? 주님이 교회 아줌마를 영접하러 기달리구 계세요. 알겠지?” 강추위가 밀려드는 밤, 연탄을 아끼며 이불을 뒤집어쓴 교회 아줌마에게 한 젊은이가 찾아온다. 아들이었다. 정비공장에서 시운전하는 차에 가슴을 다친 청년, 치료비 때문에 팔아버린 엄마의 재봉틀을 들고 온 것. 다음날 목사 부인이 죽은 교회 아줌마를 발견하는데, 마치 두 사람이 잔 듯 한쪽엔 이불을 덮어주고 아줌마는 웅크려 죽어 있었대. 죽을 때라도 내 사랑은 꿈속에 찾아온다지. 사랑이 사람의 뿌리이고 전부야. 한 남자가 유기견센터에 와서 “가장 충성스러운...

    2023.08.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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