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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 의사들은 무엇을 감추는가
    의사들은 무엇을 감추는가

    지역신문에 기고된 의사들의 칼럼에서는 종종 유사한 한탄이 등장한다. 진단을 ‘못 믿겠다며’ 서울의 대형병원 투어를 하느라 치료 시기를 놓쳐 더 큰 고통을 감수하는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례 말이다. 유별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에서는, 다쳐서 지방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왜 서울로 안 갔는지를’ 주변에 자꾸만 해명해야 하는 우주의 기운이 실제로 존재한다.이런 분위기를 탓하면, 자신은 병원 갈 때 의사가 어느 대학 나왔는지도 꼼꼼하게 확인한다는 말이 돌아오는 세상이다. EBS 프로그램 <명의>는 좋은 취지였겠지만, 명의에 출연한 의사 명단이 ‘오늘 생생정보통에 소개된 맛집’처럼 떠도는 시대의 단면일 거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병원 앞에서 의사를 새로 초빙했다는 현수막을 보았는데, 거기에 적힌 ‘○○과학고 출신’이라는 묘한 문구가 이해됐다. 의사라고 같은 의사가 아니라는 저 투박함에, 오만함보단 애잔함이 느껴졌다. 힘들게 의사가 되어서도, “능력 있으면 서울에...

    2023.10.22 20:28

  • [시선] 멋진 언니들의 향연
    멋진 언니들의 향연

    ‘미친 과학자’라는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두꺼운 뿔테안경을 쓰고 하얀 가운을 입고 색색의 플라스크에 둘러싸인 백발의 노인. 그 모습이 흔히 미디어에서 그려왔던 과몰입 연구자의 특징이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닥터 브라운, <미니언즈>의 네파리오 박사, 만화 <아톰>의 박사님도 딱 그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 별칭에 새로운 모습이 덧씌워졌다. 똑똑하고 생기 넘치고 열정적인 젊은 여성. 좁고 답답한 감옥을 개인 연구 공간으로 만들어버리는 아우라, 도구가 부족하면 종이를 찢어 대신하고, 잠을 포기한 채 결과물에 매달리는 집념까지, <데블스 플랜>의 이시원은 똑똑한 여자들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집요하게 추적하고, 단호하게 나아가고, 깔끔하게 책임지는 모습에 누가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데블스 플랜>은 서동주의 재발견이기도 했다. 미안하지만 예술에서 순수학문, 법학까지 아우르는 그의 화려한 학력들을 보면서도 얼마나...

    2023.10.20 20:46

  • [시선] ‘신종재난’의 오래된 반복
    ‘신종재난’의 오래된 반복

    10월29일이면 이태원 참사 1주기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고,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는 말로 지난 1년 정부의 무책임을 비판했다. 정부는 ‘신종재난이기 때문에 예측할 수 없었다’는 말로 재난 대응의 총괄책임을 지는 행정안전부와 이상민 장관을 포함한 정부의 책임을 지웠다. 이태원 참사 이후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14명이 사망하자, 정부의 대응은 더 나빠졌다. 김영환 충북도지사는 재난 첫 보고를 받은 뒤 3시간30분이 지나서야 사고 현장에 도착하고도 ‘거기에 갔다고 해서 상황이 바뀔 것은 없다’는 발언을 했다. 오송 참사와 관련해 감찰조사 결과 충북도지사와 청주시장이 징계와 수사 대상에서 제외된 직후였다. 이상민 장관의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소방을 미리 배치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는 식의 발언이 반복됐다. 위험은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다. 이를 알아챌 수 있는 것은 위험에 대한 예측이다. 현 정부 역시 두 참사에서 예...

    2023.10.15 20:30

  • [시선] 수저를 그냥 놓고 싶다
    수저를 그냥 놓고 싶다

    클로디아 골딘이 노벨 경제학상을 탔다고? 드디어 한국에서 골딘을 읽겠구나, 했다. 골딘은 성별 임금격차의 원리를 이렇게 밝혔다. 노동시장에는 탐욕스러운 일과 유연한 일이 있는데, 전자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모든 것을 갈아 넣을 수 있는 일, 후자는 그렇지 않은 일이다. ‘가정’ 영역에서 책임 있는 사람, 즉 여성은 후자로 갈 수밖에 없는데, 급격한 임금 인상은 전자에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골딘의 지적은 핵심적이다. 여성이라 해야 하는 뭔가가 있는데, 그게 노동시장 같은 사회구조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그런데 골딘이 책에서 주목한 1958년에서 1978년 사이 출생한 미국 여성들은 커리어와 가정, 둘 모두를 가지려 노력한 집단이다. 이들이 부부 관계에서 전략을 짜 커리어를 이어간 결과 여성이 유연한 일자리로 몰린 게 문제 배경이다. 이들은 유연한 일자리와 가정생활이 서로 보완된 성취라 여긴다. 여기서 우리와 차이가 있다. 한국에선 모두가 탐욕스러운 일자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한...

    2023.10.13 20:38

  • [시선] 한국 사람 기준의 ‘오류’
    한국 사람 기준의 ‘오류’

    러시아 사람과 결혼한 다문화 가족의 법률상담을 했다. 얼마 전 예쁜 아이가 태어나 한국에 출생신고를 하고 러시아에도 출생신고를 하려 하니 아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경우 러시아 국적을 취득하면 한국 국적이 상실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는 것이다. 러시아 국적법에서 러시아 영토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귀화 절차로 러시아 국적을 받게 되는데 이 경우 사후적으로 다른 나라 국적을 선택한 것이 돼 한국 국적이 상실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러시아에 출생신고를 했다고 한국 국적을 상실하게 하는 건 불합리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법적으로 한국 국적이 상실된 상태를 모르는 러시아 다문화 가족이 많아서, 어떤 가족의 경우 군대까지 다녀온 자녀가 있는데 부모가 어린 시절 러시아에 출생신고를 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유령 한국인’으로 살았다는 것이냐며 답답해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러시아 다문화 가정 자녀의 경우 러시아 국적법과 무관하게 아이가 한국에서 사는 동안에는 복수국적을 인정해주고...

    2023.10.08 20:39

  • [시선] 사과의 위기
    사과의 위기

    “이 가격 실화냐?” 사과 한 알에 5000원이 넘는 걸 보고 눈을 의심했다. 결국 마트 한 편에 마련된 세일 코너에서 흠집 있는 사과 네 알에 5600원 하는 꾸러미를 샀다. 흠과라도 맛만 좋으면 되지. 결과는 꽝. 달콤한 맛을 상상하며 한 입 베어 물었지만 백설 공주도 마다할 ‘무맛’이었다. 사과뿐 아니라 좋아하던 수박과 복숭아도 올해는 큰마음 먹고 샀다가 실패한 경우가 많았다.특히 기후 변화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진 감자, 포도, 사과의 타격이 컸다. 사과의 경우 사과꽃이 진 자리에 맺히는 ‘착과수’가 올해 무려 16%나 감소했다고 한다. 고온 현상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긴 장마에 탄저병까지 덮쳤다. 다른 과일도 마찬가지다. 생산량도 당도도 줄었다. 6월이면 만날 수 있는 포슬포슬한 감자도, 여름의 상징 수박도,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아삭하고 달콤한 사과도, 껍질과 씨 때문에 귀찮긴 하지만 자꾸 손이 가는 새콤달콤한 포도도 이제는 ‘당연한’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풍작인...

    2023.10.06 20:17

  • [시선]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미리 알려주면 누구나 쓸 수 있는 ‘공유공간 시시’는 합천군 가회면에 있다.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가다 보면 두세 번쯤은 ‘어, 이 길이 맞나?’ 싶을 만큼 깊은 산골 마을이다. 공유공간 시시란 이름에는 세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사는 게 조금 시시하면 어때, 나답게 살아가면 되는 거지. 시가 찾아오는 공간.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피어나는 공간. 이름 하나에도 이런 멋진 이야기가 있다니! 시시, 생각만 해도 마음이 편안하고 낭만이 흘러넘친다.다가오는 10월2일(월) 오후 2시부터 5시, 시시에서 여럿이 함께 모여 신나는 잔치를 연다. 2시부터 장터를 열고 3시부터 5시까지는 지역 곳곳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청년들이 모여 ‘시시숲밭 콘서트’를 연다.장터에서는 어떤 물건을 팔까? 산청 ‘콩살림’에서 국산 콩으로 만든 된장, 간장, 고추장, 청국장을 가지고 온다. 산골 마을에서 부모님 일을 돕고 있는 박기범 청년은 매콤한 떡볶이를, 나무실 마을에 사는 한경옥님은 유기농 감자...

    2023.09.24 20:23

  • [시선] 유예된 미래
    유예된 미래

    ‘살아 있는 화석’이라는 말이 있다.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처음 쓴 말로 투구게나 실러캔스처럼 화석으로만 남은 고대의 생물종과 흡사한 외견을 가지고 있으면서 현존하는 다른 근연 분류군이 존재하지 않는 생물종을 말한다. 대학이나 회사 등의 사회 조직에서 오랜 역사를 직접 경험한 나이 많은 사람을 살아 있는 화석이라 부를 때도 있다. 반대로 지금 여기에서 함께 살고 있지만 마치 여기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존재도 있다. 바로 ‘미래 세대’다. 지금 여기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미래 세대로 호명된다.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명시된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기도 주권자이다. 지금 살아 숨 쉬며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주권자를, 시민들을 왜 미래 세대라고 이름 붙여 그들의 이야기와 삶을 현재가 아닌 미래로, 미정의 도래할 무엇으로 유예하는 것인가. 어린이와 청소년은 자주 미성숙한...

    2023.09.22 20:05

  • [시선] 비행기에서 삶을 묻다
    비행기에서 삶을 묻다

    제주에 살면서 비행기를 자주 이용했다. 할 줄 아는 게 기록이라, 몇년간 차곡차곡 쓸데없는 것들을 모았다. 출발·도착 예정시간과 실제시간, 지연 횟수와 이유, 비행기 내부에서 본 것들 등등. 국내선에 국한된 개인 경험이지만 데이터를 누적하니,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삶의 태도가 왜 중요한지도 느껴지고, 아기자기한 세상 이치도 어렴풋이 보인다.놀라지 마시라. 비행기가 탑승권에 적혀 있는 시간에 이륙할 확률은 1% 미만이다. 제때 입장이 시작되어도, 이런저런 짐을 든 150~180여명을 20분 만에 태우는 건 어렵다. 일부러 가장 먼저 탑승해 기록을 해보니 출입문 닫힐 때까지가 평균 24분, 이륙까지는 35분이 걸렸다. 모든 게 순조로워도 2분에 한 대가 뜨고 내리는 김포나 제주공항에서 활주로 대기는 일상이다. 그러니, 10시 출발 비행기가 9시59분에 이륙한다면 그날이 행운의 날이다.걱정 마시라. 늦게 출발해도 예정시간 즈음에 착륙할 확률이 55%다. 지름길이라도 있는 건가...

    2023.09.17 20:32

  • [시선] 즐기면, 져도 즐겁다
    즐기면, 져도 즐겁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무려 두 경기 만에 16실점을 하고 만다. 9 대 0, 7 대 0이라는 점수만 보자면 월드컵 본선이라는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민망한 실력의 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없고 돈 없는 최빈국의 선수들이 꾸역꾸역 스위스로 넘어가며 다짐했을 의지와 투혼, 그런 그들에게 보낸 세계인의 관심과 응원이야말로 스포츠가 가진 힘이 아니었을까.취미로 하는 주제에 감히 국가대표팀의 역사와 비교할 수는 없겠다만, 적어도 우리팀엔 그날 모든 것이 스위스 월드컵을 떠오르게 했다. 5전5패, 솔직히 실점은 기억할 수조차 없다. 숫자에 약한 것이 차라리 다행이랄까, 매번 첫 실점은 철렁했지만 하도 반복되다보니 당최 경기마다 몇 골을 먹었던지 기억도, 덧셈도 할 수 없었다. 하여간에 많이 먹었고 조금의 아슬아슬함도 느낄 새 없이 매번 졌다. 그냥 한 경기 한 경기 죽어라고 뛰는데도 공을 따라잡을 수 없고, 엉뚱한 곳에 패스를 하고, 기껏 마련한 상차림을 앞에 놓고...

    2023.09.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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