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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천하도’와 조선의 바깥
    ‘천하도’와 조선의 바깥

    조선시대 사람들이 ‘바깥 세계’에 관심을 가진 건 언제부터일까? 흔히 조선인들이 19세기 말 서양과 조우하기 전까지 중화 세계의 외부를 모른 채 살아갔다고 생각해버린다. 직접 가본 적도, 가봤다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으나 조선과 중화 바깥에 어떤 세계가 존재한다는 감각은 분명 있었다. 조선 후기로 시기를 한정한다면 외부의 타자에 대한 본격적인 관심은 대체로 17세기 이후에 시작되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1719년 제술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신유한은 통역관 아메노모리 호슈와의 대화에서 나가사키에 오는 서양인이 <산해경>(山海經)에 나오는 괴이한 존재인지, 또 <산해경>의 여인국(女人國)이 실재하는지 등을 묻는다. 중국 선진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지리서 <산해경>은 온갖 상상의 존재를 형상화한 내용을 담았기에,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를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한 바 있다. 조선 지식인들 역시 16세기까지 동일한 이유...

    2021.12.15 03:00

  • [공감]숫자로 상상한 것 너머에서부터
    숫자로 상상한 것 너머에서부터

    가정으로 방문진료(왕진)를 나가기 전까진 엘리베이터가 없는 집에 와상의 환자분이 살고 계시는 건 잘 상상하지 못했다. 병원비는 저렴하지만 사설 구급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니 한 번 병원 갈 때 교통비만 왕복 20만원이 든다는 것도, 그러다 보니 가는 차비라도 아끼고자 119를 타고 응급실을 찾게 된다는 것도, 응급상황이 아닌데 응급실을 자주 찾으니 응급실에서는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한다는 것도, 찬밥 신세 응급실이 꺼려져 정말 응급상황이 될 때까지 집에서 버티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뇌졸중 이후 편마비로 누워 계시는 분을 처음 방문했던 날이었다. 바싹 마른 팔과 다리. 오랜 와상 생활로 가느다란 팔다리의 관절들이 모두 굳어져 있었다. 퇴원 후 지난 2년 동안 혈액검사를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검사를 위해 팔꿈치의 혈관을 찾아보려 했으나 팔꿈치 관절이 굳어져 있어 잘 펴지지 않았다. 한참 주무르고 접었다 폈다를 반복한 후에야 혈액검사를 할 정도로 팔오금이 드러...

    2021.12.08 03:00

  • [공감]패싱, 내가 나일 수 없는 세계
    패싱, 내가 나일 수 없는 세계

    아름답고도 처연한 영화 한 편을 봤다. 레베카 홀 감독의 <패싱(Passing)>이다. ‘할렘 르네상스’라 불리던 1920년대 흑인 문화의 부흥기. 그러나 차별만은 여전히 엄혹하던 시절의 뉴욕. 백인 행세를 할 수 있을 만한 외모를 가진 두 흑인 여성의 다른 삶이 충돌하며 일어나는 비극적 사건을 다룬다. 관계의 빛과 그림자, 선망과 질투, 허위의식 같은 내밀하고 심층적인 서사에 인종과 계급, 젠더성 같은 무게 있는 주제가 고혹적으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늘 정치·사회적 시선의 대상으로만 그려지는 다소 투박한 흑인 여성 클리셰에서 벗어나 섬세한 지성과 관능미를 가진 여성들이 등장하는 파격 또한 신선하다. ‘패싱’의 일반적 정의는 “특정 사회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이 신분이나 정체성을 속이고 구성원인 듯 행세하는 것”을 말한다. 다른 성으로 보이기 위해 외모나 스타일을 바꾸는 젠더 패싱, 인종 간 결합으로 인해 남다른 외모로 태어난 이들이 다른 인종인 척 살아가는 행위 ...

    2021.12.01 03:00

  • [공감]수능은 공정한가, 공교육은 공정했는가
    수능은 공정한가, 공교육은 공정했는가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끝났다. 팬데믹 상황에서 치러진 두 번째 코로나19 수능이었다. 수능 출제 위원장은 모의평가 결과 수험생 사이의 학력 격차 특징이 발견되지 않아 예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문제를 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험생과 입시전문가 사이에선 어려운 수능이었다는 말이 돌았다. 다시 질문한다. 수능은 공정한가? 공교육은 또한 공정하였는가? 공교육이 공정하였다는 가정하에서만 수능의 공정성을 얘기할 수 있다. 교실은 학생들에게 교육 환경의 동일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교실 환경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이 다르고, 특목고와 일반고가 다르다. 온라인 수업이 주류였던 팬데믹 기간의 수업환경은 학생 개개인이 처한 가정환경까지를 고려하니 교육의 공정성에 더욱 강한 의문이 생긴다. 인터넷 속도와 품질, 그리고 온라인 수업 기기의 성능이 수업의 질에 반영되고, 학생의 공부방 환경이 학습 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공교육이 개인의 생활환경까지 고려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면 교육이...

    2021.11.24 03:00

  • [공감]‘세상 참 좋아졌어’란 꼰대 감성
    ‘세상 참 좋아졌어’란 꼰대 감성

    최근의 나는 성추행 피해를 거의 입지 않는다. 대학생 때까지 버스, 지하철 안에서 성추행당했던 일들이 종종 있었고, 대학병원에서 일하던 수련의 시절에도 남자 환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던 적이 있다. 한창 성추행을 많이 겪던 시절에는 대중교통만 타도 몸을 사리곤 했는데, 요즘은 ‘성추행’을 떠올리는 일조차 드물다. 이럴 때 ‘와, 요즘은 성추행이 줄었네?’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왜 나에게 성추행이 덜 일어날까?’ 생각해야 한다. ‘세상 참 좋아졌어’라는 건 꼰대 감성일 뿐이다. 2007년 수련의 시절 나는 환자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 응급실에서였다. 외래에서 기관지내시경을 받고 귀가했던 70대 남자 환자가 “소변을 누고 싶은데 도저히 안 나온다”며 응급실에 내원했다. 기관지내시경을 위해 투여한 약물로 인해 소변 배출이 힘들어졌던 것이다. 그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그의 아랫배는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나는 응급의학과의 오더를 받아, 소변 배출을 돕기 위해 고무관을 요도에...

    2021.11.10 03:00

  • [공감]대한민국은 IS도 변하게 한다
    대한민국은 IS도 변하게 한다

    지역 사회 이슬람 유학생들의 사원 건설을 둘러싼 갈등 소식을 듣는다. 외로운 이국 땅에서 마음 기댈 작은 공간 마련조차 저항에 부딪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반대하는 시민들을 무조건 이문화 혐오집단으로 질타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낯선 문화에 대한 경계는 자기보호를 위한 본능에 가깝다. 9·11을 기점으로 벌어진 무차별 테러들도 공포스러운데, 최근 아프가니스탄 사태마저 경악할 뉴스투성이였다. 또한 발전한 한국의 사회적 에티켓에 못 미치는 행위 같은 현실적 고충들도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갈등이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다. 대한민국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글로벌 국가가 되고 있다. 수도권뿐 아니라 지방 역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국 학생이 더 적어 외국인들에게 차별받는 곳조차 생겼다는 기사도 접한다. 세계 어느 곳이든 발전하는 국가나 지역이라면 ‘다민족 다문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한국 역시 그 빛과 그늘 모두를 받아들일 수밖에 ...

    2021.11.03 03:00

  • [공감]공감할 수 없는 대선 주자
    공감할 수 없는 대선 주자

    “왜 쏘았지? 왜 찔렀지? 트럭에 싣고 어딜 갔지?” 80년대 군부독재의 탄압 속에서 삼삼오오 어깨동무하고 부르던 이 노랫말이 아직도 귀에 먹먹하다. 국립 5·18 민주 묘지의 원혼들은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편히 잠 못 들고 있다. 유가족은 새우잠으로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길 반복하는데, 전두환과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보여준 행태는 실망을 넘어 대통령을 준비하는 사람의 언행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릇된 역사관과 정치관을 지닌 그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검찰의 총수였다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다. 입에서 나오는 세 마디 말을 들으면 그 사람의 어품(語品)을 알 수 있다. 정성을 다해 잘 만드는 명품이 있듯 언어에도 품격이 있다. 사람이 내뱉는 말 한마디는 얼었던 가슴을 녹이기도 하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때론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 평생 상처가 되기도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세 치 혀를 놀리는 것보다 ...

    2021.10.27 03:00

  • [공감]조선의 타자, 타자로서의 조선
    조선의 타자, 타자로서의 조선

    만약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우리’가 어디까지를 포함하는 범주인지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성실한 성리학자라면 “이 세계의 모든 존재”라고 답할 것이다. 성리학에서는 돌멩이 같은 무생물부터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의 출현을 음양오행의 무작위적 결합의 결과라고 보았다. 성리학자들이 관습적인 위계질서를 부정하거나 현실의 불평등을 모두 비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론적 차원에서 그들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평등하다고 전제하며, 인간 사이에 나타나는 차이는 우연적 요소라고 설명한다. 북송(北宋)의 학자인 장재(張載)가 “백성은 나의 동포이며 만물은 나와 함께하는 존재”라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실제 조선인들이 이처럼 남과 나, ‘그들’과 ‘우리’를 구별하지 않는 이상적인 삶을 살아간 것은 아니었다. 조선에는 많은 외적·내적 타자들이 존재했고, 그 타자의 존재는 조선의 ‘우리’가 실제로 좁고 때로는 배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그렇다면 누가 조선의 타...

    2021.10.20 03:00

  • [공감]‘1식 1사레’ 탈출 훈련
    ‘1식 1사레’ 탈출 훈련

    나의 별명은 ‘1식 1사레’이다. 식사할 때마다 꼭 한 번씩 사레가 걸려 캑캑거린다. 요즘 같은 팬데믹 시대에 참으로 민망하게도, 음식점에서 식사 도중 사레가 걸리는 바람에 나를 돌아보는 무수한 불안한 눈동자들에 대고 “아, 제가 사레가 걸려서요”라고 변명하듯이 고한 적도 있을 정도다. “좀 천천히 먹어”라는 충고도 들어본 적 있다. 하지만 나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는 편은 아니다. 내가 사레에 잘 걸리는 이유는 첫 번째는 해부학적으로 식도와 기도가 가깝기 때문이고(이건 엄마를 닮았다), 두 번째는 자세가 좋지 않은 거북목이라 고개를 앞으로 쑥 빼고 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이건 아빠를 닮았다). 고개를 앞으로 빼고 먹으면 식도와 기도 사이의 후두개가 잘 닫히지 않아 음식물이 기도로 넘어가기 쉬워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나도 어느새 40대에 접어들어 신체적 노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사레가 걸리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사실 사레가 안 걸리는 게 더 위험하다...

    2021.10.13 03:00

  • [공감]자넨 아직도 사람을 믿나
    자넨 아직도 사람을 믿나

    별다른 연고가 없는 한 무리의 인간. 출구 없이 펼쳐지는 죽음의 서바이벌. 이런 상황에서 필연코 일어나는 이전투구를 숨겨진 인간 본성의 통찰인 양 냉소하는 논리는 단조롭다. 동물계 포유강 영장목의 한 종일 뿐인 생물체가 위험 상황에서 자기 보호 행위에 몰두하는 것은, 인간만의 비열한 특징이라기보다 자연법칙에 가깝다. 극단의 상황 논리로 인간의 잔혹성과 상호불신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싶어하는 이들의 대척점엔 거울 논리라 할 만한 사례 역시 존재한다. 늘 상류사회를 동경하던 지인이 있었는데, 간절함에 우주가 도왔는지 부자와 결혼하여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싸다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욕구에 못 미치는 환경 때문이었을까. 늘 사회에 부정적이던 그이가, 결혼 후 갑자기 대한민국은 너무 좋은 나라라고 해서 놀랐었다. 부자들과 사귀어 보니 봉사 모임도 많고 예의 바른 이들도 많다는 것이었다.계층 상승으로 하루아침에 세계관이 바뀌는 모습이 흥미롭긴 했지만, 이해 못할 일은 아니다. 이...

    2021.10.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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