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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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칼럼]무엇이 ‘과학의 정치화’인가

    무엇이 ‘과학의 정치화’인가

    “근거 없는 비난으로 과학의 영역까지 정치화하려고 한다.”지난 8일 국민의힘 대변인 명의의 논평에 등장한 문장이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포항 영일만 일대 해저에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한 정부와 미국 기업 액트지오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유전 개발은 과학의 영역”이라며 대응한 것이다. 지난 7일에는 추경호 원내대표도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경제·과학의 영역을 정치 비방으로 폄훼하고 나섰다”고 공박했다. 과학은 정치권에서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 단어다. 이유가 있다. 과학은 관측이나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분석한 뒤 ‘맞다’와 ‘틀리다’를 칼같이 판단한다. 정치는 다르다. 충돌하는 의견을 조정하거나 설득하고 타협을 이끌어낸다. 타협이 여의치 않으면 다수의 의견을 따른다. 정치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반응의 핵심도 데이터로 말하는 과학에 대해 어법 자체가 다른 정치가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보인다.여기서 궁금증이 생긴...
  • [기자칼럼]대통령은 무엇을 두려워하나

    대통령은 무엇을 두려워하나

    보름 전까지 대통령실을 출입했다. 2년 사이에 출근길문답(도어스테핑)을 하던 곳에 가벽이 서고, 어딘지 조악해 보이는 조화가 붙었다가, 완전한 벽으로 막히는 것을 봤다. 마지막 날에도 청사 조경 작업이 한창이어서, 수시로 변하는 공간에 ‘의식을 지배받지 않고’ 변함없이 남아 있는 건 대통령뿐인가 싶었다.윤석열 대통령은 총선 참패 뒤 그간 하지 않던 것들을 했지만, 동시에 무엇도 하지 않았다. 첫 영수회담은 협치 가능성을 탐지하는 수준에도 못 미쳤다. 대통령실 인사·조직을 통한 쇄신 효과는 ‘낙선자 회전문 인선’에 소멸됐고,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은 핵심 의혹들을 해소하지 못했다.무엇이 그를 붙들어두는 걸까. 대통령실 안팎에서 특유의 소신과 ‘정치적 쇼’를 꺼리는 성정 따위를 말했다. 누적된 신호들을 보면 차라리 두려움 같다. 윤 대통령이 드물게 두려움을 언급한 적이 있다. “제가 만약 대통령이 되어 잘못한다고 했을 때 뜨거운 환호와 지지, 성원이 저에 대한 비판과 분노로...
  • [기자칼럼]이주노동자를 맞이하는 자세

    이주노동자를 맞이하는 자세

    20여년 전 고국을 떠나 싱가포르에 일자리를 찾아서 온 인도네시아 여성은 주 6일 일하며 월 50만원 정도를 받아 절반을 집에 송금하는 일상을 이야기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1시에야 끝났던 집안일, 고무장갑 없이 설거지를 하다 손은 매일 부르텄고, 잠은 다른 가족들이 신발을 벗어 놓는 현관에서 자야 했다.그의 직업은 가사관리인이었다. 최저임금을 비롯한 법적 보호에서 제외돼 고된 환경을 살았지만 다른 여성들의 상황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단체를 만들어 노동권을 주장했던 인도네시아 ‘왕언니’다. 2016년 현지에서 만난 그는 “자선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평등을 말하는 것”이라며 “(본국에) 일자리가 없어 구걸하러 온 거 아니냐는 시선이 변화를 어렵게 한다”고 했다. 10년이 돼가는 과거의 취재를 떠올린 것은 오는 9월 그와 같은 필리핀 출신의 가사관리사 100명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오기 때문이다.싱가포르는 1970년대 이후 여성의 사회 진출, 호황을 맞은 건설 ...
  • [기자칼럼]최경주가 보여준 것들

    최경주가 보여준 것들

    최경주는 헤드를 가볍게 끝까지 던졌다. 힘보다는 부드러움에 의지한 스윙이었다. 나이가 적잖아 젊은 선수들보다 드라이버샷 비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었다. 세컨드 샷도 긴 채로 해야 했다. 젊은 선수들이 미들 아이언, 쇼트 아이언, 웨지를 들 때 최경주는 하이브리드, 롱 아이언, 미들 아이언을 들었다. 핀에 가까이 붙이기 쉽지 않았다. 자신의 무기는 정평 난 쇼트 게임이었다. 최경주는 트러블 샷을 기막히게 쳤고 퍼트도 잘했다. 최경주가 지난 19일 SK텔레콤 오픈 연장 1차전에서 보여준 트러블 샷은 일품이었다.최경주는 그날 54세 생일을 맞았다. 골프는 30대 초반이 전성기다. 젊은 선수들과 겨루기에는 쉽지 않은 나이다. 미국에서 투어에 참여한 뒤 귀국하자마자 프로암을 뛰었다. 나흘 동안 바람 부는 날, 고온 속에서 샷을 쳤다. 그것도 메이저대회 우승을 꿈꾸는 최고 프로 골퍼들과 맞서서 말이다. 아마추어 골프 최고수 중 한 명인 한국미드아마추어골프협회 김양권 회장은 “우승도 대단하...
  • [기자 칼럼]겸손은 힘들다

    겸손은 힘들다

    * <삼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최근 넷플릭스 드라마로도 제작된 류츠신의 SF소설 <삼체>에서 인류는 두 번의 오판을 저지른다. 첫 번째는 외계 문명인 삼체의 침략에 맞설 때였다. 삼체인(외계인)이 지구의 방사광가속기를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물리학 발전이 중단됐지만, 인류는 노력 끝에 2000대의 우주전함을 만들어냈다. 이 정도면 그들을 격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삼체인의 과학은 인류가 상상할 수 없는 높은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그들이 보낸 단 두 개의 ‘물방울’에 속절없이 당한다.두 번째도 미지의 외계 세계로부터 올 공격을 대비하던 때였다. 인류는 그들이 다른 행성계를 공격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항성, 곧 태양을 노릴 것이라 예상한다. 인류는 태양 폭발을 대비해 목성 뒤편으로 거주지를 이전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리라고 봤다. 그러나 외계 문명은 공간을 2차원으로 축소시키는 예상치 못했던 공격을 한다. 인류는 멸망한다....
  • [기자칼럼]어느 산양의 운수 좋은 날

    어느 산양의 운수 좋은 날

    강원 화천·양구군 민통선 부근에 사는 산양 KG(한국 산양의 영어명 Korean Long tailed goral에서 따온 이니셜)에게 지난 3월21일은 일진이 매우 사나웠던 날로 기억될 테다. 그날 오전 평화의댐에서 햇볕이 따스하게 비추면서 비교적 먹이가 풍부한 남사면 쪽으로 갈 때만 해도 KG는 이날 자신에게 닥쳐올 미래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인간들이 설치한 아프리카돼지열병 울타리 사이 좁은 구멍을 통해 도로로 나간 KG와 가족들은 처음엔 소풍이라도 간 듯한 기분으로 봄볕을 즐겼다. 하지만 한가로운 기분은 잠시였을 뿐, 다시 숲으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부터 소풍 같던 날은 악몽으로 변해버렸다. 아무리 달려도 숲으로 돌아갈 길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초조해진 탓에 평화의댐 방향으로도 가보고, 양구군 방향으로도 달려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가끔씩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거대한 쇳덩이들을 보면서 공포심은 점점 커졌을 것이다.얼마나 헤맸을까. 한참을 달린 끝...
  • [기자칼럼]청장님, 아르테미스는요?

    청장님, 아르테미스는요?

    ‘월면 기지’라 하면 많은 이가 떠올리는 그림이 있다. 회색 황무지와 운석 충돌구 사이 반원 모양의 건물이 들어선 모습이다. 이 안에서 사람들은 먹고, 자고, 연구한다. 최근까지도 이 모습은 언젠가 다가올 막연한 미래에 불과했다.그런데 2017년 미국이 ‘아르테미스 계획’을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르테미스 계획은 달에 사람이 사는 기지를 지어 지구에선 찾기 어려운 광물자원을 캐는 데 목적이 있다. 먼 우주로 갈 로켓 터미널도 만들 계획이다. 2030년대부터 기지 건설과 운영이 본격화된다.미국은 혼자가 아니라 여러 국가의 기술력을 조합해 아르테미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각종 개발 비용을 분담하려는 것이다. 달에 가기 위한 총체적 역량은 미진해도 어떤 분야에서 특출한 기술만 있다면 아르테미스 계획에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그런 국가는 달 자원 채굴을 중심으로 한 초기 우주경제 구축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될 수 있다.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2021년 ...
  • [기자칼럼]생존하는 도시의 덕목

    생존하는 도시의 덕목

    각국 경제 규모를 나타내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2018년 이후 10위권 밖에 위치해 있다. 비교 단위를 도시로 확대하면 순위는 더 밀려난다. 천의영 경기대 교수가 저서 <메가시티 네이션 한국>에서 GDP와 광원(불빛) 기반 지역총생산(LRP)으로 분석한 결과를 보면 14위 대한민국 위쪽으로 비국가 4곳이 있다. 보스턴~워싱턴을 잇는 ‘보스워시’, 시카고 일대 ‘그레이트 레이크’, ‘파리~암스테르담~뮌헨’, ‘양쯔강 삼각주’ 등 미국·유럽·중국의 메가리전(megaregion)들이다. 인구 1000만명 이상 메가시티(megacity)가 주변 동질성을 띤 도시들과 기능적으로 연계되며 집적된 지역이다.지구인의 60%, 한국인의 90%가 도시에 산다. 특히 세계 인구 13%는 34개 메가시티 시민이다. 2020년대 후반이면 지구 면적 2%에 인구 62%가 몰리고, 2030년이면 메가시티 10개가 새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람과 자원이 집약되며 규모의...
  • [기자칼럼]진보정당 “다시 시작할 용기”

    진보정당 “다시 시작할 용기”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민주노동당 의원 10명이 그해 5월31일 등원했다. 각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진보투사들이 어색하게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국민 앞에 섰다. 단병호 의원은 “노동자를 대변하는 의원이 한두 명만 있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뼈에 사무쳤다”며 울먹였다. 권영길·심상정·천영세 의원의 눈시울도 붉어졌다.보수 편향의 한국 정치에서 진보정당의 국회 입성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민주노조운동과 사회운동의 산물이자 역동적인 한국 민주주의 그 자체로 평가됐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 하나는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열망이 투영된 결과였다. 당시 민주노동당에는 열정이 가득 찼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당사에 보낸 축하 화환이 그 기대감을 상징했다. 당원들은 “집권도 머지않았다”며 가슴 벅차했다.그리고 20년이 흘렀다. 권영길·단병호·천영세 전 의원이 지난 4월5일 5선에 도전한 심상정 의원 사무실을 지지 방문했다. “세상을 바꾸자”며 20년 전 제도권에 ...
  • [기자칼럼]국교위, 체육 단독교과 허하라

    국교위, 체육 단독교과 허하라

    알리바바그룹 창립자 마윈은 2017년 과학 기술이 지배할 미래에 살아가기 위해 자녀들에게 지금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역설했다.“교육은 큰 도전을 받고 있다. 교육이 달라지지 않으면 30년 후 우리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현재 교육은 200년 전 지식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그렇게 가르쳐서는 우리 아이들이 더 똑똑해지는 기계와 경쟁할 수 없다. 기계가 배울 수 없는 것들을 가르쳐야 한다. 믿음, 독립적 사고, 팀워크, 타인에 대한 배려 등 소프트한 가치들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르쳐야 하는 것은 스포츠, 음악, 미술이다.”과거 책이 없을 때, 미디어가 부족할 때, 배울 곳도 지도할 사람도 없을 때 우리는 학교에서 교과서로 거의 모든 지식을 배웠다. 그게 국어, 수학, 과학, 역사, 언어 등으로 명명된 교과들이다. 당시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것만으로 역할이 충분했다. 그런데 지금은 정보가 넘치고 넘친다. 오프라인 교육 콘텐츠가 과할 정도로 풍부하다. 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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