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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불안과 격변
    불안과 격변

    “일하면서 늘 불안하다 보니, 불안한 것이 오히려 덜 불안한, 아이러니한 상태예요. 불안하지 않은 것이 어색해요.”얼마 전 ‘일터에서의 불안’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던 한 출판사 편집자의 고백이 내내 떠올랐다. 젊은 세대의 만성적인 수행 불안의 괴로움이 생생하게 와닿았기 때문이다. 진료실과 직장 건강강의에서 만나는 많은 청년들이 학업과 업무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한다. 끊임없이 줄 세우고 비교하는 환경에서 경쟁하며 자라온 그들의 마음에는 성취에 대한 비현실적으로 높은 기준이 자리 잡고 있다. 주어진 과제는 높은 완성도로 제 시간에 해내야 하고, 그 와중에 상사에게 잘 보이고 팀원들과 원만히 지내며 평판도 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하나의 과제를 어찌어찌 해내도 불안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상은 나의 작은 허점도 트집 잡을 것이고, 더 잘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나를 버릴 것이며, 경쟁은 영원히 끝이 없으니까’ 말이다. 이런 압박감이 지속되다 보니 불안한 상태가...

    2024.07.23 20:40

  • [공감]당신의 삶을 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도 될까요
    당신의 삶을 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도 될까요

    1993년 어느 가을날 바하칼리포르니아의 판자촌에서 두 여성이 만났다. 휴가를 보내던 미국인 사진작가 애니 아펠 그리고 벽돌공 남편에게 점심식사를 가져다주던 만삭의 마리아였다. 애니는 마리아에게 사진을 몇장 찍어도 되냐고 물었고 마리아는 좋다고 답했다. 애니는 휴가에서 돌아온 뒤에도 멕시코에서 만난 한 가족이 계속 떠올랐고 다시 돌아간다.마리아를 찍은 사람은 많았지만 돌아온 사람은 애니가 처음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애니의 멕시코 프로젝트는 계속해서 늘어난다. 아무리 찍어도 마리아의 진실을 담았다고 확신할 수가 없어서였다. 마리아가 벽돌공 남편과 헤어지고, 마리아의 아이가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미국으로 가며… 세월이 흐른다. 애니는 마리아의 이야기를 25년간 2만3000프레임으로 찍는다.레슬리 제이미슨의 <비명 지르게 하라, 불타오르게 하라>에 수록된 ‘최대노출’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레슬리는 애니의 시선 앞에서 자신의 글의 초라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2024.07.16 20:29

  • [공감]소심한 타전
    소심한 타전

    ‘비디오방’에 처음 간 것은 대학에 입학한 해의 봄이었다. 공강 시간에 동기 남자아이가 “포켓볼을 가르쳐줄까?” 묻길래 그것 말고 후문에 있는 비디오방이란 데에 가보고 싶다 답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라길래 헐렁한 원피스에 중절모 쓴, 포스터 속 갈래머리 소녀가 인상적이던 <연인>을 택했다. ‘무삭제판’이라고 빨간 글씨로 쓰여 있는 게 좀 걸렸으나 무슨 무슨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길래 호기심이 일었다. 친구의 표정이 안 좋아진 걸 무시한 채 “이거 볼래” 고집부렸다.불편한 침묵 속에 두 시간을 보내고 나오던 중 친구가 조용히 일렀다. 앞으론 남자 동기와 단둘이 비디오방에 가지 말라고, 여긴 연인 아닌 이성 친구와 올 만한 곳이 아닌 듯하다고 말이다. 불가피한 경우라면 이렇듯 선정적인 장면이 나오는 영화 말고 무난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고르라고 충고했다. 그 조언에 아랑곳하지 않고 난 그해 여름방학 내내 비디오방에 갔다. 외고 중국어과를 졸업한 다른 동기와 &l...

    2024.07.09 20:37

  • [공감]폭염 재해, 모두를 쉬게 하라
    폭염 재해, 모두를 쉬게 하라

    “날씨는 이데올로기이다.” 프랑스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가 한 말이다.날씨는 우리를 지배한다. 폭염이 시작되는 시기쯤 가슴 아픈 뉴스가 전해질 때가 많다. 폭염 속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불볕더위 속에서 목숨을 잃을 줄도 모르고 일했던 사람들은 성실한 가장이 많다. 한편, 어느 가정에서는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놓고 지내면서 “저 아저씨는 진짜 더워서 죽은 거야?”라고 묻는 아이에게 부모가 “저렇게 더운 곳에서 일하지 않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폭염은 계층 간 삶의 격차를 그대로 보여주는 자연재해이자 사회재해이다.폭염재해의 피해자는 주로 노동자와 노인, 병약자들이다. 폭염재해는 그 사회가 약자를 보호하고 있는지, 인권 상태는 어떤지를 보여주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 이미 많은 나라가 폭염을 기후재해의 하나로 포함시켰다. 우리나라도 온열 사망자가 급격히 증가했던 2018년 국가재해의 범주에 폭염을 포함시켰다. 이전까지 폭염이 심각한 ...

    2024.07.02 20:53

  • [공감]서로를 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서로를 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올해 들어 사회 전반에서 심리적 위기와 정신과적 응급 상황이 증가하고 있음을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 심리적 위기상황이란 자해 및 자살 충동을 강하게 경험하는 상황, 자신 및 타인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 등을 아우르며, 위기 개입이 꼭 필요하다. 지난 14일 국무총리가 주재한 제8차 자살예방정책위원회에서 작년에 자살로 숨진 사람이 1만3770명으로 전년 대비 6.7%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복지부는 올 1분기 들어서도 자살 사망자 증가 추세가 심각하며, 자살 재시도도 늘어 두 차례 이상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는 응급실 내원자의 비율이 증가하였다고 보고하였다. 10~30대 청년층의 자살시도율이 다른 연령대와 비교해 높다는 결과도 발표되었다. 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자살 증가 원인을 분석한 바로는 코로나19 장기화 이후의 사회적 고립과 경제난 등이 영향을 미쳤다.현장의 전문가로서 덧붙이자면 기후위기, 전쟁으로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와 취업난, 전세사기 문제, 높은 물...

    2024.06.25 20:51

  • [공감]자유로운 몸의 문화
    자유로운 몸의 문화

    독일에 와서 신기했던 것 중에 하나는 나체가 그 자체로 성적인 함의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사우나가 남녀공용으로 운영되고 수영장·탈의실 등은 성별로 공간이 나뉘어 있지 않아 모두 섞여 옷을 갈아입는다.이것은 ‘자유로운 몸의 문화’를 뜻하는, 100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의 나체주의 운동 에프카카(FKK; Frei-korper-kultur)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19세기 말 레벤스레폼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FKK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자연과 멀어진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벗은 몸으로 만나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자는 반권위주의 운동이었다. 아무래도 벌거벗은 몸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뽐내기는 어려울 테니까. 지금도 독일 전역에는 국가가 지정한 FKK 해변과 공원, 사우나 등이 많다.몇주 전 나는 2박3일 동안 열린 나체 축제에 다녀왔다. 평소 다니던 요가원에서 우연히 이 행사를 알게 되었는데 순전히 호기심이 발동하여 혼자 가보...

    2024.06.18 20:29

  • [공감]밤에 하는 산책
    밤에 하는 산책

    여름을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가 ‘밤에 하는 산책’이다. 거주지가 학교 근방이라 보통 퇴근 후 교정이나 교내 원형운동장을 슬렁슬렁 걷곤 하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해넘이 시간이 늦어지면 버스 타고 아랫마을로 내려가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닌다.목적지 없이 걷다 오래된 연립주택 단지의 사잇길로 들어섰던 밤이었다. 갑자기 비가 내려, 자동차 클랙슨과 흩날리는 빗방울을 피하고자 건물 처마 쪽에 몸을 밀착시켰다. 1층 어느 창틈에선가 생선 굽는 냄새가 났다. 김치찌개 냄새와 알감자나 어묵 같은 것을 달큼하게 졸이는 내음도 한데 섞여들었다. 반쯤 드리운 부엌 커튼 사이로 옛날식 가스레인지와 싱크대가 얼핏 보였다. 뚝배기에선 찌개가 보글보글 끓었고 도마엔 채소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옆 칸에선 서툴지만 또박또박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솔도 미솔도 미레 레도 도시라라. 유년기 여름날 동네 음악학원의 열린 창 너머로 흘러나오던 익숙한 ‘소녀의 기도’ 멜로디였다. <피아노 명곡집&...

    2024.06.11 20:47

  • [공감]저출생 시대, 자해하는 양가 외동아이들
    저출생 시대, 자해하는 양가 외동아이들

    한 여학생이 부모, 할머니, 외삼촌 등 무려 4명의 보호자들과 함께 진료를 받으러 왔다. 그 여학생의 가장 큰 문제는 자해라고 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여학생 세계는 자해공화국에 가깝다. 칼의 세계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칼과 몸, 정확히는 칼과 마음이 가깝다. 2022년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초중고생 10명 중 4명이 스트레스로 자해 생각을 한다. 2021년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조사에서는 10대 청소년 10명 중 1명이 최근 2주 안에 자해를 생각해보았다고 답했다. 세종시를 비롯한 몇몇 지역 교육청 실태조사들에서 자해행동을 실제로 한 10대 청소년은 10명 중 1명 이상이고, 대다수가 여학생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대부분 조사에서 여학생들의 비율이 남학생들에 비해 모두 2배 이상 높았다.다시 그 학생 이야기로 돌아가서 자해 이유가 무엇이냐는 나의 질문에 “존재 자체가 부담스러워서”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는 것이 힘드냐”고 물었...

    2024.06.04 20:27

  • [공감]그럴 수 있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그럴 수 있지요, 그래도 괜찮아요

    4월과 5월은 사람들의 감정이 요동치는 시기이다. 내담자분들과 우울감, 감정기복과 충동성, 불안감, 관계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을 다루었다. 감정의 파고가 가라앉는 요즘 자주 만나는 복합적이면서 강력한 정서가 있다. - 연인과 싸웠는데 제가 성격에 문제가 많다보니… 아무래도 제 탓 같아요. - 점심시간에 부서가 함께 식사를 하는데 그때 뭔가 실수를 저지를 것 같아서 긴장되고 밥도 잘 못 먹어요. - 친구가 저와의 약속을 자꾸 미루어서 섭섭하고 화가 나는데, 제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기 두려워서 거리만 두고 있어요. - 작은 일에도 민감하게 화를 내는 제가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각각의 사연에는 자책, 사회불안, 분노, 두려움 등이 각각 드러나지만,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것은 “스스로를 결함이 있고 무가치하다고 느끼는 자아의식에서 비롯된 고통스러운 감정”인 수치심이다. 관계에서 존중받지 못하고 거부당하는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끼...

    2024.05.28 20:41

  • [공감]고사리처럼 쓰기
    고사리처럼 쓰기

    우리집 앞마당에는 요즘 고사리가 자라는데 겨우내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처럼 땅속에 잠들어 있던 고사리가 날이 따듯해지자 기지개를 켜듯 순이 올라오더니 한 줌 햇빛으로도 매일 무서운 속도로 잎을 펼친다.지구 역사상 가장 오래된 식물 중 하나인 이 양치식물은 수학이나 기하학을 배운 것도 아닌데 잎 모양이 완벽한 프랙털 구조다. 고사리 잎 전체 모양은 잎사귀 하나하나의 모양과 매우 유사하고, 큰 잎에서 작은 잎사귀로 갈수록 같은 모양이 반복된다. 무한히 반복되는 프랙털 구조는 줄기가 갈라지고, 또 그 갈래가 갈라지는 아주 단순한 규칙에 의해 만들어진다. 고사리는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끊임없이 반응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속도대로 자기 모습을 갖춰간다. 고사리는 아름답고 완전하다. 그럴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도 그렇다.나는 아침마다 고사리를 관찰하면서 조급함과 두려움 때문에 매일의 작업을 해치지 않으려 애쓴다. 다음 책이 제 모습을 갖추려면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를 충분히 가...

    2024.05.21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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