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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김종철의 수하한화
  • [김종철의 수하한화]밥의 위기와 민주주의
    밥의 위기와 민주주의

    예상 못한 것은 아니지만, 서글픈 선거 결과이다. 어차피 합법적인 경쟁이니만큼 비록 내가 원했던 결과가 아닐지라도 평정심을 잃지 말고 순순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기는 또 누가 아는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그러나 며칠이 지났건만 여전히 울적하고, 허망한 기분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다.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는다. 왜 이럴까. 5년 전에는 보나마나 뻔한 결말이었기 때문인지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는 실패한 정권은 심판받는 게 대의민주주의의 기본원리에 부합한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은 성격이 전혀 다른 선거였다. 이번 선거의 독특한 성격은,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한, 박정희 시대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암묵리에 핵심적인 이슈가 된 선거라는 점이었다. 그리하여 군사독재체제에서 벗어난 지 25년이 경과한 지금 과연 다수 한국인이 어떤 가치를 보다 중하게 여기는지 명확히 판별할 기회...

    2012.12.26 21:13

  • [김종철의 수하한화]말 따로, 행동 따로
    말 따로, 행동 따로

    번개시장에는 번개가 없고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국화빵에는 국화가 없고정치판에는 정치가 없네이것은 작고한 시인 이선관이 쓴 ‘없다’라는 시의 전문이다. 절로 웃음이 나는 유머러스한 작품이지만, 그러나 생각해보면 매우 심각한 ‘진실’을 내포한 은유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선관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그는 비근한 일상적 경험이나 하찮은 사물들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투박한 언어로 언급하다가 의외의 순간 시대와 사회의 근본 모순과 어둠을 비수처럼 날카롭게 폭로하는 놀라운 재능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가로수에 전등을 달아 거리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장면 앞에서 시인은 돌연 나무들의 편이 되어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시여/ 당신 아들 탄생도 좋지만/ 제발 잠 좀 자게 해주십시오.” 구세주의 탄생을 기린다면서 정작 나무라는 피조물에 대한 배려는 털끝만큼도 없는, “말 따로, 행동 따로”의 타락한 현실에 대한 이보다 더 간결하고 힘...

    2012.11.28 21:24

  • [김종철의 수하한화]계속되는 박정희 시대
    계속되는 박정희 시대

    웃기는 소리지만, 예순을 넘긴 이 나이에도 군복차림에다가 군모를 쓰고 있는 꿈을 꾸다가 놀라서 깨는 경우가 종종 있다. 젊었을 적에 특별히 험한 군대생활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악몽’이 아직 따라다니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출생 이후 내 최초의 기억은 대개 6·25 전란과 관계되어 있다. 남해의 어떤 섬 해변에서 굴비처럼 철사에 묶여진 사람들의 시체가 떠밀려 와 있는 기괴한 모습을 본 기억, 그리고 피란에서 돌아온 뒤에도 밤만 되면 어딘가에서 터지는 포탄의 굉음에 짓눌려 지낸 기억 따위가 그렇다. 그러나 당시 네다섯 살짜리가 겪은 이 단편적인 장면의 의미를 짐작이나마 할 수 있게 된 것은 나중에 커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듣고, 책을 보면서였다. 보도연맹이니 빨치산이니 하는 것을 어린아이가 알 도리는 없었다. 아이 때는 아무리 끔찍한 장면일지라도 그 의미를 모르는 이상, 그게 내면화되기는 어려운지 모른다. 실제로 내게 훨씬 큰 상처가 된 것은 좀 더 커서 고등학교 ...

    2012.10.31 21:59

  • [김종철의 수하한화]왜소한 정치, 상상력의 빈곤
    왜소한 정치, 상상력의 빈곤

    대선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의 포부와 이상, 그리고 그 실현 방안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발언을 아직 들을 수 없다. 참으로 답답하다. 물론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신기하게도 여야 가릴 것 없이 경제민주화를 말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운 복지국가를 들먹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이러한 원론 수준의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누구든 듣기 좋아할 만한 언설일 뿐이다. 그러니까 그것은 공허한 이야기이다.하기는 찰나적인 대중적 인기가 모든 것을 좌우하는 ‘극장정치’의 시대에 시대상황을 정확히 읽고 그것을 설득력 있는 정치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식견과 능력을 갖춘 정치지도자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지 모른다. 지금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은 매스미디어의 주의를 끌기 위한 갖가지 수준 낮은 쇼와 이벤트, 저열한 정치적 책략일 뿐이다. 엄청난 비용과 사회적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왜 선거를 해야 하는지 알다가도 모...

    2012.10.03 21:05

  • [김종철의 수하한화]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용기

    옛 중국의 사회적 위계질서는 엄격했다. 수많은 백성 위에 관료가 있었고, 관료조직의 정점에 대신(大臣), 그리고 그 위에는 말할 것도 없이 황제가 존재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황제 위에 또 누군가가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한 존재를 후세인들은 일민(逸民)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그는 황제의 권력 바깥에 있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원래 군주의 권력행사는 신하를 자처하는 자들의 협력 없이는 실현 불가능하다. ‘일민’이란 말하자면 그 신하됨을 거부한 인간이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의 인간적 존엄을 지키는 것이 가능했으나 동시에 온갖 시련과 불이익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중국 역사상 대표적인 ‘일민’은 아마 시인 도연명(陶淵明)일지도 모른다. 그는 동진(東晋) 사람으로 지방 여러 곳에서 관직생활을 하다가 41세에 사임하고 향리로 돌아가 평생 농사를 짓고 살기로 결심했다. 그때 그가 쓴 것이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폐해지고 있는 지금 내 어찌 아니 돌아갈 것인가”로 시작되는 ...

    2012.09.05 21:32

  • [김종철의 수하한화]‘언덕 위의 구름’서 ‘하산의 사상’으로
    ‘언덕 위의 구름’서 ‘하산의 사상’으로

    일본이 달라지고 있다. 평소에 자기의사를 명확히 잘 표현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데모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1960년 안보투쟁 이후 50년 동안 자취를 감췄던 대규모 항의집회가 지금 일본의 주요 도시들에서 가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물론 후쿠시마 원전사고 때문이다. 그러나 ‘사요나라 원전’이라는 슬로건 밑에서 진행되는 이 데모는 후쿠시마 사고 직후보다도 사고 1년이 넘은 지금 훨씬 더 강도 높게 끈질기게 계속되고 있다.데모에 익숙한 한국인들의 감각으로는 일본의 데모가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또, 그동안 일본이라고 해서 가두에서 전혀 시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흔히 극우단체들에 의한 시대착오적인 일탈행동의 표출에 지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들 중에는 민주화 투쟁을 통해서 군사정권을 종식시킨 한국의 경우를 내심 부러워하며 콤플렉스를 느낀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데모를 할 줄 아는 한국사회야말로 어떤 점에서 일본인...

    2012.08.08 21:21

  • [김종철의 수하한화]민주주의, ‘국민행복’의 선결조건
    민주주의, ‘국민행복’의 선결조건

    여당 대선 후보가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선거용임을 감안하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헛소리로 끝나게 될 말이라 할지라도 정치가가 선택하고 사용하는 언어에는 그 자신의 세계관이나 현실인식이 얼마간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차기 집권의 가능성이 높은 유력 후보가 ‘국민의 행복’을 언급한 것은 어쨌든 다행스럽다.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국민의 80%가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절망적 현실을 적어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발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행복’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다면, 단지 미래의 일로 약속만 할 게 아니라 집권을 하기 전이라도 지금 당장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이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 자신을 지지하는 확고부동한 유권자를 30% 이상 확보하고 있는 여당 정치지도자는 그 자체로 이미 강력한 권력...

    2012.07.11 21:10

  • [김종철의 수하한화]IAEA와 도덕적 감수성
    IAEA와 도덕적 감수성

    국제원자력기구(IAEA) 소속 전문가들에 의한 고리원전 1호기 안전점검 결과가 발표되었다. 이들은 발전소의 ‘안전문화’에는 문제가 없지 않지만, 설비상태는 양호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후쿠시마 이후 안전성 강화 대책이 착실히 이행되고 있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런 발표에 반발할 지역주민이나 탈핵활동가들을 의식해서인지 이들은 또한 자신들이 한국 원전당국의 ‘들러리’가 아니라 ‘독립적인 전문가’라는 사실을 강조했다.이게 사실이라면 환영해야 할 뉴스이다. 고리원전 상태에 대한 심각한 불안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게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이다.한국의 원전당국은 평판이 매우 나쁜 고리원전 문제를 ‘국제기구’의 도움으로 척결하려는 의도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기관도 아니고, IAEA 점검단을 초빙해서 조사를 맡겼다는 것은 처음부터 이 문제를 공정하게, 객관적으로 처리할 의사가 없었음을 스스로 폭로했다고 할 수 있다....

    2012.06.13 21:15

  • [김종철의 수하한화]‘성장의 한계’ 40년
    ‘성장의 한계’ 40년

    라는 책이 출판된 것은 1972년이었다. 이 책은 현재의 추세가 그대로 계속된다면 2020∼2050년 사이에 인구, 산업 및 식량생산, 자원공급과 환경오염이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 근대적 산업문명 체제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데이터를 근거로 예측했다. 이러한 예견(혹은 경고)은 당시의 상황에서 매우 충격적인 것이어서 세계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리하여 그 후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지금까지 1000만부 이상이나 팔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최근 다시 이 책이 화제가 된 것은 출판 40주년을 기념하여 ‘스미소니언 협회’가 주최한 심포지엄 때문이다. 지난 3월 워싱턴에서 열린 이 모임에는 저자들 중 아직 생존해 있는 두 사람이 참석했고, 그들은 자신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장’을 추구하는 데 여념이 없는 오늘날의 세계 현실을 개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는 은퇴 교수인 데니스 메도즈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 책을 쓸 때 우리는...

    2012.05.16 21:46

  • [김종철의 수하한화]녹색정치의 가능성, 언제쯤 열릴까
    녹색정치의 가능성, 언제쯤 열릴까

    총선 결과는 실망스럽기 이를 데 없다. 선거란 무엇보다 집권세력의 공죄를 준엄하게 심판하는 행위여야 하고, 그 심판은 민주주의의 존속에 불가결하다. 이것은 초보적인 진실이다. 그런데 딴 것은 젖혀두고, 현 정권은 민간인 사찰 문제 하나만으로도 엄중한 정치적 단죄를 받아야 마땅했다. 사찰이란 민주주의를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가장 비열한 통치 방식이다. 개인적 약점을 캐내 정치적 저항이나 반대 목소리를 침묵시키려는 게 ‘사찰’의 동기이기 때문이다. 그런 짓을 끊임없이 자행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는 상황에서의 선거였음에도, 집권세력이 또다시 국회 제일권력을 차지하는 기이한 사태가 발생했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침체를 보여주는 서글픈 증거가 아닐 수 없다.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번 선거 결과는 집권당의 승리로 해석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미 여러 사람이 지적했듯이, 정당별 득표결과를 보면 범여권에 비해 범야권 쪽의 지지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야당세력은 이번에...

    2012.04.18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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