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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벽 너머로 낯선 소리가 들려올 때
    벽 너머로 낯선 소리가 들려올 때

    연말연초가 되면 늘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다.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의 책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에 수록된 엽편소설 ‘벽 - 짤막한 크리스마스 이야기’이다. 소설은 작가인 ‘나’가 의사인 친구에게 가볍게 하소연하며 시작한다. 그럴싸한 교훈적인 이야기를 써서 신문사의 편집장에게 주기로 했는데 크리스마스가 다가와도 어떤 영감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벽에 부딪힌 것 같다니까!” ‘나’는 탄식한다.그러자 의사인 친구가 말한다. “벽이라고? 그렇다면 자넨 이미 멋진 주제를 찾아낸 것 같구먼.” 친구는 어느 해 12월31일 빈민가에서 벌어진 일을 이야기해준다.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따뜻함이 필요한 연말이었다. 그만큼 홀로인 사람은 더욱 사무치게 외로워지는 날이기도 했다. 의사는 슬프게도 일찌감치 생을 마감한 젊은 청년의 사망 확인을 위해 가난한 동네를 찾아간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치는 밤이었다. 도착한 방은 너무나 초라하고 싸늘했고 그날...

    2024.01.02 20:13

  • [공감] 아직도 왕으로 살고 싶나요?
    아직도 왕으로 살고 싶나요?

    손바닥에 ‘王’(왕)이란 글자를 새기면서까지 왕이 되길 원했던 그는 국민주권 국가의 왕이 되었다. 대통령 국정 지지도 부정평가가 60% 수치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타협 없는 제왕의 길을 고집한다. 민심을 읽는 것이 정치이고, 배반한 민심엔 하늘도 군주를 버린다고 맹자는 말한다. 권력의 정점에 섰던 조선의 왕도 독단의 정치를 고집하진 않았다. 왕과 신하의 적절한 대립과 갈등, 협력과 경쟁을 통해 조선은 500년 이상을 이어올 수 있었다.화합과 다독거림이 없는 화난 얼굴. 시시때때로 어퍼컷을 날리는 대통령의 모습은 보기 민망하다. 민심을 어루만지며, 국민 대통합을 이뤄야 하는 책무는 어디 가고, 대통령 입에서 나온 “가짜뉴스” “날조” “허위선동” 등의 거친 언어가 대한민국 사회를 갈라치고, 양극화시킨다. 이태원 참사 현장을 둘러보는 자리에선 “여기서 그렇게 많이 죽었단 말이야?”라는 한마디로 희생자 가족과 슬픔에 젖은 국민의 가슴을 후벼판다. 지금까지 누구 하나 참사의 책...

    2023.12.26 20:19

  • [공감] 가장 외로운 시대의 인공지능
    가장 외로운 시대의 인공지능

    벌써 몇년 된 일이다. 일본에서 고장난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를 위한 합동 장례식이 열렸다. 대화형 로봇 팔로(Palro)가 추도사를 하고, 스님이 경전을 암송했다. 고령화와 저출생, 관계의 단절로 인해, 일본 사람들이 점차 사회로부터 고립됐고, 아이보를 친구나 가족처럼 여기는 대안적 관계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비슷한 시기 일본에서 로봇 스님도 등장했다. 개발업체는 이 로봇이 유골함을 제단에 올리고 불경을 외는 등 기본적인 장례 진행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인간 스님에 비해 저렴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혼자 살던 생활보호대상자 노인이 사망했을 경우에도 저렴한 로봇 스님이 그의 마지막을 배웅할 수 있다는 것이다.대화형 AI는 초기부터 의인화된 형태로 상품화됐다. 최근 메타(Meta)는 특정한 스타일로 답변을 생성하는 페르소나 챗봇을 도입했다. 우리나라에는 20세 여대생을 페르소나로 구축된 ‘이루다’가 있다. 2022년 재출시된 이루다 2.0은 출시 41일 만에...

    2023.12.19 20:19

  • [공감] 윤희에게
    윤희에게

    ○○고등학교 3학년 윤희 학생, 안녕하세요. 의대/간호대와 같은 보건의료계열 대학에서는 병원으로 실습을 나온 학생에게도 ‘선생님’이라는 명칭을 붙여주는 일들이 많아요. 그래서 정말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학생선생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하지요. 배우는 학생이면서도 의료기관 안에서는 예비 전문가로서의 태도와 윤리를 견지해야 하는 보건의료학생들에게 적합한 이름인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윤희 학생은 아직은 고등학생이니까, 그냥 윤희 학생이라고 부를게요. 더 친근하기도 하고요.윤희 학생이 다른 친구들과 함께 우리 의원으로 진로적성탐구차 왔던 게 2023년 5월이니까, 벌써 꽤 시간이 지났네요. 1년이면 수차례씩 나오는 여러 실습 학생 중 한명이라, 얼굴은커녕 이름조차도 기억할까 말까 했을 윤희 학생을 제가 기억하는 건, 윤희 학생이 저에게 보낸 편지 덕분입니다.사실 윤희 학생과 친구들이 우리 의원을 방문했던 날은 제가 꽤 피곤했던 날이었어요. 처음엔 방문을 받지 말까도 ...

    2023.12.12 20:40

  • [공감] 친절과 미소 뒤에 있는 것들
    친절과 미소 뒤에 있는 것들

    <히든 피겨스>는 흑인 차별이 극심하던 1960년대 초반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 입사하여, 수많은 난관을 이겨내고 최고의 수학자로 인정받게 된 여성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분노 유발 차별 장면들 중에서도 가장 어이없고 가슴 아팠던 것은, 사무실에서 800m나 떨어진 흑인여성 전용 화장실을 오가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질주하는 모습이었다. 이토록 열악한 환경을 꿈에도 모르는 백인 남성 상사는 업무시간 중에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운다며 질책을 하고, 설움에 북받친 주인공이 결국 울분을 터뜨리며 항변한다. 충격을 받은 상사가 건물 내의 ‘백인전용’이라 쓰인 화장실 표지판을 깨부수는 장면은 10년 체증이 해소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인간이 달에 가는 것보다 흑인과 백인이 한 교실에 있는 것이 더 요원하다”던 시대에나 있었을 “자유로운 오줌권 박탈”의 문제. 그런데 21세기의 대한민국에도 그 같은 현실이 펼쳐지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

    2023.12.05 20:28

  • [공감] 국가연구개발비는 누가 나눠먹고, 갈라먹었나
    국가연구개발비는 누가 나눠먹고, 갈라먹었나

    정부는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타당성과 근거 없는 이유가 논란의 불을 지폈다.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언급하면서다. 잘못된 관행을 없애고자 했다면 나눠먹고, 갈라먹는 실체를 지목했어야 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2011년에 설립되어, 2개의 연구소와 외부연구단 9개를 포함한, 총 31개 연구단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 인력 400명을 포함해 860여명(2020년)이 근무하는데, 2020년 예산은 5300억원 내외였다. IBS는 2019년 예산의 90%인 4300억원을 연구비로 썼다. 연구원 1인당 10억원이 넘는 연구비를 집행한 셈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간 연구비인 우수신진연구비(1억5000만원), 한우물파기기초연구(2억원), 중견연구(4억원), 리더연구(8억원)와 비교해 보면 엄청난 숫자임을 알 수 있다. 이 연구...

    2023.11.28 20:26

  • [공감] 기후위기에 함께 적응하기
    기후위기에 함께 적응하기

    둘째가 밤새 기침하는 통에 잠을 설쳤다. 불안하게 첫째도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픈런을 노리고 도착한 병원에는 마스크를 쓴 선객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며칠 고생할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진료실 안에서는 아이들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애들이 더 많거나 맞벌이라도 한다면 얼마나 더 힘들까. 한바탕 울고 나온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부모를 보면서 동료의식을 느꼈다. ‘고생이 많으십니다.’ 눈으로 인사했다.환절기마다 벌어지는 풍경이다. 봄, 가을이 없어진 지도 오래다. 나이를 먹어서 더 민감하게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기후위기 때문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며칠 전만 해도 유난히 따뜻하더니 갑자기 추워졌다. 동파육 레시피도 아니고, 사람을 찌고 굽고 튀기고 삶는 느낌이다. 비정상성(non-stationarity)과 깊은 불확실성(deep uncertainty)은 기후위기 특징이다. 일기예보가 아니라 일기중계란 ...

    2023.11.21 20:40

  • [공감] 가정 임종의 행운을 더 많이 누리자면
    가정 임종의 행운을 더 많이 누리자면

    사람의 출생과 사망은 반드시 신고해야만 하는 사건이다. 특히나 사망은 ‘어떤 이유로 사망했는지에 대한 의학적인 판단’이 함께 있어야만 완성되는 ‘의료적/법률적 사건’이다. 무슨 이유로 돌아가셨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의심스러운 정황은 없었는지’에 대한 의료적 판단은 반드시 있어야 하니, 우리는 적어도 죽을 때는 의사를 만나야만 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전공의 시절 병원에서 일할 때, 이미 돌아가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응급실로 들어오시는 이들이 있었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미 돌아가신 지가 한참은 지났다는 거다. 어떤 경우는 병원에 남겨져 있었던 평소 의무기록을 참고하여 시체검안서를 받아 가시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 이미 사망한 상태에서 흉부촬영이나 두부CT 검사를 받기도 했다. 모두 병원에서 사망하지 못하여, 즉 의사의 사망선언을 받지 못해서 사망진단서를 발급받기 쉽지 않아 무작정 응급실로 오는 경우들이었다.방문진료를 ...

    2023.11.14 20:34

  • [공감] 유서 깊은 나라의 천박한 정치
    유서 깊은 나라의 천박한 정치

    사주에 역마살이 들었나 싶었다. 어린 시절엔 군인 아버지 따라 전국을 떠돌더니, 직장에 들어가서도 대도시는 물론 웬만한 군단위 지역까지 출장을 다니며 잦은 여관살이를 했다. 서울과 경상도 일부를 제외한 지역발전 격차를 체감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나라의 사회와 역사, 문화에 관심이 많다보니 배낭여행도 이른 나이에 시작했다. 바쁜 생활 중에도 꽤 많은 나라와 도시를 다녔고, 해외출장이나 파견연수도 세상 보는 눈을 넓혀주었다. 야간열차나 밤버스로 장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광활한 국가들은 도착하는 곳마다 전혀 다른 기후와 풍광으로 피로를 잊게 만들었다. 문명과 종교의 교류, 왕조의 흥망성쇠가 활발했던 곳들은 수도만이 아니라 지방 도시들도 이국적인 매력의 거리와 유적, 예술품들이 넘쳐났다. 마을도 사람과 같아서,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은 자신만의 개성과 스토리가 풍부하고 자부심도 강하다. 파견근무로 한동안 머물렀던 일본이나 영국도 그랬다. 도쿄, 런던만이 아니라 작은 도시도 볼거리...

    2023.11.07 20:27

  • [공감] 박정희를 왜 또 부를까
    박정희를 왜 또 부를까

    산업화와 민주주의가 도마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박정희 추모식에 참석해 그가 이룬 “산업화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고 말한다.첫 번째 질문. 산업화와 고도성장의 주역은 박정희였나? 일찍이 손호철은 동아시아 네 마리 용의 고도성장은 박정희 등 개발 독재 지도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산업자본가를 키우게 된 농지개혁(한국과 대만) 혹은 지주계급의 부재(홍콩과 싱가포르), 그리고 자본주의 우월성을 보이기 위한 미국의 전략적 지원이 핵심이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근호 역시 <박정희 경제신화 해부>를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 ‘쇼윈도전략’이 한국 경제성장의 원인이라고 언급한다.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기회로 긴밀한 관계가 된 미국은 공업화 경제개발 모델로 한국을 선택한다. 모델이 된 한국의 성공을 위해 미국 주도의 ‘바이 코리아 정책’은 한국을 수출지향형 공업화 국가로 만드는 계기가 된다.두 번째 질문. 산업화는 한국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었...

    2023.10.31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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