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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삶을 빛나게 하는 고마운 친구
    삶을 빛나게 하는 고마운 친구

    마을회관에서 아지매(할머니)들과 ‘몸살림운동’을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그런데 가끔 마음을 짠하게 하는 말씀이 있다. “아이고, 치매 들기 전에 얼릉 죽어야지.” “그래그래, 아프지 말고 오늘밤에라도 집에서 잠결에 고마 죽으모 얼매나 좋겠노.” “아니, 그게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가.” 그런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이것뿐이다. “요즘 도시고 농촌이고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암이 아니라 치매래요. 그러니까 방에 혼자 있지 말고 산책도 하고 마을회관에 와서 저랑 같이 몸살림운동도 해요.”그럴 때마다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이란 ‘친구’와 같이 산다. 그런데도 나는 그 친구를 잘 알지 못한다. 오랫동안 함께 어울려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친구라 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내 곁에 있던 그 친구를 잘 알지 못하다니! 그러니 어찌 내가 한심하지 않겠는가.내 나이 올해 66세다. 오늘밤에 죽는다고 해도 그리...

    2024.07.14 20:35

  • [시선]저출생 아니라 저출산
    저출생 아니라 저출산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저출생과 저출산도 그렇다. 이 경우 더 주목할 것은 말을 하는 이들의 진단이 달라 향하려는 방향 또한 다르다는 점이다. 오래 지속되고 있는 ‘출산파업’으로 산부인과부터 초중고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여파가 차례차례 현실화되니 정부도 이런저런 대책을 부랴부랴 세우려 하는 듯 보인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저출생 대책이라고 말하고 또 한편에서는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의 경우처럼 여전히 저출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혼선과 혼란이 있는 것 같다. 저출생은 말 그대로 출생아의 수를 문제로 보는 말이다. 언뜻 보면 태어나는 아이가 중심인 좋은 말 같다. 그러나 출생이 출산을 통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가린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아이가 하늘에서 내려오길 바라거나 공장에서 아이를 만들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말이다. 저출산은 말 그대로 출산을 적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심에 두는 말...

    2024.07.07 20:36

  • [시선]우리와 당신의 ‘주말이 있는 삶’
    우리와 당신의 ‘주말이 있는 삶’

    “개처럼 뛰고 있어요.” 지난 5월28일 쿠팡의 배송전문 자회사 쿠팡CLS에서 배송기사로 일하던 정슬기씨(41)가 사망하기 전 남긴 쿠팡 측과의 문자메시지다. 전국택배노조는 심근경색의증이라는 사인을 근거로 과로사를 주장하고 있다. 정씨는 사망 전 하루 10시간이 넘는 야간 고정노동을 수행했다.그는 1t 트럭을 보유한 특수고용직 배송기사로, 건당 수수료를 받고 배송하는 쿠팡의 간접고용 노동자다. 대부분의 배송기사들은 특수고용직으로 ‘위장된 자영업자’의 삶을 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자영업자는 남들 쉴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도 일하는 남다른 ‘결심’을 필요로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고, 그래야 ‘월급쟁이’만큼 벌 수 있다. 특수고용직, 간접고용과 같이 뜻을 알기 어려운 단어들은 모두 노동자가 자영업자의 신분을 뒤집어쓰고 일하는 불안정한 노동에 붙여진 이름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에게 소비자들의 ‘중단 없는 소비’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야간노동과 주말노동이...

    2024.06.30 20:32

  • [시선]이주노동자의 목숨값 차별
    이주노동자의 목숨값 차별

    비가 오는 날이었다. 운전 중 전화를 받았다. 외국인 노동자의 사망 소식이었다. 태국에서 온 노동자가 일하다 죽었다. 사용자의 지시에 따라 점심시간에 폐기물을 분쇄하는 기계에 들어가 잔여물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관리자가 기계 내부를 확인하지 않고 작동시켰다. 유족들이 시신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한 죽음이었다. 한국에서 일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그는 법 밖에 밀려난 미등록 이주노동자였다. 직장 근처 작은 숙소에서 태국인 아내,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주변 사람들 말에 따르면 그는 너무도 성실한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도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답답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새로 산 기계에 폐기 잔여물이 걸려 기계가 멈추는 일이 자주 생기자, 사장은 직원들에게 틈틈이 기계 내부를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다른 직원들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그는 점심시간을 쪼개서 기계 안으로 들어가 잔여물 청소하는 작업을 도맡아 했다. 사고가 난 그날도 그랬다. ...

    2024.06.23 20:11

  • [시선]권정생 선생님께
    권정생 선생님께

    선생님, 오늘도 지구촌 곳곳에서 지구온난화로 말미암은 자연재해와 전쟁 따위로 숱한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사시는 나라에는 미움도 원망도 탐욕도 자연재해도 전쟁도 없겠지요? 선생님께서 2005년 5월10일에 쓴 유언장을 다시 읽어 봅니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중략)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선생님,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환생할 뜻을 미루셔야 할 듯합니다. 아직도 이 세상에는 나라마다 힘을 키워 서로 잘 먹고 잘 살아 보겠다며 악과 기를 쓰며 헐뜯고 사납게 다투고 있습니다. 단 하루라도 전쟁이 끊이질 않고, 사람이 사람을 속이고 괴롭히고 죽이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갈수록 우리 삶의 마지막 목적지인 ‘용서와 사랑’마저 아득히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모두 편리함과...

    2024.06.16 20:35

  • [시선]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

    밀양과 청도의 시골마을 논밭과 주변의 산꼭대기에는 76만5000볼트라는 무시무시한 고압이 흐르는 전선을 받치는 40층 아파트 높이의 거대한 송전탑이 있다. 이것이 들어서는 것을 막으려고 2005년부터 온몸을 던져 싸워온 여성 농민 어르신들이 계신다. 수도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5만4000볼트의 송전탑이 2차선 도로라면 이 송전탑들은 36차선급이라니 무서운 규모다. 흐르는 전압이 워낙 높아 해외에서도 사막이나 산악지대같이 민가가 없는 곳에나 세운단다. 그런데 한국은 정부가 나서서 해당 지역 주민들을 기만하고 이간질시키고 그래도 안 되니 국가전력수급 안정화라는 이유를 들며 2000여명이나 되는 경찰을 동원해 ‘행정대집행’을 강행했다. 맨몸으로 저항하는 할머니들을 경찰이 질질 끌어내던 국가폭력의 현장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난 6월8일, 밀양 응천강변에서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10년을 돌아보며 윤석열 정부의 ‘핵폭주정책 원천봉쇄 결의대회’가 열렸다. 비가 오는데도 불구...

    2024.06.09 20:29

  • [시선]조선소 ‘위험의 이주화’ 멈춰야
    조선소 ‘위험의 이주화’ 멈춰야

    2023년 BTS의 팬덤 ‘아미’는 10주년 페스타를 즐기기 위해 전 세계에서 한국을 방문했다. 40만명의 글로벌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한덕수 국무총리는 각 부처에 안전관리를 긴급 지시했다. 많은 인파로 인한 안전사고와 더운 날의 온열질환 대비, 그리고 각국의 언어로 된 안전방송과 표지판 등을 주문했다. 다행히 축제는 즐거웠고 안전했다.같은 시기 한국의 조선소는 오랜 불황이 끝나고 호황이 시작됐다. 그러나 불황 시기 강제로 ‘정리’되거나 저임금 하청구조와 위험한 현장을 못 견디고 ‘떠난’ 하청노동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호황 국면에도 저임금과 하청구조, 위험한 작업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2023년 11월 기준,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조선업 ‘활황’에 부족한 인력 1만4000여명 중 1만2000여명(86%)이 이주노동자로 채워졌다. 이를 위해 정부는 각종 규제를 완화했다. 조선소는 글로벌 저임금 노동력을 단기간에 빨아들였다. 2021년 3000여명을 시작으로 매년...

    2024.06.02 20:58

  • [시선]위법한 사람 사냥을 멈춰라
    위법한 사람 사냥을 멈춰라

    지난 22일 점심시간 경남 김해의 한 식당에 법무부 부산출입국사무소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평소 외국인노동자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었다. ‘법무부’라는 글씨가 적힌 옷을 입은 단속반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와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무조건 붙잡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3년 전 한국국적을 취득한 베트남 출신 A씨는 한국 사람이라고 설명했지만 함께 끌려갔다가 풀려났다.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에 따르면 ‘마치 살인용의자를 체포하는 것처럼’ 출입국 단속반들이 사람을 잡아갔다고 말했다.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법무부가 지난 4월부터 약 77일간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을 실시한 이후 단속 사례를 보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법무부는 태국 최대의 전통축제인 쏭크란 축제에 맞춰 태국인 식당을 단속했고, 베트남 결혼식 피로연장을 급습했다. 교회 앞에서 종교행사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외국인을 단속하거나 심지어 임금을 받지 못해 고용노동부에 조사를 받...

    2024.05.26 20:37

  • [시선]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2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2

    ‘부자’란 재산이 많은 사람이다. 얼마나 재산이 많으면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은 있다’는 속담까지 있을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기도 아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한 사람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더구나 요즘 부자는 3년이 아니라 30년, 300년을 일하지 않고도 먹을 것이 남아돈다고 한다. 오늘 아침 TV 뉴스를 보던 마을 어르신이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아이고, 저 썩을 놈은 큰 죄를 짓고 감옥에 가도 무신 걱정이 있겠노.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은행에 넣어둔 이자가 불어난다 안 카나.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아이가. 그라이 우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겠노.” 한낮에 장터에서 만난 어르신이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남들은 내가 농사 많이 지으니까 부잔 줄 알겠제. 껍데기뿐이여. 농기계 빚 갚느라고 세월 다 보냈네그려. 오늘도 트랙터가 고장 나서 수리점에 갔더니 말일세. 고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좋겠다는구먼. 또 은행 빚을 얻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2024.05.19 20:44

  • [시선]기후위기와 어린이들의 안부
    기후위기와 어린이들의 안부

    지난 2월 과학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어린이들의 안부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논문이 게재되었다. 그동안 기후위기를 주시해온 이들은 2030년까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상승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논문에 따르면 이미 1.7도를 넘어섰고 현재 추이대로 간다면 2030년이 되면 3도까지 상승할 것이라 한다. 이토록 뜨거워진 지표면에서 지금의 어린이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미안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간 기성세대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봤자다. 1962년, <침묵의 봄>을 통해 레이첼 카슨은 인류가 화학독극물로 풀을 죽이고 벌레를 죽이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하는 삶의 방식을 지속한다면 그 죽음의 사슬로 새들도 멸종해 새의 노래소리 한마디 없는 봄을 맞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1972년, 많은 연구자들이 <성장의 한계(The Limits...

    2024.05.1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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