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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감]‘지옥에서 보낸 한 철’ 묘사하기
    ‘지옥에서 보낸 한 철’ 묘사하기

    얼마 전 나는 글쓰기 모임에 온 사람들에게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글감으로 글을 쓰자고 했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쓴 동명의 시집에서 영감을 얻어 정한 글감이었다. 고통스러운 시기를 통과하는 데에 힘이 되어주는 글쓰기를 함께 연습해보고 싶었다. 나는 고통이 있어야만 글을 잘 쓸 수 있다는 낭만적인 생각에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창작 활동이 고통을 더 나은 방향으로 전환해준다는 데에는 크게 동의한다. 수많은 예술가가 어두운 시기를 통과하기 위해, 어두운 기억을 소화하기 위해 창작을 시작한다.어떤 사람은 가볍고 즐거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테고, 어떤 사람은 무겁고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고통이 너무 버거울 때 인간은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방법이든 쓰게 된다. 술을 마시기도 하고, 가족이나 연인을 향해 언어적·신체적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게임·쇼핑·도박·약물 등에 중독되기도 한다. 중독자들은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피하고자 중독 행...

    2025.07.29 21:10

  • [공감]너무 잘 토라지는
    너무 잘 토라지는

    몹시 갖고 싶던 책을 선배가 내 생일에 선물해주겠다 했다. 박사과정 초반 무렵, 우리가 함께 준비하던 대학원총학생회 학술행사의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정말요?” 기뻐하며 손가락을 걸어 약속했다. 여러 날 지나 생일이 되었으나 선배한테선 종일 연락이 없었다. 서운함을 참지 못한 난 늦은 시각 “약속을 지킨다고요? 지나가던 강아지가 웃겠어요”라 메시지를 보냈다. 며칠 후 만난 그는 당일 심한 몸살로 학교에도 못 나왔었다며, 이걸로 그 책을 사보라고 도서상품권을 건넸다. 난 토라져 말을 안 했다.몇 학기 더 흘러, 선배는 학위논문을 위한 자료 수집차 모스크바로 떠났다. 추운 지역에서 지낼 선배를 위해 조그만 상자에 보온물병 등속을 담아 선물 꾸러미를 만들었다. 그는 고맙다며 귀국할 때 뭘 사다 줄지 물었다. “보드카를 마시고 싶어요.” 나는 답했다. 꼭 사다 주마, 이번엔 손가락을 걸고 엄지 도장까지 찍었다. 실제로 귀국하며 근사한 보드카를 한 병 골라오셨다 전해 들었다. 나를 못...

    2025.07.22 20:45

  • [공감]다양하게 즐기며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다양하게 즐기며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취미가 별로 없다. 다양하게 즐기며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이 속에서만 살았다.” 신구 원로배우가 유명 예능 프로그램에서 인생을 돌아보며 꺼낸 이 말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실제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가 ‘취미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것’이다. 그만큼 인생 후반기에 취미가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우리나라 노년층 삶의 만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통계청의 2024년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노인 삶의 만족도는 29.9%에 불과하고, 특히 여가활동 만족도는 더 낮아 16.6%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삶의 만족도는 중년기에 가장 낮고 노년기에 다시 높아지는 U자 곡선을 그리는 경향인데, 우리나라 노년층 삶의 만족도는 오히려 더 낮다고 하니 씁쓸하다.학문적으로 ‘성공적인 노화’는 단순히 질병이 없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넘어 심리적 만족감, 사회적 교류, 그리고 삶의 의미가 조...

    2025.07.15 21:08

  • [공감]이제 고기집게를 넘기세요
    이제 고기집게를 넘기세요

    나는 고기에 진심이다. 적당히 달궈진 불판에 고기를 올리고, 한 면이 익을 때까지 기다렸다 뒤집고 각자에게 잘라 놓아주는 것까지 끊김 없이 이어져야 한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다. 대형 고깃집에서 회식이 있었다. 종업원이 등심 한 접시를 가져와서 불판에 무성의하게 두 덩이를 던지듯 올리더니, 마구 뒤집다 자르고 가버렸다. 고기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제대로 구워지지 않은 고기는 질기기만 해서 대화에 집중하기 어려웠고 짜증만 남았다.이러니 집에서도 집게는 내 차지였다. 아이가 어릴 때 한번은 구워보겠다고 집게를 들었다. 넘겨준 채 매의 눈으로 “지금 뒤집어야 해” “너무 크게 잘랐다”며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게를 허용하는 최대치는 삼겹살까지였다. 오랜만의 외식에서 비싼 고기가 타버리면 내 표정도 타들어가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안과 달리 이것만은 관대하지 못한 탓에 아이는 ‘제가 할게요’를 하지 못했다.얼마 전 교외의 정육식당에서 등심을 먹었다. 이번엔 ...

    2025.07.08 20:56

  • [공감]무섭거나 웃기거나
    무섭거나 웃기거나

    얼마 전 내게는 혼자만의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몇년간 시달렸던 악몽을 시로 써서 사람들 앞에서 낭독한 일이었다. 이 일이 내게 특별한 이유는, 여태껏 글을 써오면서 한 번도 내 안의 어두움을 그대로 사람들에게 내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울증으로 침대에서 도저히 일어나지 못하던 때에도, 온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육체적으로 연약해져 있는 상태일 때에도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기만 하면 의젓해졌다.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슬픔과 분노와 억울함이 세상 밖으로 삐져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달래고 누르면서 내가 받고 싶은 위로를 담은 글을 쓰곤 했다.그것은 글을 쓸 때 ‘하소연하지 말라’는, ‘독자보다 먼저 울어서는 안 된다’는, ‘감정이 과잉되어선 안 된다’는 내 안에 훈련된 비평가가 날카롭게 쏘아대는 말을 충실히 따른 결과이기도 했다. 그렇게 쓰는 것도 나름대로 좋았다. 타인을 향한 위로가 고스란히 돌아와 나를 위로해주곤 했으니까.그런데 이상하게도 시를 쓸 때는 달...

    2025.07.01 21:17

  • [공감]마음이 기억을 마시고 먹었다
    마음이 기억을 마시고 먹었다

    정서적으로 이해하면서도 경험적으로 와닿지 않던 말 중 하나가 ‘집밥이 그립다’였다. 난 어디서 무얼 먹든 집에서 먹어온 것에 비하면 대체로 맛있다며 감탄했으니까.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전에 친구들과 요기하러 갔다 순두부의 보드라운 식감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고소한 가지무침이나 꼬들꼬들한 미역줄기볶음은 대학 후문의 백반집에서 처음 접했다. 나중에 직장을 얻고 부엌과 침실이 분리된 주거공간을 갖게 된 후 이런저런 요리를 시도하며 알았다. 배달음식이든 학식이든 내가 만든 것보다는 맛이 좋다는 사실을. 손맛뿐 아니라 ‘손맛 없음’도 전승되나 싶었다. 집밥과 관련해 이렇다 할 추억이나 기술은 없지만 그렇다고 영혼의 안식을 얻을 음료나 음식마저 갖지 못한 건 아니다.고풍스럽진 않고 낡고 각지기만 한 건물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파르페와 레모네이드를 파는 고전적 카페와 로즈버드나 던킨도너츠 등 프랜차이즈가 섞여 있었고 일부 대학가엔 스타벅스도 들어왔지만, 일상의 일용할 음료는 ...

    2025.06.24 20:58

  • [공감]아침에 우리를 일어나게 만드는 것
    아침에 우리를 일어나게 만드는 것

    “일어나긴 했는데 잘 때까지 딱히 할 일이 없다.” 일본 노인들이 지은 센류(일본의 정형시)가 실린 책 <사랑인 줄 알았는데 부정맥> 속 한 문장이다. 읽다 보면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살짝 짠하고 저릿해진다. 나이 들어 은퇴 후 직장도 가족도 더는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문득 ‘오늘 뭐 하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하지만 고령인데도 가슴 뛰는 목적을 품고 하루를 여는 사람들이 있다. 2024학년도 수능 최고령 응시자였던 83세 김정자 할머니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어느 유명 TV 예능 프로그램에 두 번이나 출연했던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 빨리 걷지 못해 두 시간이나 걸리는 등굣길을 지각, 조퇴, 결석을 한 번도 하지 않고 성실히 다니며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겨울에는 해가 뜨기도 전 어둠을 뚫고 학교로 향했다. ‘죽어도 연필을 놓지 않겠다’던 할머니의 말씀이 뭉클해 눈시울을 붉힌 기억이 있다. TV 출연 당시 숙명여대에 입학하고 싶다던 할...

    2025.06.17 21:12

  • [공감]귀한 아들 증후군
    귀한 아들 증후군

    병원은 대학 캠퍼스와 붙어 있고, 마침 축제 기간이었다. 건널목에 함께 서 있던 20대 남성의 말이 들렸다. “축제에 재학생만 갈 수 있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봐. 지역 주민들도 마음대로 즐길 수 있어야지.”“자기들 행사니 당사자들이 결정하는 게 맞지 않니?” 옆에 있던 어머니가 대꾸했지만, 그는 바로 제 주장을 펼쳤다. 그 주장의 논리보다 내 귀에 박힌 건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단호하고 명료한 의지를 담은 남성의 태도였다. 응답하는 어머니 말투에는 우리 아들이 이렇게 참신한 생각을 했다는 기특한 마음이 커 보였다. 슬쩍 돌아보니 아들 손을 잡은 스킨십과 눈빛에 사랑이 담겨 있었다.그들이 인상적이었던 이유는, 최근 진료실에서 자주 보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먼저, 어머니와 아들 사이가 무척 친밀하다. 멀끔한 인상의 남자는 말을 잘 하지 않고, 같이 온 어머니가 과거를 설명한다. 보통 5~6년을 거슬러서 “우리 아들이 ○학년 때까지는 참 잘했어요. 특목고도 생각했죠”라...

    2025.06.10 21:00

  • [공감]수치심 넘어, 보이는 존재 되기
    수치심 넘어, 보이는 존재 되기

    베를린에서 열리는 다양한 예술 행사에 참가하다 보면 생각보다 행사의 밀도가 높지 않아 놀랄 때가 잦다. 좋게 말하면 소박하고 거칠게 말하면 별것 없을 때가 많다. 잔뜩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돌아오는 날이 부지기수다.그럴 때면 두 가지 마음이 든다. 하나는 나도 (그리고 내 친구도) 할 수 있겠다는 마음. 다른 하나는 이렇게 무엇이든 시도할 수 있고 기회를 주는 환경이어서 훌륭한 작가 혹은 예술가가 탄생할 수 있는 거구나 하는 마음.위대한 예술가는 홀로 탄생하지 않고 어쩌면 이들보다 더 훌륭한 관객이나 독자가 만드는 것 같다.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보다 나는 더 자주 이곳의 관객에게 감탄한다. 아무리 시시해 보이는 것이라도 일단 누군가 무대 위에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을 대단히 존중하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연주가, 춤이, 낭독이 끝날 때까지 대체로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킨다. 지루한 시간이 이어져도 끝까지 들으려고 애쓴다. 선뜻 이해되지...

    2025.06.04 01:06

  • [공감]일렁임은 그대로 남았다
    일렁임은 그대로 남았다

    중견 배우 훌리오는 친구이자 감독인 미겔의 신작 ‘작별의 눈빛’을 촬영하던 중 사라진다. 바닷가에 신발만 남기고 그야말로 자취를 감췄다. 혹자는 나이 듦을 받아들이지 못해 생을 끊었을 거라고, 다른 누구는 알코올 의존증이 심해져 취중에 낙상했을 거라고 한다. 배우의 실종으로 인해 제작은 중단되고 영화는 미완으로 남는다. 그로부터 22년이 흘러 사건을 다룬 탐사보도가 방영된 후 제보가 들어온다. 미겔은 제보자가 알려준 대로 수녀원 부속 요양원에 찾아가, 이름과 과거를 잃어버린 채 요양원 잡부로 살아가는 옛 동료를 마주한다. 그는 훌리오의 기억을 찾아주고자 해군 복무 시절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그때 배운 매듭 묶기를 시연한다. 사실상 의절한 딸과 만남도 주선한다. 훌리오는 그중 무엇도, 딸조차 알아보지 못한다. 다만 꼭 한번, 자신이 흥얼거리던 노래를 미겔이 이어 부르며 둘의 노랫소리가 포개지자 무언가 건드려진 듯한 눈빛을 내보인다.기억을 깨울 마지막 방안으로 미겔은...

    2025.05.27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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