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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에서] 나도 ‘청알못’이었다
    나도 ‘청알못’이었다

    새해 첫날. 경향신문 1면엔 ‘부들부들 청년들, 우리는 붕괴를 원한다’는 제목이 걸렸다. 기사는 “해가 바뀌었다고 내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시작했다. 그 위엔 금마차가 달리고 공권력과 펜도 기울어진 ‘돈세상’에서 바닥을 기고 있는 흙수저들이 그려졌다. 덕담이 오가는 첫날, 헬조선의 청년이야기가 어둡게 닻을 올린 이유는 하나다. 청년 103명에게 2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되길 바라는지 물었을 때, 가장 많은 46.4%가 ‘붕괴와 새로운 시작’을 선택한 충격 때문이었다.청년들은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을 읊조렸다. 월급 160만원을 받아 월세·등록금 빚을 제하면 남는 게 없을 때, 10년 모아도 작은 집 한 채 살 꿈을 못 꿀 때, 돈이 없어 결혼을 미루다 연인을 떠나보낼 때, 앞으로도 취직 잘될 나라는 아니라고 생각할 때 ‘이생망’을 떠올렸다. 그러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돌과 석유부호 만수르로 태어나길 원했다.그 후로 청년시리즈 13편이 이어졌다. 1130명이 ...

    2016.03.15 20:47

  • [정동에서] 한비자의 ‘망국론’과 필리버스터
    한비자의 ‘망국론’과 필리버스터

    중국 전국시대 말기 한나라에서 살았던 한비(韓非)입니다. 흔히 ‘동양의 마키아벨리’ 또는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정치이론가로 알려져 있지요. 순자(荀子) 문하에서 동문수학했던 이사(李斯)의 모함으로 진시황의 사약을 받고 자결한 게 기원전 233년이니 장구한 세월이 흘렀네요. 한나라 왕의 서자(庶子)로 태어난 저는 심한 말더듬이였지만 논리적인 사고와 탁월한 문재(文才)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가 살던 한나라는 전국칠웅(戰國七雄) 중 최약소국에 속했습니다. 칠웅이 할거하던 시대라고는 하지만 ‘1강(진나라) 6약(조·한·위·연·제·초나라)’의 구도 속에 합종연횡(合從連衡)이 잇따랐지요.강대국에 둘러싸인 약소국의 비애와 굴욕을 절감한 저는 왕의 실정(失政)과 무능으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왕에게 인재를 중용하고, 법률과 제도를 정비해 나라의 기틀을 다져야 한다고 직언했습니다. 하지만 왕은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되레 감언이설이 몸에 밴 소인배나 나라...

    2016.03.01 20:56

  • [정동에서]‘진박’의 진실한 공약
    ‘진박’의 진실한 공약

    20대 총선이 달포 앞으로 다가왔다. 야권은 쪼개져 삿대질하며 악머구리처럼 싸운다. 여당에도 난리가 났다. 먹을 것이 많아서다. 달려드는 이가 많아지니 다툼이 커지는 건 정글의 법칙일 터.이 야단 와중에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국회의원 후보자가 병아리도 아닌데 감별사가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하는 진실한 사람’인 진박(眞朴)인지, 진실한 체하는 가박(假朴)인지 가려준다는 것이다.기중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갑이다. 경제부총리씩이나 했던 분이 몸을 낮춰 감별사를 자처했다. 주로 강세 지역을 주유하며 진박을 낙점한다.최 감별사가 진박 후보들을 치켜세우는 말들이 요즘 말로 아재(아저씨) 개그 뺨친다. 지난 3일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대구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는 “정 후보가 붓글씨에 일가견이 있다. 우리 또래 중에 붓글씨를 잘 쓰는 사람이 없는데, 진실한 사람”이라고 감별해줬다.2일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대구 사무소 개소식에도 거둥하듯 등...

    2016.02.24 20:42

  • [정동에서]벼랑에 선 제조업
    벼랑에 선 제조업

    또 낙제점이다. 우리나라 경제의 실상을 보여주는 성적이 연달아 어둡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최고의 성적표를 받아왔기에 충격은 더욱 크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우리나라의 지난해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1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가동률은 74.2%로 외환위기 때인 67.6% 이후 가장 낮다. 벼랑 위에 선 제조업의 현주소다.변변한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에게 제조업은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물건을 만들고 해외에 내다 팔아 번 돈으로 나라를 세웠다. 그런데 축대가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을 맞고 있다. 주요 산업 대부분이 불안하다. 조선업은 난파선과 같다. 삼성중공업이나 현대중공업 등은 수조원씩의 손실로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흥청거리던 거제의 도심 거리는 인적이 줄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포스코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경기부진에 매출목표를 전년보다 줄였으며 삼성전자는 수익이 절반으로 감소했다.그런데 앞으로가 더욱 잿빛...

    2016.02.03 21:03

  • [정동에서]김종인의 리턴매치
    김종인의 리턴매치

    난세에 몸이 달아오르는 ‘풍운아’의 기질일까. 김종인이 4년 만에 여의도에 돌아왔다. “야당이 이런 모습으로 가면 정치 발전에도, 민주주의 발전에도 굉장히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것 같아서”라는 이유를 달았다. 2012년 이맘때도 그는 핀치에 몰린 집권당을 찾았고, “나는 돌아가면 그만”이라며 정책 설계의 전권을 요구했다. 그때도 총선에 승부를 띄우고, 내 역할과 운명은 거기까지라고 했다. 에두름 없이 짧게 바로 찔러가는 말과 행동은 정치판에서의 유용성을 체득한 듯 지금도 변함없다. 달라진 것은 두 가지. 여에서 야로 당적이 바뀌고, 권력자 옆이 아니라 선거와 당무를 총괄하는 ‘넘버 1’ 자리에 앉았다. 프로야구팀의 수석코치가 라이벌팀의 감독이 된 극적인 반전이었다.그날부터 정치는 격해지고 빨라졌다. 선 굵게 여야를 오간 김종인의 복귀가 여야 모두에 태생적으로 불러온 전운이었다. 새누리당은 “서글프다”(안대희 최고위원)고 하고, “1994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으로 의원직을 ...

    2016.01.27 23:06

  • [정동에서]버림과 비움의 역설
    버림과 비움의 역설

    4년 전 세밑이었다. 화계사에서 보낸 편지가 집으로 배달됐다. 발신인은 수암 주지 스님이었다. 새해를 앞두고 신도에게 보낸 편지였다. 불자가 아닌데도 편지를 받게 된 것은 그해 여름 화계사에서 일반인 대상의 기초교리과정 수강신청을 할 때 적은 집 주소 때문이었다. 3개월 과정의 강의는 수암 스님이 직접 맡았다. 강의를 듣기 위해 주말마다 화계사를 찾은 것은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길 양편에 늘어선 상점과 촘촘하게 들어선 연립주택을 지나면 비탈길에 서 있는 산문(山門)을 만나게 된다. 산문을 넘어서면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짙은 녹음 속에 묻힌 경내는 불자들로 북적였지만, 정적을 깰 정도는 아니었다. 법당 밖으로 퍼지는 스님들의 독송(讀誦)은 번뇌를 털어버리기 위한 구도정진의 음률로 들렸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산문을 지날 때마다 속세와 둔세(遁世)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느낌이 들곤 했다.둔세에서 보낸 수암 스님의 편지글 제목은 ‘청정한...

    2016.01.06 20:49

  • [정동에서]길잃은 ‘두산웨이’
    길잃은 ‘두산웨이’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풍랑에 굴복하면 먼지처럼 사라지지만 위기를 넘어서면 더 크게 성장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 때 연을 더 높이 날릴 수 있는 것처럼. 내년이면 두산은 창업 120주년을 맞는다. 1896년 창업한 이래 갖은 풍상을 겪고 현재에 이르렀다. 두산은 창업 100주년을 즈음해 새로운 길을 선택했다. 가시밭길이었다. 두산은 안정적인 소비재 산업 분야를 포기하고 중공업 분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OB맥주, 코카콜라, KFC, 종가집김치 등을 팔고 한국중공업, 대우종합기계, 밥켓 등을 인수·합병(M&A)했다. 맥주나 콜라, 김치를 파는 기업에서 공작기계, 선박엔진, 중장비 설비 등을 제조하는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10여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두산은 전혀 다른 DNA를 가진 기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룹의 규모는 10배 이상 커졌고 안방기업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두산은 새로운 사업구조로 개편하면서 ‘사람’과 ‘인프라 사업’을 지향점으로...

    2015.12.23 20:55

  • [정동에서]짓밟힌 ‘화쟁’
    짓밟힌 ‘화쟁’

    난세다. 정겹게 해넘이 술잔을 주고받기엔 세상에 차 있는 독설과 반목이 목에 걸린다. “싸워라, 막아라, 살려내라.” 마지막 달력 한 장이 조용히 떨어진 적 없는 나라지만, 야당까지 사분오열된 올해는 유독 더 하다. 뭐 하나 정리된 것 없이, 믿음 둘 곳 없이, 앙앙불락하며 세상 살맛을 잃어가는 세밑이다.화쟁(和諍). 12월의 살벌한 거리와 조계사에서 붙들게 된 글자다. 화쟁은 충돌을 세우고, 왜 싸우는지 묻고, 소통과 답을 찾기를 권했다. 차벽이 둘러싸려던 5일 서울광장에 ‘꽃길’을 만들고, 닷새 후 경찰이 밀어닥치는 사찰엔 ‘방패’로 내걸렸다. 화쟁의 존재감은 컸다. 밧줄과 물대포로 가려졌던 범국민대회에선 민초들의 아우성이 다시 터졌다. 대선 때 21만원을 보장한 쌀 한 가마니 값이 13만원까지 폭락했는데도 왜 밥쌀용 쌀을 수입하려는지 농민들은 따졌다. 월 200만원도 못 받는 비정규직이 절반이라고 노동자들은 절규했고, 학생들은 반대하는 60%의 혼을 비정상으로 몰고 ‘복...

    2015.12.16 20:43

  • [정동에서]참 나쁜 프레임
    참 나쁜 프레임

    미국 보수진영은 프레임 짜기에 능하다. 대중의 선택적 인지 또는 자의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프레임은 ‘힘이 세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인지 보수진영의 프레임은 교묘하고도 효율적이다. 진보진영은 어떤가. 보수진영이 짜놓은 프레임의 덫에 걸려 들지 않으려 허둥대기 일쑤다. 사회적 이슈를 선점하고 쟁점을 프레임으로 구성하는 데도 미숙하다.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지적대로 “프레임 전쟁에서 지는 쪽은 언제나 진보진영”이다. 진보진영에는 듣기 싫은 얘기겠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조지 W 부시는 2001년 백악관에 입성한 이후 부자 감세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감세’라는 표현은 일절 쓰지 않고, ‘세금(으로부터의) 구제(tax relief)’라는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세금이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니 감세정책으로 구제해주겠다고 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모든 보도자료에 ‘세금 구제’라는 단어를 썼다. 그러자 보수매체 폭스뉴스는 물론이고 뉴욕타...

    2015.11.25 20:30

  • [정동에서]반도체 위기론, 기우인가
    반도체 위기론, 기우인가

    옛날 월이라는 나라에 말을 키우며 사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은 한민이라 했다. 한민에게는 경마대회에 나가면 1등은 따놓은 당상인 ‘반도’라는 말이 있었다. 반도는 한민에게 많은 돈을 벌어 주었다. 아직도 팔팔했다. 적어도 10년간은 너끈해 보였다. 한민은 욕심이 생겼다. 반도와 같은 말을 하나만 더 가지면 큰 부자가 되고 미래도 담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민은 ‘바오’라는 말을 차세대 경주마로 키우고자 마음먹었다.한민은 바오에게 모든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데 세상일은 한민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무관심 속에 방치된 반도는 영양실조 상태에서 무리하게 경기에 나섰다 사고를 당해 은퇴하고 말았다. 바오는 기대와 달리 좋은 성적은커녕 ‘돈 먹는 하마’였다. 일확천금은 백일몽이 되고 한민은 쪽박을 찰 처지에 놓이게 됐다. 그제야 한민은 잘나가던 반도를 더 열심히 챙기지 못한 것을 땅을 치고후회했다. 잡아놓은 집토끼라도 다 제 것이 아님은 잃고 나서야 깨달았다. 물론 이...

    2015.11.04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