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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대한민국이냐, 고려공화국이냐
    대한민국이냐, 고려공화국이냐

    대한민국 17표, 고려공화국 7표, 조선공화국 2표, 한국 1표…. 1948년 6월7일 제헌국회 헌법기초위원회 위원 30명은 무기명 투표 끝에 압도적인 표차로 ‘대한민국’을 국호로 의결했다. 그러나 ‘대한’이 국호로 쓰인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1897년 고종(사진)이 황제국을 선포하면서 ‘대한(大韓)’이라 했다. “조선은 원래 중국의 책봉을 받은 기자조선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에서 명나라 황제가 낙점해준 국호”라는 것이다. 고종은 “삼한(三韓)의 땅을 하나로 통합한 이상 국호를 ‘대한’이라고 정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고종의 ‘대한’은 한일병합으로 13년 만에 단명했다. 9년 뒤인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국내외 독립투사들이 모여 임시정부를 만든다. 국호가 화두로 떠올랐다.우선 신해혁명(1911년)으로 탄생한 중화민국의 영향을 받아 ‘민국’으로 정했다. 그러나 ‘대한’은 논쟁을 낳았다. 망한 나라인 ‘대한’을 다시 사용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 만만치...

    2017.08.29 21:08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청와대 미남불상과 데라우치 꽃
    청와대 미남불상과 데라우치 꽃

    사내초(寺內草), 화방초(花房草)…. 1922년판 <조선식물명휘>에 실린 조선 고유 식물 2종의 이름이다. ‘금강초롱’이라는 예쁜 이름 대신 왜 화방초라 했을까. 초대일본공사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에서 따왔다. 꽃의 학명도 ‘하나부사야(Hanabusaya)’로 시작된다. ‘사내초’는 식민지 조선의 초대 총독인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穀·1852~1919)의 이름을 딴 꽃이다. 이 꽃의 이름은 ‘조선화관’ 혹은 ‘평양지모’라 바뀌었는데 학명은 여전히 ‘데라우치아(Terauchia)’로 시작된다. 이름을 붙인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1882~1952)의 변(1913년)이 기가 막힌다. “데라우치 총독 각하 덕분에 (식물조사를 벌였으니) 감복하고 있으며, 본 식물을 각하에 바쳐 길이 각하의 공을 전하려 합니다.” 딸랑딸랑, 아부의 극치이다. 이 학명은 100년이 지나도록 지울 수 없는 오명이 되었다.데라우치를 향한 아첨의 흔적은 또 있다. 그것도...

    2017.08.15 20:53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겸재 정선의 ‘졸작열전’
    겸재 정선의 ‘졸작열전’

    ‘겸재는…조선중화사상에 따라…조선고유색을 현양한 진경문화를 주도한…진경산수화법의 창시자다.’ 겸재 정선(1676~1759)을 향한 극찬이다. 심지어 ‘민족적 자존심을 지킨 화성(畵聖)으로 추앙해야 할 인물’로도 꼽힌다. 무오류의 위인전을 읽는 듯하다. 그러나 지나친 신봉은 외려 겸재의 진정한 가치를 흐리게 하지는 않을까.장진성 서울대 교수(고고미술사학과)의 논문(‘정선의 그림 수요 대응 및 작화방식’)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겸재는 그야말로 쓸어내리듯 휘두른 빠른 붓질로 단번에 그리는 ‘일필휘쇄(一筆揮灑)’ 필법으로 유명하다. 겸재의 절친인 이병연은 “내 친구 정선은 그림 그리는 흥취가 날 때 붓이 없으면 내 손에서 붓을 빼앗아…쓸어내리듯 휘두른 붓질이 더욱 방자해졌다”고 평했다. 문인 이규상은 “겸재의 그림은 생동감이 넘치지만…붓놀림은 조악한 기운을 띠었다. 그림 요구에 응해…붓을 쓸어내리듯 휘둘렀다”고 전했다. 오죽하면 “그림 주문량이 삼대밭처럼 많았고, ...

    2017.08.01 20:48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일본 장관의 경천사 탑 약탈 영상 컨텐츠
    일본 장관의 경천사 탑 약탈

    1907년 2월 개성 인근의 경천사터에서 천인공노할 사건이 터졌다. 대한제국을 방문한 일본의 궁내부 대신(장관) 다나카 미쓰아키(田中光顯)가 경천사 10층 석탑(사진)을 무단으로 해체해서 반출해 간 것이다. 일본 정부가 파견한 외교사절이 저지른 만행에 국내외 여론이 아연실색했다. 다나카는 “고종 황제의 허락을 얻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일본의 이륙신문마저 다나카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 황제가 기증했다면 제대로 격식을 갖춰 인수인계해야 했다. 그러나 기증문서도, 공식행사도 없었다. 고종이 진짜 일본에 기증했는지 의심스럽다.”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듣기 약탈의 전모를 알게 되면 기가 막힌다. 주민들의 만류를 총칼로 위협한 일본인들은 높이 13m에 달하는 대리석탑을 140여 점으로 잘라 달구지로 실어날랐다. 대한매일신보는 “다나카는 우리 국민을 만만히 봤다. 한국 인민은 결단코 그 만행과 모욕에 항거할 것”(3월7일)이...

    2017.07.18 20:53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광해군 아들의 쇼생크 탈출 영상 컨텐츠
    광해군 아들의 쇼생크 탈출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듣기 “폐세자 이지가 70자(21m) 길이의 땅굴을 파고 탈출했다가 잡혔습니다.” 1623년 5월22일 인조반정으로 쫓겨난 광해군의 아들 부부를 위리안치(가시덤불로 둘러싼 집에 가둔 유배형)한 강화 교동에서 급보가 올라왔다. 폐세자가 가위와 인두로 26일간이나 땅굴을 파고 탈출을 시도했다는 것이었다. 조선판 쇼생크 탈출이었다. 나무 위에 올라가 탈출 장면을 지켜보던 폐세자빈 박씨는 3일간 곡기를 끊은 뒤 목을 매어 죽었다. 조정은 벌집 쑤셔놓은 듯했다. 반정공신들은 “폐세자를 죽여야 한다”고 앙앙불락했다. 인조와 이원익 등 일부 신료가 “골육 간 참변이 더는 없어야 한다”며 변호했지만 소용없었다. 폐세자는 ‘자진하라’는 임금의 명을 받잡은 금부도사가 도착하자 의연한 웃음을 지었다. 폐세자 부부의 나이는 둘 다 26살이었다. 폐세자가 남긴 시는 자못 가슴을 후벼 판다. “본래는 한 뿌린데 어찌 이다지 박대...

    2017.07.04 21:18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1577년, 100일간의 언론자유
    1577년, 100일간의 언론자유

    “과인이 우연히 (활자로 인쇄된) 조보를 보았다. 누가 임금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멋대로 만들었는가.” 1577년 11월28일 선조가 길길이 뛴다. 조보는 행정업무 사항을 알려주는 일종의 관보다. 중앙이나 지방 관청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열람해왔다. 그런데 약 100일 전인 8월부터 서울의 ‘직업 없는 식자들’이 의정부의 허락을 얻어 조보를 인쇄하여 구독료를 받고 배포하기 시작했다. 율곡 이이의 <석담일기>는 “조보를 받아본 독자(사대부)들이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했다. 그러나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선조는 “누가 감히 이 따위로 일을 처리했냐”면서 “조보를 인쇄하고 유료로 배포한 자들과 이를 허락해준 자를 색출하라”는 비망기를 내렸다. 조보를 발행한 30여명이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보다 못한 사헌부가 “그들은 고의로 범법행위를 한 게 아니며 그저 구독료만 챙기려 했을 뿐”이라고 변호했다. 그러나 선조의 노기는 가시지 않았다. 결국 업자 30여명은 유배형을 받...

    2017.06.20 20:52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청동기 ‘노출남’의 정체 영상 컨텐츠
    청동기 ‘노출남’의 정체

    1970년 어느 날 국립중앙박물관에 한 골동품상이 찾아와 녹슨 청동제품을 내밀었다. 밑부분이 부러져 나갔고, 그나마 남아 있는 윗부분마저 둘로 절단돼 있었다. 게다가 출토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그래도 당시에는 보기 드문 기원전 4~3세기 청동유물이어서 싼값에 구입했다. 그런데 녹을 벗겨내자 반전이 일어났다. 놀라운 무늬가 보였다.두 개의 Y자형 무늬 끝에 새 한 쌍씩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솟대’가 떠올랐다. 하늘과 땅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서 나무와 새가 아닐까. 다른 면에서는 항아리에 곡식을 담고 있는 여성과 괭이를 치켜든 인물이 보였다. 더 놀라운 그림이 보였다. 벌건 대낮에 떡하니 성기를 노출한 채 따비(쟁기)로 밭을 가는 남성상이었다. 뒷머리엔 긴 깃털장식을 뽐내면서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고 밭을 가는 남성…. 요즘 같으면 ‘변태’ 소리 듣기 딱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민속학 측면에서는 낯설지 않은 장면이다. 함경도 종성에 유배 중이던 조선 중기 문인 유...

    2017.06.06 20:43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사람 제사의 비밀 영상 컨텐츠
    사람 제사의 비밀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듣기 “서울의 왕자·옹주가 새집을 지으면서 어린아이를 생매장한다는 소문이 돕니다.” 조선조 성종의 치세(1493~1494년)에 해괴망측한 유언비어가 퍼졌다. 땅의 기운을 다스리려고 아이들을 납치해서 생매장한다는 것이었다. 소름 끼치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경기·황해·충청도까지 아이를 업은 부모의 피난 물결로 몸살을 앓았다. 엄청난 유언비어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무신정권의 실세인 최충헌의 저택을 지을 때와, 충혜왕이 궁궐을 세울 때도 “동남동녀를 잡아 오색옷을 입혀 건축물의 네 귀퉁이에 묻는다”든지, “아이 50~60명을 궁궐의 주춧돌 아래 생매장한다”든지 하는 소문이 파다했다. 조선조 중종이나 명종 연간에도 사람 제사와 관련된 유언비어가 창궐했다.사람을 제사의 희생물로 바친 역사는 뿌리 깊다. 하늘신과 지모신에게 사람을 바쳐 공동체의 안녕을 갈구했다. 최근 천년고도 경주 월성의 성벽 기초부에서 두...

    2017.05.23 20:50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김천택과 19금 노래 영상 컨텐츠
    김천택과 19금 노래

    “내 일러줄 거야. 네 남편한테…. 건넌집 김서방 불러내…수군수군 말하다 … 삼밭으로 들어가 … 잔삼은 쓰러지고 … 굵은 삼대 끝 남아 우줄우줄 하더라고…. 내 꼭 이를 거야. 네 남편한데….” 유부녀의 불륜행각을 남편한테 고자질하겠다는 협박인데, 저 생생한 표현을 보라. 김천택의 ‘만횡청류’에 등장하는 노래이다. ‘약간 높은 음으로 흥청흥청 부른다’는 뜻의 만횡청류는 농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노래다.“들입다 바드득 안으니 … 가는 허리 자늑자늑 빨간 치마 걷어올리고….”(사진) “반여든에 처음 계집질하니 … 흔들흔들 이 재미 알았던들…” 하는 의성어·의태어가 난무하는 노랫말이 적지 않다. 짝사랑 총각의 불타는 마음을 표현한 노래도 있다. “각시네 옥 같은 가슴팍을 좀 대어볼 수 있을까. … (여인의) 저고리 깁적삼 안섶이 되어 쫀득쫀득 대어보고 싶다”고 애를 태운다. 어떤 남성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네 부모가 널 만들어 줄 때는 나만 사랑하라 하신 거야”라고 ...

    2017.05.09 23:20

  •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전형필과 야마나카의 문화재 전쟁 영상 컨텐츠
    전형필과 야마나카의 문화재 전쟁

    일제 강점기에 야마나카(山中) 상회라는 고미술 무역상이 있었다.일찍부터 미국 뉴욕(1894년)과 보스턴(1899년)에 진출해서 일본 공예품 시판회를 열어 호평을 얻는다. 이 두 곳에 점포를 얻은 야마나카 상회는 이후 시카고와 런던, 파리는 물론 베이징 등에 지사를 둘만큼 세계적인 골동품 거상으로 급성장한다. 상회를 이끈 이는 야마나카 사다지로(山中定次郞·1866~1936)이었다. 원래 그의 본명은 아다치 사다지로(安達定次郞)이었다. 13살에 오사카의 고미술상인 야마나카 기치베에(山中吉兵衛)의 가게에서 사환으로 일하다가 그 집안 장녀인 테이(貞)와 결혼했다. 결혼을 계기로 아예 성을 아다치에서 야마나카로 바꾸고 그 집안의 후계자 자리를 꿰어찼다. 1918년 야마나카 상회의 대표가 된 야마나카 사다지로는 당시로는 독특한 판매방식으로 선풍을 일으켰다. 즉 팔고자 하는 물품의 해설과 사진을 넣은 도록을 살만한 고객에게 먼저 보냈다. 그런 뒤 특정일에 그 물품들을 상점에 전시하...

    2017.04.25 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