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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
  • [시선]위법한 사람 사냥을 멈춰라
    위법한 사람 사냥을 멈춰라

    지난 22일 점심시간 경남 김해의 한 식당에 법무부 부산출입국사무소 단속반이 들이닥쳤다. 평소 외국인노동자들이 자주 찾는 식당이었다. ‘법무부’라는 글씨가 적힌 옷을 입은 단속반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와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을 무조건 붙잡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3년 전 한국국적을 취득한 베트남 출신 A씨는 한국 사람이라고 설명했지만 함께 끌려갔다가 풀려났다. 현장에 있었던 목격자에 따르면 ‘마치 살인용의자를 체포하는 것처럼’ 출입국 단속반들이 사람을 잡아갔다고 말했다.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법무부가 지난 4월부터 약 77일간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합동단속’을 실시한 이후 단속 사례를 보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 법무부는 태국 최대의 전통축제인 쏭크란 축제에 맞춰 태국인 식당을 단속했고, 베트남 결혼식 피로연장을 급습했다. 교회 앞에서 종교행사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외국인을 단속하거나 심지어 임금을 받지 못해 고용노동부에 조사를 받...

    2024.05.26 20:37

  • [시선]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2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2

    ‘부자’란 재산이 많은 사람이다. 얼마나 재산이 많으면 ‘부자는 망해도 3년 먹을 것은 있다’는 속담까지 있을까?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살기도 아니,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도 빠듯한 사람이 수두룩한데 말이다. 더구나 요즘 부자는 3년이 아니라 30년, 300년을 일하지 않고도 먹을 것이 남아돈다고 한다. 오늘 아침 TV 뉴스를 보던 마을 어르신이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아이고, 저 썩을 놈은 큰 죄를 짓고 감옥에 가도 무신 걱정이 있겠노. 감옥에 있는 동안에도 은행에 넣어둔 이자가 불어난다 안 카나. 돈이 돈을 버는 세상이다 아이가. 그라이 우찌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겠노.” 한낮에 장터에서 만난 어르신이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남들은 내가 농사 많이 지으니까 부잔 줄 알겠제. 껍데기뿐이여. 농기계 빚 갚느라고 세월 다 보냈네그려. 오늘도 트랙터가 고장 나서 수리점에 갔더니 말일세. 고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좋겠다는구먼. 또 은행 빚을 얻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2024.05.19 20:44

  • [시선]기후위기와 어린이들의 안부
    기후위기와 어린이들의 안부

    지난 2월 과학학술지 ‘네이처 기후변화(Nature Climate Change)’에 어린이들의 안부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논문이 게재되었다. 그동안 기후위기를 주시해온 이들은 2030년까지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상 상승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런데 논문에 따르면 이미 1.7도를 넘어섰고 현재 추이대로 간다면 2030년이 되면 3도까지 상승할 것이라 한다. 이토록 뜨거워진 지표면에서 지금의 어린이들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미안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간 기성세대가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라고 변명해봤자다. 1962년, <침묵의 봄>을 통해 레이첼 카슨은 인류가 화학독극물로 풀을 죽이고 벌레를 죽이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하는 삶의 방식을 지속한다면 그 죽음의 사슬로 새들도 멸종해 새의 노래소리 한마디 없는 봄을 맞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1972년, 많은 연구자들이 <성장의 한계(The Limits...

    2024.05.12 20:16

  • [시선]한주소금의 잃어버린 10일
    한주소금의 잃어버린 10일

    지난 4월15일 울산의 소금 생산공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한 중대재해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법대로 사고가 발생한 작업을 중지시키고 조사와 대책 마련을 진행했다. 여기까지는 문제될 것이 없다. 문제는 이 소금이 정제염이라는 데 있다. 정제염은 바닷물을 직접 끌어와 불순물을 걸러내고 끓여 만든 소금인데, 정제염을 생산하는 업체가 한국에 단 한 곳이다. 1979년 정제소금을 생산했을 때만 해도 공기업이었지만 1987년 민영화되었다. 이후에도 한주소금은 정제염을 생산하는 유일기업으로 독점권을 누렸다. 사고는 1년에 한번 시행하는 대규모 계획예방정비(오버홀) 중 발생했다. 바닷물을 끌어올리는 해수 취수시설을 정비하던 잠수사가 잠수작업 중 에어호스가 스크루에 감겨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것이 내가 알 수 있는 정보의 전부다. 아무리 기사를 뒤져봐도 사고 원인을 알 수 있을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는다. 2011년 산업안전보건공단이 마련한 ‘잠수작업 안전기술지침’에 따르면 최소 ...

    2024.05.05 20:16

  • [시선]사람 구하는 자격은 따로 없다
    사람 구하는 자격은 따로 없다

    얼마 전 한 지방자치단체 청사 앞에 걸린 이주노동자 법률상담사업을 홍보하는 플래카드를 본 적이 있다. 그림도 없는 하얀 바탕에 한글로만 커다랗게 ‘임금체불 이주민 대상 무료법률상담 실시’라고 인쇄된 플래카드에는 상담 시간을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2시부터 5시까지로, 상담 장소는 군청 민원실이라 안내하고 있었다. 바람에 펄럭이는 플래카드를 보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중에 평일 오후에 밀린 월급 상담을 받기 위해 군청 민원실을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한창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들도 한 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임금체불’이라는 한국어가 인쇄된 홍보 플래카드를 보고 찾아올 노동자는 더욱이 없다. 솔직히 이 정도면 누군가 찾아와도 문제다. 이주노동자의 삶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마련된 법률상담에는 제대로 된 통역도,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도 준비되어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큰 결심을 하고...

    2024.04.28 20:40

  • [시선]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식구회의를 열었다.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용돈을 올려줄 때도, 옷이나 신발을 살 때도, 학원과 학교를 선택할 때도, 어떤 일이든 식구회의를 열어 결정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다 자라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산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식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식구회의를 연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도 나눈다. 그리고 서로 덕담을 나누기도 한다.나는 식구회의 때, 자식들에게 한평생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가끔 한다. 이오덕 선생님 말씀처럼, 가난해야 물건을 귀하게 쓰고, 가난해야 사람다운 정을 가지게 되고, 그 정을 주고받게 된다.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이 넉넉해서 흥청망청 쓰기만 하면 자기밖에 모르고, 게을러지고, 창조력이고 슬기고 생겨날 수 없다. 무엇이든지 풍족해서 편리하게 살면 사람의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되고, 무엇보다도 자연이 다 죽어버린다.우리 아버...

    2024.04.21 21:44

  • [시선]씨 말리는 사회, 지속 가능한가
    씨 말리는 사회, 지속 가능한가

    씨앗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봤는가? 봄마다 색색의 꽃잎을 터뜨려 겨우내 쪼그라들었던 마음을 활짝 펴주는 갖가지 모습의 꽃나무들도 씨앗에서 그 삶의 처음을 시작하고 밥상에 오르는 각종 봄나물들 역시 씨앗에서 시작한다. 인간도 그렇다. 그러니 씨앗이 사라진다면 세상도 그걸로 끝이다. 씨를 말린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다.예부터 농부들은 씨앗지킴이였다. 그해의 먹거리를 책임질 농사는 전해에 갈무리해 두었던 씨앗을 꺼내 튼실한 것들을 잘 골라 준비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대량으로 짓는 농사도 마찬가지이고 소량의 다양한 식물들을 키우는 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콩, 깨, 상추, 파, 배추, 호박, 오이… 밥상에 올릴 음식이 다양해지려면 밭에 뿌리고 심을 씨앗도 다양해야 한다. 오랫동안 바로 이 일을 여성들이 거의 도맡다시피 해왔다. 시골에서 텃밭을 지켜온 여성들이 곧 우리 땅의 씨앗지킴이인 것이다. 도시로 이주한 할머니들이 손바닥만 한 빈 땅이라도 발견하면 여지없이 씨를 심고 무언...

    2024.04.14 21:48

  • [시선]재난·산재도 선거공보물처럼
    재난·산재도 선거공보물처럼

    이태원 참사 직후, 한국의 재난을 취재하던 독일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자에게 가장 이상한 것은 참사 유가족들이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급해서 그러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가족의 소식을 알기 위해 서울의 경찰서와 병원 응급실 여기저기를 헤매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세월호 참사는 진도 팽목항에 서서 우는 실종자 가족들로 기억되고, 대구지하철 참사는 화재가 난 중앙로역 앞에서 노숙을 하며 불에 타다 만 뼛조각이라도 발견되기를, 아니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달을 버틴 가족들로 기억된다. 재난뿐만 아니라 산재사망의 경우, 유가족이 되고서야 알게 되는 권리가 있다. 그리나 그 권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유가족에게 보장된 적이 없다. 유가족에게 가족의 죽음에 대한 ‘알권리’는 권리가 부재한 현실로부터 시작된다. 그 불신과 절박함이 유가족을 거리에 서게 한다. 독일 기...

    2024.04.07 20:20

  • [시선]선거, 모두의 축제가 돼야
    선거, 모두의 축제가 돼야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운동이 지난 2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와 운동원들은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고 동네 곳곳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도 하나둘씩 꽃망울을 피워내고 있다. 곳곳이 소란스러운, 말 그대로 축제와 같은 봄이다.지난 일요일 서울의 한 외국인노동자 상담센터에서 법률상담을 했다. 평일에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따로 시간을 낼 수 없는 이주민을 위해 센터에서는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 법률상담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법률상담에는 통역인 선생님이 함께 참여하는데 그날 통역인 A씨를 만났다. A씨는 20여년 전에 한국사람과 결혼해서 한국에 왔고, 대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선배 이주민이었다. 10년 전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그날 방문한 내담자는 회사 동료들과 작은 빌라에 함께 살고 있는데 임대인과의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방문했다. 임대차보호법에 따른 복잡한 개념과...

    2024.03.31 20:29

  • [시선]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이웃에 사는 농부들과 ‘7일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하기 한 달 전부터 육식을 하지 않고 음식도 조금씩 줄여 나갔다. 3일 전부터는 죽을 먹었고, 단식하는 날부터는 물과 죽염만 먹었다. 먹을 양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단식을 하느냐고? 바쁜 농사철이 되기 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길이 단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식을 하는 방법이나 까닭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이가 다르고 몸과 마음 상태가 다르므로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단식하기 전에 이런 다짐을 했다.‘누군가의 덕으로 여태 먹고살았으니 작고 하찮은 일에 날을 세우지 말아야지. 알게 모르게 남한테 상처를 주었으니 남한테 받은 상처를 되갚지 말아야지. 단 하루도 죄짓지 않고 산 날이 없으니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해 아픈 사람 위로할 수 있게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아야지. 마음 여리고 어진 사람 주눅 들지 않게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지 말아야지. 가는 곳마다 여유와 낭만이...

    2024.03.24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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