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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칼럼] 미국인 교황, ‘신의 한 수’ 될까
    미국인 교황, ‘신의 한 수’ 될까

    사랑에 순서가 있다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사랑은 저절로 싹틀뿐더러, 통제하기도 어렵다. 사랑이 순서대로 착착 이뤄지는 것이라면, 세상의 수많은 사랑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못했을 것이다.물론 사랑이 싹트는 데 순서가 있을 수 있다. 가까운 사람,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 취향이나 신념이 비슷한 사람…. 심리적·물리적 거리가 가까운 이일수록 사랑이 싹트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종교는 이런 협소한 사랑의 개념을 타파하고자 한다. 나와 멀고 가깝고를 떠난 보편적인 인류애를, 나아가 이 지구상 생명·비생명 모두에게로 사랑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 종교적인 사랑이다.J 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를 오해했다. 밴스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랑의 순서’(ordo amoris)를 언급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가톨릭 신앙으로 합리화하려고 했다. “가족을 사랑하고, 그다음 이웃을 사랑하고, 그다음 나라를 사랑하라”며 가장 마지막에 ‘나’와 관계없는 세계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2025.05.19 20:00

  • [기자칼럼]올라간 것인가, 쫓겨난 것인가
    올라간 것인가, 쫓겨난 것인가

    공장을 철거한다고 해서 급히 옥상으로 올라갔다.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씨 이야기다. 21일이면 고공농성한 지 500일이 된다. ‘또 고공농성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했다. 정혜씨는 지난해 1월 철거업자들이 들이닥치고 더는 버틸 곳이 없자 새벽에 짐을 챙겨 옥상으로 올라갔고 계단 입구에 쇠사슬을 걸어 고립시켰다. “이렇게 내몰리듯 쫓겨날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들은 옥상으로 올라간 것인가, 옥상으로 쫓겨간 것인가.2022년 10월 이 공장에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회사는 한 달 만에 청산을 결정했다. 2003년 구미국가산업단지 외국인투자전용단지에 입주하면서 50년간 토지를 무상으로 임대받았고 법인세, 취득세 등 세제 감면 혜택을 받은 회사다. 화재 보험금 1300억원가량도 알뜰하게 받아갔다. 회사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는 일본 니토덴코가 100% 지분을 가진 외국인 투자 기업...

    2025.05.12 20:21

  • [기자칼럼]대선, 그리고 과기부총리의 조건
    대선, 그리고 과기부총리의 조건

    최근 윤곽이 드러난 미국 연방정부의 내년 예산안을 확인한 현지 과학자들은 그야말로 아연실색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주연구기관이며, 미국 과학 지성의 본산인 미 항공우주국(NASA) 예산이 전년보다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삭감 폭이 24%다. NASA 기능이 훼손될 공산이 커졌다.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조치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과학에 신뢰를 보내지 않거나 무관심한 모습을 보인 트럼프 대통령의 평소 태도 때문이다. 과거 그는 기후변화를 거짓이라고 했다. 소독제를 몸에 주입하면 코로나19가 사라지지 않겠느냐는 발언도 했다.과학과 연구·개발(R&D)에 대한 국가 최고 지도자의 공격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다. 2023년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학자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한 것이다.그런데 윤 전 대통령의 이런 태도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

    2025.05.05 20:14

  • [기자칼럼]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국민의힘의 ‘사과 코스프레’가 본격화했다. 이미 사과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사람, 때가 되면 사과하겠다는 사람, 사과의 공감대는 있다는 사람 등이 난립한다. 12·3 불법계엄 사태에 ‘정당으로서’ 사과를 한 건지 안 한 건지, 저걸 사과로 봐야 할지 아닐지 의미 없는 논쟁이 이어진다.결론적으로 국민의힘은 사과한 적이 없다. 정당의 사과란 무엇인가. 사전적 정의는 없지만, 해당 정당의 책임 범위에 있던 정치행위의 과오를 반성하고 정치집단으로서 합당한 조치를 취하는 일일 것이다. 정해진 형식, 꼭 따라야 할 공식은 없다. 다만 선언과 행위가 동반되는 복합적인 형태임은 분명하다.정당의 사과에는 당의 총의를 모으는 과정을 거쳐 입장을 정리하고 이를 대표성을 갖춰 밝히는 최소한의 형식이 필요하다. 내용에는 구체적 반성과 성찰, 향후 조치에 대한 약속이 담겨야 한다. 여기에 희생을 감수하는 정치적 결단과 쇄신 등 행위가 뒤따라야 사과가 완성된다. 이 모든 것을 한다 해도 진정성을...

    2025.04.28 20:32

  • [기자칼럼]콜드플레이와 생수병
    콜드플레이와 생수병

    2005년 영국 런던 캠던의 어느 작은 공연장이었다. 사실 공연장이 컸는지 작았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생생한 건 심장까지 울리던 노랫소리, 그리고 머리 위로 떠다니던 큰 노란색 공이었다.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밴드로 발돋움한 콜드플레이가 기습 공연을 연 현장이었다. 무려 20년 전 일을 떠올린 건 그들이 한국을 8년 만에 다시 찾은 것뿐 아니라 이 ‘월클’ 밴드의 남다른 행보 때문이다.지난 16일부터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콜드플레이의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 한국 공연을 하루 앞두고 고지된 안내문에 관객들은 술렁였다. 공연장 내 일회용 플라스틱을 포함한 금속·유리 재질 물병 반입을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공연장에는 실리콘과 플라스틱 다회용 물병만 반입이 가능했다. 대신 주최 측은 곳곳에 음수대를 설치하고 멸균팩에 든 물을 판매했다. 불만 섞인 반응도 나왔지만 공연으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줄이겠다는 취지에 전반적으로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

    2025.04.21 20:16

  • [기자칼럼]탄핵은 최소 조건일 뿐
    탄핵은 최소 조건일 뿐

    한 관리자가 실적이 낮다고 동료들이 보는 앞에서 콜센터 상담사에게 소금을 뿌렸다. 노조가 문제 제기했지만 회사는 두 달 넘게 조사한 끝에 ‘근신 2일’이라는 솜방망이 징계 처분을 내렸다. 지난 3월 노조는 회사가 묵인하고 방조하지 않았다면 괴롭힘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나마 이 사건은 많은 언론사에서 기사로 다뤘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MBC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가 사망하면서 사회적 공분이 지속되던 시점이었고, 세계여성의날을 앞두고 있었기에 여성이 많은 상담사 직군의 어려움을 다루기에 좋은 시기였다. 무엇보다 소금을 뿌린 것이 워낙 충격적이었던 점이 컸다.노동계에는 매일 기자회견이 쏟아진다. 민주노총, 한국노총과 산별노조들, 작은 노조에서도 기자회견 안내 e메일을 보낸다. 그러나 대부분 묻힌다. 현실적으로 다 취재할 수도, 보도할 수도 없다. ‘소금’ 정도는 맞아야 기사가 됐다.산불 진압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여러 차례 지적됐지만 주목받...

    2025.04.07 21:02

  • [기자칼럼]4월15일, 얼마 남지 않았다
    4월15일, 얼마 남지 않았다

    살다보면 누군가 나에게 화가 난 이유를 도무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표정을 보면 분명 내가 뭔가 언짢은 행동을 한 듯한데 아무리 물어도 상대가 ‘침묵’을 이어가는 경우다. 이럴 때 ‘헛다리’를 짚어 섣부른 해결책을 냈다가는 갈등만 커진다. 화가 난 사람과 절친한 사이라면 이런 침묵은 더욱 당혹스럽다.미국 에너지부의 한국에 대한 ‘민감국가’ 지정이 딱 이런 상황이다. 민감국가 지정의 핵심 목적은 한국 연구자가 미국의 민감한 과학기술 정보에 접근하도록 놔둬도 될지를 판단하기 위해 전에 없던 빡빡한 검증 절차를 들이대는 것이다. 이러면 연구자 교류 승인을 위한 소요 시간이 현재보다 늘어난다. 특히 ‘예민한 주제’를 가진 미국의 연구에는 한국 과학자의 접근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원자력 기술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미 에너지부의 핵심 업무는 핵 비확산이다.이와 관련해 야당과 일부 과학계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1년 내에 핵무장할 수 있는 기술 기반이 있다”고 한 윤...

    2025.03.31 21:47

  • [기자칼럼]로그아웃 할 용기
    로그아웃 할 용기

    ‘딸깍’. 새끼손톱만 한 유심이 슬롯에 장착돼 이제 막 포장을 뜯은 새 휴대폰 안으로 이식됐다. 목적지는 하와이. 2주간의 장기 휴가를 앞두고 이제 겨우 짐싸기를 마친 새벽 3시였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급하게 휴대폰을 교체한 이유는 10년 가까이 써온 이전 휴대폰이 사진 한 장 찍을 여유 공간 없이 포화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와이 풍경을 마음껏 찍을 새 휴대폰도 생겼겠다, 위풍당당하게 비행기에 몸을 싣고 비행모드를 켰다. 앞으로 닥칠 혼란을 모른 채 말이다.하와이에 도착해 휴대폰을 살펴보던 나는 무언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했다. 평소 같으면 휴대폰 전원을 켜기가 무섭게 울려대던 알림창이 조용한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애플리케이션을 비롯해 새로 옮겨둔 휴대폰 속 어플들의 로그인 정보가 모두 초기화되어 있었다. “비밀번호가 뭐였지? 내 계정은 무사할까?” 사태를 파악하자 식은땀이 났다.비싼 돈을 주고 예약한 호텔 창밖에는 반짝이는 와이키키 해변과 드...

    2025.03.17 20:40

  • [기자칼럼] 트럼프와 ‘사라진 나비’
    트럼프와 ‘사라진 나비’

    지난주는 온통 트럼프, 트럼프, 트럼프로 가득 찬 나날이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모욕에 가까운 면박을 주며 백악관 밖으로 내쫓더니,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우방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더니 “관세가 (미국의) 4배”라며 돌연 한국으로 화살을 돌렸다. 자고 일어나면 밤새 트럼프가 터트린 ‘폭탄’이 수습해야 할 잔해처럼 흩어져 있었다.그런 와중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나비’였다. 웬 나비? 그렇다. 날개부터 몸통까지 새하얀 빛을 띤, ‘웨스트 버지니아 화이트’라는 우아한 이름을 가진 나비. 트럼프가 만든 혼란 속에서 이 나비의 사진을 보았을 때, 마음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그다지 밝은 소식은 아니었다. 미국에 사는 이 나비는 20년간 개체 수가 98%나 줄었다. 사이언스지에 수록된 뉴욕 빙엄턴대 연구자들의 논문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의 나비 개체 수가 5분의 1 이상 줄어들었다.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살충제 사용 등이...

    2025.03.10 21:00

  • [기자칼럼]사각지대는 위계를 가린다
    사각지대는 위계를 가린다

    어떤 죽음은 앞선 죽음의 결과다. 죽음에 이른 이유가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했을 때 또 다른 죽음은 이어진다. 지난해 9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기상캐스터 오요안나씨의 죽음으로 ‘무늬만 비정규직’인 방송사의 문제가 다시 드러났지만 5년 전에도 비슷한 죽음이 있었다.2020년 2월4일 자살한 이재학 PD 역시 오요안나씨처럼 ‘프리랜서’였다. 그는 14년간 청주방송에서 일하는 동안 2015년 14편, 2016년 12편, 2017년 11편 등 쉴 새 없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의 아이템, 방송 구성안, 촬영 장소 등을 수시로 CP, 국장에게 보고했고 결재를 받았으며 지시에 따라 일했다.이 PD는 ‘정규직’처럼 쓰였지만, 필요 없어지자 ‘프리랜서’가 됐다. 2018년 4월 작가, 조연출 등 동료 스태프의 수당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가 프로그램 하차를 통보받았다. 이 PD는 노동인권단체 직장갑질119 도움을 받아 근로자 지위 확인의 소를 제기했지만 청주지방법원은 ...

    2025.03.03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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