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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부자가 되면 안 되는 까닭

    아내와 나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식구회의를 열었다. 영화를 보러 갈 때도, 여행을 갈 때도, 용돈을 올려줄 때도, 옷이나 신발을 살 때도, 학원과 학교를 선택할 때도, 어떤 일이든 식구회의를 열어 결정했다. 지금은 그 아이들이 다 자라 혼인을 하고 자식을 낳고 산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식구들은 만나기만 하면 식구회의를 연다.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도 나눈다. 그리고 서로 덕담을 나누기도 한다.나는 식구회의 때, 자식들에게 한평생 소박하고 가난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가끔 한다. 이오덕 선생님 말씀처럼, 가난해야 물건을 귀하게 쓰고, 가난해야 사람다운 정을 가지게 되고, 그 정을 주고받게 된다.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이 넉넉해서 흥청망청 쓰기만 하면 자기밖에 모르고, 게을러지고, 창조력이고 슬기고 생겨날 수 없다. 무엇이든지 풍족해서 편리하게 살면 사람의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되고, 무엇보다도 자연이 다 죽어버린다.우리 아버...

    2024.04.21 21:44

  • [시선]씨 말리는 사회, 지속 가능한가
    씨 말리는 사회, 지속 가능한가

    씨앗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봤는가? 봄마다 색색의 꽃잎을 터뜨려 겨우내 쪼그라들었던 마음을 활짝 펴주는 갖가지 모습의 꽃나무들도 씨앗에서 그 삶의 처음을 시작하고 밥상에 오르는 각종 봄나물들 역시 씨앗에서 시작한다. 인간도 그렇다. 그러니 씨앗이 사라진다면 세상도 그걸로 끝이다. 씨를 말린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말은 없다.예부터 농부들은 씨앗지킴이였다. 그해의 먹거리를 책임질 농사는 전해에 갈무리해 두었던 씨앗을 꺼내 튼실한 것들을 잘 골라 준비하는 일로 시작되었다. 대량으로 짓는 농사도 마찬가지이고 소량의 다양한 식물들을 키우는 농사는 말할 것도 없다. 콩, 깨, 상추, 파, 배추, 호박, 오이… 밥상에 올릴 음식이 다양해지려면 밭에 뿌리고 심을 씨앗도 다양해야 한다. 오랫동안 바로 이 일을 여성들이 거의 도맡다시피 해왔다. 시골에서 텃밭을 지켜온 여성들이 곧 우리 땅의 씨앗지킴이인 것이다. 도시로 이주한 할머니들이 손바닥만 한 빈 땅이라도 발견하면 여지없이 씨를 심고 무언...

    2024.04.14 21:48

  • [시선]재난·산재도 선거공보물처럼
    재난·산재도 선거공보물처럼

    이태원 참사 직후, 한국의 재난을 취재하던 독일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기자에게 가장 이상한 것은 참사 유가족들이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 모습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급해서 그러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가족의 소식을 알기 위해 서울의 경찰서와 병원 응급실 여기저기를 헤매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세월호 참사는 진도 팽목항에 서서 우는 실종자 가족들로 기억되고, 대구지하철 참사는 화재가 난 중앙로역 앞에서 노숙을 하며 불에 타다 만 뼛조각이라도 발견되기를, 아니 발견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달을 버틴 가족들로 기억된다. 재난뿐만 아니라 산재사망의 경우, 유가족이 되고서야 알게 되는 권리가 있다. 그리나 그 권리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유가족에게 보장된 적이 없다. 유가족에게 가족의 죽음에 대한 ‘알권리’는 권리가 부재한 현실로부터 시작된다. 그 불신과 절박함이 유가족을 거리에 서게 한다. 독일 기...

    2024.04.07 20:20

  • [시선]선거, 모두의 축제가 돼야
    선거, 모두의 축제가 돼야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운동이 지난 28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와 운동원들은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고 동네 곳곳을 누비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개나리, 진달래, 벚꽃들도 하나둘씩 꽃망울을 피워내고 있다. 곳곳이 소란스러운, 말 그대로 축제와 같은 봄이다.지난 일요일 서울의 한 외국인노동자 상담센터에서 법률상담을 했다. 평일에는 밤늦게까지 일을 하느라 따로 시간을 낼 수 없는 이주민을 위해 센터에서는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 법률상담을 포함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법률상담에는 통역인 선생님이 함께 참여하는데 그날 통역인 A씨를 만났다. A씨는 20여년 전에 한국사람과 결혼해서 한국에 왔고, 대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선배 이주민이었다. 10년 전 귀화를 통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그날 방문한 내담자는 회사 동료들과 작은 빌라에 함께 살고 있는데 임대인과의 문제를 상담하기 위해 방문했다. 임대차보호법에 따른 복잡한 개념과...

    2024.03.31 20:29

  • [시선]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밥 한 숟가락에 기대어

    이웃에 사는 농부들과 ‘7일 단식’을 시작했다. 단식하기 한 달 전부터 육식을 하지 않고 음식도 조금씩 줄여 나갔다. 3일 전부터는 죽을 먹었고, 단식하는 날부터는 물과 죽염만 먹었다. 먹을 양식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단식을 하느냐고? 바쁜 농사철이 되기 전에 지친 몸과 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길이 단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단식을 하는 방법이나 까닭은 사람마다 다르다. 나이가 다르고 몸과 마음 상태가 다르므로 다를 수밖에 없다. 나는 단식하기 전에 이런 다짐을 했다.‘누군가의 덕으로 여태 먹고살았으니 작고 하찮은 일에 날을 세우지 말아야지. 알게 모르게 남한테 상처를 주었으니 남한테 받은 상처를 되갚지 말아야지. 단 하루도 죄짓지 않고 산 날이 없으니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지. 마음을 다해 아픈 사람 위로할 수 있게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아야지. 마음 여리고 어진 사람 주눅 들지 않게 다른 사람보다 똑똑하지 말아야지. 가는 곳마다 여유와 낭만이...

    2024.03.24 20:04

  • [시선]무얼 위한 ‘농촌 재구조화’일까
    무얼 위한 ‘농촌 재구조화’일까

    농촌공간 재구조화 및 재생지원에 관한 법률(농촌공간재구조화법)이 지난해 3월28일 제정되어 오는 3월29일 시행될 예정이다. 제정 목적은 농촌의 난개발과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농촌공간을 재구조화하고 재생해 삶터, 일터, 쉼터로서의 농촌다움을 회복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한다. 농촌 재구조화와 재생 계획을 수립하는 주체는 군수와 시장이고 계획을 승인하는 주체는 특별자치시와 도지사다. 협약부처는 농림축산식품부이고 경미한 사안들은 대통령령에 따라 정하게 된다. 농촌공간재구조화법 시행계획 수립 항목에는 재생활성화와 농촌특화지구 지정이란 말이 나온다. 그러니 농촌공간 재구조화란 말은 농촌특화지구를 지정하겠다는 뜻이고, 농촌마을보호지구, 농촌산업지구, 축산지구, 농촌융복합산업지구, 재생에너지지구, 경관농업지구, 농업유산지구 등이 명시되어 있다. 한편 주민은 사업과 농촌특화지구 지정을 시장·군수에게 제안할 수 있고 농촌특화지구 내 토지 소유자는 특화지구의...

    2024.03.17 20:16

  • [시선]쿠팡 영업비밀 ‘블랙리스트’
    쿠팡 영업비밀 ‘블랙리스트’

    쿠팡이 지난 7년간 일용직, 계약직으로 일한 노동자들의 재취업 ‘걸러내기’용으로 작성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문건이 공개됐다. 쿠팡은 무려 1만6450명의 명단을 만들어 관리해왔으며, 여기엔 취재 제한을 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70여명의 언론사 기자 명단도 포함돼 있다. 쿠팡은 정당한 인사평가 자료라고 주장하지만 퇴직자를 포함해 계약해지돼 더 이상 인사관리가 필요 없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인사평가는 들어본 적 없다. 특히 쿠팡은 비공개 자료인 경찰청 출입기자 등의 명단을 어떻게 입수해 블랙리스트에 올렸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그동안 쿠팡 블랙리스트의 존재는 노동자들의 입을 통해 알려져왔다. 때로는 ‘소문’으로, 때로는 관리자의 입을 통해 확인된 사실로 존재했으나 명백한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의 증언과 경험은 ‘허위사실’로 치부됐다. 그러다 2021년 마켓컬리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졌다. 마켓컬리도 블랙리스트 관리를 인정했고, 노동부 역시 마켓컬리를 기소해...

    2024.03.10 20:05

  • [시선]다양성 보장되는 국회를 바란다
    다양성 보장되는 국회를 바란다

    국회의원을 뽑는 제22대 총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국회의원은 4년 동안 국민의 대표로서 법을 만들고 정부의 예산을 심사하여 행정부를 견제하는 커다란 권한을 가진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으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따른 민주주의 정신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가장 구체적인 과정이 바로 선거이다. 그래서 흔히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자 축제라고 부른다. 평소와 달리 각양각색의 점퍼를 입은 국회의원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이 지하철 입구나 동네 곳곳을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지지를 호소하는 모습을 보면 ‘축제’라는 표현이 아주 틀린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선거는 오래 계속되지 않는다. 선거기간이 끝나면 선출된 권력은 또 현실에서 멀어진다. 대의제가 등장했던 근대국가 시절 정치 철학자 루소는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은 오직 선거하는 동안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다시 노예가 된다고 지적했다. 화려한 선거가 끝나고 노예의 삶을 남기지 않으려...

    2024.03.03 20:02

  • [시선] 봄이 와서 참 좋다
    봄이 와서 참 좋다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지구가열화로 날씨가 따뜻하고 비가 많이 내렸다. 이러한 기상 환경이 봄철로 이어지면 작년 늦가을에 심어 둔 양파에 노균병 같은 병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경상남도농업기술원에선 지금부터 여러 가지 약제(농약)를 바꿔가며 뿌려야 한단다. 한 종류 약제를 뿌리면 그 약제에 내성이 생겨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독한 농약을 뿌리면 양파는 살아날지 모르지만 흙은 병들고 지하수도 오염될 것이다. 농약은 개울로 흘러 강으로 바다로 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 몸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앞으로 병든 농작물을 살리려고 서너 번 뿌리던 농약을 대여섯 번 뿌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안 되면?’이런 생각을 하면 어쩐지 쓸쓸하다. 아무튼 겨울이 지나가고 산골 마을에도 봄이 오고 있다. 지난겨울엔 집과 마을회관에서 움츠리고 계신 마을 아지매(할머니)들과 ‘몸살림운동’을 함께해 보았다. 말 그대로 스스로 몸을 살리는 운동이다. 머리를 들고 허리를 세우고 가슴...

    2024.02.25 20:12

  • [시선] 인구 말고 사람을 말해야 바뀐다
    인구 말고 사람을 말해야 바뀐다

    내가 사는 면의 어린이집에 올해 새로 들어온 원생은 한 명이다. 어린이집 관계자인 이웃은 작년 내내 이 걱정을 했다. 어린이집이 폐원되면 곧 초등학교로 영향이 가고 결국 폐교가 되면 이어 거주민이 줄어들고 행정서비스와 의료서비스 기관들이 빠져나간다. 그러면 일상생활이 더 불편해지고 거주민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일어나 삶의 질이 악화된 여러 마을의 경우를 봤다고 했다. 이 마을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보여주면 다른 곳에서 이주를 해오지 않겠냐며 마을 홍보를 하자는 제안이 나왔고 큰 도움이 될 거 같지는 않다는 말이 이어졌다. 불과 50여년 전인 1970년대 한국 정부는 온갖 정책을 동원해 아이를 낳지 못하게 했다. ‘덮어놓고 낳다가는 거지꼴을 못 면한다’, ‘아들딸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정책 표어를 당시 사람 중 모르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10년마다 10억명씩 사람 수가 늘어 2086년에는 세계 인구가 104억명까지 되어서 지구수용한계를 넘는 ...

    2024.02.18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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