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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 [공감] 류큐 왕자 살해설의 전모와 후폭풍
    류큐 왕자 살해설의 전모와 후폭풍

    17세기 이후 아시아에서는 조선인들이 제주도에 표류했던 류큐(지금의 오키나와)의 왕자를 살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이야기의 전모는 이중환의 <택리지>(1751)에 나온다. 인조대에 일본이 류큐를 공격해서 그 왕을 잡아가자, 류큐의 세자는 물만 넣으면 술로 변하는 돌인 주천석과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거미줄로 짠 만산장으로 아버지를 구하고자 한다. 그런데 풍랑을 만나 제주도에 표착하게 되었는데, 제주 목사가 이 보물들이 탐이 나 몰수하고 세자를 죽이고 그가 왜구였다고 꾸며 무고했다. 류큐 왕자 살해설이라고 불리는 이 이야기는 조선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이중환만이 아니라 박지원도 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1930년대에도 동일한 이야기가 채록된 바 있다. 그런데 이중환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이상한 곳이 많다. 일단 제주 목사가 뺏었다는 보물의 출처를 알 수 없다. 또, 왕자가 실존인물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데, 일본의 류큐 공격 때 잡혀간 쇼네이왕(尙寧王)의 ...

    2022.05.11 03:00

  • [공감] 그녀의 두드러기
    그녀의 두드러기

    내가 그녀의 자취방으로 돌아갔을 때 그녀는 온몸을 손톱으로 긁고 있었다. 피부 여기저기가 벌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한 채 팔과 다리, 등을 돌아가면서 벅벅(이라는 표현이 약하게 느껴질 정도로 세차게) 긁고 있는 그녀를 보고 나는 아무런 대처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아직 의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며칠 전 평소 믿고 지내던 남자 선배에게 성추행을 당한 상태였고, 그녀를 추행한 그 남자는 평소 내가 잘 알고 지내던 남자 후배이기도 했다. 나는 그녀로부터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었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두 잘 아는 사람으로서 피해자의 대리인이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가 근처 카페로 그 남자 후배를 불러내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얘기를 나누기 위해 나갔을 때, 그녀는 자신의 자취방에 혼자 남기를 원했다. 내가 그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자신이 당한 일이 자꾸 떠올라 참을 수 없이 초조하고 화가 치밀어올랐고, 그 몇 시간을 아슬아슬하게 견디던 그녀는 내가 돌아갔을 때...

    2022.05.04 03:00

  • [공감] 무능할수록 유능해 보이기 쉽다
    무능할수록 유능해 보이기 쉽다

    요가를 배우며 궁금한 점이 있었다.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는 고된 동작들이 끝나면 잠시 누워 휴식을 취한 후, “팔로 바닥을 누르며 천천히 일어나라”는 지시에 따라 몸을 일으킨다. 누워서 쉬다 일어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방법을 정해주는지 여쭤봤다. “연세 드시거나 허약한 분들 중엔 그 간단한 움직임조차 무리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얼마 전 집안일을 하다 허리를 크게 다쳤다. 단순한 뒤척임과 자세 바꾸는 일에도 엄청난 고통이 뒤따라 더럭 겁이 났다. “혹시라도 이 고통이 영구한 것이 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장애를 갖고 살아가기엔 인식도 시스템도 열악하기 짝이 없는 이 사회에서 견뎌낼 수는 있을까”. 온갖 상념들로 몸도 마음도 힘들었지만, 누군가에겐 숨쉬는 일과 다름없는 일상이 누군가에겐 숨통이 조이는 듯한 일상일 수 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한 시간이었다.공감과 이해에 경험을 넘어서는 것이 없다. 최근 엄마의 몇 차례 암수술로 병...

    2022.04.27 03:00

  • [공감] 나쁜 놈과 검찰 수사권
    나쁜 놈과 검찰 수사권

    “검찰은 나쁜 놈들을 잘 잡으면 된다.” 검사장 한동훈이 법무부 장관 후보 지명자가 된 뒤 인수위 기자회견장에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7조 4항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명시되어 있다. 피고인 또는 피의자가 유죄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무죄로 간주한다는 원칙이다. ‘나쁜 놈’이 되는 것은 수사를 통한 범죄증거를 기반으로, 검찰의 기소를 거쳐 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에나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피의사실만 가지고 피의자를 이미 범죄자 취급하고 있으니, 이런 인식 소유자의 장관 자격을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형사소송법 제307조는 증거재판주의를 밝히고 있다. 범죄사실은 증거에 의해서만 인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2013년 탈북민인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의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 당시 국정원과 검찰이 제시한 결정적 증거라던 북한에서 찍은 사진, 중국을 거친 북한 출입국 기록, 그리고 유우성씨 동생의 증언 모두 가짜로 ...

    2022.04.20 03:00

  • [공감] ‘장애인 개혁가’ 유수원의 삶과 우정
    ‘장애인 개혁가’ 유수원의 삶과 우정

    1741년 2월8일, 영조는 관제 개혁론을 들고 온 농암(聾菴) 유수원이라는 사람을 조정에서 맞이한다. 그의 <관제서승도설(官制序陞圖說)>을 검토한 영조는 첫 질문을 던진다. 과연 그의 개혁론을 따라 제도를 바꾸면 정말로 인재를 공정하게 임용할 수 있는가? 실록은 이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음을 기록한다. 왕의 질문에 유수원이 답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의 침묵 이후, 영조는 눈앞의 사대부가 말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영조는 주서(注書)에게 질문을 써서 유수원에게 보여주라고 명하고, 둘은 이윽고 필담으로 대화를 이어간다. 유수원은 정치적으로 불우한 삶을 살았던 인물로, 문과에 급제해 정언으로 벼슬을 시작했으나 종숙부가 역적이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버려져 기용되지 않았다. 소론 당색에 속한 그는 당시 정치와 사회에 불만이 많아 혁신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대신들을 함부로 비판했다고 파직당했다. 소론이 정권을 잡은 경종대에도 크게 중임되지 못했고,...

    2022.04.13 03:00

  • [공감] 어떤 부고, 어떤 유품
    어떤 부고, 어떤 유품

    어떤 분이 물어보셨다. “왕진을 나가던 환자분이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기도 하시나요?” 왕진하는 의사를 소재로 하여 최근 N포털에 연재되고 있는 웹툰을 구독하는데, 웹툰 주인공 의사가 왕진하던 환자분이 돌아가신 후 조문을 가는 장면을 보면서 들었던 의문이라 했다. 방문을 해서 진료를 하는 우리 같은 의료인들은 부고를 자주 받는다. 대부분의 부고는 부고라기보다는 약속 취소의 형태로 들어온다. “오늘 방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버님께서 며칠 전에 돌아가셨습니다”라는 형태 말이다. 물론 “그동안 방문해 진료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에 어머님이 집에서 돌아가셔서 가족들끼리 잘 모셨습니다”라고 조금 더 길게 전해주시는 가족들도 있다.명색이 의사와 간호사들인데, 환자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위급합니다, 우리 집으로 빨리 좀 와주시겠어요?” 같은 연락은 안 받는지 궁금해하는 분도 있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요청할 일은 아니라고 보호자들이 생각하신 모양인지, 그런 ...

    2022.04.06 03:00

  • [공감] 파친코· 피와 뼈…이야기는 힘이 세다
    파친코· 피와 뼈…이야기는 힘이 세다

    세계대전과 독일의 만행에 관한 문학과 영화들은 차고도 넘친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등의 유명작들에 이어 2020년 오스카에서 주목받은 <조조 래빗> <1917>까지. 놀라운 것은 반세기 이상 반복되는 이 식상한 소재가 늘 새로운 서사로 변주되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더해준다는 점이다. <스윗 프랑세즈>는 독일장교와 사랑에 빠진 프랑스 여인의 고뇌와 절제된 감정 속에서, 스스로 선택한 바 없는 집단의 갈등과 개인의 원초적 욕구가 충돌하는 지점을 조명한다. <나의 마지막 수트>는 가족이 몰살당한 땅 ‘폴란드’란 단어를 평생 금기로 삼고 기차 환승 중에도 단 한 뼘의 독일 땅도 밟지 않으려는 완고한 노인의 모습을 통해, 태극기 부대의 트라우마를 조금은 이해하고 싶게 만든다.나치에 관한 많은 스토리들은 입체적이며 현재적이다. 전쟁과 파시즘의 광기가 어느 미치광이의 난동이 불러온 과거의 비극이 아닌...

    2022.03.30 03:00

  • [공감] 장막을 걷어라, 행복의 나라로
    장막을 걷어라, 행복의 나라로

    유엔 소속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지난 18일 공개한 한국의 행복 순위는 전 세계 146개국 중 59위다. 행복 지수는 나라별 1000여명 시민의 갤럽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1인당 국민소득, 건강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삶의 선택 자유, 관용, 부정부패에 대한 인식 등의 항목에 대한 응답 3년 치 자료를 분석해 산출한다. 경제 대국 10위권이라는 대한민국의 행복 지수가 이처럼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1위 핀란드를 선두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 모두가 상위 10위에 올라서 있다. 구매력 기준 소득에서 보면 우리나라는 핀란드와 큰 차이가 없다. 기대수명은 오히려 핀란드보다 높다. 비슷하게 벌고, 오래 사는데 왜 행복하지 못할까?사회적 지원에 관한 질문은 ‘당신이 곤경에 처했을 때, 기댈 친구나 친척이 있습니까?’이다. 이 항목 응답은 1~80위까지의 국가들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점수를 받았다. 2019년 우리나라는 인구 10만명당 28.6...

    2022.03.23 03:00

  • [공감] 옹녀와 변강쇠, 그리고 19세기 하층민의 삶
    옹녀와 변강쇠, 그리고 19세기 하층민의 삶

    판소리계 고전소설인 <변강쇠전>은 남녀 간의 욕망을 다룬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한 면이 있음은 분명 사실이지만, 소설이 집필된 19세기 조선이라는 배경을 고려하면 조금 다른 읽기도 가능하다. 당시 조선 사회는 계속되는 기근과 전염병으로 인해 피폐해졌다. 재해로 몇십만명씩 사망했던 참혹한 사회상은 여러 자료에서 확인된다. <변강쇠전>은 통계로만은 쉽게 감이 오지 않는, 당대 하층민들 삶의 고통의 깊이가 어떠했는지 조금이나마 엿보게 해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변강쇠전>의 별칭은 <가루지기전> 혹은 <횡부가(橫負歌)>이다. 가루지기나 횡부는 짊어진 송장을 의미하며, 이 별칭들은 이 이야기가 사랑이나 해학적 로맨스가 아닌 비극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변강쇠전>은 죽음의 서사라 할 수 있는데, 그 전반부는 옹녀의 청상살로 인한 남자들의 죽음을, 후반부는 변강쇠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또 다른 죽음의 연쇄...

    2022.03.16 03:00

  • [공감] 여전히 석연치 않은, 갱년기 호르몬 치료
    여전히 석연치 않은, 갱년기 호르몬 치료

    나는 땀이 많은 체질이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땀이 많은 체질이니 갱년기가 되면 더 괴로우시겠어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 40대 중반이니 사실 갱년기는 곧인데? 지금도 땀이 많아서 여름만 되면 땀띠로 고생인데, 땀이 더 많아진다고? 갱년기가 되면 땀이 덜 나게 호르몬 치료라도 받아야 하나? 나를 환자의 입장에 놓고서 갱년기 호르몬 치료를 처음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의대 본과에 진학하기 직전인 2002년, 갱년기 호르몬 치료에 대한 어마어마한 연구 발표가 있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지원을 받아 여성건강연구소에서 시행한 ‘2002년 WHI 연구’로 잘 알려져 있다. 갱년기 여성에게 젊음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 시행한 호르몬 치료가 오히려 심뇌혈관 질환을 더 일으키고 유방암 위험도 높인다는 결과가 전 세계로 보도되었다. 의사고 환자고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고, 당시 호르몬 치료를 받던 여성들의 70~80% 정도가 치료를 갑자기 중단할 정도로 사회적 파장은...

    2022.03.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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