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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미신 타파하던 조선 정치가들의 미신
    미신 타파하던 조선 정치가들의 미신

    누군가가 운명에 대해 과도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아마도 인간의 노력과 무관하게 운명이 흘러가는 상황에 직면하면서부터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운명의 존재를 굳게 믿고 실패를 막을 구체적인 조처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때때로 개인의 기도를 넘어서 부적이나 굿, 그 이상의 것을 통해 운명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만약 이러한 인간의 노력을 미신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조선은 이런 노력의 성상들을 파괴하며 건국한 국가이다. 고려는 정치적으로 풍수지리와 점사 등에 크게 의존했고, 왕과 관료들은 민란이 생기거나 국정에 문제가 생기면 도읍을 옮겨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고려의 정치인들은 ‘운명’을 조절함으로써 국가를 유지하려 했다면, 조선의 건국자들은 이런 생각이 정치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유학자들은 구체적인 정치, 행정, 사회질서의 구축을 추구했고, 미신으로 정치를 해결하려는 태도를 비판하였다. 인간이 운명에만 매달리게 되...

    2022.09.28 03:00

  • [공감] 두려움을 느껴본 이들 사이의 연대감
    두려움을 느껴본 이들 사이의 연대감

    원래 나는 공대생이었다. 과에 단 한 명도 없었던 여자 선배들을 찾아 공대 여학생 모임에 드나들던 나는,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었을 때 그 언니들과 함께 NGO 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하는 일종의 대학생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여러 사회단체들 중에서 나는 한국성폭력상담소로 신청해서 가게 되었다. 자원활동이라 해서 뭔가 큰 도움이 되는 일을 했던 건 아니었다.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상태라 일은 많은데 활동가는 부족하고 성폭력전문상담소도 턱없이 부족한 때였다. 그때 활동가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으며 꽂힌 얘기가 있었는데, 그것은 ‘성폭력 피해자를 위해 증언해줄 의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성폭력 사건 해결에서는 의료 지원이 절실한데, 너무 부족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진료하고 증거를 채취해 줄 의사, 법정에서 증언을 해 줄 의사, 다가올지도 모를 임신이나 성병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 줄 의사, 심리적 외...

    2022.09.21 03:00

  • [공감] 21세기 가족과 시누이 페미니즘
    21세기 가족과 시누이 페미니즘

    추석 무렵.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며느리들이 공동구매하자는 셔츠를 보고 웃음이 터졌다. 세계 각국의 욕이 쓰인 듯한 디자인인데 그중 가장 크고 선명한 한국어 ‘씨발’ 때문이었다. 코로나19 이전엔 제사 회피용 가짜 깁스붕대 유머가 유행하더니 다시 명절 스트레스가 시작되었다. 언젠가부터 명절파업을 선언했다거나, 아예 시댁과 관계를 끊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제사음식 사진만 봐도 울렁증이 일어난다는 이들도 있다. 세대차가 존재하는 고부갈등보다 기묘한 것은 시댁 또래 여성들과의 갈등이다. 시누이가 매년 친정에 와서 꼼짝 않고 놀다가, 본인의 시댁 제사에 쓸 음식으로 며느리인 자신이 만든 음식만 챙겨간다는 뉴스를 접했다. 남편에게 하소연했지만 소용이 없다는 호소에 댓글창이 폭발한다. 그런 집안의 남자가 달라질 리 없으니 이혼하라는 강성 의견이 지배적이다. 겨우 시댁 제사를 끝내고 친정에 갔는데, 시누이들 놀러오니 와서 같이 밥 먹자는 연락이 온다는 다른 이의 글...

    2022.09.14 03:00

  • [공감] 노동교육이 대한민국을 살린다
    노동교육이 대한민국을 살린다

    미국에서 공부한 고등학생 아들은 저학년 때는 어린이 캠프에서 여름 방학 내내 일했다. 대학교 지원을 마친 뒤에는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여러 곳에서 일했다. 아들은 용돈벌이가 목적이었지만, 노동자로 사회를 경험하는 자식을 보는 부모 마음은 차별, 안전사고 문제를 포함해 마음 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일 시작 전 노동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서명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일말의 안도감을 얻었던 것도 사실이다. 미국의 중·고교생은 사회 교과 시간에 노동운동의 역사와 노동절의 의미를 시작으로 해서 노동자의 인권, 양질의 노동 조건에 접근할 권리,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강제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차별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단체를 결성하고 교섭할 권리 등에 대해 배운다. 시뮬레이션으로 이루어지는 단체 교섭 프로젝트는 학생들이 노동조합과 단체 교섭의 기본 개념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노동자의 파업은 노동 조건을 바꾸는 수단이라 배운다. 물론 다양한 역할극을 통해 회사, 노동...

    2022.09.07 03:00

  • [공감] 영조의 정치 레토릭은 왜 실패했을까
    영조의 정치 레토릭은 왜 실패했을까

    정치 레토릭은 종종 선거철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가들의 거짓말’과 동의어로 이해되고 사용되어 왔다. 대체로 정치 레토릭은 공약과 같은 미래에 대한 약속과 관련되어 있어서 정치가가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그 레토릭은 거짓말로 전락하고 정치가는 비판받는다. 따라서 정치 레토릭을 잘 사용하고 싶다면 진부하지 않고 신선한 언어를 찾는 것만큼이나 그 레토릭이 함축하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자 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어떤 정치가의 뛰어난 정치 레토릭은 그 정치가가 적어도 이 사회가 바라는 정치적 이상을 잘 안다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가끔 이러한 언어의 규칙을 벗어나서 정치 레토릭을 구사함으로써 사람들을 당황시키는 정치가들이 있다. 조선 후기 왕 가운데 언어 게임의 규칙에서 벗어나 레토릭을 구사함으로써 신하들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영조이다. 영조는 세자로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언어가 거칠었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그의 언어가 ...

    2022.08.31 03:00

  • [공감] 부모님들을 진료실로 초대합니다
    부모님들을 진료실로 초대합니다

    트랜스젠더 호르몬 치료를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처음으로 병원에 찾아오시는 날, 나는 그분들께 부모님 혹은 가족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는지를 여쭤보곤 한다. 만 19세가 되면 이미 법적으로 성인이기에, 호르몬 치료를 받거나 성별 정정을 위한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지는 않다. 하지만 20대 초중반의 경우 부모님과 경제적으로 아직 연결되어 있는 분들이 많고, 경제적으로 독립한 분들의 경우에도 원하지 않게 호르몬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가장 큰 사유가 ‘가족들의 반대’이다 보니, 치료를 시작하기에 앞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치료를 지속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여쭤보는 것이다. 대부분은 “가족들은 잘 모른다” 정도로 답하시는데, 나는 한마디를 덧붙인다. 혹시라도 나중에 가족들과 호르몬 치료로 갈등이 생길 경우 병원에 꼭 모시고 오시라고. 어느 날 진짜로 한 트랜스남성분의 부모님이 찾아오셨다. 태어날 때는 여자로 법적 성별을 지정받았지만, 스스로 남자로 정체화하고 있...

    2022.08.24 03:00

  • [공감] 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
    언제부터 사람이 미워졌습니까

    며칠 울적하고 어수선했다. 가슴 아픈 수재 소식에 더해 끝없이 등장하는 망언, 망동, 분노와 조롱의 뉴스들이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어서다. 원망과 미움의 감정에 구속되는 것은 누구보다 내 자신의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깨달은 지 오래지만, 참담한 뉴스와 들끓는 SNS 속에서 종종 길을 잃는다. 네덜란드의 저널리스트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뉴스의 위험성이 마약이나 독극물 이상임을 이렇게 강조한다. “잠시 상상해 보자. 중독성이 매우 강한 약이 시장에 출시되어 모든 이가 중독되었다. 약의 증상은 불안, 기분 저하, 무기력, 경멸과 적대감 같은 것들이다. 이런 위험한 약을 아이들도 복용하는 것을 허용해야 할까. 정부가 합법화할까. 답은 예스다. 오히려 많은 보조금을 받으며 대량으로 배포된다. 그 약이 뭐냐고? 바로 뉴스다.” 브레흐만은 세상의 거의 모든 뉴스들이 인간의 어두운 부분에 과도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고 지적한다.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태풍 카트리나로 도시가 위기에 ...

    2022.08.17 03:00

  • [공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직한 절망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직한 절망이다

    올여름의 높은 습도와 무더위를 서울에서 맞았다. 도시의 짙은 녹음이 절정에 이르자 매미의 높은 음이 짧게 하늘을 가로질렀다. 생의 전주곡을 마친 그들이 나무에서 수직 낙하했다. 매미의 죽음을 지켜본 내게 그들이 말한다. 기다려온 시간이 허무하다 말하지 마라. 길바닥에 버려진 내 주검에 행여 동정하려거든 아서라. 난 긴 세월을 흙 속에서 보냈다. 바람이 지나가 가려움을 긁어 주었고, 여름 소나기가 갈증을 덜어 주었다. 눈 덮인 바닥의 온기를 느끼며 살았다. 기나긴 내 삶이 오늘처럼 바닥에 누울 때 난 다시 살아난다. 박노해 시인의 ‘길이 끝나면’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시인은 말한다. 길이 끝나면 새로운 길이 열리고, 겨울이 깊으면 새봄이 걸어 나온다 했다. 내가 무너지면 더 큰 내가 일어서고,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라고 했다. 한 마리 매미의 죽음은 절망처럼 보였지만, 매미 집단 영속성을 위한 희망임을 깨달았다.20%대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대통령실의 답변...

    2022.08.10 03:00

  • [공감] 정치는 권력투쟁의 동의어가 아니다
    정치는 권력투쟁의 동의어가 아니다

    1801년 신유사옥은 정조의 죽음으로 “좋은 정치”가 끝나고 정순왕후로 대표되는 “억압적인 세도정치”가 시작되는 신호탄처럼 다뤄지며, 노론 벽파가 천주교 박해를 명분으로 다른 정파들을 제거한 권력투쟁의 결과로 묘사된다. 당쟁, 붕당정치 등 조선후기 정치사를 권력투쟁으로 이해해 온 역사관에서는 이러한 묘사는 당연한 것으로 이해되기 쉽다. 그런데 정말 신유사옥을 일으켰던 정순왕후와 노론 벽파는 권력투쟁과 정치탄압만을 그 목적으로 삼았던 것일까? 분명히 벽파에 의한 시파의 정치배제와 신유사옥이 동시기에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그 목적을 정쟁이라고만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는 면이 많기 때문이다. 권력투쟁은 정치사의 중요한 부분이기는 하지만, 실제 정치는 권력투쟁 이상의 무엇을 요구한다. 즉 설득, 협의, 절차, 정당화와 같은 정치 기술이 필요하며, 신유사옥은 특히나 그런 과정 없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는 규모의 사건이다.신유사옥의 복잡성은 관련 자료를 ...

    2022.08.03 03:00

  • [공감] 퀼트를 만드는데 조각천이 모자란다
    퀼트를 만드는데 조각천이 모자란다

    요즘 방문의료에 대한 기사가 이렇게 많이 실리는데도, 아직도 “우리나라에 방문의료가 필요해? 병원에 쉽게 갈 수 있잖아?”라는 얘기를 하시는 분들이 있다. 119도 있고 장애인콜택시도 있는데, 그게 뭐가 어려워? 준우씨(가명)는 34세의 중증 지적장애인이다. 임신 7개월에 조산으로, 1.6㎏의 몸무게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진단받은 준우씨는 침대에서 휠체어로 옮기는 것도 보호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준우씨가 병원을 못 가느냐 하면 그런 건 아니다. 뇌전증과 적혈구증가증에 대해 대학병원에서 꾸준히 진료를 받고 있고, 혈액검사 진료, 사혈을 위해 1년에 서너번 외출을 한다. 그 외에는 집 앞에 있는 10개의 계단이 준우씨의 외출을 가로막고 있다. 외출하려면 누군가 준우씨를 업어 계단을 내려와야 한다. 준우씨의 몸무게는 80㎏은 넘어 보인다.현자 어르신(가명)은 80세의 중증 뇌병변장애인이다. 18년 전 뇌경색 이후 와상 상태로 지내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4층...

    2022.07.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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