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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칼럼]콜드플레이와 생수병
    콜드플레이와 생수병

    2005년 영국 런던 캠던의 어느 작은 공연장이었다. 사실 공연장이 컸는지 작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생생한 건 심장까지 울리던 노랫소리, 그리고 머리 위로 떠다니던 큰 노란색 공이었다.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발돋움한 콜드플레이가 기습 공연을 연 현장이었다. 무려 20년 전 일을 떠올린 건 그들이 한국을 8년 만에 다시 찾은 것뿐 아니라 이 ‘월클’ 밴드의 남다른 행보 때문이다.지난 16일부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콜드플레이의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 한국 공연을 하루 앞두고 고지된 안내문에 관객들은 술렁였다. 공연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을 포함한 금속·유리 재질 물병 반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연장에는 실리콘과 플라스틱 다회용 물병만 반입이 가능했다. 대신 주최 측은 곳곳에 음수대를 설치하고 멸균팩에 든 물을 판매했다. 불만 섞인 반응도 나왔지만 공연으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줄이겠다는 취지에 전반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

    2025.04.21 20:16

  • [기자칼럼]탄핵은 최소 조건일 뿐
    탄핵은 최소 조건일 뿐

    한 관리자가 실적이 낮다고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콜센터 상담사에게 소금을 뿌렸다. 노조가 문제 제기했지만 회사는 두 달 넘게 조사한 끝에 ‘근신 2일’이라는 솜방망이 징계 처분을 내렸다. 지난 3월 노조는 회사가 묵인하고 방조하지 않았다면 괴롭힘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나마 이 사건은 많은 언론사에서 기사로 다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가 사망하면서 사회적 공분이 지속되던 시점이었고, 세계여성의날을 앞두고 있었기에 여성이 많은 상담사 직군의 어려움을 다루기에 좋은 시기였다. 무엇보다 소금을 뿌린 것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점이 컸다.노동계에는 매일 기자회견이 쏟아진다.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산별노조들, 작은 노조에서도 기자회견 안내 e메일을 보낸다. 그러나 대부분 묻힌다. 현실적으로 다 취재할 수도, 보도할 수도 없다. ‘소금’ 정도는 맞아야 기사가 됐다.산불 진압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주목받...

    2025.04.07 21:02

  • [기자칼럼]4월15일, 얼마 남지 않았다
    4월15일, 얼마 남지 않았다

    살다보면 누군가 나에게 화가 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표정을 보면 분명 내가 뭔가 언짢은 행동을 한 듯한데 아무리 물어도 상대가 ‘침묵’을 이어가는 경우다. 이럴 때 ‘헛다리’를 짚어 섣부른 해결책을 냈다가는 갈등만 커진다. 화가 난 사람과 절친한 사이라면 이런 침묵은 더욱 당혹스럽다.미국 에너지부의 한국에 대한 ‘민감국가’ 지정이 딱 이런 상황이다. 민감국가 지정의 핵심 목적은 한국 연구자가 미국의 민감한 과학기술 정보에 접근하도록 놔둬도 될지를 판단하기 위해 전에 없던 빡빡한 검증 절차를 들이대는 것이다. 이러면 연구자 교류 승인을 위한 소요 시간이 현재보다 늘어난다. 특히 ‘예민한 주제’를 가진 미국의 연구에는 한국 과학자의 접근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원자력 기술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미 에너지부의 핵심 업무는 핵 비확산이다.이와 관련해 야당과 일부 과학계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1년 내에 핵무장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이 있다”고 한 윤...

    2025.03.31 21:47

  • [기자칼럼]로그아웃 할 용기
    로그아웃 할 용기

    ‘딸깍’. 새끼손톱만 한 유심이 슬롯에 장착돼 이제 막 포장을 뜯은 새 휴대폰 안으로 이식됐다. 목적지는 하와이. 2주간의 장기 휴가를 앞두고 이제 겨우 짐싸기를 마친 새벽 3시였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급하게 휴대폰을 교체한 이유는 10년 가까이 써온 이전 휴대폰이 사진 한 장 찍을 여유 공간 없이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와이 풍경을 마음껏 찍을 새 휴대폰도 생겼겠다, 위풍당당하게 비행기에 몸을 싣고 비행모드를 켰다. 앞으로 닥칠 혼란을 모른 채 말이다.하와이에 도착해 휴대폰을 살펴보던 나는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평소 같으면 휴대폰 전원을 켜기가 무섭게 울려대던 알림창이 조용한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애플리케이션을 비롯해 새로 옮겨둔 휴대폰 속 어플들의 로그인 정보가 모두 초기화되어 있었다. “비밀번호가 뭐였지? 내 계정은 무사할까?” 사태를 파악하자 식은땀이 났다.비싼 돈을 주고 예약한 호텔 창밖에는 반짝이는 와이키키 해변과 드...

    2025.03.17 20:40

  • [기자칼럼] 트럼프와 ‘사라진 나비’
    트럼프와 ‘사라진 나비’

    지난주는 온통 트럼프, 트럼프, 트럼프로 가득 찬 나날이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모욕에 가까운 면박을 주며 백악관 밖으로 내쫓더니,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우방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더니 “관세가 (미국의) 4배”라며 돌연 한국으로 화살을 돌렸다. 자고 일어나면 밤새 트럼프가 터트린 ‘폭탄’이 수습해야 할 잔해처럼 흩어져 있었다.그런 와중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나비’였다. 웬 나비? 그렇다. 날개부터 몸통까지 새하얀 빛을 띤, ‘웨스트 버지니아 화이트’라는 우아한 이름을 가진 나비. 트럼프가 만든 혼란 속에서 이 나비의 사진을 보았을 때, 마음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그다지 밝은 소식은 아니었다. 미국에 사는 이 나비는 20년간 개체 수가 98%나 줄었다. 사이언스지에 수록된 뉴욕 빙엄턴대 연구자들의 논문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의 나비 개체 수가 5분의 1 이상 줄어들었다.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살충제 사용 등이...

    2025.03.10 21:00

  • [기자칼럼]사각지대는 위계를 가린다
    사각지대는 위계를 가린다

    어떤 죽음은 앞선 죽음의 결과다. 죽음에 이른 이유가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을 때 또 다른 죽음은 이어진다. 지난해 9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의 죽음으로 ‘무늬만 비정규직’인 방송사의 문제가 다시 드러났지만 5년 전에도 비슷한 죽음이 있었다.2020년 2월4일 자살한 이재학 PD 역시 오요안나씨처럼 ‘프리랜서’였다. 그는 14년간 청주방송에서 일하는 동안 2015년 14편, 2016년 12편, 2017년 11편 등 쉴 새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의 아이템, 방송 구성안, 촬영 장소 등을 수시로 CP, 국장에게 보고했고 결재를 받았으며 지시에 따라 일했다.이 PD는 ‘정규직’처럼 쓰였지만, 필요 없어지자 ‘프리랜서’가 됐다. 2018년 4월 작가, 조연출 등 동료 스태프의 수당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가 프로그램 하차를 통보받았다. 이 PD는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 도움을 받아 근로자 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했지만 청주지방법원은 ...

    2025.03.03 21:37

  • [기자칼럼]소행성과 트럼프
    소행성과 트럼프

    2021년 선보인 미국 영화 <돈 룩 업>은 밤하늘을 관측하는 과학자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의 일상을 따라가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케이트는 여느 때처럼 망원경 가동 뒤 촬영된 사진을 확인하다 눈이 동그래지고 이내 뛸 듯이 기뻐한다.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기쁨은 잠깐이었다. 지름 10㎞짜리 해당 혜성이 6개월 뒤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는 궤도 계산 수치가 나온 것이다. 충돌 뒤 예상되는 결과는 인류 문명의 소멸이었다.독특한 점은 이 혜성을 대하는 <돈 룩 업> 속 미국 대통령의 태도다. 과학자들이 걱정 어린 표정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보고하는데도 해맑게 웃으며 “어쩌라고?”식의 반응을 보인다. 충돌 확률이 99%라는데도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다. 비과학적 낙관론이다. 뒤늦게 시작한 혜성 파괴 작전에선 러시아와 중국, 인도를 배제한다. 혜성에 묻힌 광물을 미국이 독차지하려는 속셈이었다. 결국 인류는 멸망한다.그런데 최근 ...

    2025.02.24 21:02

  • [기자칼럼]그림자 의원들
    그림자 의원들

    국민의힘 의원은 108명이다. 12·3 비상계엄 후 75일간 보여준 모습을 바탕으로 거칠게 나눠보면 네 부류 정도로 구분된다.‘자기파괴적’ 비상계엄으로 수렁에 빠진 윤석열 대통령 구하기에 나선 구출조에 두 부류가 포함된다. 구출조 선봉대에는 당 지도부와 김기현·나경원·윤상현 의원 등 중진들, 강성 친윤석열계 의원들이 서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전광훈 목사 주최 집회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윤 대통령 측 주장을 개별 기자회견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파한다.다음으로 선봉대 뒤에서 밧줄을 잡아주는 구출조 후방 지원대가 있다. 선봉대만큼 과격하진 않지만 소속 지역 단위에서 열리는 탄핵반대 집회에 얼굴을 비추고, 국회 상임위원회나 대정부질문 등에 나서 당 주류의 논리를 뒷받침한다. 김상욱 의원 등 탄핵소추안에 찬성한 극소수 당내 ‘왕따’ 의원도 존재한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국민의힘의 변화를 촉구하지만 당내 세력화에는 실패했다.주목하고 싶은 건 마지막 부...

    2025.02.17 21:38

  • [기자칼럼]축협 회장 선거도 ‘유승민’처럼
    축협 회장 선거도 ‘유승민’처럼

    법원 가처분 결정 등으로 중단된 대한축구협회 회장 선거가 오는 26일 열린다. 대한체육회와 함께 지난해 국민적 공분을 산 대표적 체육단체인 축구협회가 차기 수장을 뽑는 선거다.지난달 체육회장 선거에서는 ‘젊은 리더’ 유승민 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43)이 예상을 깨고 당선됐다. 유 회장은 선거인단을 오프라인, 온라인에서 일대일로 만났다. 진정성 있게 공약을 설명했고 충심을 보였다. 선거 참여를 독려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영상도 선거인단 2244명을 각각 거명하며 개인 맞춤형으로 제작했다. 선거인단 의견, 즉 현장 목소리를 직접 들은 뒤 만든 공약을 하나씩 발표했다. ‘선 공약, 후 유세’, 표를 모아달라고 고위층에 호소하는 ‘고공’ 유세는 지양했다. 이게 조직력, 자금력에서 앞선 유력 후보들을 제친 비결이었다.현재 정몽규 현 축구협회장, 허정무 전 남자대표팀 감독, 신문선 전 해설위원이 축구협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이들도 나름대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지만 공...

    2025.02.10 20:58

  • [기자칼럼]사람을 움직이는 것
    사람을 움직이는 것

    ‘내 아들을 구출해왔다’라는 권정민 서울교대 교수의 페이스북 글이 최근 화제였다. 권 교수는 극우 유튜버에 빠진 중학생 아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수개월간의 토론과 설득 끝에 아들의 뇌에 달라붙은 ‘끈덕진’ 극우 논리를 겨우 떼어냈다고 한다.젊은 남성들의 극우화는 헌정질서까지 위협하고 있다. 서울서부지법 난입·폭력 사태에 가담해 현행범으로 체포된 86명 중 90%가 남성이고, 52%가 20~30대였다. 권 교수는 JTBC 인터뷰에서 “학교 애들은 100%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라는 아이의 말을 전하면서, 극우 유튜버의 논리가 남성 청소년의 어떤 새로운 문화가 됐다고 진단한다.극우 유튜버들은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고, 상대를 적으로 몰아간 뒤 혐오하거나 공격하도록 유도한다. 청소년들은 그런 행동을 따라 하면서 힘을 과시하고 ‘권력’을 느낀다. 권 교수에 따르면 그것은 하나의 ‘놀이’가 됐다. 동조하지 않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될 거라 믿는 ‘또래압력’마저 작용하고 있...

    2025.02.03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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