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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봄의 두 얼굴
    봄의 두 얼굴

    봄은 쉽지 않다. 시인 엘리옷이 말한 대로 봄은 잔인함의 연속이다. 봄은 학기나 업무가 시작됨으로 인해 적응 스트레스가 폭증하는 시기이다. 새로운 사회 활동으로 인해 상처도 더 받고 힘든 경험도 늘어난다. 봄날에 개최되는 온갖 가족행사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수치심을 극도에 달하게 한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을 확인하는 반면 불행한 사람은 더 크게 자신의 불행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봄은 두 얼굴의 계절이다. 이 두 얼굴의 잔혹함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을 제외하고, 자살률이 가장 높은 달은 2021년 3월, 2022년 4월, 2023년 5월이었다. 봄자살 예방이 정말 중요한데 왜 자살은 봄에 가장 많을까? 춥고 어두운 겨울도 아니고, 낙엽이 뒹구는 가을도 아니고, 뜨거운 여름도 아닌, 봄인 이유를 정신의학자들과 사회역학자, 면역학, 기상학자들은 중요한 가설들로 제안하고 있다.첫째, 봄자살 증가의 원인을 재미슨이라는 정신과 의사는 ‘깨진...

    2024.03.12 22:05

  • [공감]우리는 아직 애도하지 못했다
    우리는 아직 애도하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살 수 있기 위해 무엇이 희생되었을까? 이 안락함이 나에게 주어지는 대가로 무엇이 지불되었을까?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일제와 한국전쟁 때 학습한 방식으로 반체제 인사들을 고문한 독재 정권. 나는 그중 어느 것도 겪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는 역경에서 회복할 시간이 없었던 사람들, 성찰할 시간도 없고 성찰을 허락받지도 못한 사람들의 후손이다.” 캐시 박 홍의 책 <마이너 필링스>를 읽다가 만난 ‘성찰을 허락받지 못한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표현이 한동안 마음에 머물렀다.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정신건강 전문가로서 느껴온 우리 사회의 병리와 고통의 얼개를 또렷이 짚어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한국의 120여년은 그야말로 상실과 역경의 역사이다. 가족과 이웃이 죽고, 다치고, 헤어지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얼마나 크게 다쳐왔을까. 그 많은 상실과 아픔을 다 감당할 수 없던 이들은 시체를 암매장하듯 두려움도, 분노도, 슬픔도 다 묻을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

    2024.03.05 20:11

  • [공감]세상은 입맞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세상은 입맞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유독 개운한 책이다. 시간에 관한 우리의 직관을 하나씩 무너뜨려 종국에는 극단적으로 황량하고도 무한한 가능성으로 빛나는 공(void)의 풍경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이런 글을 읽다보면 일상을 살아가며 비대해진 자아는 줄어들어 티끌로 느껴지고 이내 상쾌해진다.인간이 시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장소와 속도에 따라 다르게 흐른다. 둘째,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 사물의 미시적 상태를 관찰하면 과거와 미래 차이가 사라진다. 셋째, 광활한 우주에 ‘현재’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없다. 넷째, 시간은 독립적이지 않다. 시간은 우주의 다른 실체들과 상호작용할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책에 따르면, 우리에게 주어진 세상은 외부에서 본 세상이 아닌 내부에서 본 세상이다. 외부에서 따로 존재하는 진실이란 것은 난센스인데, 세상에서 ‘벗어난’ 것이란 없기 때문이다. 남는 것은 오직 사건들...

    2024.02.27 20:04

  • [공감] 용서받지 못한 자의 속죄
    용서받지 못한 자의 속죄

    비밀경찰 조직 엔카베데(NKVD) 소속 대위 볼코노고프는 어느 아침 출근길에 직속상관의 투신을 목격한다. 참모 회의가 취소되고 부서 동료가 하나둘씩 재심사로 불려들어가자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피의 대숙청’이 한창이던 1938년의 스탈린 정권하에서 이는 내부숙청 대상에 포함되었음을 의미했다. 자기 차례가 오기 직전 볼코노고프는 탈출을 감행한다. 그날 밤 노숙인 무리에 섞여 있던 그는 처형당한 이들을 파묻는 노역에 동원되고, 불과 아침까지도 함께 농담을 주고받던 가까운 동료의 시신을 거기서 본다.동료의 유령은 흙더미를 헤치고 나와 말을 건넨다. 내용인즉슨 자기처럼 지옥에서 창자가 끊기는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죽기 전 한 명에게라도 용서를 받아야 한다는 거다. 날이 밝자 볼코노고프는 직장에 잠입하여 무고하게 숙청된 이들의 명단을 빼내 온다. 기밀을 쥐고 당국과 협상하거나 망명을 시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기 적힌 주소로 찾아가 유족의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 영화 &...

    2024.02.20 20:11

  • [공감] 도덕 손상 사회, 어른이 필요하다
    도덕 손상 사회, 어른이 필요하다

    도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존재의 요건이다. 도덕성에 큰 상처를 받게 된 후 심한 고통을 겪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이때 인간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 번민하게 된다. 이런 도덕적 상처가 인간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 것은 유대인 학살과 베트남 전쟁 이후부터다. 조너선 셰이라는 미국 정신과 의사는 베트남 참전 후 복귀한 병사들 중에 외상후 스트레스장애와 유사하지만 다른 고통을 호소하는 일군의 병사들을 발견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다음 4가지였다. 첫째, 도덕을 위반하는 부당한 명령을 상관으로부터 받았던 경험이 있고, 둘째, 명령이라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인해 도덕을 위반하고 스스로를 배신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셋째,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수치심, 분노, 죄책감으로 괴로워하고, 넷째, 그 괴로움으로 인해 자해, 자살시도, 혹은 중독, 도덕적 타락의 행동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조너선 셰이는 이 그룹을 도덕 손상 집단이라고 불렀...

    2024.02.13 20:09

  • [공감] 도파민 중독이라니요
    도파민 중독이라니요

    정신건강 분야에서 2023년도의 단어는 도파민이 아닐까요? 올해에도 도파민의 지명도는 여전해서, 여기저기 생각지도 못한 대목에서 도파민이란 말을 마주치게 됩니다. 드라마의 자극적인 복수 장면에 “도파민 터진다”라고 감탄하는 댓글이 달리고, 매운맛 마라탕과 달콤한 탕후루를 ‘도파민 맛’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요즈음에는 SNS에 심하게 집착하거나 쇼츠와 같은 짧은 영상을 과하게 오래 보는 것을 “도파민 중독”이라 부르며 걱정하는 추세도 보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개인의 성취가 중요해진 만큼 스트레스와 긴장감도 높아지고, 또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거치면서 계속해서 무언가 쾌락적이고, 자극적인 것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의 욕구와 경향성이 극대화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파민은 우리 뇌의 신경전달물질인데요, 자극적인 것들에 대한 탐닉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매우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역할은 뇌에 쾌감, 즐거움과 관련된 신호를 전달하는 것인데, ...

    2024.02.06 20:16

  • [공감] “나보다 더 힘드신 분들을 위한 배려”라는 말
    “나보다 더 힘드신 분들을 위한 배려”라는 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어쩐지 나는 이곳 어디서도 소속감을 느끼기 어려웠다. 첫 책을 내고 난 뒤에 세계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떠돌아다녔고 처음으로 강력한 연결감을 느낀 곳은 독일 베를린이었다. 그곳엔 각자의 이유로 모국으로부터 망명한 많은 이주민들이 있었다. 독일이 저지른 가해의 역사를 스스로 들여다보고 기억하느라 다소 분열적인 느낌마저 주는 곳이었다.나는 종종 추방당했다고 느낀다. 베를린이 아니라 서울에 있을 때 그 감각은 뚜렷하다. 같은 언어와 같은 역사를 공유하는데도 이곳은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를 환영하지도 내가 성장하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하려 할수록 있는 힘을 다해 다른 방향으로 밀어내는 것만 같았다.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나 말고도 많다는 것을, 높은 자살률과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유병률이 말해주는 듯하다.모국에 대한 애착은 여전해서 수개월에 한 번씩 돌아와 머문다. 철새처럼 이동하며 다닐 때의 장점은 ...

    2024.01.30 20:14

  • [공감] 이 돌을 지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 돌을 지닌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지난해 가을 개봉 소식을 접했을 때만 해도 볼 생각이 없었다. 언제 적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인가 시큰둥했고, 믿지 못할 게 노장의 은퇴 선언이라더니 싶었다. 뒤늦게 극장에 간 것은 은퇴를 번복하며 내놓은 그 복귀작 제목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임을 알고서였다. 전작을 통틀어 저렇듯 무겁고 직설적인 작명은 못 봤으니까.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있구나 짐작했다. 미처 못한, 기어이 꺼내야 할 이야기가 있나 보다. 동의하든, 반발심이 일든 들어야겠다 생각했다. 그가 만들어온 작품들의 정서적 수혜자로서 그래야 할 것 같았다.대학 시절 첫 축제 기간, 늦은 밤 영화동아리에서 프로젝터와 스크린을 학생회관 앞에 설치하여 <모노노케 히메>를 틀어주었다. 번역 자막은 허술했고 화질은 조악했지만, 그간 알아온 만화영화와 뭔가 다르다고 느꼈다. 만든 이가 미야자키 하야오이며, 그가 속한 스튜디오 지브리의 창작물은 믿고 보라고 선배가 알려주었다. 이후 한동안 동숭아트센...

    2024.01.23 20:22

  • [공감] 5060 남성, 우리는 당신 없이 할 수 없어요
    5060 남성, 우리는 당신 없이 할 수 없어요

    생명에 관한 이야기로 새해를 시작한다. 가장 많은 자살자와 높은 고독사의 비율은 5060 남성에게 나타난다. 2022년 자살자의 30%, 고독사의 50%가 5060 남성이었다. 코로나19 이후 잠시 감소했던 중장년 남성들의 자살률이 다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사회적 삶의 정점이라는 이 시기에 왜 남성의 자살과 고독사가 유독 높을까? 50대 후반인 아버지가 자살한 것을 계기로 자살학자가 되었다는 토머스 조이너는 아버지의 자살이유를 <정점에서의 외로움>이라는 책에서 소개했다. 5060 남성들은 외로워지기 시작하고, 사회적 정점에서 상대적 박탈감이나 소진에 시달리고, 중요한 일들에서 밀려나면서 사회적 짐이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동시에 이 시기 남성들은 도움을 요청하는 데 훈련되지 않았고 체면과 자존심을 따지면서 관계 형성에 실패하고 있다고 했다.교육운동가 파커 파머는 5060 남성의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지나치게 몰두하고 살아온...

    2024.01.16 20:14

  • [공감] 마지막으로 가슴이 뛰어본 것이 언제인가요
    마지막으로 가슴이 뛰어본 것이 언제인가요

    요사이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슴이 뛰어본 것이 언제인가요?” 가슴이 두근거릴 만한 꿈을 가져야 한다는 웅장한 서두는 아니고요. 신체적으로 불안했던 시점을 찾으려는 문진도 아닙니다. 일조시간이 짧아 기분이 처지고 추위로 외출도 꺼려지는 요즘, 가슴이 뛸 정도의 신체활동을 얼마나 하고 계신지에 대한 진지한 걱정이자 안부인사입니다. 요즘 저는 우리의 삶이 픽사 영화 <월-E>에 나온 대형우주선 엑시엄 탑승자들의 움직임 적은 삶과 비슷해지는 것 같다는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대면 중심의 일상과 문화는 몇년간의 팬데믹을 겪으며 더 빠르게 확산된 것 같습니다. 의자에 앉아, 자리까지 배송되는 음료수를 마시며, 화상으로 정보와 오락을 해결하는 생활 말입니다. 걷고 달리고 땀 흘리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거나 여럿이 모이지 않는 엑시엄 사람들은 저에겐 그리 괜찮아 보이지 않았습니다.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하면서 ...

    2024.01.0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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