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경향신문

기획·연재

시선
  • [시선]사기꾼을 키우는 나라
    사기꾼을 키우는 나라

    얼마 전 트위터에 이런 글이 돌았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과 그 반대의 특징. 그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시험을 ‘지식 쌓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문제 풀기 트레이닝에 집중한다. 반대는 지식을 쌓기 위해 공부한다. 마치 논문을 쓰는 것처럼. 사람들은 후자를 비웃었다. 그걸 보고 생각했다. ‘이거 난데…?’생활스포츠 지도사 현장실습을 다녀왔다. 꼬박 1년 과정의 마무리 단계. 연수 말미 소논문을 쓸 때 나는 본격적으로 불탔다. 연령별 트레이닝 방법론과 운동 발달 단계 이론을 보며 무릎을 탁 쳤기 때문이다. 이건 선형적 시간 개념 문제구나! 운동을 시작할 때 나는 ‘초기 성인기’였다. 모든 움직임 기술이 최상으로, 이를 활용해 운동을 가르치는 시기다. 나는 난생처음 간 취미 발레반에서 영문 모르고 허우적거렸는데, 나중에 가장 초보적인 운동 기술인 제대로 앉기, 서기, 걷기부터 배웠다.시간은 선형적이지 않다. 사회구조적 위치에 따라 다르게 흘러간...

    2023.09.08 20:44

  • [시선] 사람이 오는 일이다
    사람이 오는 일이다

    한국에 오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폭 늘어날 예정이다. 정부 부처들이 앞다투어 외국인력 유입을 늘리겠다고 야단이다. 지난달 법무부는 내년 숙련기능 외국인력(E-7) 쿼터를 기존 2000명에서 3만5000명으로 17배 이상 확대하겠다고 했다. 장관이 직접 조선소를 방문해 ‘깨작깨작 늘리는 것은 효과가 없다’는 표현을 써가며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당장 내년부터 5년 이상 장기체류하면서 가족을 동반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가 3만3000명 이상 늘어난다. 평균적으로 3~4명의 가족을 동반하는 걸 고려하면 실제 10만명 이상 외국인이 늘어날 것이다. 지난주에는 고용노동부도 가세했다. 고용노동부 외국인력정책위원회는 ‘킬러규제 혁파’라는 이름으로 당장 이달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별 고용 한도를 2배 이상 늘린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로 줄어든 외국인 노동자를 충원하기 위해 올해 고용허가 대상 노동자를 역대 최대 규모인 11만명으로 늘렸는데, 더 늘린다는 것이다. 외국...

    2023.09.03 20:32

  • [시선] 사실 우리는 초능력자다
    사실 우리는 초능력자다

    내게 초능력이 생긴다면? 우선 얼마 전 갑자기 잎을 우수수 떨구며 죽어버린 식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응. 그랬구나. 그게 힘들었구나. 내가 잘못했어…. 떨어지는 잎에게 사과라도 할 수 있게.요즘 드라마에 초능력자들이 부쩍 많아졌다. <힙하게>에서 수의사 예분은 번개를 맞은 후 사람이든 동물이든 엉덩이를 만지면 상대의 기억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갖게 된다. <무빙>에는 어떤 상처도 금세 회복되거나 공중 비행이 가능하거나, 손만 대면 전기를 만들 수 있거나, 망원경이나 도청기급 오감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나온다. 초능력이 있다면 마냥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자신이 가진 능력 때문에 불편을 겪거나 손해를 보기도 한다. <무빙>에서 공중 비행이 가능한 초능력을 가진 고등학생 봉석은 시도 때도 없이 두둥실 떠오르는 몸을 땅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쇳덩이를 담은 가방을 메고 다녀야 한다. &l...

    2023.09.01 20:25

  • [시선] 유산
    유산

    고마운 분들 덕으로 정성스럽게 지은 작은 흙집. 흙집 방 안에 별을 노래하는 농부가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손때 묻은 책. 고달픈 농사일에 지쳐 돌아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맞아 준 작은 구들방. 손님들과 둘러앉아 아픔과 희망을 함께 나눈 오래된 밥상과 찻잔. 가을에서 봄까지 전기와 기름 없어도 따뜻하게 잘 수 있게 만든 아궁이와 이웃 마을 청년 농부 구륜이가 준 아궁이 땔감. 앞마당에 옛 주인이 심은 늙은 감나무와 가죽나무. 산골 이웃이 선물로 준 고운 단풍나무. 가까운 텃밭에서 철마다 자라는 부추, 상추, 토마토, 케일, 치커리, 고추, 들깨, 참깨, 취나물, 오이, 가지, 옥수수, 토란, 여주, 땅콩, 감자, 양파, 마늘, 박하, 대파, 쪽파, 무, 배추, 생강, 시금치, 쑥갓…. 마당 왼쪽에 보기만 해도 넉넉해지는 장독. 그 안에 든 간장, 된장, 고추장, 매실, 오미자, 솔잎, 산야초 원액. 장독대 앞에 해마다 저절로 피고 지는 노란 수선화, 봉숭아,...

    2023.08.27 20:27

  • [시선] 맏딸의 맏상제-되기
    맏딸의 맏상제-되기

    응급실에서 아빠의 곁을 지키며 지난 칼럼이 홈페이지에 업로드되자마자 아빠에게 보여주었다. 아빠는 힘겨운 목소리로 ‘지금은 못 봐. 나중에’라고 말했다. 아빠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밤을 꼬박 새웠지만 아빠는 끝내 그 글을 보지 못했다. 늘 나의 첫 번째 독자였던 아빠는 큰딸을 사랑하는 만큼 날카롭게 비판하고 날 선 지적을 했다. 아빠가 내 글을 읽고 평을 해주지 못하는 첫 번째 순간이었다.장례를 준비하며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제단에 차릴 꽃과 제상, 조문객에게 낼 음식 등등을 골랐다. 상복은 남자, 여자 인원수에 맞춰서 준다고 했다. 나와 나의 애인인 아빠의 사위가 입을 정장 두 벌, 엄마와 동생이 입을 치마저고리 두 벌을 요청하자 장례식장 직원은 놀란 표정으로 내게 정말 정장을 입을 것인지 몇 번 물었다. 상복을 입고 왼팔에 두 줄 완장을 차고 맏상제가 된 내 모습에 가족들은 모두 잘했다고 칭찬했다. 아빠가 좋아할 것이라며.10여년 전, 할머니 장례식 때 장례식...

    2023.08.25 20:22

  • [시선] 전체주의 싫어하는 대통령님께
    전체주의 싫어하는 대통령님께

    존경하는 대통령님. 지금, 자유전체주의를 맹종하며 공동체를 교란하는 반인권세력이 활개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차별할 자유도 있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저는 한국 사회의 혐오 문제를 한 아파트에서 임대아파트와 같은 학군 배정을 반대하는 게시물을 올린 사례로 언급한 후 어떤 항의를 받았을까요? “내 아이가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도록 하는 게 왜 차별이냐! 내 자유지.” 존경하는 대통령님. 지금, 자유전체주의를 추종하며 역사를 왜곡하는 반민주주의 담론이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가 보편적 인권을 누리는 사람이 더 많아지는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군부독재 시절 빈번했던 인권유린의 실상을 짚을 수밖에 없죠. 어떤 e메일을 받았을까요? “왜 전직 대통령을 나쁘게 묘사하냐! 빨갱이 잡은 게 인권탄압이냐! 당신의 사상이 수상하다.”존경하는 대통령님. 사상검열이 늘어난 듯한 느낌, 기우겠죠? 사실을 제대로 말하고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글 쓸 자유가...

    2023.08.20 20:48

  • [시선] 등에서도 나이가 보인다
    등에서도 나이가 보인다

    “아이고, 많이 늙었다.” 나와 함께 사는 박모씨는 거의 모든 드라마의 첫 회, 첫 감상을 저렇게 시작한다. “당연하지, 저 배우 나이가 몇인데, 저 정도면 나이든 티도 안 나네”라는 나의 대꾸도 늘 똑같다. 지겨우리만큼 똑같이 반복되는 이 대화가 어느 날 갑자기 거슬리기 시작했다. 누가 생각해봐도 저 배우들은 온갖 의학기술과 미용기술을 이용해 본인의 노화를 철저하게 감추거나 혹은 늦추고 있는데, 오직 여성주인공만을 굳이 꼭 집어 많이 늙었다고 평하는 패턴이 왠지 좀 거북해서 요즘은 종종 못 들은 척하고 있다.너무 반복되는 소리라 듣기 싫은 점도 있겠다만 어쩌면 이제 그의 ‘늙었다’는 평이 대배우 언니들에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내 또래 연예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발언이라 더 언짢은지도 모르겠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저 사람은 나와는 달리 군살도 없고, 늘어진 피부나 잡티도 없는데 타인에게 늙었다는 평을 듣고 있다니, 도대체 좀처럼 젊어 보임을 붙잡으려는 노력조차 안 하는 ...

    2023.08.18 20:44

  • [시선] 과잉처벌과 부수적 처벌
    과잉처벌과 부수적 처벌

    최근 합법 집회가 불법화되고 공권력의 과감한 물리력 행사가 강화되고 있다. 지난 5월23일 “그 어떤 불법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 이후 경찰의 집회 대응이 위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경찰은 5월25일 대법원 앞 인도에서 진행된 비정규직 노동자 문화제를 원천 봉쇄했고, 이를 막으려던 참가자들을 체포했다. ‘폭력성이 없는 집회를 강제 해산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무시하면서 집행한 경찰의 논리는 ‘불법 행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였다. 참가자들은 ‘대법원’으로 삼행시 경연을 펼치며, 불법파견 문제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법원을 비판한 것이 전부였다. 건설노조를 ‘건폭’으로 규정한 탄압도 지속되고 있다. 경찰은 건설현장 불법단속기간을 연장하고, 특진자를 90명으로 늘렸다. 전세사기와 마약 수사에 배당된 특진자보다 더 많은 이례적인 규모다. 건설노조의 조직력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지만 경찰의 노조원 검거 열풍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정...

    2023.08.13 20:17

  • [시선] 권위란 무엇인가
    권위란 무엇인가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김연아 선수의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여자 싱글 부문 최고점을 경신하고 금메달을 딴 후다. 열악한 환경에서의 극기 훈련, 그걸 ‘그냥 했다’는 말에 모두 감동받았다. 반면 나는 ‘그냥 하는’ 사람의 정반대에 있다. 매번 생각을 하고, 그냥 하라고 하면 열받아 한다.생활스포츠 지도사 자격증 연수를 받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 나는 왜 몸을 움직이면 놀림받고, 시험 성적이 잘 나오면 부러움을 샀지? 태어나 보니 몸을 잘 움직이는 능력과는 거리가 멀었고, 글을 읽는 것은 한 번도 어렵지 않았다. 학교에서 나는 체육시간을 ‘헐어’ 자습을 했고, 운동을 원래 잘해서 운동부가 된 애는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30대가 다 되어서야 여성학을 공부하며 몸을 둘러싼 불평등 구조를 이해했고, 사교육 기관·헬스장에서 운동을 배웠다. 일반인, 특히 소수자에게 생활체육이 어떤 의미인지를 자문하며 몸의 감각이 달라...

    2023.08.11 20:13

  • [시선] ‘전세 피해’ 이주민 차별 말라
    ‘전세 피해’ 이주민 차별 말라

    인천 미추홀구에 사는 중국국적 동포 A씨는 전세사기 피해자다. 얼마 전 살던 집이 경매에 넘어갔고, 20년 동안 한국에서 일하며 성실하게 모은 전 재산인 5000만원 전세금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 채 아내와 여덟 살 난 딸 그리고 부모님까지 다섯 가족이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게 되었다. 경찰에 신고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은 받았지만, 피해자에 대한 지원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지 못하고 있다. 긴급 주거를 위한 임대주택이 지원이나 기금에 따른 보증금 대출은 내부적으로 그 대상을 ‘국민’으로 한정하고 있어 외국인은 적용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들었다. 실제 인천 계양경찰서에서 수사 중인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 98명 중 12명이 중국이나 우즈베키스탄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라고 한다. 전체 피해자의 10%가 넘지만 관련 정보나 보호제도가 외국인 주민에게는 제대로 제공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피해지원위원회가 인정한 피해자는 1901명인데 이 중...

    2023.08.06 20:46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아니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구독 취소하기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보기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닫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