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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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미등록 이주아동에 체류권을

    미등록 이주아동에 체류권을

    “어릴 때, 여동생이랑 같이 계속 집 안에만 있었어요. 부모님은 일 나가셔야 하는데 우리가 밖에 나갔다가 길 잃어버릴까봐 밖에서 자물쇠로 문을 걸어잠그고 나갔어요. 집에만 있으면 너무 심심하고 할 것도 없었어요. 반지하 창문 밖으로 빠져나가려고 용을 썼던 것 같아요.”그는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말했다.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와 이주인권단체들이 함께한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권 실태조사’를 위해 아이들과 부모들을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정리하던 중 나온 이야기였다. 국립대 박사과정 학생이 되어 한국에서 이주아동과 어머니들을 돕는 활동을 열심히 해 온 그녀도 ‘미등록 이주아동’이던 시절이 있었다.당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체류자격이 없는 어린아이들은 집 안에서 조심조심 숨어 자랐다. 경찰의 눈에 띄어 신분이 탄로 나면 부모님이 잡혀간다고 했다. 잡혀서 출국되면 한국에는 5년이고 10년이고 못 돌아온다. 한 아이는 아버지가 잡혀갔다고 해 출입국사무소로 엄마와 함께 달려갔지만 ...
  • [시선]염화미소

    염화미소

    바람이 칼처럼 날아다녔다. 회색 구름은 움직이는 성처럼 산성봉에서 노고단으로 내달리고 트럭 열 대는 주차하고 남을 노인회관 앞뜰엔 팽나무 낙엽만 몰려다녔다. 회관 입구 난간에 보행보조기와 지팡이가 늘어서 있었다. 그 끝에 그보다 썩 커 보이지 않는 대평댁이 허리를 뒤로 젖힌 채 화엄사 쪽을 바라보고 있다. 고정화면 같았다. 나는 점심약속이 있어서 읍내로 가려다가 차에서 내렸다. “엄니! 추운데 뭐 할라고 나와 서 계신대요. 옷도 얇게 입고.” 대평댁의 답은 짧았다. “간전성이 안 와요”잠시 설명을 끼우자면, ‘간전성’은 ‘간전댁 형님’의 줄임말이다. 택호(宅號)인 ‘○○댁’으로 부르지만 나이가 많은 분에게는 어머니들 간에 ‘형님’의 방언인 ‘성님’이나 ‘성’을 덧붙인다. 택호 어미인 ‘댁’의 발음이 야박하게 들리는지 ‘덕’으로 바꿔 불러서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는 떡이 넘친다. 일천떡, 용강떡, 오봉떡식이다.마을회관에선 주민들이 보통 점심을 같이 드신다. 식사 준비 담당...
  • [시선]다시 만날 세계

    다시 만날 세계

    여성가족부 해체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국민의힘 대통령이 급기야는 내란죄를 일으켜 탄핵을 앞뒀다. 대통령의 불법적 명령을 따라 국회를 침탈하려던 군인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라며 소리치던 1989년생 여성 정치인 안귀령은 한 외신이 뽑은 ‘2024년 가장 인상적인 이미지 12’에 뽑혔다. 색색의 응원봉으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존재들을 아낌없이 응원해왔던 2030 청년여성들은 침탈당한 민주주의 복원을 위해 광장에서 그 응원봉을 높이 들었다. 그 사랑과 용기와 정의감과 단호함이 든든하고 고맙고 소중하다.한국 사회의 구조적 기울기를 들여다보면 그런 에너지가 대체 어디서 나올 수 있는지 경이로울 지경이다. 여성들은 비정규직과 시간제 노동 등 불안정한 소득 노동직으로 내몰리는 정도가 남성에 비해 더 극심해 한국 남성 평균소득의 59%밖에 벌지 못하며 살아간다. 임금노동을 기본값으로 두고 만든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 또한 너무나 높다. 높은 청년여성 자살률이 이런 사회적 구...
  • [시선]현대제철의 이상한 책임정치

    현대제철의 이상한 책임정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이후 경영책임자는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가? 대기업일수록 절차적, 형식적 안전제도는 강화하고 있는 모양새다. 작업의 절차와 방식을 정하고, 취해야 할 안전조치를 매뉴얼화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원청과 하청 상관없이 위험을 신고하는 ‘안전신문고’ 같은 제도도 중요하다. 문제는 이러한 절차와 형식이 노동자 사망사건에 대한 경영책임자의 책임 면피를 위한 ‘알리바이’용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현대제철은 2015년부터 ‘10대 안전수칙 지키기’(safety core rule·SCR) 운동을 시행하다가 2023년 8월부터 SCR을 위반하는 노동자를 인사위에 회부해 징계할 수 있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특히 노동자가 다쳐 쉬어야 하는 안전사고의 경우, 다친 노동자는 인사위에 당연 회부되도록 되어 있어, 산재노동자뿐 아니라 현장관리자가 징계를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산재노동자는 다친 것도 억울한데 산재 치료 후 현장 복귀 시 징계위에 회부되며, 징계 대기 상태에서 ...
  • [시선]사람을 마음대로 가두지 말라

    사람을 마음대로 가두지 말라

    지난 주말 시민들의 힘으로 민주주의의 묵은 때 하나를 벗겨냈다. 일상으로 돌아와 달력을 보니 어느새 12월 중순이다. 올 한 해도 며칠 남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가 치러질 내년, 국회가 꼭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 가지 더 있다. 헌법에 위반된 외국인 구금 제도를 법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일이다. 헌법재판소는 2023년 외국인 구금 제도가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면서, 국회에 2025년 5월31까지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하도록 했다.헌재 결정의 배경이 된 사례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미성년자인 난민 신청자가 체류 기간이 넘었다는 이유로 구금되었다. 아동 구금을 금지하는 국제법에 정면으로 위반된 위법한 구금이었다. 아이는 20여명의 어른들 사이에서 의사소통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국가기관이 사람을 가두는 데 영장이 필요 없었다. 외국인보호소가 출국을 도와주는 행정기관이라는 이유로 영장 없이 외국인을 구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
  • [시선]마지막 유언장

    마지막 유언장

    아들아, 지게를 지고 뒷산에 올라 아궁이 땔감을 하면서 문득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음먹고 네 어미랑 같이 보건소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썼다. 아비와 어미도 어느덧 예순 중반을 훌쩍 넘었으니, 지금 떠난다 해도 서운하거나 아쉬울 게 없다. 그러니까 갑자기 아비에게 죽음이 찾아오면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119도 부르지 말기 바란다. 그냥 아비가 살던 집에서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 도와주기 바란다. 그게 산 사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 생각한다. 아비는 ‘장기와 조직 기증 희망자 등록신청서’까지 적어냈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반대하지 말고 받아들이기 바란다. 아비가 죽어서, 죽어가는 사람 아홉 명을 살릴 수 있다는데…. 아픈 사람 100명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다는데…. 그걸 알면서 어찌 그냥 떠날 수 있으랴. 허물 많은 아비가 마지막 떠나는 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살아가다 가끔 못난...
  • [시선]토대 잃은 문명은 사라진다

    토대 잃은 문명은 사라진다

    11월의 난데없는 폭설로 아수라장을 겪은 곳이 많았다. 불안정해진 기후만큼이나 인간세계도 불안정해지고 있다. 그나마 든든하게 기댈 토대가 있다면 이 불안을 안고도 삶을 지속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불안은 바로 그 토대가 부지불식간에 붕괴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온다.토대(土臺)라는 한자어가 가리키듯 토대의 기본은 ‘토’, 바로 흙이다. 전 세계에서 해마다 흙이 240억여t씩 흩어져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각자 해마다 몇t씩이나 되는 흙을 없애고 있는 셈이다.개발과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기 위한 과도한 농업과 같이 흙을 돌보지 않고 침식되게 방치하다 결국 토대를 잃은 문명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져 갔다. 흙 침식의 문제를 면밀히 들여다본 학자들에 따르면 메소포타미아,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등의 유구했던 문명이 하나같이 침식과 토질 고갈로 결국 붕괴되었다. 흙 문제를 알게 된 후에도 당장의 개발과 소비를 위해 흙 돌보기를 외면했던 까닭이다...
  • [시선]위선의 정치 다음에 오는 것

    위선의 정치 다음에 오는 것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 열겠다.” 2017년 문재인 전 대통령이 취임 후 인천국제공항공사를 찾아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한 약속이다. 당시 공사는 비정규직 비율이 88%였다.대통령의 약속 이후에 벌어진 일은 이른바 ‘인국공 사태’였다. 그제서야 1996년 ‘노동법 개악 날치기 통과’ 이후 신자유주의가 행한 노동정책이 노동자의 집단적 심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가 명백해졌다.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누군가가 일터에서 나가야 했을 때, 그때 이미 노동 내부의 틈은 벌어졌다. 법과 제도, 행정명령이 동원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틈, ‘핵심노동’과 ‘비핵심노동’의 구별은 노동의 위계를 상징하는 기다란 사다리가 되었다.신자유주의가 만든 노동의 위계는 과거처럼 노력 여하에 따라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각각의 진입경로가 달랐다. 사다리의 윗단과 아랫단은 각각 다른 진입경로를 통해야 한다. 공채라는 이름의 버젓한 입직경로와, 알바 사이트를 통한 취업은...
  • [시선]염치없는 사회

    염치없는 사회

    염치(廉恥)라는 단어는 청렴할 염(廉)과 부끄러울 치(恥)라는 한자가 모여 만들어졌다. ‘염조(廉操)와 지치(知恥)’의 줄임말로,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청렴하여 지조를 지키고(廉操), 수치심을 아는 것(知恥)인데, 흔히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한국 사회가 갈수록 염치가 없어진다. 개인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1944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모인 전 세계 사람들이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고 외쳤고, 몇년 뒤인 19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3차 유엔총회에서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이 통과되었다. 참혹한 세계전쟁을 경험하고 깨친 반성과 성찰의 결과였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한국에서는 노동이 플랫폼을 통해 분초 단위로 거래되고, 외국인 노동자를 “값싼 노동자”로 부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오세훈 서울시...
  • [시선]허튼소리

    허튼소리

    농사철이 끝나고 나면 농부들은 골병든 몸을 돌보느라 정형외과로 한의원으로 다니느라 바쁘다. 모두 지구 가열화로 농사짓기가 갈수록 어려워 몸과 마음이 몇배로 고달파서 일어난 일이라 한다. 이런 현상을 ‘기후 재난’이라 한다. 기후 재난은 농부들에게 가장 빠르고 험악하게 다가온다.오늘 낮에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후배가 명예퇴직을 준비하면서 찾아왔다.“선배님, 앞으로 농촌에서 먹고살려면 지켜야 할 10계명 같은 거 없습니까? 생각나는 대로 몇가지만 들려주면 고맙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남은 삶을 아내와 함께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제 몸에서 ‘사람 냄새’가 날 것 같습니다.”후배 말을 듣고 갑자기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 10계명’ 중 몇가지가 떠올랐다.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앞다투어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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