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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김종철의 수하한화
  • [김종철의 수하한화]원자력과 인간성 상실
    원자력과 인간성 상실

    고리 원전 1호기의 냉각 시스템이 12분간 중단 상태에 있었다고 한다. 경악을 금할 수 없다. 더 놀라운 것은 한 달 뒤에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보고됐다는 사실이다. 사고 낌새를 우연히 알아챘던 한 시의원이 없었더라면 이 사건은 끝내 은폐됐을 것임이 확실하다. 그렇게 볼 때, 12분 후 전원이 회복되었다는 것도, 회복되었으니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는 말도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원전이란 원래 가공할 위험성을 내포한 시설이지만, 고리 원전 1호기는 유별나게 사고가 빈번한 핵 시설로 이미 널리 알려져 왔다. 설계 수명대로 폐쇄해야 마땅한 노후시설을 무리하게 연장 가동함에 따른 필연적 현상이다. 지금까지 중대사고가 없었던 것은 기적일지도 모른다.그런데도 원전당국이나 정부는, 후쿠시마 이후에도, 고리 원전을 포함한 전국의 원전에 대한 확실한 안전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증거를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유일한 조치는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옮긴 ...

    2012.03.21 21:17

  • [김종철의 수하한화]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농민에게 기본소득을

    ‘발틱해운지수’라는 게 있다. 석탄, 철광석, 곡물을 비롯하여 설탕, 철강제품, 비료, 목재, 시멘트 등 산적(散積) 화물을 운반하는 부정기 외항선의 운임 동향에 관해 런던의 해운관계기관에서 매일 발표하는 수치이다. 이 수치는 세계경제가 몇 달 혹은 몇 년 뒤 어떻게 될지 미리 알려주는 경기 선행 지수가 될 수 있다. 화물선 운임 결정 요인은 기본적으로 세계 전체의 산업활동 상황에 달려있다. 석탄, 철광석, 곡물 등은 오늘날 거의 모든 산업을 뒷받침하는 기본 원료이다. 당연히 산업이 활발하면 원료를 운반하는 선박의 운임이 높아지고, 저조하면 선박의 운임이 낮아진다.이처럼 중요한 의미를 갖는 ‘발틱해운지수’가 지금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1985년에 지수 1000으로 시작하여 2008년 5월에 12000이라는 최고치를 기록한 이래, 몇 달 뒤 월스트리트 금융파산 상황에서 660으로 뚝 떨어졌다가 얼마 후 약간의 회복세를 보여주는 듯했지만, 다시 하락하여 마침내 최근에는 200...

    2012.02.22 21:17

  • 비례대표제, 합리적 정치의 선결조건

    “어떡하면 좋겠습니까?”“보를 전부 폭파하고 강을 원상태로 돌리면 됩니다.”“얼마 전에 완공했는데 폭파하려 하겠습니까? 22조원이나 들인걸요.”“이제 시작입니다. 4대강에 만들어놓은 보들을 그냥 놔두면 그 후유증 때문에 돈이 계속 들어갈 겁니다. 수질악화, 퇴적, 역행침식, 홍수 증가가 나타날 것이고, 앞으로 한국 국민의 출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일 겁니다. 4대강사업의 후속비용을 지속적으로 부담할 경제력을 가진 나라는 지금 지구상에 없습니다. 독일의 경제력으로도 어림없습니다. 보를 폭파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가장 값싸고 효과적입니다. 22조원이 소모된 지금 없애는 것이 앞으로 후속비용을 더 많이 들이고 없애는 것보다 훨씬 이익이지요.”이것은 지금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어떤 한국인과 독일의 저명한 하천관리 전문가 사이에 최근 있었던 대화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이 대화의 질문자를 포함한 몇몇 재독한인들은 2010년 6월부터 현지에서 ‘번역연대’라는 모임을 결성하여 외국어...

    2012.01.25 21:13

  • [김종철의 수하한화]후쿠시마와 상상력
    후쿠시마와 상상력

    어느새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금년에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적어도 내게는 2011년은 후쿠시마 사태로 아마도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 같다. 후쿠시마 핵 사고는 한마디로 묵시록적 재앙이었다. 그것은 일시에 인간생존의 근본토대를 파괴하고, 무고한 민중의 삶을 뿌리에서부터 망가뜨렸다. 더욱이 방사능에 의한 대기와 해양의 오염상황은 수습전망이 아직도 불투명한 채 지금도 진행 중이다.지난 3월, 사고 직후부터 나는 다른 일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다.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도 없었지만, 원자력이란 첨단기술의 결말이 결국 이런 것인가, 한번 중대사고가 터지면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어버리는 이 기술의 배후에 있는 것은 어떠한 정신구조인가, 그것은 도덕적 니힐리즘이 아닌가 등등, 생각이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나는 당장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동안 외롭게 싸워온 반핵활동가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관련 ...

    2011.12.28 21:19

  • [김종철의 수하한화]더러운 채무, 더러운 조약
    더러운 채무, 더러운 조약

    에콰도르는 전통적으로 전형적인 남미국가의 하나였다. 전형적이라고 하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식민지였다가 독립 후에는 군인들 혹은 귀족들에 의한 독재정치 및 그들과 결탁한 외국계 자본가가 지배하는 수탈구조 속에서 다수 민중이 노예처럼 굴종적인 삶을 강요당해온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 에콰도르가 민주적 선거에 의해서 정부를 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은 1970년대 말에 이르러서였다. 그러나 자유선거제도가 도입되었다고 해서 에콰도르의 가난한 민중의 생활이 나아질 수는 없었다. 장기간에 걸친 억압과 수탈의 구조가 끈질기게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 엘리트들은 기득권층과 외국 자본가-투자가들의 이익을 에콰도르 민중의 이익보다 늘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그 결과, 실제로 풍부한 자연자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30% 이상이 절대빈곤 속에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게다가 매년 국가예산의 거의 절반을 외채를 상환하는 데 사용해야 하는 회계구조 때문에 국민경제가...

    2011.11.30 21:00

  • [김종철의 수하한화]FTA, 농사 안짓고 살 수 있다는 환상
    FTA, 농사 안짓고 살 수 있다는 환상

    “황금빛으로 물결치는 벼들이 익어가는 논 가운데로 5대의 APC 전차대가 마구잡이로 진격하고 있었다. 베기를 기다리는 익은 벼들은 종횡으로 질주해 들어오는 무한궤도 전차에 유린되고 짓이겨졌다. 앞의 전차가 지나간 자리를 다음 전차가 통과하는 식의 배려도 없었다. 묘판도, 모심기가 막 끝난 논도 무시되었다. 스포츠카라도 된 듯이 전차들은 제멋대로 논에 새로운 길들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아메리카 병사들의 심중에는 아시아 농경민족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공통인자가 결여돼 있었다.” 이것은 1967년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베트남전쟁 르포기사 중의 한 대목이다. 당시 큰 주목을 받은 이 르포의 필자는 혼다 가쓰이치(本多勝一)라는 젊은 기자였다. 그는 이후 일본의 양심적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대기자로 성장, 지금도 현역기자로 활동하고 있다.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기어이 성사시키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을 보며 문득 생각난 게 이 르포기사였다. 예전에 읽다가 노트에 적어둔 기억이 있어서...

    2011.11.02 18:40

  • [김종철의 樹下閑話]방사능, 언론, 상상력
    방사능, 언론, 상상력

    지난주에 이화여대에서 ‘원자력과 민주주의’라는 집회가 열렸다. 사흘 동안 계속된 이 집회는, 내가 아는 한, 후쿠시마 참사 이후 한국에서 열린 가장 본격적인 원자력 관련 시민토론회였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역사적인 의의를 가진 집회였다. 적지 않은 사람이 참석해 중요한 정보와 지식을 나누고, 원자력 의존 시스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을 표현하고 공유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집회의 중요성을 주목하고 그에 상응하는 취재·보도를 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집회에서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많았지만, 특기할 것은 현재 건설 중인 경주의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에 관한 동국대 김익중 교수의 발표 내용이었다. 김 교수는 지난 몇 년간 이 방폐장 건설 현장을 주의 깊게 지켜본 자신의 경험을 근거로 이게 얼마나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공사인지를 자세히 설명했다. 문제의 출발은 방폐장의 부지 선정 자체에 있었다. 즉, 문무왕릉 맞은편 해안에 막대한 비용을...

    2011.10.05 18:51

  • [김종철의 수하한화]제비뽑기, 민주주의의 활로
    제비뽑기, 민주주의의 활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일은 매우 유감스럽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허다한 문제가 있지만 아이들이 ‘교육지옥’에 갇혀 불행한 성장기·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것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게 한 사람의 힘으로 해결될 리 만무하지만, 어쨌든 이 절망적인 교육현실을 조금이라도 타개할 것으로 믿고 곽 교육감을 지지해온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가 씌워졌고, 그것도 교육자로서는 가장 불명예스러운 ‘돈’ 문제로 걸려들었다. 곽 교육감이 자기방어에 성공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이미 그는 치명타를 입었고, 따라서 계속적인 직무수행이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언론 보도에 드러난 것만이라도 편견 없이 읽어보면 곽 교육감이 말하는 ‘선의’가 거짓말이 아닌 것을 느낄 수 있다. 내 느낌으로는 양심적인 법학자·인권활동가로서 그가 일관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내가 곽 교육감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잠시 생각해보았다. 선거 막판...

    2011.09.07 21:15

  • [김종철의 수하한화]독일의 위대한 선택
    독일의 위대한 선택

    경향신문에 처음 글을 쓴다. 언제까지 계속할지 모르지만, 귀중한 지면을 헛되이 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작정이다. 독자들을 위해 칼럼 제목에 대한 설명이 약간 필요할지 모르겠다. 수하한화(樹下閑話)라는 제목을 택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 ‘수하’란 원래 보리수 아래, 즉 석가모니께서 깨달음을 얻은 자리를 뜻하는 말이다. 수하석상(樹下石上)이라는 불가의 용어가 있다. 출가 수행자가 세속의 명리를 잊고 무념무상의 자리에 든다는 뜻이지만, 그것은 나 같은 속물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경계이다. 내게는 그냥 여름날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한가로운 잡담을 하듯 두서없는 얘기를 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을 뿐이다. 무슨 이야기부터 할까 궁리해봤지만, 요즘 내가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이미 여러 곳에서 원자력 문제에 관해 많은 말을 했지만, 아직도 크게 미진한 느낌이다. 이 문제에 대한 언론의 이상할 정도의 둔감한 반응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내가 보기에 지금 ...

    2011.08.10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