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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모호함의 힘
고매하고 영예로운 노벨문학상이 지금까지 노래하는 사람한테 돌아간 적은 없다. 스웨덴 한림원은 이런 전통을 깨고 대중가수 밥 딜런에게 노벨문학상을 시상했다. 당연히 노벨문학상 116년 역사상 ‘최대의 파격’이니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인쇄’ 문학작가가 아닌 ‘레코딩’ 가수를 선정했을 경우 문학계에서 나올 법한 비판을 의식한 탓인지 한림원은 밥 딜런의 노래를 ‘귀를 위한 시’라고 그리스 시인 사포와 호머까지 들먹이면서 두둔했다.물론 노벨문학상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파괴력이 떨어지면서 한림원이 관심마케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렇게 뒤따를 논란을 감수하고 그럴듯한 선정 이유를 붙여가면서 상을 준다고 하면 밥 딜런은 감격에 날뛰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감사의 뜻은 즉각 전했어야 했다. 그게 예의이자 도리일 것이다. 그가 어떤 소감을 내놓을지 궁금했다. 그런데 그는 좋다 안 좋다 한마디 없이 무려 2주간이나 침묵했다. 언론과의 연락도 끊었다.... -
닉슨의 워터게이트와 음악가들
지금이면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할까 하는 사건 가운데 하나가 1970년대 미국 닉슨 정부와 존 레넌 사이에 벌어졌던 갈등과 법정 투쟁이다. 당시 닉슨 정부는 존 레넌이 공화당 전당대회와 같은 시각 예정된 반전 콘서트에 참여할 것이라는 정보를 포착한 후 그를 국외로 내쫓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돌입한다. 진짜는 문화게릴라의 척결이었지만 표면적으로 내건 이유는 과거 레넌의 대마초 소지였다.미국 정부의 강공 드라이브에 존 레넌도 가열하게 맞섰다. 법정 공방이 계속되는 중에도 반전, 반정부 집회와 TV 출연을 통해 닉슨 정부의 속 좁은 조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훗날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된 밥 딜런은 이때 여권국에 “존 레넌과 오노 요코를 이 나라에 살아 숨 쉬게 해주라. 미국 땅은 넓다”며 레넌을 옹호하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하지만 1973년 미 법원은 존 레넌더러 60일 이내에 미국을 떠나라는 명령을 내린다. 존 레넌은 거기에 굴하지 않고 그들 식의 저항을 계속해 나갔다. ... -
대중음악을 지배하는 미국화 경향
오는 4~8일 내한 무대를 갖는 팝가수 크리스 노먼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반 국내 팝팬들의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던 영국의 록 밴드 ‘스모키’의 원조 보컬이었다. 우리가 애청한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앨리스’ ‘멕시칸 걸’ ‘왓 캔 아이 두’ 등 스모키의 레퍼토리는 모조리 그가 노래했다. 그룹 스모키가 내한공연을 갖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2년부터 세 번이나 방한해 올드 팬들과 만났지만 그때는 아쉽게도 스모키와 동격인 크리스 노먼이 빠져 있었다.스모키의 음악은 한국인들과 각별한 관계에 있다. 그들 노래가 영국에서 사랑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인기의 체급이 최고 수준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국내 팬들의 스모키 노래에 대한 대접은 절대적으로 융숭했다. 당대 음악의 유행을 좌지우지한 음악다방의 디스크자키들은 다투어 스모키 노래를 틀어댔고 홍서범은 ‘리빙 넥스트 도어 투 앨리스’를 번안한 ‘그대 떠난 이 밤에’로 솔로 데뷔를 했다.그 무렵은 서구에 대... -
휘파람 소리를 듣고 싶다
입술을 좁게 오므리고 혀끝으로 입김을 불어서 청아하게 내는 소리, 휘파람이다. 악기를 빌리지 않고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매혹의 소리다. 다들 시원치 않은데 혼자만 상태와 성과가 두드러질 때 언론이 ‘나 홀로 휘파람’으로 수식하는 것처럼 휘파람은 대체로 ‘룰루랄라’ 즐거움이나 뽐내는 소리로 인식한다. 영화 <황야의 무법자>의 ‘방랑의 휘파람’이나 <콰이강의 다리>의 ‘보기대령행진곡’에 등장하는 휘파람 소리는 호쾌하다. 분단을 종식하고 독일이 통일을 맞았을 때 록 밴드 스코르피언스가 ‘변화의 바람’(Wind of change)으로 그 기대에 찬 환희를 표현했을 때도 휘파람 소리를 동원했다. 우리의 아이돌 그룹 비원에이포(B1A4)가 2014년 발표한 ‘솔로 데이’에 등장하는 휘파람도 즐거움 쪽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솔로족’을 향해 ‘이제는 즐겨야 돼/ 이별을 즐겨야 돼/ 기분 좋은 솔로 솔로 데이’라고 외치면서 청량한 휘파람을 구사한다. 하지만... -
음악 찾아서 듣기
젊은 세대와 어른들이 함께 즐기는 대중가요가 거의 없다. 세계 음악시장에 일정 지분을 갖게 된 ‘K팝’ 아이돌 댄스음악에 우리의 기성세대는 결코 호의적이지 않으며 인디음악에도 밝지 않다. 젊은 세대도 사정이 비슷해 한동안 바람이 일었던 ‘세시봉’ 노래가 그들 사이에 붐이 일었다는 소식은 없다. 세대별로 철저히 노래가 갈려 있는 현실이다.폭넓은 세대가 공유한 노래들이 적지 않았던 1980~1990년대와 비교하면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가요, 이를테면 여러 연령층을 포괄하는 노래가 존재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따라붙는다. 음원차트에서 1등을 했다고 각 세대가 참여하는 대중가요로 일컬을 수 있을까. 말장난 같지만 지금의 노래는 대중가요가 아닌 ‘소중’가요일지도 모른다.2012년 팝의 여왕 마돈나는 전미 순회공연 말미에 ‘강남스타일’의 싸이를 게스트로 초청했다. ‘강남스타일’이 당시 워낙 ‘핫’한 곡인 데다 같은 댄스음... -
가수의 인성교육
세계 음악시장에 깃발을 휘날리는 K팝 퍼레이드의 펀치력이 떨어졌다고 하지만 해외에서 열리는 K팝 가수들의 공연열기를 보면 아직 기세가 꺾인 것 같지는 않다. 미국 배우 엠마 스톤이 ‘훌륭함을 넘어선 중독’이라고 표현할 만큼 서구도 인정하는 한류 대중음악은 그들에게 도대체 뭐가 매혹적일까. 흔히 K팝의 성공 요인으로 역동적인 군무, 가창 역량, 빼어난 비주얼 그리고 기획사의 프로듀싱 기술 등 크게 네 가지가 꼽힌다.음악관계자들은 요즘 들어 이것들에 ‘가수의 인성’이 추가되었으면 하는 희망을 피력한다. 해외에서도 두꺼운 팬 층을 보유한 톱스타들에게 사회적 물의와 추문이 잇따르면서 인성교육이란 화두가 동시 부상하고 있다. 연예계에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것은 유행의 변화나 창의의 후퇴가 아니라 ‘사고 한방’이다. K팝이 내수를 넘어 어엿한 ‘글로벌 상품’으로 뛰어오른 상황에서 스타의 사건·사고는 우리뿐 아니라 해외 고객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외국의 K팝 팬들조차 최근 제이와... -
‘아시아 송 페스티벌’의 꿈
유럽의 음악축제라고 할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관해 얘기하면 상당수 어른들이 ‘아직도 그걸 하나?’라는 반응을 보인다. 1970~1980년대에는 이 대회의 수상 결과가 국내 신문에 게재될 만큼 인기와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언제부턴가 우리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하지만 유럽의 방송연맹이 주최하는 이 행사는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을 넘어 여전히 유럽권에서는 ‘빅 이벤트’로 각국에 생중계된다. 1956년에 시작해 올해로 61회.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거행된 올해 대회에는 42개국이 참가했고, 2억명 이상이 시청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평상시에는 시큰둥하다가도 ‘국가 대항전’에는 뭐든 눈을 붉히는 게 인지상정이듯 출전 개별국가들의 음악적 자존심이 발동하고 그것이 각국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경쟁력을 잃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과거 클리프 리처드와 올리비아 뉴튼존도 영국 대표로 출전해 순위 싸움을 벌였다. 스포트라이트는 덜했지만 이번 대회에서 주목할 사항은 오스트레일... -
장범준 유감
고속열차 KTX를 타고 여수엑스포역에 내리면 여행 필수코스의 하나로 ‘여수 밤바다’를 내건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여수 바다 야경이 주는 낭만적인 멋은 오래전부터 회자되어 왔지만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여수시 지정 공식 명소로 된 것은 분명 그룹 ‘버스커버스커’의 곡 ‘여수 밤바다’ 덕분일 것이다. 대중가요의 광대한 영향력이다. 이 그룹의 또 다른 히트작 ‘벚꽃 엔딩’으로 가면 그 파괴력은 더 커진다.2012년에 나온 이래 해마다 벚꽃 시즌만 되면 어김없이 울려퍼지며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른다. 버스커버스커를 이끈 장범준은 이 곡으로 지금까지 46억원의 저작권료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누구 말대로 벚꽃연금이다. 이후 ‘봄 사랑 벚꽃 말고’ 등 이 곡의 자장에서 벗어나거나 넘으려는 무수한 곡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올 벚꽃축제를 구경한 사람들이 질리도록 접한 곡은 역시나 ‘벚꽃 엔딩’이었다.버스커버스커를 중단하고 개시한 솔로 활동에서도 장범준은 호응의 측면에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
소외되는 최신음악
국내에서도 비틀스의 음원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서비스가 개시되면서 한 30대 초반 음악팬은 스마트폰으로 비틀스 음악을 듣는 만족감을 ‘간만의 음악적 축복’으로 표현했다. 비틀스에 관한 한 우리는 물론, 외국도 얼마 전까지는 CD를 사서 들어야 했다. 20~30대 이용고객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소식을 보면 그동안 비틀스를 듣기 어려웠던 ‘밀레니얼’ 세대가 전설의 비틀스와 간격을 좁힐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것이다.기성세대와 친숙했던 음악가들이 세월이 흘렀어도 대물림에 성공해 뒷세대와 무난히 접합하는 것은 세대 동행과 다양성 확대의 측면에서 순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상당수 젊은이들도 “소비로 흐르는 요즘 음악보다는 옛날의 순수한 음악이 좋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1970~80년대, 흔히 음악의 전성기로 불리는 그때를 장식했던 전설이 잇따라 젊은 세대들에게 소환되고 있다. 관심과 형세를 지금 맹렬히 달리는 요즘 가수들보다는 활동하지도 않는 레전드들이 쥔 형국이다.또한 올해 들어... -
인종 불평등에 저항하는 대중음악
1977년 국내에서도 방영한 드라마 <뿌리> 덕분에 국내 기성세대들에게 가장 친숙한 흑인의 이름은 ‘쿤타 킨테’일 것이다. 당시 얼굴이 조금만 까무잡잡해도 그에게는 자동으로 쿤타 킨테라는 별명이 붙곤 했다. 알렉스 헤일리의 동명 소설에서 쿤타 킨테는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왔지만 노예 이름을 거부하고 백인지배 사회의 흑인에 대한 혹독한 억압과 차별을 견디면서 ‘아프로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지키는 영웅으로 그려진다. 인종문제가 잠잠한 듯한 상황에서 미국의 힙합 뮤지션 켄드릭 라마는 지난해 ‘킹 쿤타’라는 노래로 오랜만에 쿤타 킨테를 소환해 민감한 인종 불평등 문제를 끄집어냈다. 이 곡이 수록된 켄드릭 라마의 앨범 <투 핌프 어 버터플라이>는 힙합을 중심으로 펑크, 재즈 등을 화학적으로 교배해 음악 예술성의 개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앨범에 음악계의 관심이 쏠린 것은 흑인에 대한 경찰의 총격, 흑인부자에 대한 부당한 조세, 빈민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