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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김종철의 수하한화
  • [김종철의 수하한화]브렉시트,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브렉시트,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6월24일, 영국의 국민투표 결과가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쪽으로 결론이 나자 온 세계가 화들짝 놀라고, 온갖 미디어가 폭포처럼 분석·논평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흥분상태가 가라앉는 듯하지만, 여전히 세계의 언론들은 ‘브렉시트’ 사태의 추이와 전망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문제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극히 당연하다. 브렉시트란 유럽의 중핵 국가가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주의적’ 연대체로부터의 이탈을 결정한 엄청난 사건이니 말이다.실제로 브렉시트는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이 가능한, 복합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령 세계 현실을 ‘아래에서 위로’ 보는 데 익숙한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그것은 무엇보다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지난 수십년간 세계 전역의 민초들과 자연세계를 난폭하게 짓밟고 유린해온 신자유주의의 횡포에 대한 사회적 약자들의 분노와 항변의 표출로 읽을 수 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이런 반응이 ...

    2016.07.06 21:07

  • [김종철의 수하한화]기본소득이라는 출구
    기본소득이라는 출구

    기본소득 도입 여부를 둘러싼 스위스의 국민투표 결과가 압도적 부결 쪽으로 나왔다. 이 결과에 대해 한국의 언론매체들도 큰 관심을 가지고 여러가지 논평·해설기사들을 내놓고 있다. 문제의 중요성에 비추어 당연한 현상이지만, 그중 웃기는 것은 일부 수구 (사이비)언론과 정치인들이 드러내는 반응이다. 그들은 “거봐, 그런 좌파적 발상은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거었여”라며 또다시 상투적인 ‘좌파 타령’을 늘어놓고 있다.그런데 이 국민투표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진지한 기사를 쓴 소수의 몇몇 ‘진보’ 언론들도 웬일인지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이번에 스위스에서 제안된 기본소득 금액 월 2500프랑(성인의 경우)은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300만원이라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상식으로는 상당한 고액이지만, 스위스의 물가를 고려하면 근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돈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이 금액이 실질적으로는 한국 돈 100만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금액이라는 것을 파악하...

    2016.06.08 20:54

  • [김종철의 수하한화]정치의 부재, 공화주의 정신의 결여
    정치의 부재, 공화주의 정신의 결여

    “국회의원이 안되면 보좌관이라도 만나기 위해 의원실을 누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환대받지 못했습니다. ‘정치의 부재’로 고통받고 있는 주권자들이 주권을 위임받은 자들에게 아주 작은 책임이라도 질 것을 부탁하는 자리에서 보험외판원처럼, 옹송그리며, 고개를 조아리며, 굽신거려야 했습니다. 어르신들과 일정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올 때마다 저는 진한 비애를, 외로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수십 번 국회를 다녔지만, 단 한번도 이런 감정 속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이것은 밀양 초고압송전탑 반대 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씨가 최근에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나서며 쓴 ‘출마의 변’ 가운데 한 대목이다. 이계삼은 몇 해 전까지는 고등학교 교사였으나 뜻한 바 있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새 삶을 준비하던 중, 송전탑 건설공사 때문에 삶터를 잃게 된 한 연로한 농민이 분신자결을 하는 충격적인 사태에 마주쳤다. 이후 그는 자신의 일은 접어두고 피해주민들과 함께 송전탑 공사의 부당함을 세상에 ...

    2015.12.23 19:20

  • [김종철의 수하한화]무욕의 정신, 진짜 에고이즘
    무욕의 정신, 진짜 에고이즘

    최근에 성북동 길상사를 다녀왔다. 길상사라면 다 알다시피 예전의 유명한 요정이었던 대원각 건물과 그 땅이 사찰로 바뀐 곳이다. 시인 백석의 연인이라고 뒤늦게 알려진 대원각 주인 ‘자야’ 여사의 간곡한 부탁으로 거의 억지로 길상사를 떠맡게 된 이가 법정 스님이었고, 금년은 그 법정 스님의 입적 5주년이다. 스님이 만든 단체인 ‘맑고 향기롭게’ 관계자에 의하면, 최후까지 스님은 법회 때마다 환경문제를 걱정하고, 곁들여서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읽어보라고 늘 신도들에게 권유했다는 것이다.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에 수많은 나무들에서 붉게 혹은 노랗게 물든 잎사귀들이 흩날리며 조용히 떨어지고 있는 길상사의 분위기는 그지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강원도 산골에 홀로 기거하시던 법정 스님은 법회가 열리는 날 오셔서 단 하루도 길상사에서 주무신 적이 없다고 한다. 아무리 늦어도 강원도까지의 먼 길을 당일로 되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왜 그러셨을까? 혹시 이 길상사의 지나치게 아름다운 경색 때문이었을...

    2015.11.25 20:39

  • [김종철의 수하한화] 학술원과 예술원은 왜 침묵하고 있나
    학술원과 예술원은 왜 침묵하고 있나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쓸데없는 평지풍파를 일으켜놓은 장본인이 국회에 나와서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하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고…더 이상 왜곡과 혼란이 없어야 한다”고 또다시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을 하고 있다. 보편적인 상식을 무시하고 시대착오적인 ‘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면서 그것을 ‘비정상의 정상화’ 작업이라고 우기는 논리적, 심리적 근거는 대체 무엇일까? 또, 제1야당 의원이라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저 행태는 무엇인가? ‘국가수반에 대한 예우’는 지켜야 한다면서 그 모욕적인 발언을 ‘국정 교과서 반대’라고 적힌 종이 팻말을 들고 그냥 무기력하게 앉아 듣고만 있는 저 한심한 모습 말이다. 그래도 그 상황에서 박수는 치지 않았다니 참 대단한 무훈을 세웠다고 말해줘야 할 것인가?대통령(그리고 그 측근들)뿐만 아니라 야당정치가들은 지금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오십보백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과서 국정화로 인해 교과서 내용이 어...

    2015.10.28 15:45

  • [김종철의 수하한화]프란치스코, 샌더스, 코빈
    프란치스코, 샌더스, 코빈

    몇몇 늙은이 때문에 이렇게 가슴이 뛰게 될 줄은 몰랐다. 세상 꼴이 하도 기막혀서, 미치지 않으려면 세속과 인연을 끊고 은둔생활을 하다가 때가 되면 조용히 이승을 떠나는 게 낫지 않을까--그런 (시건방진, 그러나 절박한) 생각에 빠져 있는데, 뜻밖에도 프란치스코 교황, 버니 샌더스, 제러미 코빈이라는 세계변혁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말하는 ‘지도자’들이 잇따라 출현하여 지금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다.재작년 취임 직후 발표한 <복음의 기쁨>을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가난한 교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교회”임을 천명했다. 그리하여 그는 “시장의 절대적 자율성과 금융투기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에 의한 ‘새로운 독재’ 때문에 “소수의 소득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반면에 다수의 삶이 피폐해지고 있는 모순을 지적하고, 이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자고 호소했다. 그 교황이 최근에는 현재 인류사회의 가장 긴급한 문제인 기후변화에 대한 신속하고 합리적인...

    2015.09.30 20:47

  • [김종철의 수하한화]‘패도’의 세계에서 ‘왕도’를 생각한다
    ‘패도’의 세계에서 ‘왕도’를 생각한다

    지난 주말 일본을 다녀왔다. 저명한 작가이자 세계적인 평화운동가였던 오다 마코토(小田實, 1932~2007)를 기리는 시민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임은 아시야(芦屋)시의 한 조용한 살롱에서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열린다. 지난 8년 동안 지속돼온 이 모임에는 관심 있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작가가 남긴 소설이나 평론을 읽거나 외부인사를 초빙하여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한다. 그 모임에서, 전후(戰後) 70년을 맞은 금년 8월의 특별연사로 한국인을 초청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던 모양이다.내게 참석해 달라는 연락이 온 것은 단순한 인연 때문이었다. 2003년 3월, 온 세계의 반대 목소리를 무시하고 부시 정권이 이라크를 공격했을 때, 나는 그 침략전쟁을 규탄하기 위해서 재직하고 있던 대학의 동료들과 함께 ‘세계 평화와 미국’이라는 이름으로 국제평화심포지엄을 열었다. 그때 우리는 <전쟁인가, 평화인가>라는 책을 쓴 오다 마코토 선생을 초청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

    2015.09.02 20:50

  • [김종철의 수하한화]김수행, 아름다운 영혼을 기리며
    김수행, 아름다운 영혼을 기리며

    부음을 들었을 때 아, 아까운 사람을 또 잃었구나 하는 몹시 허전한 느낌이었다. 특별히 내가 그의 죽음을 애도할 만한 개인적 인연이나 기억은 없다. 오래전 돌아가신 정치학자 (잠깐 국회의원으로 활동도 했던) 이수인 교수댁에서 딱 한 번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지만, 그와 우정을 나눈 적이 없다. 게다가 그가 심혈을 기울여 완역한 <자본론>이나 그의 저서를 꼼꼼히 읽어본 적도 없다. 단지 그때그때의 필요 때문에 그 저술의 일부를 뒤적이거나 그가 쓴 신문의 칼럼을 흥미롭게 읽어봤을 뿐이다.우리 세대는 <자본론>을 통독하거나 충실히 읽은 경험자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보다 10년 정도 위 세대는 예전 일본 학자들이 번역한 <자본론>을 읽는 게 가능했겠지만, 해방 후 오로지 한글로 글을 읽기 시작한 세대들에게는 (예외는 있겠지만) 일본어 해독력이 없었고, 그리고 무엇보다 광적인 반공체제 속에서 무슨 판본이건 <자본론>을 구해서 읽는다는 것은...

    2015.08.05 21:27

  • [김종철의 수하한화]정치와 용기
    정치와 용기

    세상을 뒤덮고 있는 먹구름이 걷힐 것인가? 국가 파산 위기에 빠진 그리스의 민중이 국민투표를 통해 그동안 세계를 지옥으로 만들어온 핵심적 요인, 즉 글로벌 자본주의의 약탈적 금융시스템에 대해 명확한 거부의사를 밝혔다.반년 전, 그리스에 ‘시리자’라는 좌파연합 정부가 들어설 때만 하더라도, 이들이 어떻게 막대한 국가부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필시 모처럼 들어선 민주정부이지만 결국은 사태 수습에 실패하고, 붕괴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한 사람도 많았다. 새로운 금융지원을 받아봤자 그것이 도로 채권자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악순환의 구조 속에서 독자적인 통화 발행권도, 통화 관리수단도 없는 국가가 어떻게 국민들의 생존·생활을 보장하고, 나아가 경제를 다시 일으켜 빚을 갚을 수 있을지 막막해 보였기 때문이다.게다가 ‘트로이카’인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리스 정부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정책,...

    2015.07.08 21:07

  • [김종철의 수하한화]메르스와 민주주의
    메르스와 민주주의

    늘 붐비던 시내가 한산하다. 좀 과장하면 유령도시 같다. 하기는 도시의 이 조용한 풍경은 그 자체로 나쁘지는 않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런 속 편한 소리를 할 상황이 아니라는 게 문제이다. 거리 풍경이 이렇게 된 것은, 감염력이 강하고, 치료약이 없고, 치사율이 높다는 메르스라는 유행병의 갑작스러운 확산과 더불어 시민들이 공포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타인들과의 교류·접촉을 극도로 꺼리며, 스스로 ‘자가격리’의 생활로 들어가고 말았다. 소문에 의하면, 어떤 사람들은 출입을 일절 그만두고, 필요한 생활물자도 배달에 의존해서 지낸다고 한다. 혹시 타인의 손이 닿았을지도 모르는 현관문 손잡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알코올로 닦으면서.인간인 이상 우리는 타인과 더불어 살지 않으면 생존·생활이 불가능함에도,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 타인들로부터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기묘한 상황이 되었다. 옛 예언서가 경고해온 ‘백조일손’(백 명의 조상에 한 명의 자손)의 상황...

    2015.06.1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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