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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김종철의 수하한화
  • [김종철의 수하한화]생각 없는 정치, 인간다운 삶의 소멸
    생각 없는 정치, 인간다운 삶의 소멸

    “깨끗한 에메랄드빛 물이 장미와 인동덩굴들로 둘러싸인 바위들에 부드럽게 부딪히며 찰싹거리거나 자갈들이 깔린 강변과 흰 모래톱 위로 굽이치며 흘러가고 있다.” 이것은 영국왕립지리학회 회원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1898년에 쓴 <조선과 그 이웃들> 속에서 묘사한 남한강 상류의 모습이다. 이 아름다운 세계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남한강뿐만 아니라 한국의 거의 모든 큰 강들은 곳곳에서 댐과 콘크리트 시설물들에 의해 끊임없이 가로막히면서 강다운 모습을 계속 상실해왔다. 여기에 결정타를 입힌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이명박 정부가 강행한 소위 ‘4대강 사업’이다.강을 정비한다며 모래톱과 강바닥을 분별없이 파헤치고, 옥답 중의 옥답인 강변 둔치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고, 대규모 댐들로 곳곳에서 강의 흐름을 막아버리면, 강이 완전히 파괴된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알 만한 너무도 명백한 상식이었다. 그런데도 온갖 말도 안되는 논리를 들이대며 정부는 어용언론과 어용학자들로부터 적...

    2014.07.23 21:02

  • [김종철의 수하한화]왜 전교조를 지켜야 하는가
    왜 전교조를 지켜야 하는가

    세월호 참사 직후 나는, 이 나라의 집권세력에 대하여 어느 지면을 빌려 다음과 같이 썼다. “(그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통절히 자각하고, 개과천선할 가능성은 있는가? 단 1퍼센트도 없다. 많은 아이들이 물에 잠겨 있는 동안은 잠시 엎드려 있겠지만, 곧 그들은 다시 그들의 오래된 습성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의 뿌리 깊은 무지와 교만, 무교양과 무례함이 빚어내는 거짓과 위선의 정치에 치를 떨며 한없는 무력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한겨레> 2014·5·7)불행하게도 내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지방선거 기간 동안 “반성합니다, 사과합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라며 90도로 허리를 꺾어 간절히 빌던 사람들이 선거가 끝나자마자 표변해버렸다. 내 예상은 맞았지만, 완전히 맞지는 않았다. 솔직히 나는 이렇게 빨리 그들이 가면을 벗고, 또다시 말도 안되는 행태를 노골적으로 드러낼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직도 진도에서는 바닷물 속에서 건져내지 못...

    2014.06.25 20:57

  • [김종철의 수하한화]진상규명, 누가 해야 하나
    진상규명, 누가 해야 하나

    세월호 참사는, 생각하면 할수록, 기막힌 사태이다. 우리는 이 사태를 통해 이 나라가 얼마나 엉터리 나라인지를 너무나 아프게 확인하고 말았다. 사고 이후 어느새 한 달 보름이 지났음에도 아직도 물에서 건져내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지내는 게 죄스럽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지난 한 달여 동안 많은 사람들이 크나큰 슬픔과 분노, 그리고 절망감 속에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되뇌며 지낸 것은 다소간 이 비슷한 기분을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그러나 어차피 우리들 대부분은 이 엉터리 나라에서 계속해서 삶을 영위하고, 자식들을 낳아 기르지 않으면 안된다. 이 상황에서 적지 않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이민을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기는 이민도 그 나름으로 ‘애국’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만약에 세계의 민중이 어느 나라든 자유롭게 선택해서 거기로 가서 살 수만 있다면, 세상은 오늘날보다는 ...

    2014.05.28 20:55

  • [김종철의 수하한화]‘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비극
    ‘기업하기 좋은 나라’의 비극

    오래된 일이지만, 한국에서 오래 살아온 어떤 미국인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에 따르면, 한국과 이탈리아 사이에는 두드러진 공통점이 몇 가지 있다. 첫째는 반도라는 지리적 조건, 둘째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노래를 좋아하고, 셋째 사람들이 거짓말을 잘하고, 사기를 잘 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인이나 이탈리아인 중에는 미국에 친척이 없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것은, 그 글의 전반적 흐름으로 볼 때, 다분히 한국인에 대한 경멸적인 시선이 내포되어 있는 발언이었다. 세월호 침몰 사태를 보면서 나는 저 미국인이 아직 살아 있다면 이탈리아와 한국의 공통점에 또 한 항목을 추가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즉, 해난 사고를 당하면 선장이 가장 먼저 배와 승객을 버리고 탈출하는 나라라는 공통점 말이다.대학생 때 내가 흥미롭게 읽은 소설 중에 조셉 콘라드가 쓴 <로드짐>이 있었다. 이상주의자인 젊은 주인공 항해사가 폭풍을 만나 배가 좌초하자 자기도 모르게 승객을 버려...

    2014.04.30 21:05

  • [김종철의 수하한화]기본소득과 ‘도덕경제’
    기본소득과 ‘도덕경제’

    “마을의 공유지에 참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여름이면 그 나무 그늘은 양치기와 양들의 쉴 곳이 되고, 도토리들은 인근 농민들이 키우는 돼지의 먹이가 되며, 마른 나뭇가지들은 마을의 과부들에게 땔감을 제공한다. 봄철에 새로 생긴 잔가지들은 성당을 꾸미는 데 요긴하게 쓰인다. 그리고 해질 무렵이면 그 참나무 밑에서 마을 의회가 열린다.”이것은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쓴 어떤 글의 한 대목이다. 이 시적인 묘사에서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공유지’라는 개념일 것이다. 산업사회 이전의 전통사회에서 대개 공유지(commons)라는 것은 특정인에게 귀속된 사유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 구성원들에게 개방된 공공재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전승되어온 관습에 따라 사람들은 그것을 적절히 자유롭게 이용함으로써 아무리 가난한 살림살이일지라도 인간다운 품위를 지키며 최소한의 생존·생활을 영위하는 게 가능했다. 그리하여 가난한 민중은 비록 물질적 생산력이 낮은 삶의 환경 속에서도 이웃과...

    2014.04.02 20:50

  • [김종철의 수하한화]‘기본소득’이라는 희망
    ‘기본소득’이라는 희망

    모든 사람에게 인간다운 존엄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초생활비가 무조건 보장되어 있는 사회에서 살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게 단지 유토피아적인 몽상에 그치지 않고 과연 인간 세상에서 현실화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우리는 그것은 가능하고, 현재 세계의 여러 곳에서 비록 부분적이지만 실제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고 대답할 수 있다. ‘기본소득보장제’가 바로 그것이다.지난해 10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제 도입을 국민투표에 부치기 위한 서명운동이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이후, 한국에서도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런데 종래의 사회복지 프로그램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기본소득’이 재산이나 건강, 취업 여부 혹은 장차 일할 의사가 있는지 없는지 등, 일절 자격심사를 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모든 사회성원에게 일정한 돈을 주기적으로 평생 지급한다는 데 있다. 얼핏 황당무계하게 들리지만, 그러나 ‘기본소득’은 이미 200년 이상의 전통을 가진 개념임을 주의할 필요가 ...

    2014.03.05 21:02

  • [김종철의 수하한화]과학자의 양심과 ‘국익’
    과학자의 양심과 ‘국익’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탈핵운동가들의 초청으로 방한한 해외 전문가나 활동가들이 적지 않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기고 돌아간 이는 1월 하순 서울에 와서 강연을 하고 TV방송 출연까지 했던 일본의 대표적인 반핵 과학자 고이데 히로아키 교수일 것이다. 그는 <은폐된 핵의 진실>이나 <원자력의 거짓말> 등의 저자로 이미 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막상 육성을 직접 듣게 된 사람들은 그의 거침없이 솔직하고 양심적인 발언 때문에 책만 볼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큰 감명을 받았다. 예를 들어,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자로들의 현재 상태를 아무도 정확히 모르며, 그냥 물만 퍼붓고 있다”고 말하며, “일본 땅은 지금 대부분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다, 일본여행은 삼가는 것이 좋다”라든지 “일본산 수산물은 생산지와 출하지역이 다르게 표시될 경우가 많아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는 등, 자기 나라의 ‘국익’을 해치는 발언까지 그는 조금도...

    2014.02.05 21:07

  • [김종철의 수하한화]문명의 지속가능성과 민주주의
    문명의 지속가능성과 민주주의

    새해 첫날, 경향신문 신년기획 ‘문명, 그 길을 묻다’의 첫회 대담을 흥미롭게 읽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문명의 붕괴> 등 몇 권의 중요한 책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잘 알려져 있긴 하지만, 왜 하필 이 시리즈의 선두에 내세워졌는지 궁금하다. 아마 신문 편집자도 지금 이 문제를 가장 절박한 문제로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이 문제라는 것은 물론 문명의 지속가능성 여부다. 아니, 이 지상에서 인간 생존의 지속가능성 자체의 문제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르겠다.다이아몬드 교수의 이야기 중 가장 심란한 대목은, 지금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고 할 때 현재의 어린 세대나 장차 태어날 아이들이 2050년쯤 맞이할 세상이 어떤 세상일지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자기가 생물학자에서 생태주의자로 변신하게 된 결정적인 동기도 자신의 쌍둥이 자식들의 나이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다이아몬드 교수 자신은, 지구환경이 생태적으로 황무지가 되어 있을 2050년쯤에는 이미 저세...

    2014.01.01 20:50

  • [김종철의 수하한화]‘복음의 기쁨’
    ‘복음의 기쁨’

    전주에서 가톨릭 사제들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고, 그 자리에서 박창신 신부의 강론이 있었던 것은 지난 11월22일이었다. 그 강론에서 이 원로 신부는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를 갈수록 유린하고 있는 정권에 대해 매서운 비판을 했다. 그러자 수구세력과 정부는 거두절미하고 이 발언 중에 나온 한마디 말을 꼬투리 잡아 과장되게 왜곡해 이적성 발언이라고 규탄하기 시작했다. 또다시 ‘종북 척결’이라는 상투적인 공격 논리를 꺼내들면서 말이다. 이 와중에 대통령까지 나서 “묵과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자 검찰이 수사에 들어간다는 뉴스도 나왔다.그중에서도 특기할 것은 ‘대한민국수호천주교모임’이라는 단체가 보여준 반응이다. 그들은 성직자가 정치에 개입했다고 하여 박창신 신부를 파문해 줄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서울 주재 교황청 대사관에 제출했다. 제출 날짜는 11월28일이었다. 교회와 국가 혹은 종교와 정치의 관계라는, 역사가 오래된, 그러나 결코 칼로 무를 자르듯이 명쾌하게 정리할...

    2013.12.04 21:04

  • [김종철의 수하한화]물구나무선 세계
    물구나무선 세계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는 정의(正義)가, 뱀처럼, 오직 맨발인 사람들만을 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자기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저주받고 공격받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말했고, 그 때문에 총을 맞고 죽었다.” 이것은 우루과이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가 최근에 쓴 에세이에서 한 말이다.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감고, 진실이 핍박을 당하고, 거짓이 활개를 치며, 거의 모든 게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오늘의 이 뒤틀린 세계를 이보다 더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갈레아노의 이 말이 군사독재 하에 신음하고 있던 어떤 특정 사회 상황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우리는 적반하장이라는 말로써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기괴한 사태가 끊임없이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매일매일 기막힌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국가기관, 그것도 막강한 특권이 주어진 정보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명확히 ...

    2013.11.0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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