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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에서
  • [정동에서]1년 뒤에 보자는 ‘행정 독재’
    1년 뒤에 보자는 ‘행정 독재’

    지난 주말 회사 후배가 쓴 칼럼을 읽다 빵 터졌다. 어찌 이리 똑같을까. “여기서부터는 각자 읽어봐!” 32년 전 국사 선생님은 이승만 정권의 ‘사사오입 개헌’에 대해 장광설을 풀고, 제3공화국 뒤로는 “큰 사건 연도만 외우라”며 책을 덮었다.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가 국민교육헌장 공포보다 한 달 빠르고, 지금은 유신보다 5공화국 4대 국정지표가 더 중요하다던 말이 기억난다. 후배가 고교생이었을 1990년의 부산에서도, 내가 있던 1983년의 대전에서도 ‘오늘’을 덮고 끝나는 국사 수업은 매한가지의 ‘웃픈’ 추억이었다.대학 첫해, 나는 “4월의거, 5월혁명, 10월유신을 거쳐 정의사회와 민주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제5공화국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1982년판 고교 국사(하) 교과서를 ‘걸레’로 부르게 됐다. 뒤틀려 입력된 근현대사를 토하고, 유신과 5월 광주의 속살을 접하며 막걸리를 들이켰다. 국정교과서는 배신이었다. 그날의 교과서 맨 끝 연구진에는 낯익은 교수 2명이 보인다. ...

    2015.10.28 21:15

  • [정동에서]살찐 고양이와 양심사회
    살찐 고양이와 양심사회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몹시 화가 난 듯했다. 평소보다 목소리 톤이 높았다. 미간은 찌푸려져 있었다. 단문으로 이뤄진 그의 발언은 거침이 없었다. 심 대표는 지난달 11일 국회에서 열린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의사진행 발언을 했다. 당시 장면을 찍어 유튜브에 올린 1분51초짜리 동영상은 조회수 180만을 넘어섰다. 누리꾼들은 “심 대표가 토해낸 사자후(獅子吼)” “속이 다 후련해지는 사이다 발언” “심 대표의 ‘포스’ 작렬”이라며 격하게 호응했다. 이유는 딱 하나다. 맞는 말만 했기 때문이다. 심 대표는 “장관도 임금피크제에 동참하고 계십니까? ‘짝퉁’ 임금피크제, 이게 임금상한제인데 왜 이 사회에서 고액 연봉받는 사람들은 임금상한제에 포함 안 시켜요? 장관은 왜 1억2000만원씩 다 가지고 가요? 국회의원은 왜 1억4000만원을 다 받아야 되고? 5000만~6000만원 받는 늙은 노동자들, 3000만원짜리 청년 연봉 만들어 내라고 하면서 왜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고액임금 ...

    2015.10.14 21:05

  • [정동에서]개미처럼 일하고 베짱이처럼 소비하라
    개미처럼 일하고 베짱이처럼 소비하라

    옛날에 매우 번성했던 ‘벌의 왕국’이 있었다. 지배층은 막대한 빚을 지고도 호화로운 궁전을 짓고 값비싼 옷을 만들어 입었으며 산해진미로 파티를 열었다. 강력한 군대를 이용해 이웃나라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았다. 병사들은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장군들은 후방에 숨어있다가 승전의 공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다. 재판도 뇌물에 의해 좌우됐다. 그러다 어느 성직자가 홀연히 나타나 회개를 외치고 도덕의 왕국을 세웠다. 궁전과 호화로운 옷을 팔아 빚을 갚았고, 군대 해산은 물론 극장도 폐쇄했다. 정직한 삶이 새로 시작되면서 판사도 필요 없게 됐다. 그러자 군대도, 재봉사도, 요리사, 목수, 조각가, 재판관도 일을 잃게 됐다. 그리고 어느날 군대가 쳐들어오자 이들은 노예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고 하는 버나드 맨더빌은 1723년 출간된 <꿀벌의 우화>에서 절제와 겸양, 정직과 근면보다는 사치가 사람을 먹여 살리는 미덕이라고...

    2015.09.23 20:59

  • [정동에서]님아, 저 산을 건들지 마오
    님아, 저 산을 건들지 마오

    내 기억 속의 산은 다섯 살 때부터다. 두 고개를 넘는 성묘길은 매번 사촌 형들이 등을 받쳐줘도 힘들었다. 키가 삽자루 높이도 안될 때였다. 풀숲에서 뱀 나올까 맘 졸이고 밤 줍는 재미가 쏠쏠했던 마을 뒷산이었다. 친구들과 폭우 속에 올라본 덕유산, 수학여행 길에 밤새우고 졸면서 걸은 설악산, 하행 길을 잘못 들어 어둠과 눈 속에서 헤맨 대둔산, 천왕봉을 포기할 수 없어 장터목에서 칼잠을 잤던 지리산, 5일간 텐트 치고 살았던 월악산, 딸아이 손을 잡고 처음 올랐던 수락산, 그리고 두 해 겨울을 무박2일의 행군으로 빠져 나왔던 양평의 어느 험한 산….산 타는 사람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중간치는 될까. 유달리 산행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오르막길 잘 오르는 종아리 뒷근육도 없는 내가 ‘인생 속 산’에 주절주절 사연을 걸다보니 수렴되는 것도 있다. 산에 대한 추억이나 감정이 평균치에 가까울 듯하다. 이런 생각에 다시 글의 줄기를 잡게 된다.산이 시끄럽다. 설악산 오...

    2015.09.16 20:45

  • [정동에서]비겁하거나, 당당하거나
    비겁하거나, 당당하거나

    ‘개그계의 철학자’로 불리는 전유성은 20년 전인 1995년 라는 책을 펴냈다. 내용은 차치하더라도, 제목만은 기가 막히게 달았다는 출판계의 평이 많았다. 책은 출간된 지 얼마되지 않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제목 덕만은 아니었다. 책은 어쭙잖게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지 않았다. ‘규범적이고 가치있는 삶’에 대한 장광설도 늘어놓지 않았다. 대신 역설적이고 반어적인 화법으로 세상 사람들의 허위의식을 까발렸다. 전유성의 책 제목대로 조금만 비겁하면 인생이 즐거울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인생이 즐거우려면 조금은 비겁해져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낯이 두껍고, 뻔뻔하면 남의 자리를 내 자리로 만들 수도 있다. 의원 배지를 단 분들이 그랬다. 새정치민주연합 윤후덕 의원은 변호사인 딸을 LG디스플레이 법무팀에 취업시키려 청탁전화를 넣은 사실이 드러났다.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도 아들을 정부법무공단에 취업시키려 평소 가까운 사이였던 공단 이사장에게 청탁...

    2015.09.02 20:52

  • [정동에서]복수는 나의 것
    복수는 나의 것

    복수는 힘이 있다. 복수의 결의를 다지는 순간 투지를 불타오르게 만든다. 절치부심, 와신상담, 칼을 가는 동안 초인적인 능력이 쏟아져 나온다.“아버지의 원수와는 하늘을 함께 이고 살지 않고/ 형제의 원수를 만나면 무기를 되돌리지 않으며/ 친구의 원수와는 한 나라에 살지 않는다.”(<예기>의 곡례 편)불구대천의 원수에겐 내가 살든, 네가 살든 하나의 선택밖에 없다. 막다른 골목이다. 누군가 하나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끝나는 싸움이다. 복수의 끝은 무엇일까. 중국 춘추시대 복수의 화신이라 불리는 사내가 있었다. 이름은 오자서. 초나라 사람으로 합려를 도와 왕위에 오르게 한 인물이다. 그는 초나라 평왕에게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초나라를 버리고 오나라로 갔고 일등공신이 되자 자신의 포원을 실행에 옮겼다. 평왕의 시신을 무덤에서 꺼내 수백번 채찍질을 하며 아버지와 형을 대신해 분풀이를 한 것이다.그러나 오자서도 운명의 화살을 비껴가지 ...

    2015.08.19 20:43

  • [정동에서]하산하지 못하는 ‘진실’
    하산하지 못하는 ‘진실’

    찌푸린 하늘은 금세 나무들로 가려졌다. 10분 남짓 올라왔을까. 7월18일 아침, 서울 종로구 평창공원에서 접어든 북한산의 첫 오르막 등산로에서 아들은 발걸음을 멈췄다. “저쪽이에요.” 수풀 사이로 30m쯤 들어갔다. 생각보다 크지 않은 때죽나무가 있었다. 꼭 100일 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세상을 뜬 자리였다. 나무엔 어느새 옹이가 지고 있었다. 성 회장이 발 디디고 손도 뻗어야 겨우 닿았을 가지 하나가 그를 수습하던 사람들 손에 부러져나간 흔적이었다. 5월 49재 무렵에 왔을 때 흰꽃이 폈었다는 때죽나무엔 작은 초록 열매들이 맺혀 있었다.“찾았다”는 무전 소리에 경황없이 달려온 그날, 아버지의 몸에서는 모자·안경·넥타이·목장갑·구두·현금 8만원과 검찰이 가져가버린 ‘메모지’가 나왔다. 오른손에 꼈던 목장갑은 죽음을 작정하고 북한산에 왔음을 뜻했다. 현금은 죽기 전날 밤 아버지의 청담동 집에 들렀을 때 서재에서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지나쳤던 5만원권 지폐 2...

    2015.07.29 21:32

  • [정동에서]김성근의 ‘파울볼’과 박근혜의 ‘빈볼’
    김성근의 ‘파울볼’과 박근혜의 ‘빈볼’

    # 여기 한 명의 프로야구 감독이 있다. ‘야신(野神·야구의 신)’으로 불린다. 일본 교토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다. 가쓰라고교를 졸업한 뒤 한국으로 건너와 기업은행 야구단 창단 멤버가 됐다. 좌완투수였던 그는 노히트노런, 시즌 20승의 기록을 갖고 있다. 국가대표 투수로 1961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선수 시절은 짧았다. 28세 때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혹사에 따른 어깨 부상 때문이었다. 지도자로 변신한 이후 고교 야구부와 실업팀을 거쳐 프로야구(태평양·삼성·쌍방울·LG·SK) 감독을 지냈다. 칠순의 나이에 맡은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는 프로야구 선수 출신, 헬스 트레이너, 택배기사 등이 프로진출을 꿈꾸며 모인 ‘외인구단’이었다. 포기와 좌절에 익숙해진 ‘B급 선수’들에게 ‘지옥의 펑고’ 훈련을 시켰다.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이도록 배트를 휘두르게 했다. 때론 욕도 하고, 때론 불같이 화도 냈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듯한 ‘독종 감독’이...

    2015.07.22 21:29

  • [정동에서]덫에 걸린 유럽통화동맹
    덫에 걸린 유럽통화동맹

    도박판이 열렸다. 이 바닥에서 거래규칙이 하나 있다. 모두 같은 ‘칩’을 사용한다는 것. 잘 알려진 플레이어는 ‘독불장군’ ‘프로듀사’ ‘영아니네’ 3인방이다. 독불장군이 ‘하우스’ 개장을 주도했고, 한때 칩을 좌지우지했던 영아니네는 빠졌다. 독불장군은 판을 크게 벌여야 더 먹을 것이 있다며 참가자를 끌어들였다. 그중에 하나가 ‘그로기’였다. 그로기는 도박판에 낄 실력도, 돈도 부족했다. 독불장군은 그로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몇몇을 끌어들였다. 가지고 있는 돈을 높은 가격으로 산정해 칩으로 바꿔주겠다고 했다. 그로기는 갑자기 부자가 됐다는 착각에 빠져 칩을 뿌렸다. 그러나 실력이 달리는 그로기는 독불장군과 같은 노련한 상대를 이겨낼 재간이 없었다. 독불장군의 테이블에 칩이 쌓여갈수록 그로기의 주머니에서는 칩이 빠져나갔다. 칩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는 그로기에게 독불장군은 몇 차례 빌려주면서 아껴 쓰고 빌려준 돈도 갚으라고 했다. 칩을 또 빌리러 오자 독불장군은 “그로기가 게을...

    2015.07.08 21:06

  • [정동에서]아! 서준식, 강기훈
    아! 서준식, 강기훈

    꼭 22년 전 이맘때였다. 1993년 6월, 때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그해 3월 ‘인권운동 사랑방’을 설립해 ‘인권하루소식’을 발간하던 재야 인권운동가 서준식은 김형민·염규홍과 함께 <유서사건 총자료집>이란 제목이 달린 ‘강기훈 백서’를 만드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당시 그는 ‘유서사건 강기훈씨 무죄석방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서울 낙원동에 있던 인권운동사랑방에는 더위를 식혀줄 변변한 선풍기 하나 없었다. 책상에는 강기훈 유서대필조작사건과 관련된 자료들이 빼곡하게 쌓여 있었다. 세 사람은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는 날이 많았다. 늦은 밤까지 ‘강기훈 백서’에 들어갈 수사기록과 녹취록, 필적 감정자료 등을 보완했다. 그들은 그렇게 1년을 보냈다. 3권으로 구성된 2700여쪽 분량의 <유서사건 총자료집>에는 공판기록, 논고문, 변론요지, 판결문 등 공식 문서는 물론 신문기사 1000여건, 각종 성명서 등이 수록됐다. 유서대...

    2015.06.10 2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