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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성장을 멈추는 까닭
‘정치적 견해가 달라도 기후위기 대응 공약이 마음에 들면 투표를 고려하겠다’는 유권자가 무려 60%다. 산업화가 시작되면 처음에는 경제발전만 우선시하다가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되면서 사회문제에 차차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경제발전 지수가 높다고 해서 선진국은 아니라는 뜻이다. 기후 유권자의 등장은 우리 사회가 이제 한 걸음 나아갔다는 방증이다. 친환경으로 포장한 그린워싱 정책들 사이에서 진짜 기후공약을 찾아내기 위해 기후 유권자들은 조금 더 까다로워져야 한다. 기후공약을 포함한 전체 공약에 대해 따지고 물어야 각 정당이 기후위기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진위를 분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먼저, 기후공약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는지 확인하자. 기후공약을 우선순위의 어디쯤에 두었는지를 확인한다면 표를 의식해 짜깁기한 가짜 기후공약을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함께 제시한 다른 정책들과 기후공약을 비교해보면서, 과연 그 공약들이 나란히 추진될 수 있는 정책인지 판단해보자... -
얼마나 나빠져야 기후선거 될까
엊그제 어떤 기업의 주주총회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주가가 떨어지니 주주들의 날선 질문이 이어졌다. 이사회 의장이자 그 기업의 대표는 차분하게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다. 나도 모르게 수긍이 갔다. 별로 큰 정보가 주어진 것도 아닌데 그의 말이 왜 미더운 걸까? 요즘 ‘핫한’ 가요 오디션 프로그램도 불과 몇 소절만 듣고는 전문가들이 당락을 결정한다. 우리 재단에서 직원 면접을 할 때 여러 명이 참여하는데도 채용 여부를 결정할 때 그렇게 논란이 되지는 않는다. 외부 기관의 채용심사에 가봐도 사람 눈이 다 비슷비슷하단 걸 깨닫는다. 어째서 그렇게 순식간에 믿음이 가고, 이 사람이 적절하다는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일까?2005년 발간되어 맬컴 글래드웰을 세계적 명사로 부상하게 해준 저작 <블링크>가 흥미로운 해석을 해준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떻게 ‘눈 깜짝’할 사이에 복잡한 상황을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에 관한 과학적이며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설명서이... -
기후악당 정치를 위한 변론
시민단체들이 올해 총선을 맞이해 진행하는 프로젝트인 ‘기후정치바람’의 발표에 따르면, 전국에서 성인 1만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후 의제에 대해 알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후 의제를 중심으로 투표 선택을 고려하는 이른바 ‘기후 유권자’가 33%가 넘는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기후위기가 국민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만 가진 자원과 지위에 따라 차별적으로 피해를 받고 그 해결에도 모두가 나서야 하지만 거대한 자원과 제도를 잘 활용해야 가능한 것이라고 할 때, 정치야말로 그 핵심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 3분의 1이나 된다는 기후 유권자는 기쁘기 어렵다. 아무리 기후를 걱정한다 하더라도 이 총선 공간에서 그들이 투표할 기후 후보를 국회의원 수의 6분의 5를 차지하는 지역구에서는 거의 만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례의원을 뽑는 정당 투표마저 위성정당의 홍수 속에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니 기후 투표의 기회로 부각되지 못하고 있다. 유독 정책 선거가 ... -
생수 줄게, 공공음수대 다오
가끔 인터뷰를 하는데 마지막 질문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모범답안은 구체적이지 않아 가성비 높은 개인적 실천도 같이 제시한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좋은 실천으로는 메탄 가스를 내뿜는 육식을 줄이는 것이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최소 25배 강력한 반면 30년 이내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다. 한편 쓰레기를 줄이는 가장 가성비 좋은 실천으로는 생수를 거절하는 것이다. 월급의 30%를 마시는 물에 써야 생존이 가능한 곳과 안심하고 수돗물을 마셔도 되는 곳 중 어디에서 살고 싶냐고 물으면, 생수 회사 사장만 빼고 모두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더 싼 생수를 선택함으로써 모두에게 안전한 물을 제공할 환경이 사라진다.생수는 ‘살아 있는 물’이라는 한자어로, 산 좋고 물 좋은 대수층이나 지하수에서 물을 퍼올려 생산된다. 지하수 채수는 강으로 흘러가는 물을 플라스틱 병 안에 가로... -
우리가 얻은 것은 콘센트요
커피농장은 노예착취의 온상이었다. 브라질이 서반구 국가들 중 노예제 폐지가 가장 더디었던 이유도 커피 때문이었다. 1871년 ‘노예의 자식도 자유로운 신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태아자유법이 선포되자 커피 재배자들과 정치인들은 노예제 폐지에 격렬히 반대했다. 1932년 엘살바도르에서는 잔혹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해 봉기가 일어났고 보복극으로 무차별 폭격 대학살이 벌어져 3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1933년 과테말라에서는 노조원, 학생, 정치 지도자를 총살하고 ‘커피와 바나나 농장주들이 일꾼들을 죽여도 처벌을 면제한다’는 법령을 공포했다. 커피노동자들은 여전히 수도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집에 살면서 하루하루 연명한다. 돈이 없어서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을 동원한 온 가족이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종일 열매를 따는데, 일당은 고작 1~10달러 사이다. 베트남이 다국적 기업의 전략하에 커피를 과잉생산하면서 콜롬비아의 소규모 농가에서는 생계수단이었던 이 고된 노동마저 포기하는 수밖... -
‘갈매기들’의 밥은 되지 말자
선거철이다. 지역구마다 주요 관심사가 다르고 거주민의 성향이 다르지만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 경영을 혁신할 좋은 기회이다. 하루아침에 봄이 겨울로 바뀌는 기후 롤러코스터를 타는 와중이라 어떤 후보가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위기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인지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시점이다. IMF 외환위기 이전이니 근 30년 전엔 이런 일이 있었다. 인터넷이 일상화되지 않은 때라 대형 강연장이 있던 서울시내 건물 외부에 우주선 같은 대형 수신기를 걸어놓고 미국에서 하는 강의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수신 상태가 좋지 못했는데 현지 시간에 맞추느라 오후 8시에 시작한 강연 도중 눈이 내려 빗자루로 수신기의 눈을 치우기까지 했다. 그때 영상에서 경영컨설턴트 켄 블랜차드는 어느 조직이든 미래를 준비하는 조직을 만들고 총에너지의 5%를 쓰라고 역설했다. 그때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때라 그냥 글자로만 이해했지만, 지나고 보니 현재를 경영하면서 미래를... -
기후가 제대로 타고 있나요
서울시가 시범사업으로 선보인 기후동행카드가 불티나게 판매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수도권 연계 미흡과 충분치 못한 할인 효과 같은 문제들이 지적되지만, 서울시민 사이에선 못 사서 난리라는 말이 들린다. 정액으로 여러 공공교통수단을 무제한 탑승할 수 있는 상품이자 서비스인 이 카드는 심지어 ‘기후동행’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다.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는 코로나 시기에 독일에서 큰 호응을 얻으며 승용차 이용률을 10% 감소시킨 9유로 티켓(지금은 49유로의 D-티켓) 그리고 이와 유사한 오스트리아의 ‘기후티켓’을 참고로 도입한 것이라고 한다. 하루의 이동 수단 선택에 따라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음이 확인된다고 하니 서울의 기후시민들에게는 반갑기 그지없는 기회다. 그러나 기후동행카드를 개찰구에 찍으며 전철에 오르는 순간 묻게 된다. 그렇다면 확실히 내 옆에 기후가 타고 있는가?기후동행이라는 엄청난 이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인기가 있는 사업에 대한 서울시의 홍보에서 기후위기 대응... -
자동차 위한 정책에 반대한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도 집안 모임 등 ‘전통적’ 의미에서 어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결혼을 안 했고 아이가 없고, 결정적으로 운전을 못한다. 나이 50에도 운전을 안 하면 자동차를 거절하는 결심 따위 뭉개지고 덜 떨어진 사람이 된다. 여태 80세 넘은 부모님이 운전하는 차를 얻어탄다.그런데 요즘 운전 연수를 하고 있다. 일회용품 안 쓰는 커피차 ‘쓰레기없다방’을 위해 전기차 트럭을 뽑았기 때문이다.왜 운전을 안 했는지 8시간 연속 필리버스터 스타일로 말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통장 잔액과 행복,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랄까. 미국 설문조사 결과 도시 외곽에 살며 긴 통근 거리를 운전하는 사람일수록 만성 통증에 시달리고,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고, 본인이 불행하다고 느낄 확률이 높다. 심지어 자원봉사나 정치 참여도도 낮고 이혼 확률은 높다. 반대로 통근이 즐겁다고 가장 많이 답한 집단이 도보와 자전거 통근자들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주택가에 자동차 통행을 금지하고 녹지 광장을 ... -
스마트폰과 맞바꾼 목숨들
스마트폰은 뭘로 만들까? 플라스틱, 유리, 그리고 60여종의 금속이다. 볼리비아의 세로리코산은 무분별한 광물 채굴로 인해 무너져 내릴 위험에 처했다. 무너져 내릴 경우 시 전체가 없어질 거라고 한다. 노동자들은 규소폐증이라는 폐질환을 앓고 있는데, 평균수명이 40세에 불과하다. 공기가 희박한 해발 4600m 고도에서 어린아이들 3000명이 일한다. 아이들은 대부분 가장 좁고 깊은 곳으로 간다. 콜탄은 콩고민주공화국의 비지 광산에서 채굴하는데, 이 작업으로 인해 고릴라의 90%가 사라졌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무장집단의 통제를 받으며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 애플 본사는 편집증에 가까운 엘리트주의에 의해 굴러간다. 개발 노동자들은 창문 없는 사무실에서 지나친 보안과 휴일과 휴가가 허락되지 않는 마라톤 근무로 20㎏이나 더 늘고, 이혼하고,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마비와 암으로 죽는다.2016년 스마트폰 부품을 제조하는 하청업체에서 노동자 7명이 메탄올 급성중독으로 시력을... -
AI보다 더 위험한 ‘기후’
1970년대 흑백TV로 연속극을 함께 보던 할머니는, 아까는 이 남자와 살던 저 여인이 지금은 다른 남자와 살림을 차린 드라마 속 현실을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를 못하셨다. 2000년에 휼렛패커드 최고경영자 칼리 피오리나 회장이 방한하여 했던 연설을 기억한다. 앞으로 수년 내에 인터넷을 수돗물처럼 쓰는 시대가 올 거라고 했다. 벽돌 휴대폰을 들고 다니던 때라 인터넷과 수돗물을 연관지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예상을 넘어 인터넷은 이제 수돗물이 아니라 공기처럼 우리 삶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되었다. 보름 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4)에서 만난 여인이 옛날 생각이 나게 해주었다. 지구 반구처럼 동그란 외벽 전체로 영상을 보여주는 공연장 ‘스피어’도 새로웠지만 로비에 많은 사람들이 에워싼 특별한 존재가 있었다. ‘아우라’라는 이름의 여성 용모를 한 로봇이다. 관람객들에게 무엇이든 질문하라면서 질문자와 눈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눈다. 아우라의 얼굴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