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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K반도체 생태계를 설계할 때
    K반도체 생태계를 설계할 때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계절처럼 순환한다. 호황과 불황의 절기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세계 메모리반도체의 정상에 섰지만, 지금의 호황은 과거의 ‘수요’ 기인성 호황이 아니다. 인공지능(AI)과 데이터센터, 이를 위한 첨단 패키징이 얽히며 ‘구조’ 기인성 호황으로 산업의 문법이 바뀌었다.삼성전자가 HBM 시장 주도권을 내주면서 겪은 지난 3년의 고난은 기술력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시장 변화를 읽는 감각과 생태계를 연결하는 경영진 리더십의 부재 등이 전략적 판단을 흐리게 한 결과였다. 삼성은 가장 많은 기술 자산을 갖고 있지만, 미래를 바꾸려는 기업들과의 ‘연결’이 부족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고객과의 공동 개발, 리스크 공유, 신뢰 구축을 통해 기술보다 앞선 ‘관계의 기술’을 선점했다. 기술은 연구소에서 만들어지지만, 시장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최근 젠슨 황, 이재용, 정의선 세 사람의 치맥 회동은 단순한 만남이 아니었다. 고객과 공급자가 한 테이블에서 웃...

    2025.11.06 22:01

  • [공감]애쓰고 있다는 마음
    애쓰고 있다는 마음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이 조용히 파문을 만들고 있다. 보고 감동한 이들이 대관해 상영회를 열 만큼 가슴을 흔드는 힘이 있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고, 진료실에서 만나는 친구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덤이었다.주인공 주인이는 부산스럽고 쾌활한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친구와 잘 어울리고, 공부보다 태권도를 좋아하고, 진로 상담을 할 때 선생님과 농담을 하는 사회성 좋은 아이다. 그런데 아동 성폭행범이 출소 후 동네로 오는 걸 반대하는 서명을 받으려는 친구와 다투면서 숨겨온 사실이 드러난다. 그에게도 트라우마를 남긴 오래전 사건이 있었다. 주인이뿐 아니라 가족의 행동도 모두 그 사건과 관련이 있다.주인이가 쾌활하고 밝지만 진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고 몸을 쓰는 운동에 몰두하는 것, 엄마가 조용히 술을 마시고 약을 먹어야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 아빠가 멀리 시골에서 자연인으로 사는 것, 동생이 마술을 익히는 데 몰두하는 것도 모두 그 사건을 다루는 각자의...

    2025.11.04 19:59

  • [공감] 생존 본능을 앞서는 사로잡힘
    생존 본능을 앞서는 사로잡힘

    때때로 나는 인터넷 세계를 탐험하며 인류학자처럼 사람들을 관찰하곤 한다. 언젠가는 유튜브로 미국 경찰이 공익을 위해 올린 실제 상황 영상을 하나 본 적이 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바람에 여자가 신고해서 경찰이 들이닥쳐 남자와 대치하는 상황이었다. 함께 살던 사이에서 일어난 가정폭력으로, 말다툼하는 도중 남성이 여성을 세게 밀쳐 여성이 벽에 부딪힌 듯했다.출동한 경찰과 남성은 한동안 대치한다. 경찰은 우선 남성을 진정시키며 설득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발코니 문가에 서 있는 남성에게 대화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가까이 오라고 말한다. 발코니에 남성의 소총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그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남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연인 사이의 일이 경찰이 개입할 정도로 심각해지고 그들이 자신을 범죄자 취급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보인다. 내가 위협이라고? 나에게 총을 겨눈다고? 싸움의 과정에서 쌓아 올...

    2025.10.28 19:59

  • [공감]날린 시간이 만들어준 것
    날린 시간이 만들어준 것

    과제 제출일에 “쓰던 글을 날렸어요”라 말하는 학생을 가끔 마주할 때면 겉으론 고개 끄덕이면서도 곧이곧대로 믿지 못했다. 문서 프로그램상 자동저장 기능이 내장된 데다 작업 도중 수시로 저장할 텐데 그게 가능한가 싶었다. 저마다 방법이 다르겠지만, 그간 난 시간대별로 일련번호 붙인 문서를 몇십분 간격으로 드라이브에 저장하고 ‘내게 보내는 메일’로도 발송하는 고전적 방법을 사용해왔다. 실수로 몇문장 삭제될 순 있더라도 몇시간 동안 작업한 분량이 통째로 사라질 순 없다고 여겨왔다. 직접 겪기 전까진 그랬다.중요한 원고를 제출하기 전날 밤이었다. 선배 선생님 두 분이 지구 건너편에서 초고를 읽은 후 변경내용 추적 기능으로 수정사항과 제언을 꼼꼼하게 적어 보내주셨다. 조언들로부터 도출한 결론은 절반 이상을 ‘다시 쓰기’였다. 마감 앞둔 막바지 단계라 힘내서 밤새워보기로 했다. 앞부분부터 한 문장씩 고쳐가다 마침내 마지막 단락의 수정을 앞두고 창밖을 보니 동틀 무렵이었다. 졸음을 밀어내...

    2025.10.21 20:27

  • [공감]불안과 기대 사이
    불안과 기대 사이

    영화 <어바웃 슈미트>의 주인공 슈미트. 그는 조용히 사무실 불을 끄고 문을 닫는다. 40여년간 다닌 보험회사에서 마지막 퇴근이다. 동료들의 환송회도 마치고 후임자에게 업무 인계도 끝냈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짓누른다. 익숙했던 일상을 뒤로하고 새로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 한편으로 이제야 비로소 진짜 나의 시간을 가진다는 기대감. ‘불안과 기대 사이’, 은퇴자의 복잡한 마음을 보여준다.2025년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에 실린 한 내러티브 연구에 따르면 은퇴를 앞둔 중년 남성들은 서운함, 씁쓸함, 아쉬움 등 불안의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은퇴 전 불안은 단순한 걱정이 아니라 삶의 구조와 정체성이 흔들릴 때 생기는 복합적 심리 상태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불안은 경제적 문제다. 매달 고정적인 급여가 없는 생활을 떠올리며 “내가 모은 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병원비나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마음이 무거워...

    2025.10.14 21:09

  • [공감]영포티에게
    영포티에게

    성호씨, 얼마 전 나눈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 못다 한 말을 글로 전하려고 합니다. 처음에는 서먹해하고 긴장을 한 듯했지만 맥주 한 잔 마신 다음부터는 술술 말문을 풀더군요.“열심히 일해서 몇년 전 운좋게 서울에 아파트를 사는 데 성공했습니다. 순조롭게 승진을 했고, 연봉도 만족스럽습니다. 좋아하던 아티스트의 콘서트에 가고, 패션이나 음식 기호도 확고해서 섬세한 취향이라는 평을 들어요. 교육비가 많이 들기 시작했지만 함께 여행을 다니는 것도 거르지 않습니다. 하프 마라톤을 뛸 정도로 운동도 제대로 합니다.”이렇게 젊은 감각을 유지하며 사는 40대 초반이라고 자신하는데, 20대 후배들이 성호씨를 대하는 눈길과 태도가 거리감이 있어 서운하다는 얘기였지요. 또 하나, 같은 팀 20대 여자 후배가 잘 웃고 싹싹하게 대해서 살짝 내게 호감이 있나 생각한 적 있다고도 했지요. 지금은 결혼반지를 챙겨 끼고 다닌다면서.성호씨가 바로 ‘영포티’라 불리는 세대입니다. 젊게 사는 중...

    2025.09.30 21:54

  • [공감]좋아질 때까지 좋아해본 것
    좋아질 때까지 좋아해본 것

    20대 초반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시기, 학교 근처 작은 와인바에서 일한 적이 있다. 주말 저녁에 그곳에서 일했다. 친구들과 MT에 가서 참이슬이나 처음처럼, 카스 같은 술만 마시다가 다양한 와인과 위스키, 코냑, 칵테일 등을 접하며 미식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읍 단위 지역에서 나고 자라 이제 막 서울로 온, 김치찌개와 청국장 등 한식에만 익숙하고 기껏해야 아웃백이나 애슐리를 가는 것이 연중 최고 경사였던 내게 신세계였다.복잡한 이름을 가진 고급술들을 하나씩 익혀가면서 술의 세계가 엄청나게 넓고 풍부하며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그 역사가 길고, 이것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섬세해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복잡한 외국어 이름들이 즐비한 메뉴판과 약간은 고상 떠는 바의 분위기 안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반응을 관찰하는 것도 큰 공부였다.‘여기 분위기 되게 좋아.’ 데리고 온 연인 앞에서 가능한 한 그럴싸하고 멋들어지게 주문하고 싶어 무리하는...

    2025.09.23 21:24

  • [공감]긴장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긴장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김유정의 단편을 읽다 말고 난데없이 선생님께 연애담 좀 들려달라 조르기 시작했다. 초가을의 나른한 오후, 문학 수업 시간이었다. “이 녀석들 이거” 손사래 치던 그분은 결국 교과서를 덮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열일곱의 여고생들은 또랑또랑해진 눈빛으로 침 넘기는 소리도 안 내며 경청했다. 수업 마침 벨이 울려 교실을 나서던 선생님이 덧붙였다. 지나간 연애사를 복기해보니 사랑이 시작된 계기는 저마다 달랐으나 식어간 지점은 매번 같았더란다. 이제 저 사람은 내가 긴장하며 살피지 않더라도 곁에 남아주겠구나, 확신이 서면 그만 헤어지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나중에 누군가의 마음을 붙잡아 두려거든 상대를 계속 긴장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하셨다.우리는 책상을 쿵쿵 두들기며 “우우~” “그게 뭐예요” 야유했다. “저 선생님 바람둥이 맞네, 맞아” “거봐. 눈매나 입술 모양이 그렇댔지?” 소곤대고 킥킥거렸다. 덩달아 웃었지만, 그날 들은 이야기가 은연중에 각인된 모양이다. 세간...

    2025.09.16 20:58

  • [공감]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선 마음
    키오스크 앞에서 멈춰 선 마음

    할아버지는 아내의 생일에 꽃다발을 선물하고 싶었다. 새벽에 찾은 꽃집은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결제하지 못한 채 꽃을 들고나왔다. 할아버지는 영업시간이 되어 다시 찾아와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현금을 지불했다. 신문 기사에서 읽은 이야기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무인 카페 키오스크 앞에서 “커피 한 잔만…”이라며 지나가는 이에게 도움을 청한 노부부의 사연이 있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따뜻한 커피를 건네받은 노부부는 만족해했지만, 나는 편리한 기술 뒤에 숨겨진 고령자의 불편함을 보았다.영국의 노인자선단체 ‘에이지UK’가 2024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오늘날 고령층에게 꼭 필요한 기술은 세 가지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 숫자를 이해하고 다루는 ‘수리력’, 그리고 온라인 서비스와 디지털 환경에 자신 있게 참여하는 ‘디지털 기술력’이다. 특히 디지털 기술력은 음식 주문, 온라인 구매, 대중교통 이용 등 생활의 단순한 영역에서부터 은행 업무, 공과금 납부...

    2025.09.09 20:53

  • [공감]소박한 기대와 뜻밖의 결과
    소박한 기대와 뜻밖의 결과

    주말 오후, 서울 필운동의 자주 가던 카페에 들렀는데 사장이 서비스로 에클레어를 주셨다. 단골 인증을 받아 뿌듯해하며 곧 자리를 양보하고 건너편 편집숍에 트레킹화를 사러 갔다. 맞는 사이즈가 없어 실망하고 나오려는데 40% 세일을 하는 다른 신발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남은 한 켤레가 딱 맞았다. 말 그대로 ‘득템’이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기대와 실망을 하며 산다. 뜻밖의 선물을 받으면 기쁘고, 기대했던 물건을 구하지 못해 실망했다 의외의 발견으로 기뻐한다.기대를 하는 과정과 원하던 것을 얻었을 때를 비교해보면 무엇이 더 큰 즐거움을 주는 것일까. 쾌락은 도파민 분출에 의해 느껴지고, 그 결과 보상회로에 자극을 줘서 다시 그 행동을 하고 싶어지게 된다.처음에는 도파민은 원하는 결과에 대한 반응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연구를 해보니 도파민 방출은 ‘이제 즐거운 일이 일어날 거야’라는 예상과 더 연관이 있었다. 도파민은 행동을 하기 직전 결과에 대한 기...

    2025.09.02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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