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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 전체 기사 327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냉면에는 남북이 없다
    냉면에는 남북이 없다

    방북 예술단이 귀환했다. 남북관계에서 ‘잃어버린 9년’은 참으로 길었다. 그 시간을 뛰어넘어 걸그룹 멤버들이 냉면 먹는 장면의 사진이 언론에 실렸다. 그것은 달라진 세상을 의미하는 상징으로 유통되었다. 한때 남북관계 호시절에는 평양에서 ‘진짜’ 평양냉면을 먹어본 인사들이 많았다. 맛에 대한 평들도 다양했다. 그 도시의 냉면이 더 이상 화제도 아니었다. 정치나 사업 하는 이들 중에서 옥류관 냉면 한번 못 먹어본 사람은 끝발 없는 사람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그만큼 평양 왕래객이 많았다. 평양에 가지 않더라도 대안이 많았다. 금강산 관광 가서도 평양냉면을 사먹을 수 있었다. 북한의 설명대로라면 ‘평양과 똑같은 냉면’을 팔았으니까. 방북 예술단은 많은 화제와 후일담을 생산하는 중이다. 단연 대중의 관심은 냉면 시식기다. 면 색깔이 검은 걸 보니 감자전분을 많이 섞거나 메밀 겉껍질을 넣은 막국수 스타일이 아니냐는 관전평(?)도 나왔다. 평양냉면을 두고 다시 논쟁이 벌어졌다. ...

    2018.04.05 21:1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진짜 노포도 아니면서
    진짜 노포도 아니면서

    요즘 먹는 동네의 유행은 ‘노포’다. 오래된 가게를 뜻하는 이 한자어는 우리나라에서 그다지 명색이 없다. 가게가 오래 버틸 역사적 조건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무렵 생긴 가게들이 살아남아 있어야 노포 소리를 들을 텐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남아 있는 것이 손꼽을 정도다.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일본은 한반도의 물자수탈을 가속화했고, 팔 음식이 없으니 식당이 배겨내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문자 그대로 고사(枯死)였다. 해방 후 물자부족시대에도 식당이 생겨났지만, 역시 6·25전쟁으로 초토화됐다. 중국도 노포가 적은 나라다. 정치적 격변기를 거쳤고, 문화대혁명이 오래된 가게들을 무너뜨렸다. 동아시아 삼국 중에서 일본은 노포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일찌감치 식당 문화가 발달한 구대륙인 유럽 못지않다. 일본도 미군의 대공습으로 주요 도시가 파괴되었고, 노포 역시 폭격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복구하여 역사를 이어가는 집이 많다. 물론 일본 노포의 대세는 패전 이후에 ...

    2018.03.22 20:54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혼밥
    혼밥

    ‘혼밥’은 사회적 자폐라는 이야기가 돈 적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자폐자다. 어려서부터 혼밥을 좋아했다. 밥집에 혼자 앉아 기다리고 먹는 일은 효율적인 즐거움을 준다. 배도 채우고, 맛을 음미하는 기쁨을 제대로 즐겨볼 수 있다. 동행이 없으니 온전히 밥에 집중할 수 있다. 나물에 들기름을 쳤는지 참기름을 발랐는지 쉬이 안다. 혼자서 밥집 탁자에 앉아 기다리는 마음은 온전히 내 것이다. 내가 요리사가 된 건, 아마도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밥과 사람의 교통을 단순하게 들여다보는 훈련 같은 것 말이다. 주문을 넣고 주방에서 호응하고 일관된 동작으로 내 앞에 밥이 놓이는 과정에 내 마음을 섞는다. 엇, 밥 푸는 저 아줌마의 손 좀 봐. 번개 같군. 국밥 토렴은 정말 예술이야. 생활의 달인에 나오실 만하겠는걸. 점심시간이 끝나서 한가할 무렵, 텔레비전에서는 드라마 재방송을 틀어주고, 아줌마는 내게 추가 반찬을 가져다주면서도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하기도 한다. ...

    2018.03.08 20:56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동태찌개나 한 냄비
    동태찌개나 한 냄비

    혹한이 거듭되면 더운 음식이 그리워진다. 역시 엄마의 손이 생각난다. 벙거지를 쓴 생선장수 아저씨가 언 길을 뚫고 동네를 다녔다. 그의 리어카는 너무 추운 날씨에 모두 얼어버려서 생물인지 냉동인지 알 수 없는 생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볼을 베어버릴 것 같은 칼바람이 불었지만 아저씨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먹고산다는 것이 엄중하다는 사실을, 아마도 어린 나도 느꼈으리라. 아저씨가 동태를 무지막지한 식칼로 토막을 냈다. 그때 동태는 왜 그리 컸던지. 동네 구멍가게에서 나무상자에 담아 파는 모두부도 한 모 사고, 시원한 무와 겨울 파도 한 다발 샀으리라. 숟가락은 많고 동태는 모자라니, 두부를 많이 넣고 연탄아궁이에서 동태찌개를 끓였다. 요즘은 뒷골목 백반집에서나 볼 수 있는 양은냄비가 우리 집 부엌에서 보글거렸다. 2월 말이면 이미 상태가 나빠지던 신김치도 넣었다. 그 맛이 아직도 혀에 삼삼하다. 목젖이 데이도록 뜨거운 두부와 구수한 살점을 삼켰다. 아버지는 왜 그리도 동태 대가리를...

    2018.02.22 20:56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베트남 쌀국수
    베트남 쌀국수

    사람이 들어오면 문화도 등에 업고 온다. 가장 큰 게 음식이다. 임오군란을 수습하는 와중에 군대를 파견한 청나라와 불평등한 무역협정을 맺은 게 1882년의 일이다. 당연히 중국음식도 들어왔다. 짜장면 전래설도 여기서 출발한다. 아마도 처음에는 달지 않은 호떡이었을 것이다. 밀가루떡을 굽고 파와 춘장을 넣어서 먹었던. 이윽고 짜장면과 따루면(중국식 우동) 같은 게 들어왔다. 이후 수많은 외국 문화가 한국에 건너오면서 음식문화를 퍼뜨리는데, 흥미롭게도 다수가 국수다. 우리 민족이 국수를 정말 좋아하긴 했던 것 같다. 돈 많은 양반들이 ‘낮것상’이라고 하여 점심에 국수를 차려먹는 일이 동경의 대상이었으니까. 국수는 맛도 좋고 별식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늘 선호도 일등이었다. 메밀로 내린 국수를 기억하는 관서지방 사람들이 남으로 이주하면서 남한 전체에 냉면 유행을 만들어 놓았다. 미군이 퍼뜨린 건 스파게티였다. 커다란 미트볼을 넣는다거나 하는 전형적인 미국화된 스파게티였다. 여기에 일본...

    2018.02.01 21:14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진짜 동치미
    진짜 동치미

    사람마다 좋아하는 술안주가 있을 텐데, 나는 동치미 한 사발이다. 그 맑은 순수의 짠맛 한 그릇이면 술이 외롭지 않다. 문제는 이걸 제대로 얻어먹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밥집이나 고깃집에서 주는 건 대다수가 ‘가짜’다. 동치미=冬沈이라는 문자 그대로 겨울에 푹 잠겨 익은 동치미가 아닌 것이다. 그 제조 비법(?)이야 뻔하게 예상이 가능하다. 간간한 소금물에 잘 삭은 게 아니라 급조한 ‘이미테이션’이다. 동치미라고 부르는 게 무색하다. 익힌 것이 아니니 사카린과 빙초산과 설탕과 사이다에 또 ‘무엇무엇’을 넣어 맛을 낸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동치미를 잘 만들어서 익히자면, 공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보통 식당에서 그런 환경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김치라도 겨우 담가서 파는 집도 희귀해진 판에 동치미는 언감생심이다. 게다가 이 동치미라는 녀석은 변덕이 심하다. 물이 많이 잡히고 고춧가루가 안 들어가니 발효 조절이 힘들다. 동치미는 일종의 물김치이니 익히자면 공간도 건더...

    2018.01.18 20:56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시급 7530원’과 노동구조
    ‘시급 7530원’과 노동구조

    예전에 이른바 패밀리 레스토랑을 취재한 적이 있다. 한 후배의 얘기에서 출발한 취재였다. 그는 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주방일을 맡고 있었는데, 50여명에 달하는 일꾼 중 정규직이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그 후배가 이런 충격적인 말을 했다.“점심시간이 끝나면 저녁 준비 시간 전까지 모두 가게 밖으로 나가야 해요. PC방이나 공원에 가서 시간을 때우다 오곤 했죠.”스마트폰도 없던 시절이었다. 제 돈 주고 시간을 쓰고 들어왔다. 물론 무급으로. 가게 안에 머물면 시급을 줘야 한다. 그러니 밖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지금도 나는 들르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알바생’ 등을 볼 때마다 그 사건이 생각난다.시급 1만원 시대를 열겠다는 게 이 정부의 공언이었다. 어찌어찌 일단 7530원이 되었다. 법대로 주휴수당 등을 다 챙긴다고 가정할 때 하루 10~12시간을 일하고(요식업소의 일반적인 근로시간) 월 21일 근무하면 대략 170만~200만원을 손에 쥐게 된다...

    2018.01.04 20:38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배달소년
    배달소년

    동네의 제법 큰 ‘슈퍼’-옛날엔 구멍가게보다 새롭고 큰 가게를 슈퍼라고 불렀다- 앞에는 짐자전거가 놓여 있었다. 시커멓고 커다란 짐받이가 있으며, 더러 짐받이를 키워서 배추 스무 포기쯤은 너끈히 배달할 수 있는 그런 자전거였다. 육중한 무게감, 그건 소년들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저 자전거를 탄다는 건 어른으로 인증받는 방법이었다. 슈퍼집 아들에게 아부해서 몇몇 녀석들은 그 자전거를 몰았다. 안장에 앉으면 발이 닿지 않으니 옆에 붙어 서서 페달을 돌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오면 아이들이 박수를 쳤다. 짐자전거는 중국집의 필수품이기도 했다. 대개 소년이 그걸 몰았다. 고등학교 같은 건 가지 않고, 중국집에서 먹고 자며 일찍이 사회에 발을 들인 형들. 그 형들이 담배 한 대를 멋지게 피우고는 배달통을 뒤에 싣고 힘차게 페달을 밟는 모습은 진짜 탄성을 자아냈다. 그들도 아직 키가 여물지 않아 겨우겨우 페달에 발을 얹은 처지라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게다가 ‘...

    2017.12.21 20:4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우주에서 농사짓기
    우주에서 농사짓기

    수능이 치러지기 전에는 학력고사란 게 있었다. 아마도 교육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과목일 텐데, 실업도 고사 과목 중 하나였다. 그게 쓸모가 있든 없든 3년을 열심히 배우고 가르쳤다. 필답고사 320점 만점에 무려 15점이 배점되어 있었다. 속칭 암기과목이니 이른바 무조건 고득점을 노리고 봐야 하는 전략과목이기도 했다. 실업이란 게 워낙 다양해서 상업, 공업, 가사에 농업, 수산업, 광업도 있었다. 고등학교가 속한 지역 사정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업, 공업이 많았다. ‘밥’이 되는 과목이라는 뜻이었다. 농업이니 수산업이니(심지어 광업까지) 하는 과목은 사양산업 같았고, 1980년대에 바라보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실업 과목에 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인문계를 다녔으니 상업을 배웠다. 문제는 이 과목이 상당히 어렵다는 점이었다. 대변 차변이 나오는 부기 부분에 가면, 머리가 다 멍해질 지경이었다. 도대체 ‘부채도 자산이다’라는 원리를 이해할 수 없...

    2017.12.07 20:18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고추에게 감사를
    고추에게 감사를

    올해 김장들 준비하시는지 모르겠다. 배추농사는 나쁘지 않았는데 고추가 영 좋지 않다고 한다. 고추는 기르기 어려운 작물이다. 원래 원산지인 아메리카 대륙과 우리 기후의 차이를 생각해보면 대충 답이 보인다. 고온 건조한 기후에 어울리는 작물이다. 한국은 비도 많고 탄저병 같은 치명적인 감염에 쉽게 노출되어 있다. 올해 탄저가 고추를 놔두지 않았다. 옛날 김치에는 고추를 많이 안 쓰고 시원했다는 추억을 말하는 분들이 있다. 특히 서울과 경기, 충청, 강원도 김치가 그랬나 보다. 지방마다 고유한 맛은 본디 환경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그때는 농사기술도 부족하고 효과 좋은 농약도 없어서 고추 기르기가 어려웠으니 김치도 담박한 편이었을 거다. 유기농 하는 농민들이 과일만큼 어려운 게 고추라고도 하신다. 한국 고추는 세계에서 매운 편에 속하지 않는다. 달고 부드러운 맛이라고나 할까.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량되어 온 셈이다. 그래서 고춧가루 사용량도 많다. 만약 이탈리아나 멕시코, 동남아 ...

    2017.11.2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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