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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
  • 전체 기사 327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김장소묘
    김장소묘

    아침잠에 헤매고 있을 시간에 매운 냄새에 깰 때가 있었다. 아직 일고여덟 살 때의 기억이다. 찧은 마늘과 생강 향이 코를 찔렀다. 쿵쿵 하고 절구에 찧어내니 향이 집안에 가득 찼다. 아, 김장하는 날이구나. 마당에서는 멸치젓 달이는 냄새가 났다. 그다지 향기롭지 않았던. 우리 집은 경상도와 서울식을 절충한 김장이라 새우젓은 조금만 넣으셨던 것 같다. 김장철 전에는 늘 새우젓 장수가 서울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새우젓이요, 새우젓” 하고 외쳤다. 지면이라 그 소리를 들려드릴 수 없는 게 유감이다. 마포 새우젓 장수는 특이하게도 콧소리를 심하게 내는 발음으로 호객했다. 멀리서도 콧소리가 들리면 ‘아하, 새우젓 장수구나’ 하고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새우젓 장수는 흥정을 하고, 리어카에 실린 새우젓을 듬뿍 퍼서 줬다. 그때는 김장도 손이 컸다. 겨울에 달리 먹을 게 없었던지라 김장은 한 집 살림의 팔할이었다. 어지간한 집은 팔십포기, 백포기가 흔했고 어떤 집은 이백포기도 했다...

    2017.11.09 20:45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흑돼지냐 백돼지냐
    흑돼지냐 백돼지냐

    돼지 품종이 뭐가 있냐고 주변에 물었다. ‘한돈’(?)이라고 대꾸한다. 한돈은 국내 양돈업자가 만든 브랜드이지 품종은 아니다. 그렇다. 사실 우리는 돼지 품종을 잘 모른다. 오죽하면 백돼지와 흑돼지로 나뉜다고 할까. 연간 8만여 마리 이상 출하되어 대표적인 제주 흑돼지조차 정확한 품종명이 아니다. 외래종 흑돼지의 대표격인 버크셔의 혈통이 섞여 있거나, 더러 재래종 흔적이 남아 있는 정도다. 물론 우리가 아는 ‘백돼지’의 혈통도 포함되어 있다. 흑돼지는 털 빛깔을 말할 뿐, 혈통 안에는 여러 돼지의 유전자가 뒤섞여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재래종을 고집하기도 그렇다. 고유 흑돼지는 사실상 씨가 말랐다. 빨리 자라지 않고 무게도 적게 나간다는 이유로 수입종에 밀려버린 것이다. 그저 무게로 따지는 게 아니라 고유종의 맛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지만, 혈통을 찾아 보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다 보니 유럽의 돼지 축산 강국인 스페인산 흑돼지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시중에 ‘이베...

    2017.10.26 20:56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메밀 시대
    메밀 시대

    올해처럼 냉면이 화제가 된 적이 드물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오던 ‘노포’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냉면집들이 속속 등장했다. 냉면에 대한 새로운 시장층이 생겼다. 젊은이들이다. ‘밍밍하기만 한’ 평양냉면 육수의 맛을 음미하고 이해하려는 세대가 생겨난 것이다.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서 ‘냉부심’(평양냉면의 맛을 안다는 자부심)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냉부심(?)의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말한 특유의 육수 맛을 감지하는 것이다. 매콤 새콤하지 않고 부드러우며 알 듯 모를 듯한 풍미를 사랑하는 능력이다. 시쳇말로 ‘행주 빤 물’ 같다는 혹평의 그 육수가 맛있어지는 단계다. 다른 하나는 메밀 함량이 높은 면에 대한 애호다. 그동안 메밀 값이 비싸고 구하기 어려워서인지 평양냉면이라고 이름붙이고 실은 전분과 밀가루로 만든 면에 메밀은 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메밀 함량은 1920년대 한 신문에도 “평양냉면은 오직 메밀로만 만든다”는 탐방 기사가 ...

    2017.10.12 20:51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양평부추축제
    양평부추축제

    사람들은 내게 이탈리아를 여행하는 법을 묻곤 한다. 그곳에서 살아봤으니 특이한 여행법을 추천해달라는 거다. 내 답은 거의 비슷하다. 로마, 피렌체, 밀라노와 베네치아 말고 작은 도시를 가보라고 권한다. 소박한 이탈리아의 삶을 볼 수 있으니까. 또 하나는 사그라(sagra)에 참여해보라고 한다. 사그라는 작은 축제를 의미하는데, 대개 음식을 주제로 연다. 우리로 치면 면 단위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행사를 치른다. 이탈리아도 지방의 노령화, 젊은 인구 부족 현상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런 작은 축제를 열면서 여전히 마을의 과거와 미래를 이으려는 노력을 한다. 개구리(물론 식용이다) 축제나 통돼지구이처럼 흥미로운 주제도 있지만 남들이 보기에 별거 아닌 것도 자랑거리로 내세운다. 양파나 파, 고추, 가지 같은 것이 주제가 된다. 축제라고 해서 큰 기대를 하고 갔다가는 실망할 수도 있다. 그저 밤을 까서 케이크를 굽거나, 콩으로 수...

    2017.09.21 20:47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목숨 거는 바다
    목숨 거는 바다

    예전에 취재하느라 오징어잡이 배를 탄 적이 있다. 하룻밤을 먼바다에서 보냈는데 정작 취재는 하지도 못했다. 뱃멀미에 속이 뒤집혀 자그마한 선실에서 끙끙 앓았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파도가 밀어닥쳐서 뱃전을 때릴 때마다 배는 롤러코스터를 탄 듯했고, 내 내장까지 울림이 전해졌다.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다. 당장이라도 출어를 중단하고 귀항해야 할 것 같은데도 작업 선원들은 오징어가 걸려오는 주낙만 바라봤다. 생과 사 같은 건 그들에게 호사스러운 용어였다. 잡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다는 단순한 현실에서 파도 따위야, 이런 태도였달까.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선은 어지간하면 출어한다. 해경에서 출어금지령이 내리기 전에는 태풍이 온다고 해도 하늘을 본다. 혹시나 나갈 수 있을까 출어를 가늠한다. 선장은 빚내서 얻은 배 값 상환이 걱정이고, 선원은 출어를 못하면 벌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한때 만선이 흔하던 시절에는 목돈도 만졌다고 한다. 선원들 얘기는 하나같이 “옛날에...

    2017.09.07 20:50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최저 가격의 존재 이유
    최저 가격의 존재 이유

    언젠가 이 칼럼에서 달걀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완벽한 한 생명(우리는 이것을 완벽한 영양으로만 표현한다)의 값치고, 우리가 달걀을 너무 싸게 먹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몇 개월 전만 해도 달걀값은 한 판에 4000원대에도 거래됐다. 한 알에 130.40원짜리였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싼 것은 의심해보라는 건 진리다. 우리는 전자제품이나 다른 상품을 살 때 이런 원칙을 잘 적용한다. 반품이나 진열했던 것은 아닌지, 심지어 핵심기능을 빼고 출시한 저가제품은 아닌지도 꼼꼼히 따진다. 전자제품이나 기타 상품은 ‘먹을 수도 없는 것’인데 그토록 치밀한 분석을 한다. 영화 칼럼에도 심지어 ‘적정 관람료’라는 게 나온다. 영화가 돈값을 하는지 분석해주는 내용이다. 적정 달걀값은 우리에게 없었다. 더 싸게 무한정 공급되는 달걀의 속사정을 챙겨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두 번의 폭탄을 맞았다. 이미 우리 기억에도 희미한,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한 살처분으로 산란계가 대폭 줄면서 달걀 공급에 비상이...

    2017.08.24 11:38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먹을 수는 없어
    먹을 수는 없어

    입시제도의 변천사까지는 아니어도, 대학 입시가 얼추 어떻게 변해왔는지는 안다. 본고사에서 예비고사, 학력고사에서 수능으로 이름만 바꿨지 그다지 쓸모 있는 학생 고르는 방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억하건대 가장 웃기는 건 체력장이었다. 고입 연합고사 200점 만점에 20점, 대입 학력고사 340점 중에 20점이 이른바 체력검정 점수였다. 체력으로 점수를 매기고, 그것이 당락에 영향을 준다는 건 상당히 불공정한 게임이다. 그래서 감독 선생님들은 어지간하면 20점 만점을 주기 위해서 ‘적당히’ 채점을 하곤 했다. 문제는 신체장애인 친구들이었다. 장애 때문에 검정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선심 쓰듯 15점이라는 기본점수를 주는 게 고작이었다. 참말 어른들이 저지르는 개 같은 경우의 제일 윗길에 오를 처사였다. 얼렁뚱땅 뛰어도 대개는 20점을 받는 상대들에게 5점을 까고 들어가는 경쟁이 얼마나 불리했겠는가. 요즘 같으면 당장 인권위원회에 고발당할 사안이 아닐까.그때 학력고사는 실업 ...

    2017.08.10 12:14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한국인 밥상 떠받치는 외국인 노동자
    한국인 밥상 떠받치는 외국인 노동자

    20여년 전 유럽에서 겪은 일이다. 가을에 포도 수확하는 일을 하게 되었는데, 모인 노동자들이 대부분 타국에서 왔다. 포도는 제때 수확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는 일이라 일시적으로 손이 많이 필요하다. 자국의 손이 부족하니, ‘차떼기’로 외국 노동자들을 실어날랐다. 이미 노쇠해가고 있던 서부 유럽 노동시장의 한 단면이었다. 지금 한국도 다르지 않다. 농축수산업 모두 외국인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바닥 일을 맡고 있다.최근의 에피소드 한 대목. 봄에 남도의 어느 항구에는 멸치잡이 배가 들어온다. 엄청난 숫자의 미디어가 취재경쟁을 벌인다. 아마추어 사진가들까지 몰려 북새통이다. 멸치를 잡아오면 배를 붙이고 그물에서 털어내는 장면이 인기가 높다. 현장 촬영은 늘 애를 먹지만 더 큰 어려움이 있다. 그물 터는 어부들을 생생하게 잡아야 하는데 이들이 거의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한국 어항을 묘사하는데, 카메라 앵글 속에 한국인이 드물어서 ‘그림이 안된다’는 뜻이다. 그물 터는 노동이 워낙 ...

    2017.07.27 20:47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우리에게 냉면이란
    우리에게 냉면이란

    아마 요즘처럼 냉면이 화제가 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냉면에 대해 따따부따한다고 해서 ‘면스플레인(면+explain)’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의 신조어도 유행한다. 평양(식)냉면이 진짜 냉면이라는 경도된 생각이 이른바 미식가나 ‘좀 먹어주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퍼질 정도다. 평양냉면이 냉면의 시대를 연 것은 맞다. 동시에 세계에 퍼져 있는 우리 민족은 제각기 냉면을 먹고 있다. 다른 조리법과 다른 맛을 가진 상태로 말이다. 저 멀리 일본 북쪽, 모리오카라는 지방도시에서도 그렇다. 인구가 13만명이라는 이 작은 도시에서는 자그마치 450여군데의 식당에서 냉면을 판다. 한국식(조선식) 또는 평양식이라는 이름을 달고서. 그중에서 우리 동포가 문을 열어 수십년의 역사를 가진 집만도 여럿이다. 삼천리, 명월관, 식도원, 뿅뿅사, 성루각….모리오카에는 3대 명물 면이 있다. 완코소바, 자자멘, 그리고 냉면이다. 단연 냉면이 가장 일상적인 음식으로 유명하다. 한국식 불고기집(...

    2017.07.13 20:45

  •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그 옛날 아이스박스의 추억
    그 옛날 아이스박스의 추억

    옛날 신문을 보면 흥미로운 광고가 많다. 계절에 따라 주력 물건도 바뀌었다. 1960년대는 전후의 혼란을 딛고 안락한 가정에 대한 욕망이 극대화되던 시기였다. 겨울에 난로 선전(예전에는 상업적인 광고물도 주로 선전이라고 불렀다), 여름에는 아이스박스였다. 냉장고는 1965년도에 금성사에서 눈표라는 이름으로 첫 제품을 출시했는데, 한동안 아이스박스와 같이 팔렸다. 냉장고는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아이스박스는 1980년대까지도 가난한 집 부엌과 포장마차의 냉장고 노릇을 했다. 동네마다 얼음장수가 까만색 짐자전거에 얼음을 잔뜩 싣고 배달하던 장면도 생각난다. 재미있는 건 그들이 겨울에는 석유, 여름엔 얼음을 팔았다. 이유는 묻지 않아도 될 일이다. 이런 ‘양수겸장’업은 일본에서도 똑같이 발견된다. 우리에게 근대를 강제 이식한 일제의 영향력은 그처럼 오래갔다.우리 집은 1980년대 초에 냉장고를 샀다. 그 전까지 부엌에는 찬장과 아이스박스가 여름을 지켰다. 얼음 50~10...

    2017.06.29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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