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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김종철의 수하한화
  • [김종철의 수하한화]원전은 서울에, 권력자는 최전선으로
    원전은 서울에, 권력자는 최전선으로

    남아프리카의 가톨릭 신부이자 학자인 앨버트 놀란이 쓴 <기독교 이전의 예수>라는 매우 흥미로운 책이 있다. 이 책의 주안점은 기독교 성립 이전의 상황, 즉 로마제국의 변방 식민지였던 팔레스티나에 살던 한 인간을 “진지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동시대인의 눈을 통해서” 묘사하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 책에서 독자들이 보는 것은 메시아, 구원자, 삼위일체의 신(神) 등등 기독교 신앙이 전제된 예수상이 아니라 가난한 식민지 땅에서 이웃들과 나날의 슬픔과 기쁨을 함께하면서 살았던 ‘목수의 아들’의 실존적 삶과 그 내면이다.앨버트 놀란의 문제의식은, 태생으로 보나 교육으로 보나 중류계급 출신이며 삶의 조건이 별로 불리하지 않았던 예수가 “하층민 중에서도 최하층 사람들과 어울려 사귀고 또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즉, 예수는 왜 스스로 버림받은 자들과 함께 있기를 ‘선택’했던가? 이에 대한 간명한 답변은, 예수가 엄청난 연민의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연민이...

    2013.10.09 22:06

  • [김종철의 수하한화]진짜 싸움, 가짜 싸움
    진짜 싸움, 가짜 싸움

    이 세상에 미래가 있을까? 우리에게 정말 희망이 있는가? 연일 ‘내란음모’니 뭐니 하며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뉴스쇼’들을 보고 있자니 괴롭다기보다 한심하다는 생각만 든다. 하기는 현역 국회의원이 ‘내란음모’에 연루되었다니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되든 혐의 사실만으로도 충격적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혐의를 뒷받침하고, 인신 구속의 근거로 제시된 증거물, 즉 소위 ‘녹취록’을 읽어보면 이게 코미디도 아니고 대체 뭔가 하는 허망한 생각이 절로 든다. 장난감 총을 개조해서 뭘 어떻게 한다는 것인지, 통신시설과 유류탱크를 어떻게 공격해서 뭘 하자는 것인지, 혹시 이 방면의 전문가들은 짐작하는 게 있는지 모르지만, 우리처럼 어리석은 백성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잡히는 게 없다. 당사자들한테는 실례 되는 말이겠지만, 이른바 ‘주사파’에 속한 활동가나 정치인들의 지적·정신적 능력이 이 정도인 줄은 정말 몰랐다.국가권력도 한심하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벌써 수년 전부터 사찰을 시작해 획...

    2013.09.04 21:25

  • [김종철의 수하한화]‘괴담’ 운운할 때인가
    ‘괴담’ 운운할 때인가

    후쿠시마 관련 ‘괴담’이 떠돈다며 단속·처벌하겠다는 총리의 의지가 표명됐다. 대체 ‘국민행복을 저해하는 괴담’이 뭔지 들여다보니, 일본 국토는 절반 이상 방사능으로 오염됐다, 혹은 위험한 일본산 수산물은 먹지 말아야 함에도 현재 한국으로 대량 반입되고 있다 등등, 실은 내 자신이 여러 곳에서 공개적으로 해왔던 이야기들이다. 앞으로는 정부나 원자력 마피아, 사이비 언론의 말만 듣고 조용히 입 닫고 살아야 할까? 군사독재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인가? 어쩐지 으스스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년 반, 충격과 슬픔, 분노 속에서 지냈다. 사고 직후 멍하게 있다가 닥치는 대로 자료를 찾아보던 중 어쩐지 이 사태가 체르노빌을 능가하는 세계적 대재앙이 될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쨌든 이전까지 하던 일을 잠시 중지하고, 내가 해독할 수 있는 종류의 원자력 관련 문헌을 찾아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읽은 것을 토대로, 가급적 많은 동료 시민들과 기본 인식...

    2013.08.07 21:53

  • [김종철의 수하한화]국익이라는 관념, 악마의 논리
    국익이라는 관념, 악마의 논리

    “한국인이 아닌 중국인 두 명이 사망자로 파악됐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시아나 여객기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사고를 보도하면서 어느 종편 텔레비전 앵커가 했다는 ‘멘트’이다. 항공기 사고란 대개 대참사로 이어지기 쉽고, 항공여행은 현대인에게는 불가결한 이동수단이다. 따라서 항공기 사고는 폭발적인 뉴스가 되기 쉽다. 더욱이 이번에는 대규모 인명 피해는 면했지만 비행기가 불타고 대파되는 큰 사고였다. 그 와중에서 정신없이 보도 작업에 몰두하다 보면 멀쩡한 사람도 이성을 잃는 경우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저 ‘멘트’는 너무도 난폭한 발언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건 인간으로서 할 만한 말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는 10대의 꽃다운 소녀들이었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 방송을 접한 많은 사람이 경악하고, 분개한 것은 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그런데 조금만 더 주...

    2013.07.10 21:38

  • [김종철의 수하한화]전력대란, 정말 두려운 게 뭘까
    전력대란, 정말 두려운 게 뭘까

    꼭 30년 전 미국이라는 나라에 난생처음 가서 대학원에 등록을 하고, 록펠러가 지어줬다는 건물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야간수업을 듣고 제일 늦게 방을 나서던 나는 전등을 끄고 나오기 위해서 스위치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스위치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강의 시간에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궁금해서 옆방에 가보았다. 거기도 스위치 같은 것은 없었다. 웬일일까? 나중에 들으니, 건물 전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전기는 중앙변전소에서 통제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밤낮없이 강의실이건 연구실이건 전기를 켜놓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황당하고도 충격적인 뉴스였다.그러니까 미국에서는 전기란 공기 같은 것, 즉 건물 속에 들어가면 그냥 늘 있는 것이어서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전기라는 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약자의 삶과 자연이 망가지고 있는지,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생활구조가 아니었다.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듣던 “협상 불가능한 미국식 ...

    2013.06.12 21:43

  • [김종철의 수하한화]변화냐 자멸이냐
    변화냐 자멸이냐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마침내 400ppm을 넘어섰다. 하와이의 관측소에서 측정된 결과를 과학자들이 엊그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그렇다. 예견된 수치이지만, 매우 두려운 측정결과이다. 이대로 가면, 그래도 인류문명의 존속이 가능할 것으로 믿어지는 섭씨 2도 상승이라는 한계치를 훨씬 넘어서 지구 평균기온이 빠르게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이미 기후변화는 우리 모두가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감하는 현실이 되었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전면적인 혼돈상태가 곧 밀어닥칠 것을 경고하는 과학적 예견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의 권력엘리트들과 주류 미디어가 기후변화 현상에 대하여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뻔질나게 열리는 엘리트들 간의 국제회의는 최근 들어 기후변화 문제를 거의 단골주제로 삼고 있다. 실제로 금년 초 다보스포럼에서도 경제위기와 지구온난화의 관련성이 핵심의제의 하나였다. 특히 주목을 끈 것은 이 회의에 참석한 영국 경...

    2013.05.15 21:47

  • [김종철의 수하한화]차베스, 대처, 미디어
    차베스, 대처, 미디어

    한 달 간격으로 현대 세계 정치에 잊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기고 두 ‘거인’이 세상을 떠났다. 3월 초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암 투병 끝에 사망한 데 이어서 4월 초에는 영국의 마거릿 대처 전 총리가 운명했다. 세계의 언론들은 단순히 사망소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업적과 실패에 관해서 매우 신속하고 활발한 분석·해설·논평을 쏟아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걸출한 인물이었던 이들의 죽음에 대하여 세계의 언론이 비상한 열의를 갖고 반응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러나 세계의 언론들이 내놓은 기사와 논평들을 주의깊이 읽어본 사람이라면, 지금 이 세계가 화해하기 어려운 두 개의 가치, 신념, 철학, 세계관으로 양극화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기사의 분량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언론의 성향에 따라 두 사람에 대한 평가가 확연히 갈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대체로 언론이 부...

    2013.04.17 21:31

  • [김종철의 수하한화]차베스와 근원적 민주주의
    차베스와 근원적 민주주의

    차베스 대통령 사거 이후 열흘 남짓 시간이 흘렀다. 왜소한 기술관료 정치가 대세인 오늘의 상황에서 이 예외적인 거인 혹은 ‘풍운아’에 대한 평가가 궁금해서 꽤 열심히 세계의 주요 미디어 온라인판을 읽었다. 예상보다 인색하거나 가혹한 평가가 주류였지만, 그럼에도 몇몇 매체는 ‘균형’을 고려해서인지 차베스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글도 게재했다. 예를 들어, 뉴욕타임스는 브라질 전 대통령 룰라의 글을 실었고, 영국신문 가디언에는 저명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타릭 알리의 ‘차베스와 나’라는 글이 실렸다.타릭 알리의 글은 차베스와의 인연과 개인적인 일화가 소개돼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차베스와 쿠바의 카스트로 사이의 관계가 이념적·사상적으로뿐만 아니라 기질적으로도 얼마나 친밀한 것이었던가를 설명하는 대목 같은 게 특히 그랬다. 즉, 카스트로와 차베스는 밤늦도록 독서에 몰입하는 공통한 습관이 있고, 오랫동안 매일 한 번 이상 통화를 해왔다. 어떤 때는 새벽 3시에 통화하면서 각자 읽...

    2013.03.20 21:49

  • [김종철의 수하한화]권력의 거짓말, 노예의 언어
    권력의 거짓말, 노예의 언어

    고전적인 교양소설 <빌헬름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서 괴테는,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면 날마다 몇 가지 일을 습관적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시 한 편을 읽고, 훌륭한 그림을 적어도 하나는 보아야 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하루 중에 이치에 맞는 말 몇 마디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치에 맞는 말 몇 마디’라는 말에 못지않게 흥미로운 것은 ‘가능하다면’이라는 유보적 표현이다. 즉, 괴테는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이치에 맞는 말’을 듣거나 말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괴테가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은, 다시 말하면, 18세기 독일사회의 ‘후진성’에 대해서 그가 치를 떨었다는 얘기가 된다. 원래 ‘교양’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떤 점에서 독일사회의 후진성의 증표였다. 당시 영국이나 프랑스는 시민혁명을 통해서 근대적 문물제도를 확립해가며 세계사적 변혁의 선두에 서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서는 여전히 중세적...

    2013.02.20 20:59

  • [김종철의 수하한화]‘좋은 삶’과 4대강 파괴
    ‘좋은 삶’과 4대강 파괴

    지금 세계는 전대미문의 복합적 위기상황에 처해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위기, 석유 및 각종 자원이 값싸고 풍부하게 공급되던 시대의 종식, 광범위한 농경지 축소 혹은 사막화, 근대적 금융통화제도의 파탄과 세계 동시 채무위기, 사회적 격차의 심화, 걷잡을 수 없는 실업률과 범죄의 증가 등등, 인간다운 삶의 지속을 근원적으로 위협하는 사태 앞에서 인류사회는 현재 속수무책이다.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도 믿지 않는 헛된 공약을 남발하며 임시미봉책에 골몰할 뿐, 미래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장기적인 비전을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무능력의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답한다면, 아직도 그들이 성장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따져보면, 오늘의 이 위기상황은 유한한 지구상에서 무한한 진보의 추구라는 맹목적인 성장 논리가 초래한 필연적인 결과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기술적 재간이 있다 하더라도 인간의 삶이 근본적으로 지구가 제공하는 한정된 자원과 생태적 조건을 벗어나...

    2013.01.23 2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