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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 배를 내밀지 못하는 이들
    배를 내밀지 못하는 이들

    연말 검진 시즌이다. 12월 말까지 올해의 검진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요즘이다 보니, 진료실도 검사실도 바쁘다. 상(上)복부초음파 검사를 받는 사람들도 덩달아 많다. 상복부초음파는 말 그대로 복부 위쪽에 있는 장기들을 관찰할 수 있는 초음파 검사로, 간, 담낭, 양쪽의 신장, 비장, 췌장까지를 보는 검사이다. 복부초음파 검사를 하려면 검사자도 힘을 많이 써야 하지만, 수검자(검사를 받는 사람)도 힘을 많이 써야 한다. 장기가 최대한 잘 보이도록 하기 위해 12시간 이상을 물도 마시지 않는 금식을 하는 것이 좋음은 물론, 검사를 하는 동안에도 상복부에 있는 장기들이 갈비뼈 아래로 내려와 초음파 화면에 잘 잡힐 수 있도록 숨을 들이쉬고 배를 불룩하게, 최대한 내밀어야 한다. 숨도 계속 참아야 한다. 초음파는 뼈를 통과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횡격막을 몸 아래쪽으로 최대한 끌어내려서 복강 내의 장기들이 갈비뼈 아래로 쭉 내려오도록 자세를 잡아야 하니, 나...

    2022.12.14 03:00

  • [공감] 16강보다 벅찼던 것은
    16강보다 벅찼던 것은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한 지난 주말. 평소 활동하는 SNS에서 손가락이 얼얼할 만큼 이모티콘을 눌렀다. 크게 흥분하거나 몰입해서 볼 만큼 스포츠 애호가는 아니지만, 기적에 가까운 막판 골을 확인하는 순간 벅찬 감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경기와 관련된 모든 글과 사진에 하트와 스마일을 누르고 또 눌렀다. 아이처럼 신났고 평범한 농담에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기쁨에 겨워 남긴 나의 짧은 글에 달린 이모티콘들을 보며 묘한 감동을 느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한 관점 차이나 정서적 차이, 관심사의 차이 등으로 소원했던 수많은 온라인 친구들의 흔적이 찍혀 있었다. 흔히 국뽕이라고 하는 과도한 자국 이기주의에 신중한 사람들도, 자신과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분노하며 비아냥대던 사람들도 그날 그 시간만큼은 하나가 된 듯했다. 2002년 길거리에서 낯선 이들과 부둥켜안았던 순간처럼, 모든 이가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대한민국이란 정체성으로 경...

    2022.12.07 03:00

  • [공감] 정의와 철학이 사라진 한국 정치
    정의와 철학이 사라진 한국 정치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종료 5년 뒤, 그의 나이 70세에 받은 재판에서였다. 플라톤은 지혜를 사랑하다, 죄 없이 죽임을 당한 소크라테스를 보면서 참지식을 사랑하고, 철학적 올바름을 지닌 사람들이 국정에 참여할 때만 정의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게 된다. “오오. 인간들이여, 너희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자는 자신의 지혜가 보잘것없다는 사실을 아는 자다.” 소크라테스의 무지에 대한 자각은 ‘모름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지식’이라고 말한 공자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이는 자기 생각만 옳다는 독단을 경계하는 의미를 포함하기도 하고, 새로운 배움으로 나아가는 열린 마음을 지향하기도 한다. 위정자의 지혜가 모자라면 정치는 닫힌다.지금의 한국 사회는 고도의 정치는커녕, 보기에도 민망할 때가 다반사다. 이태원 참사 후, 외신기자회견장에서 웃음과 농담으로 망신을 당한 한덕수 국무총리. 158명의 쓰러진 꽃무덤에 “폼 나게 사표” 망언 인터뷰한 이상민 행...

    2022.11.30 03:00

  • [공감] 파리를 조문하는 글
    파리를 조문하는 글

    정약용이 남긴 글 중에는 <파리를 조문하는 글>이 있다. 1810년 여름,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점점 번식해서 술집과 떡가게가 있는 저잣거리는 물론 산골짜기까지 가득 차게 되었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고 하고, 소년들은 파리를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약을 쳐서 파리들을 전멸시켰는데, 정약용은 탄식을 하며 이 전멸된 파리들을 위해 조문하는 글을 쓴다. 그는 이 파리들이 그 전해 기근 때에 죽은 사람들에서 나온 것으로, 환생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파리를 조문하는 글>에는 정약용이 목도했던 재해의 참상과 그 재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치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관료들은 재해에 대처할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한다. 그는 파리를 조문하기 위해 쌀밥에 국, 술, 단술, 국수, 기름진 고깃덩이, 초장, 찐 파, 농어회를 차려놓고 “그...

    2022.11.23 03:00

  • [공감] 청진하는 시간
    청진하는 시간

    천계영의 만화책 오디션을 읽었을 때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드러머가 방에 누워 시곗바늘 소리와 자신의 심장소리, 여러 소리들을 들으면서 시간을 쪼개고 박자를 쪼개던 장면. 그가 가장 좋아하던 소리는 자신이 엄마를 껴안을 때 두 심장이 마주하여 만들어지는 불규칙한 리듬이라고 했다. 나는 누군가에게 청진기를 가져다 대려고 할 때마다 이 장면이 떠오른다. 나도 이렇게 심장소리, 공기가 기관지를 통과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청진을 할 때 눈을 종종 감곤 한다. 하나의 감각을 차단하면 다른 감각이 좀 더 예민해지는 느낌이 들어, 소리에 좀 더 집중하고 싶을 때 눈을 감는다. 너무 피곤할 때는 청진을 핑계로 살짝 눈을 감고 피로를 달래보기도 한다. 눈을 감고 심장소리에 집중하고 있을 때, 두근거리는 심장이 내게 다가오는 듯한 그 느낌이 좋다.이렇게 심장소리에 집중하고 있으면 또 떠오르는 얘기가 있다. 예전 연수강좌에서 들었던 아이의 이야기이다. 아이는 심장에 구멍...

    2022.11.16 03:00

  • [공감] 격노와 처벌의 리더십
    격노와 처벌의 리더십

    취임 초기 허니문 지지율조차 없는 대통령과 정부·여당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들의 위기의식, 분노가 더욱 높아졌다. 희생자가 155명이라는 소식을 듣던 10월31일.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길거리 참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긴급상황에서 155명이 무사히 구조된 실화가 떠올랐다. 위기관리 분야의 교과서로 거론되는 유명한 사례다. 2009년 1월, 뉴욕 라과디아 공항을 출발한 1549편 에어버스는 이륙 2분 만에 갑자기 날아든 새 떼로 인해 엔진 2개가 동시에 나가는 위기를 맞게 된다. 관제탑 컨트롤러는 가까운 공항착륙을 권했지만, 당시 비행기의 상태를 고려한 기장 설렌버거는 허드슨강 비상착수라는 특단의 결심을 한다. 지상착륙보다 위험성이 몇 배 높은 수상착륙 결정에 관제탑은 당황했으나 더 나은 방법도 없었다. 교신종료 후 1분여 만에 한겨울의 강 위에 불시착한 기체에서 승객 전원이 무사히 구출된 상황은 언뜻 보면 운좋은 영웅담 같지만, 구체적 상황을 들여다볼수록 교훈은 간단치 않다...

    2022.11.09 03:00

  • [공감] 이 정부를 어찌하오리까
    이 정부를 어찌하오리까

    비상 경제 시국이다. 미 달러당 원화 가격이 지난 9월22일을 기점으로 1400원대를 찍은 후 ‘강달러’는 계속되고 있다. 11월 현재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3.00%다. 이 또한, 미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속도에 따라 환율과 금리는 요동칠 것이다. 9월 소비자물가 상승률(5.6%)을 감안할 때,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상승폭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더해 레고랜드 사태로 경색된 채권시장은 기업의 자금줄을 조이고 있다. 그야말로 기업은 ‘돈맥경화’ 위기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8월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30억5000만달러 적자를 나타냈다. 또한 원·달러 환율 방어를 위해 보유 달러를 매도한 결과 9월 말 외화보유액은 한 달 전보다 196억6000만달러 감소했다고 밝혔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이후 두 번째 높은 감소치다. 만만치 않은 국내외 여건에 국민의 삶(민생)은 고달프기만 하다. 지난달 27일 대통령이 주재하고, 주무장관과 수...

    2022.11.02 03:00

  • [공감] 차별 정당화하는 신문 논설에 대한 시골 부인의 반박
    차별 정당화하는 신문 논설에 대한 시골 부인의 반박

    1898년 11월7일, ‘제국신문’에는 여학교 교육에 관한 흥미로운 논설이 실렸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기 때문에 조선의 계급 간의 차별, 남녀 차별이 없어져야 할 악습이라는 비판으로 시작하는 이 논설이 실제 주장하는 바는 여학생들의 입학 조건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1898년 가을에 일어났던 일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898년 가을은 북촌 벌열가의 부인들, 외국인, 귀화인, 기생, 평민, 과부 등 다양한 배경의 여성들이 모여 만든 찬양회라는 여성단체가 형성되어 정치,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서 운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찬양회는 <여권통문>, 즉 여성의 교육권, 정치권, 경제권을 명시한 ‘여학교 설시 통문’을 발표한 뒤 연명 상소를 올리는 등 관립 여학교 설립을 위해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벌인다.그들은 남성이 중심인 단체들의 집회, 연설회, 토론회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조직하기도 하고, 정치 사건이 발생하면 나가 다른 ...

    2022.10.26 03:00

  • [공감] 한국의 트랜스젠더들, 참 건강하다
    한국의 트랜스젠더들, 참 건강하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쓴 지난 칼럼을 보고 누가 물었다. 한국에 트랜스젠더(를 포함한 젠더퀴어)가 적어도 10만명에서 20만명은 있을 것이라 썼더니, ‘그걸 네가 어떻게 아냐’고 한다. 맞다. 나도 잘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으니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외국의 조사 자료들이라고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겠지만 트랜스젠더 인구수를 추정하는 데 이용할 정도는 되겠다. 이런 외국 자료들, 그리고 내가 실제로 진료실에서 만나고 있는 전국 각지에서 내원한 트랜스젠더들을 만나며 추정한 인구수를 나는 말했을 뿐이다. 트랜스젠더들의 암 발병이 더 많을지 누가 물었다. 외국 자료를 보면 트랜스젠더들의 암 발병이 많은데, 한국에서도 그럴까 질문했다. 암 발병이 트랜스젠더에서 더 많다면, 트랜스젠더들의 건강 상태가 더 안 좋다는 얘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지 조사하고, 어떻게 하면 건강을 증진할 수 있을지 논의를 시작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암은 ...

    2022.10.19 03:00

  • [공감] 결핍을 모르는 이들의 결핍
    결핍을 모르는 이들의 결핍

    몸도 마음도 건강하고 늘 에너지 넘치는 오랜 친구가 있다. 연고주의 팽배한 사회에서 별다른 학맥·인맥 없이 오로지 성실성으로 경제적 안정을 이룬 데다, 과도한 욕망이나 허영도 없고 부모님 봉양과 가족 돌봄도 남다르다. 한길로 달리기보다는 샛길과 골목길에 흥미가 많은 나와는 참 다르지만, 달라서 잘 맞고 배울 점도 많은 사람이다. 그런 친구가 얼마 전 평소와 다르게 누군가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이야기했다. 즐기는 사교모임에 자주 오는 여성이 있는데, 늘 남들 신세만 지며 먹고 놀다 간다는 것이다. 평소 인색하거나 없는 사람 무시하는 인격이 아니라 처음엔 함께 호응했지만, 듣다보니 궁금한 점이 있었다. 혹시 우울 증세가 없는지 물으니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다고 한다. 열심히 나오기는 하지만 그리 즐기는 모습도 아니고 무력해 보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얘기했다.그 여성이 우울증이라면, 공짜로 얻어먹거나 분에 넘치는 생활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 나오...

    2022.10.1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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