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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사람을 돌보는 일의 가치
    사람을 돌보는 일의 가치

    결국 찾아내 강제출국시켰다. 서울시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선발되어 지난 8월 한국에 왔던 필리핀 노동자 2명이 숙소를 떠난 것은 지난달 15일이었다. 한 달 동안 교육을 받고 개별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시작한 지 2주가 막 지났을 때였다.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쳤다는 서울시 설명대로 가사업무 관련 국가공인 자격증을 가지고, 한국어시험과 영어면접까지 통과한 실력 있는 노동자였다. 이런 노동자가 단기간에 일터를 떠나 다른 일자리를 찾아갔다면 사업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다. 도망간 사람을 쫓아다닐 것이 아니라, 현장의 문제점을 되짚어보는 것이 우선되어야 했지만 그런 노력은커녕 언론에 접촉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며 입단속하기 바빴다.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이민특수수사대’가 ‘추적 검거’해 ‘강제출국’시켰다는 언론보도를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처음부터 시작되어선 안 되는 사업이었다. ‘싼값에 외국인을 쓸 수 있다’는 노골적 이유로 시작된 인종차별적 정책...

    2024.10.20 20:35

  • [시선]농부들은 애간장이 탄다
    농부들은 애간장이 탄다

    20년째 살고 있는 작은 흙집 지붕이 삭아 이슬비만 내려도 아내가 걱정을 한다. 어찌 지붕만 삭았겠는가. 싱크대 서랍도 삭고, 창고문도 삭고, 고된 농사일에 무릎과 팔꿈치도 삭고, 설익고 서툰 사람 관계로 마음도 삭아 성한 데가 없다. 서너 해 전부터는 오랜 낫질과 호미질로 손가락 마디마디가 비틀어져 밤마다 아리다.사람만 늙어 가는 게 아니다. 집도 같이 늙어 간다. 스무 해 전에 흙집을 함께 지은 ‘나무로’ 대표 김도환 목수가 아스팔트싱글 지붕을 살펴보더니, 평생 쓸 수 있는 양철(징크) 지붕으로 바꾸자고 한다. 아내와 나는 공사비를 빌려서라도 바꾸기로 했다. 더 삭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니까 말이다. 김도환 목수가 20년 전에 흙집을 지을 때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저는 집을 지을 때,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짓습니다. 그리고 같이 일하는 일꾼들도 저와 똑같은 마음으로 집을 짓습니다. 가끔 일꾼들 가운데 언짢은 일이 ...

    2024.10.13 20:42

  • [시선]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얼마 전, 기후위기 시대를 맞닥뜨리며 삶을 생태적으로 전환하기 위해 대도시에서 농촌지역으로 삶터를 옮겨 생활하는 청년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기후와 수도권을 위해 다른 지역민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것을 왕왕 목격하고 걱정과 분노를 쏟아냈다. 최근 이들은 막 자리 잡아 살기 시작한 농촌지역에 초고압 송전탑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했다. 한국전력이 전북 부안과 고창, 전남 신안 등의 해상풍력발전단지에서 생산된 소위 ‘친환경 재생에너지’를 삼성과 SK하이닉스 등 반도체기업이 들어설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에 전송하기 위해 초고압 송전탑 250개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송전탑들은 전북 무주, 진안, 장수와 충북 영동, 충남 금산, 그리고 경남 거창과 함양에 들어선다는데 해당 지역 주민들도 모르게 결정된 일이었다. 한전이 이런 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데엔 1978년 박정희 정권하에서 입법된 ‘전원개발촉진법’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기사업 명목으로 지도...

    2024.10.06 21:27

  • [시선]작업중지권 없는 폭염 대책
    작업중지권 없는 폭염 대책

    올여름은 유독 조바심이 났다. 폭염일수가 지속될수록 지겹게 떠나지 않는 여름 끝자락이 징글징글했다. 올여름은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죽을 만큼 더웠다. 더위를 못 견디고 노동자가 죽는 여름을 원망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미국의 공학자 윌리스 캐리어가 에어컨을 발명한 것이 1915년의 일이다. 에어컨이 처음 설치되던 곳은 가정집이 아니라 산업현장이었다. 100년이 훨씬 지나고서 한국의 노동자들은 ‘에어컨은 인권이다’를 외치며, 작업장에 에어컨 설치를 요구하는 시위와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즈음부터다.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폭염 시기 달궈진 물류현장과 혹한기 냉동창고보다 더 추운 물류현장을 고발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면 박스를 옮기다, 배송을 하다 소리 없이 사망하는 노동자들이 늘었다. 겨울이 되자 알량한 핫팩 두 개에 의지하다 새벽녘 핫팩의 온기가 식을 즈음 내가 흘린 땀이 순식간에 내 몸을 얼게 만들어 돌연사로 생을 마감하는 노동자가 나왔다.여름의 끝, ...

    2024.09.29 20:40

  • [시선]K유학의 그늘
    K유학의 그늘

    한국에서 공부하는 유학생의 숫자가 최초로 20만명을 넘었다. 지난 4일 교육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국내 체류 유학생 숫자는 20만8962명으로, 18만명 수준이던 지난해와 비교할 때 2만명 이상 증가했다. 교육부는 ‘유학생 교육 경쟁력 제고 방안’을 발표하면서 유학생 30만명 유치를 통한 세계 10대 유학 강국 도약을 목표로 제시했다. 특히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 소재 대학은 교수들을 직접 해외로 보내 현지 입학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유학생 유치에 나서기도 했다. 201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유학생은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의 대학 캠퍼스에서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한류에 이어 K유학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하지만 이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매우 위태롭다. 교육부와 대학들은 신입생 유치에 열을 올릴 뿐 정작 유학생들이 입학한 이후 한국에서의 안정적인 체류와 인간다운 삶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교육부는 유학생 유치를 위해 해외 한국교육원에 ...

    2024.09.22 20:38

  • [시선]이게 사는 맛이지 싶다
    이게 사는 맛이지 싶다

    오늘 낮에, 회사에서 정년퇴직을 한 지 2년쯤 지난 후배가 찾아왔다. 가난한 부모를 만나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동차 만드는 공장에서 40년 넘도록 일만 하고 살아온 후배다. 일밖에 모르고 살아왔다는 말이 어울리는 후배다. 왜냐하면 하루라도 지각을 하거나 결근을 하면 마치 큰일이라도 벌어지는 것처럼 부지런히 살아왔기 때문이다.“선배, 정년퇴직하고 어물어물하고 있는 사이에 2년이 바람처럼 후딱 지나갔어요. 앞으로 80세까지만 살아도 15년 넘게 살아야 하는데 걱정이에요.” 곁에서 듣고 있던 후배의 아내가 말했다. “우리 남편이 정년퇴직을 하고는 할 일이 없어 맨날 빈둥거려요. 잘하는 거라곤 자동차 만드는 일밖에 없잖아요. 특기도 없고 취미도 없어요. 맨날 회사 다니는 일 말고는 한 게 없거든요. 제가 요즘 무릎이 시원찮아 수영장에 가는데, 수영장까지 따라와서는 밖에서 저를 기다리며 혼자 빵을 사 먹고 있어요. 젊었을 때는 먹고사느라,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함께 다닐 짬이 ...

    2024.09.08 21:09

  • [시선]죽여도 되게 하지 말지어다
    죽여도 되게 하지 말지어다

    고속도로에서 옆 차선을 지나던 나와 눈이 마주친 그 돼지는 비좁은 운반트럭에 작게 뚫린 사각 구멍에 가로로 쳐친 쇠막대를 필사적으로 물어뜯고 있었다. 어느 축산시설에서 길러지다 도축장으로 이송되던 중이었을 게다. 몸을 돌아눕기조차 어려운 감금틀에 갇혀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반복당하는 엄마 돼지에게서 태어나 겨우 6개월 남짓 살았을 것이다. 생애 단 한 번도 푸른 풀밭을 밟아 본 적도 없을 것이다. 하늘조차 볼 수 없는 감옥과 같은 축산시설을 떠나 실려 간 곳에서는 먼저 이송되어 와 도축 대기장에 집결해 있는 다른 돼지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곧 닥칠 일을 알기에 두려움에 차서 비명을 지르고 있을 것이다. 하나 둘 도축장 안으로 들어간 돼지는 전기충격을 당할 것이고 이내 어느 곳의 단두대에서 머리가 잘린 무고한 정치범처럼 머리가 댕강 잘릴 것이다. 동강난 몸들은 분리되고 천장에 붙어 있는 컨베이어 벨트에 걸린 쇠갈고리에 대롱대롱 걸릴 것이다. 따뜻하게 몸속을 타고 다...

    2024.09.01 20:20

  • [시선]한겨울 ‘폭염백서’를 기다리며
    한겨울 ‘폭염백서’를 기다리며

    어제 회를 먹었다. 광어, 우럭 그리고 또 매번 듣지만 기억나지 않는 물고기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서 더 시원한 맥주에 차가운 회 한 점, 시원했다.아침에 일어나 행정안전부 홈페이지 ‘안전관리일일상황’을 들여다본다. 올여름 폭염이 시작되고 생긴 습관이다. 다행히 어제는 폭염으로 누군가 사망하지 않았구나. 그러나 조피볼락 1만7871마리, 쥐치 2883마리, 도다리 4352마리가 죽었다. 어제 먹은 싱싱하다 못해 쫄깃함이 터지는 물고기는 폭염을 견뎌낸 것들이구나. 양식장 위로 둥둥 뜬 물고기들은 어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뜰채로 걷어냈을까. 같은 날 돼지와 닭, 오리도 1057마리가 죽었다. 맥없이 축 늘어진 동물들은 어디로 갔을까.작년 폭염일수는 14.1일, 올해는 이미 21일을 넘기고 있다. 행안부는 ‘당분간 전국 대부분 지역의 최고 체감온도가 33~35도’로 매우 무덥다고 예고했다. 온열질환자는 작년 2600여명에서 올해 3000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시간이 지...

    2024.08.25 20:38

  • [시선]이주노동자의 노동3권
    이주노동자의 노동3권

    “근로자는 근로조건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33조에서 선언하는 이른바 ‘노동3권’이다. 다른 헌법 조항이 ‘국민’을 주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과 달리 ‘근로자’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주노동자에게도 헌법상 노동3권이 보장될까? 이주노동자도 일하는 노동자이므로 당연히 보장된다는 입장과 현행 헌법이 만들어진 1988년에는 한국에 이주노동자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헌법 조항의 표현만으로 노동3권이 보장된다고 할 수 없다는 반론도 있다.헌법재판소는 외국인에게 헌법의 모든 권리가 보장될 수 없다며 그 성질에 따라 ‘국민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에 대해서만 인정해왔다. 이러한 해석은 독일법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독일 기본법은 누구에게나 보장되는 ‘인간의 권리’와, 독일 국민에게 보장되는 ‘국민의 권리’를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독일에서는 이주노동자에게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을까?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

    2024.08.18 20:40

  • [시선]지구를 살리는 영웅이라고?
    지구를 살리는 영웅이라고?

    이웃 마을의 시를 좋아하는 중학생 우진이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시원한 매실차를 마시며 우진이가 물었다. “봄날샘 집엔 농기계가 하나도 없네요? 왜 힘들게 맨날 손으로 농사지으세요? 요즘은 편리하고 빠른 농기계가 많잖아요?” “우진아, 대답을 들으려면 밭으로 가야 하는데 괜찮겠냐? 참, 봄날샘은 농기계가 필요할 때는 빌려 쓴단다.”나는 우진이를 데리고 산밭으로 걸어갔다.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5분 거리가 마치 50분 거리 같았다. ‘우진이는 어떤 생각을 하며 걸을까? 이렇게 더운 날, 꼭 산밭까지 가야 하나? 속으로 투덜거리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진이가 던진 질문은 집 안에서 답할 수 있는 게 아니다.“우진아, 여기는 봄날샘이 돌보는 산밭이란다. 어떤 작물이 자라고 있을까?” “봄날샘, 저기 다랑논 아래 나뭇가지를 타고 다니는 저 녀석은 호박과 오이고요. 그 아래 옥수수, 들깨, 고추, 대파, 이파리가 큰 저 녀석은 토란이...

    2024.08.11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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