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한 지 보름 지난 첫 학기의 초가을날, 강의실에 들어가니 학생들이 조심스레 휴강에 관해 물었다. 다음주에 단과대 체육대회가 예정되어 있는데 큰 연례행사라 통상 그날은 수업을 안 한다는 것이었다. 생경한 교과목들의 강의 준비를 하루 쉴 수 있으리라 생각하니 입꼬리가 자꾸 올라가려 해 칠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논다고 좋아서 선생의 입이 찢어진 걸 보면 학생들이 얼마나 당황할까 싶었다. “휴강해야 하는군요.” 난감함을 연기하느라 목소리가 불안정하게 떨렸다. 한 성실한 복학생이 내가 진짜 아쉬워하는 줄 알고 의무는 아니라며 말문을 떼길래 다급히 “아녜요. 그날 쉬고 학기 말에 보강하죠” 외쳤다. 이내 본심을 들킨 게 부끄러워져 그 시간대에 경기 보러 가겠다고 약속했다.한 주 지나 체육대회가 열렸다. 축구, 발야구, 이어달리기를 비롯해 윷놀이와 줄다리기까지 각종 시합이 토너먼트식으로 펼쳐졌다. 약속한 게 떠올라 오후에 운동장으로 나가봤다. 연둣빛 ‘과티’를 맞춰 입은 우리 학과 ...
2024.09.03 2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