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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 누구에게나 가을이 와요
    누구에게나 가을이 와요

    여름과 겨울이 길어지며 두 계절의 사이가 아무리 가까워졌다고 해도 그 사이에 가을이 있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심해지고 건조한 날씨에 눈도 따끔거린다. 몸의 변화로 계절의 변화, 환절기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마음의 변화로도 가을이 왔음을 느낀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기분이야’, ‘난 어떤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해’.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을 잠식한다. 계절성 우울증이다. 계절성 우울증의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일조량이 줄어들면서 신경전달물질인 멜라토닌이 줄어 일시적으로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보고 있다. 같은 환절기이지만 봄보다는 해가 짧아지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가을에 유발률이 높다. ‘11월의 저주’라는 말이 있을 만큼 자살 소식도 다른 때보다 많이 들려온다. 여러 정신질환을 진단받고 주기적으로 정신의학과에 다니며 꼬박꼬박 약을 먹은 지도 몇년이다. ‘네가 마음먹기에 달렸어’, ‘양약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노력을 해봐’ 같은 말은 위...

    2023.11.24 20:29

  • [시선] 들뜨면, 실수한다
    들뜨면, 실수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나간 적이 있었다. 대기실에서 PD는 내가 쓴 책이 오늘 주제와 일치해서 모셨다는 식으로 나를 진행자에게 통상적으로 소개했다. 보통은, 나는 부끄러워하고 진행자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라는 거짓말을 하며 인사를 주고받는데 그는 “나는 모르는 책”이라면서 얼마나 팔렸는지를 노골적으로 묻는다. 별로 안 팔렸다고 하자 웃으면서 이런다. “내 책은 ○○만부 팔렸는데.”들뜨면, 실수한다. 성과가 눈에 보이면 들뜬다. 성취가 이어지면 흥분한다. 여기에 ‘남보다’라는 변수가 개입해 사람과 사람이 위아래로 분류되면 실수한다. 오만과 거만을 ‘멋’인 줄 안다. 건방과 교만을 ‘재치’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모든 것을 수직화하는 능력주의 정신이 일상을 지배하는 한국 사회 어디서든 등장한다. 능력주의가 문제인 건, 사람 따라 차이를 둬서가 아니라 그 차이가 사람을 들뜨게 해 사람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실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서열은 ‘공부의 ...

    2023.11.19 20:35

  • [시선] 나는 당신 엄마가 아닙니다
    나는 당신 엄마가 아닙니다

    ‘엄마, 이리 와서 불고기 사세요!’ 갑자기 나타나 내 앞을 가로막은 그의 말이 너무 당황스러워 잠깐 벙해 있다 살짝 옆으로 빠져나왔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내 앞길을 막아선 것도, 두부를 사러 잠시 들른 마트에서 불고기를 내미는 것도 모두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나지 않아 보이는 성인 남성이 ‘엄마’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그는 왜 나에게 엄마라고 불렀을까.나도 아이의 선생님을 찾아뵙는 자리처럼 애초에 누군가의 엄마라는 정체성으로 참여할 때는 ‘어머님’ 같은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그날의 나는 아무개의 어머니라는 정체성을 드러낸 적이 없다. 이유식 거리나 어린이 장난감이라도 장바구니에 담겨 있었다면 모를까. 아직 아무것도 담지 않은 내 장바구니에는 나라는 사람과 엄마라는 호칭을 연결지을 어떤 단서도 없었다. 그렇다면 저녁시간 누군가를 위해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다 어머니인 걸까. 당연하게도 그럴 수 없다. 가족...

    2023.11.17 19:58

  • [시선] 김용균 이후, 법의 현실
    김용균 이후, 법의 현실

    다가오는 12월11일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 김용균의 5주기다. 새삼스레 그의 죽음을 꺼내는 것은 지난 5년간 한국사회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둘러싼 변화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28년간 제자리에 머물렀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논의가 김용균 사망 일주일 만에 수면 위로 올랐고, 해를 넘기기 전에 ‘김용균법’이라는 이름으로 산업안전법 전부 개정이 이뤄졌다. 그러나 개정된 법은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큼 ‘위험의 외주화’를 규제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중대재해처벌법이 국회 문턱을 넘을 것이라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김용균 사망 2년여인, 2021년 1월 중대재해법이 제정되었다. 이후 지금까지 법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다행히 중대재해법 위헌심판은 기각되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법 ...

    2023.11.12 20:31

  • [시선] ‘사회’적 합의
    ‘사회’적 합의

    밤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가는 길목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생후 6주 된 고양이가 난감해서 우는 소리. 발길을 멈추고 들어보니 건물 담장 뒤쪽이었다. 고양이는 쉬지 않고 빼옥빼옥 했다. 사람들은 흘금 보고 무심히 지나갔다. 까치발을 들어도 잘 안 보였다. 어쩌지. 몰라몰라. 야근러는 피곤하다. 세 걸음 정도 집으로 향하다가 다시 뒤돌았다. 쟤도 ‘걔’처럼 그럴 수도 있으니까….이건 다 걔 때문이다. 여기서 ‘걔’란 고양이 ‘도레레’로, 생후 6주에 우리집에 왔다. 도레레는 지하주차장에 버려진 오토바이 안에서 꾀죄죄하고 아픈 몰골로 꺼내졌다. 그냥 두면 걔가 죽을까 봐 임시보호라도 하려고 데려왔다. 도레레가 온 첫날 식구는 헙, 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얘는 너무 작아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 자야겠다….우리집엔 생후 1년6개월 된 고양이 ‘한여름’도 있다. 걔는 틈으로 간식이 들어가도 인간에게 부탁하지 않는다. 혼자 계속 앞발을 휘저으면 결국 내가 간다. 나는 막대기를...

    2023.11.10 20:43

  • [시선] ‘외국인 주민’은 누구인가
    ‘외국인 주민’은 누구인가

    법무부 출입국통계월보에 따르면 2023년 9월 기준 체류 외국인이 251만명을 넘어섰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 국내 체류 외국인 규모가 252만명이었던 점에 비춰 볼 때,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갱신해 역대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2023년 우리나라 총 추계인구가 5155만명 수준임을 고려할 때 전체 인구의 4.8% 정도에 해당하는 규모다. 참고로, 최근 언론에서 전체 인구 대비 이주민 규모가 5%를 넘으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된다는 내용이 언급되고 있는데 확인해보니 사실과 다른 잘못된 정보다. OECD에선 인구의 일정비율 이상을 기준으로 다인종·다문화 국가로 분류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기준을 떠나서도 우리 사회가 이미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일상의 곳곳에 다양한 이주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숫자는 앞으로 한국 사회의 필요에 따라 더 많이 늘어날 것이며, 이주민과 함께...

    2023.11.05 20:36

  • [시선] 전쟁 ‘드라마’를 보다가
    전쟁 ‘드라마’를 보다가

    요즘 즐겨 보는 드라마 <연인>은 ‘로맨스’ 사극이지만 전쟁 드라마이기도 하다. 1636년 조선, 능군리에 사는 길채는 “연모하는 이와 더불어 봄에는 꽃구경하고 여름엔 냇물에 발 담그고 가을에 담근 머루주를 겨울에 꺼내 마시면서 함께 늙어가”는 게 꿈이다. 길채뿐 아니라 많은 이의 바람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갑자기 들이닥친 전쟁에 그 바람은 거침없이 짓밟힌다. 백성들은 삽시간에 삶의 터전을 잃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내일을 잃었다.대부분의 전쟁이 그러하듯 <연인>에서도 전쟁의 가장 큰 희생자는 무고한 백성들, 특히 노약자와 어린이, 여성이었다. 남성들이 ‘나라의 근본(왕)’을 구하기 위해 의병으로 자원한 사이 청나라 군대는 노약자와 어린이, 여성들이 남은 마을에 들이닥쳐 거침없이 죽이고, 약탈하고, 인질로 잡아갔다. 비록 드라마 속 상황이지만 청나라 군대에 의해 백성들이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눈을 질끈 감게 된다. 그만큼 전쟁은 ...

    2023.11.03 20:33

  • [시선] 기적은 여기서부터
    기적은 여기서부터

    어느 시인은 사람만이 ‘문제’라 하고 어느 시인은 사람만이 ‘희망’이라 한다. 결국 문제든 희망이든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이다. 오늘 낮에 부산에서 어머니 손을 잡고 우리 집에 찾아온 아이가 산밭에 떨어진 밤을 줍다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신발 밑에 더러운 흙이 묻었어요.” 한 해 가운데 가장 바쁜 가을걷이 때라, 산길마다 논밭에서 나온 농기계가 떨어뜨리고 간 흙덩이가 수두룩하다. 그 흙이 도시 아이 눈에는 목숨을 살리는 흙이 아니라 그저 더러운 흙으로 보였을까?농부들은 흙에서 산다. 흙을 닮아 살갗도 흙빛이다. 농부들은 논밭에서든 마을길에서든 만나기만 하면 ‘살리는 이야기’만 한다. “자네 밭에 김장배추와 무는 우찌 그리 잘 자라는가?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가?” “내년엔 다랑논에 벼농사 안 짓고 콩 심을 거라며? 흙이 좋아 콩농사도 잘될 걸세.” 내가 도시에서 살 때는 무얼 살리는 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돈을 벌어 편히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늘어놓...

    2023.10.29 20:33

  • [시선]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주말 당직 근무를 하고 있을 때 잡은펼쳐보임방(기획전시실) 빔프로젝터 전원이 꺼져 영상 작품 재생이 안 된다는 연락을 받고 전시실로 향했다. 빔프로젝터 리모컨을 들고 작품 앞에 서자 관람을 하던 어린이들이 우르르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조금 있으면 여기 뭔가 나타날 거예요.” “뭐가 나와요?” “뭘까요? 같이 볼래요?” 여러 동물이 뛰노는 영상이 재생되자 어린이들은 신기한 듯 “우와” 탄성을 질렀다. 나는 마법사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함께 쭈그려 앉아 영상이 재생되길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어린이들과 내가 무슨 사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모르는 사이라기엔 알게 되었고 안다고 하기엔 모른다. 직원과 관람객, 성인과 어린이 …. 다시는 보지 않을 사이일 수도 있고 언제 어디선가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이미 만났던 사이일 수도 있다. 나의 주말 오후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어린이들과의 관계를 ‘난잡(亂雜)하다’고 말하고 싶다.영국의 학술단체 ‘더 케어 컬렉티브...

    2023.10.27 21:05

  • [시선] 의사들은 무엇을 감추는가
    의사들은 무엇을 감추는가

    지역신문에 기고된 의사들의 칼럼에서는 종종 유사한 한탄이 등장한다. 진단을 ‘못 믿겠다며’ 서울의 대형병원 투어를 하느라 치료 시기를 놓쳐 더 큰 고통을 감수하는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례 말이다. 유별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에서는, 다쳐서 지방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왜 서울로 안 갔는지를’ 주변에 자꾸만 해명해야 하는 우주의 기운이 실제로 존재한다.이런 분위기를 탓하면, 자신은 병원 갈 때 의사가 어느 대학 나왔는지도 꼼꼼하게 확인한다는 말이 돌아오는 세상이다. EBS 프로그램 <명의>는 좋은 취지였겠지만, 명의에 출연한 의사 명단이 ‘오늘 생생정보통에 소개된 맛집’처럼 떠도는 시대의 단면일 거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병원 앞에서 의사를 새로 초빙했다는 현수막을 보았는데, 거기에 적힌 ‘○○과학고 출신’이라는 묘한 문구가 이해됐다. 의사라고 같은 의사가 아니라는 저 투박함에, 오만함보단 애잔함이 느껴졌다. 힘들게 의사가 되어서도, “능력 있으면 서울에...

    2023.10.2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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